신의비서 13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5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13화
제5장 암계(暗計) (3)
“잠시 갔다 올 테니 그동안 예상에게 의술의 기초적인 것들을 배우고 있어라.”
당자기가 그렇게 말하고 자리를 비웠다. 당이주를 만나러 가는 것이었으나 조윤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방 안에 단둘이 남게 되자 당예상이 조윤을 빤히 쳐다봤다. 조윤 역시 말없이 그녀를 봤다.
당예상은 조금 차갑고 도도해 보이는 것이 흠이었지만 얼굴이 갸름하고 눈이 큰 미인이었다. 또한 마른 체형인데 키가 커서 몸매가 늘씬해 보였다.
하지만 그건 현대의 미적 기준이었고 이 시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이곳 사람들은 약간 풍만한 몸매를 선호했다. 그래야 복이 들어오고 아이를 잘 낳는다고 여겼다.
“올해 몇 살이지?”
“열 살이요.”
“하면 내가 말을 놓아도 되겠구나.”
조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따지자면 그가 훨씬 더 오래 살았으나 몸은 이제 열 살이었다. 더구나 여기서는 나이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신분이나 힘이 우선이었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예상이라고 해.”
“단목조윤입니다.”
“글은 알아?”
“네. 최근 사서삼경을 공부하고 있어요.”
조윤의 말이 의외였던지 당예상의 눈빛에 이채가 서렸다. 문사가 되려는 사람들도 열 살에 사서삼경을 공부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아무리 빨라도 보통은 열두 살이나 열세 살은 되어야 시작한다.
“의술은 얼마나 배웠어? 음양오행에 대한 건 이해하고 있니?”
“네.”
당예상은 조윤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해 기초적인 것들을 몇 가지 물었다. 이에 조윤은 하연이의 병을 고치기 위해 배웠던 한의학을 토대로 대답을 했다.
그녀가 묻고 설명하는 것은 그가 배웠던 한의학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의 즉, 동양의학은 인체를 소우주로 보고 음양오행(陰陽五行)에 근거해서 병세를 판단한다. 다시 말해 몸의 균형을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치료 방향도 그쪽에 맞춰져 있다.
당예상은 조윤이 막힘없이 대답을 하자 좀 더 깊이 있는 질문을 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기초에 관한 것이라 크게 어렵지가 않았다. 오히려 조윤의 설명을 듣고 당예상이 몇 가지 깨닫는 바가 있었다.
“잘 가르치고 있느냐?”
방으로 들어온 당자기가 웃으면서 당예상에게 물었다. 그러자 당예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오히려 제가 배우고 있었어요.”
“뭐라?”
당자기가 놀란 눈으로 당예상과 조윤을 번갈아 가며 봤다. 당예상은 열 살 때부터 당자기를 따라다니며 의술을 배웠다. 당연히 의술의 기초를 모두 꿰고 있었고, 요즘은 사람들의 병세까지 어느 정도 볼 줄 알았다. 해서 조윤에게 기초를 가르치라 한 것인데 오히려 배우고 있었다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 무엇을 배웠더냐?”
당자기의 물음에 당예상은 방금까지 조윤과 나눴던 이야기를 그대로 들려 줬다. 그걸 조용히 듣고 있던 당자기는 내심 크게 놀랐다.
“음. 하면 내가 몇 가지 질문을 하마.”
“네.”
당자기는 기초적이나 대답하기 어려운 것을 물었다. 그럼에도 조윤은 대답을 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술술 쏟아져 나오는 말을 듣고 있자니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저 나이 때는 음양오행에 대해서 안다고 해도 그저 외우고만 있을 뿐, 그 뜻까지 깨우친 경우는 흔하지 않았다. 한데 조윤은 깊이 깨우친 것으로도 모자라 활용까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조금 더 대화를 나누던 당자기는 더욱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다고 해서 실소를 하며 한번 떠봤는데 그 식견이 남달랐다. 뜻 모를 단어를 간혹 쓰는 것만 빼고는 흠잡을 데가 없었다.
한데 신기하게도 약초나 처방, 치료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이에 당자기는 조윤이 이론으로만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허! 이런 곳에 인재가 숨어 있을 줄이야.’
나이 열 살에 이론만 공부해서 병세를 그렇게까지 정확하게 판단한다는 것은 웬만한 재능으로는 불가능했다. 약초나 처방에 대한 것은 앞으로 차차 배워 가면 될 일이었다.
“대관절 네게 의술을 가르쳐 준 사람이 누구냐?”
당자기가 갑자기 묻자 조윤은 속으로 ‘아차!’ 싶었다. 의술을 빨리 배우고 싶은 마음에 너무 많은 것을 내보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사실 조윤이 병세를 잘 판단하는 것은 병원에 있을 때의 경험 때문이었다.
“그게…….”
“내 너와의 관계를 확실히 하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다.”
“누군지는 모릅니다. 그저 지나가는 말로 화타의 후손이라고만 들었습니다.”
조윤은 이번에도 백모연에게 했던 거짓말을 똑같이 했다. 딱히 둘러댈 말이 없어 그때 한 말이 자신도 모르게 나온 것이다. 한데 당자기의 반응이 예상 외였다.
“음……. 역시 그렇군.”
“혹시, 아시는 것이 있습니까?”
“스스로 화타의 후손이라고 했다면 신의문(神醫門) 사람이 분명하다.”
“신의문이요?”
“그래. 신의문은 화타의 후인이 의술을 전하는 곳이다. 황제를 보살피는 어의(御醫)도 그곳 출신이 많지. 의술에 관해서는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원래 화타는 후인이 없었다. 동향 출신인 조조가 그의 명성을 듣고 주치의로 삼았지만 아내의 병을 핑계 대고 도망을 쳤고, 이에 분노한 조조가 잡아다가 고문하고 죽였다.
옥에 갇혀 있을 때 화타는 자신의 심득을 적은 의서를 옥졸에게 줬으나 처벌이 두려워 받지 않자 그대로 태워 버렸다. 한데 화타의 의술을 전해 받은 이가 있어 버젓이 문파까지 세웠다고 하니 이상한 일이었다.
“너는 그 사람과 사제의 연을 맺었느냐?”
“아닙니다. 그 사람은 약간의 가르침만 주고 그대로 떠났습니다.”
“하면 다행이구나.”
당자기는 흡족함에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제자들 중에서 당예상의 재능이 가장 뛰어났으나 여자인 것이 늘 아쉬웠었다.
한데 조윤은 사내였다. 더구나 당예상보다 더 뛰어난 재능을 지녔고, 나이도 어렸다. 잘만 키운다면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명의가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화타나 편작에 버금가는 신의가 될지도 몰랐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당문에서도 당자기를 비롯한 의원들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당자기는 사흘만 있다가 가려는 생각을 버리고 열흘 가까이 머물면서 의술을 가르쳤다.
조윤은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알았다. 또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에 당자기는 처음에 안 좋게 보던 생각은 온데간데없고 애제자를 대하듯이 조윤을 아꼈다.
* * *
백모연은 요 며칠간 당자기가 틈만 나면 조윤을 끼고 의술을 가르치자 신경이 쓰여 다른 일을 할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당이주가 시켜서 그러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을 했었다. 그러나 정성을 쏟으며 가르치는 모습을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며칠 전에 당문으로 돌아가면서도 아쉬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었다.
백모연은 조윤의 재능이 그리 뛰어난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조금 생각해 보니 곧 이해가 되었다. 조윤은 어린아이답지 않게 생각이 깊고 뭐든 배우는 것이 빨랐다.
만약 자신의 아들이 살아 있다면 조윤처럼 영민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에 백모연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방으로 들어갔다. 뒤따라온 조윤이 자리에 앉자 시녀가 차를 내놓고 나갔다.
“의술을 배우는 것은 좋으나 그 때문에 공부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무공 수련 역시 마찬가지이고.”
“네.”
“알고 있으면 되었다. 이제 열흘만 있으면 가문의 총회가 열린다. 그 자리에는 단목세가의 중요 인사들이 모두 모이니 그때 너를 소개할 생각이다.”
단목세가는 세 달에 한 번씩 회의를 한다. 그때는 직계는 물론이고 방계들까지 모두 모여 가문의 대소사를 의논하고 결정한다. 그러나 단목태성이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지난번 총회는 무산되었다.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믿어 줄까요?”
아이답지 않은 날카로운 질문이었으나 백모연은 놀라지 않았다. 지난 며칠간 그런 조윤의 모습을 몇 번이나 봐서 이제는 담담했다.
“내가 생각해 둔 것이 있으니 너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조윤이 단목태성의 아들인 것은 확실했지만 상대가 부정하고자 작정한다면 증명하기가 쉽지 않았다. 이에 백모연은 나름대로 준비해 놓은 것이 있었다.
“네. 어머니만 믿을게요.”
“그, 그래.”
어머니란 말에 백모연은 그녀답지 않게 약간 당황했다. 당이주와 공손미부의 자녀들에게도 어머니라고 불리지만 조윤이 부르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조윤이 어쩌다가 한 번씩 어머니라고 부르면 가슴 한편이 저려 왔다. 혹여 그것을 들킬까 차를 한 모금 마시던 백모연은 향이 이상한 것을 느꼈다.
“마시지 마라.”
“네?”
백모연은 조윤이 마시려던 차를 재빨리 빼앗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향을 맡다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독이 분명했다.
확인을 위해 머리에 꽂아두었던 은비녀를 빼서 담가봤다. 색이 까맣게 변했다. 그걸 본 조윤의 얼굴이 창백하게 굳었다. 차에 독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누가 자신을 죽이려는 걸까?
자연스럽게 당이주의 얼굴이 떠올랐다.
“괜찮다. 우리를 해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정말 우리를 죽이려고 마음먹었다면 이렇게 향이 강한 독은 쓰지 않았을 거다. 차를 마시기 전에 내가 알아차릴 걸 예상하고 독을 쓴 것이다.”
조윤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뻔히 들킬 걸 알고 왜 독을 쓴단 말인가?
그 모습을 보며 백모연이 미소를 지었다. 늘 어른 같지만 저런 때는 아이 같아 보여 귀여웠다.
“누군지는 몰라도 독을 쓴 자는 언제든 우리를 죽일 수 있다는 걸 알려주려는 거다. 일종의 경고인 셈이지.”
“아!”
그제야 이해한 조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현대에서 살았던 정수현은 오로지 하연이를 살리기 위해 의학에만 매진해 왔었다. 이런 심계 깊은 암투는 겪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 의미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걱정 마라. 가문의 총회가 가까워지니 상대도 초조한 게다. 나는 잠시 나갔다가 올 테니, 혼자 공부하고 있어라.”
“네.”
백모연이 방을 나가자 조윤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잠깐 사이에 죽음의 경계까지 갔다 왔다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몸은 아는 듯, 손에 축축하니 땀이 배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