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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11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1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11화

제5장 암계(暗計) (1)

 

 

단목세가는 생각보다 컸다. 가주인 단목태성의 처소로 가는 동안 지나쳐 온 건물만도 몇 개나 되었다. 오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는데 전부 백모연에게 예를 갖추면서 조윤을 힐끔거렸다. 이곳에 온 지 겨우 삼 일밖에 되지 않았건만 모두들 이미 조윤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가모님을 뵙습니다.”

 

방문 앞을 지키던 곽우가 백모연을 향해 인사를 했다. 그는 단목세가의 최정예인 낙성검대(落星劍隊)의 일인(一人)이었다. 하니 가주의 처소라 해도 이렇게 경계를 설 신분은 아니었다. 한데도 그는 가주가 쓰러지자 자청해서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열어라.”

 

백모연의 말에 곽우가 약간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안에 첫째 가모님이 계십니다.”

 

“열어라.”

 

차갑게 같은 말을 반복하는 백모연의 모습은 굉장히 낯설었다. 평소 같으면 기다리거나 나중에 다시 왔을 것인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오늘은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이에 곽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조윤에게로 향했다.

 

‘저 아이인가?’

 

닮긴 닮았다. 뚜렷한 이목구비며 눈에 현기가 도는 모습이 가주인 단목태성을 꼭 빼닮았다.

 

“들어가십시오.”

 

넓은 방 한쪽에 침대가 놓여 있고, 그곳에 미모가 뛰어난 중년 여인과 어린 소년이 서 있었다. 남궁태성의 정실인 당이주와 장남인 단목무호였다.

 

백모연이 당이주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오랜만에 뵙는군요.”

 

“어서 와요.”

 

인사를 받는 당이주는 백모연이 아니라 그 옆에 있는 조윤을 보고 있었다. 반갑지 않은 존재라 시선이 차가웠다.

 

“상공은 어떤가요? 차도가 좀 있나요?”

 

“아니요.”

 

당이주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단목태성이 쓰러지면서 가장 손해를 본 사람이 바로 당이주였다. 그가 멀쩡했다면 가만히 앉아 있어도 단목무호가 다음 대의 가주가 될 수 있었다.

 

한데 후계에 대해서 아무것도 정해놓지 않은 채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일이 어렵게 되었다. 공손미부가 아들인 단목순명을 단목무호와 경쟁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백모연까지 조윤을 데리고 왔다.

 

비록 백모연이 세가 내에서 세력이 없다지만 조윤의 존재는 의미가 컸다. 조윤은 단목무호보다 두 살이 많았다. 만약 조윤을 받아들이게 된다면 서열상 그가 소가주가 된다. 이곳에 오기 전에 어떻게든 조윤을 처리하려고 했던 것도 그래서였다.

 

“이리 오너라.”

 

백모연은 조윤의 손을 잡아끌고 침대로 갔다. 거기에는 초췌한 모습의 중년 사내가 누워 있었다. 원래는 헌앙한 장정이었으나 정신을 잃은 채 몇 달을 누워 있다 보니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의 첫 대면이었지만 조윤은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저 병자를 대하는 것 같았다. 이에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 다가가 상세를 살피려고 하자 당이주가 앞을 막으며 물었다.

 

“뭘 하려는 게냐?”

 

“네? 아닙니다, 아무것도.”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깨달은 조윤이 뒤로 물러났다. 그걸 보고 백모연이 차갑게 말했다.

 

“처음 보는 아버지입니다. 가까이서 본다고 해가 될 것이 있습니까?”

 

“아직 아무도 저 아이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순간 당이주와 백모연의 시선이 허공에서 강하게 부딪쳤다. 조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은 당장에 인사조차 받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백모연도 굳이 그녀에게 인사를 시킬 생각이 없었다.

 

“하면 인정을 받고 오도록 하죠. 두 달 뒤에 있는 총회 때 뵙겠습니다.”

 

백모연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오늘은 조윤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직은 당이주와 싸울 때가 아니었다. 좀 더 준비가 필요했다.

 

방을 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당이주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 * *

 

“그 여자가 첫째 가모인가요?”

 

“그래. 당가 출신답게 성정이 차갑고 악독하니 혹여 마주치게 되면 조심해야 한다.”

 

“네.”

 

조윤이 대답하며 힐끗 백모연을 올려다봤다. 그녀의 얼굴은 평소와 달리 잔뜩 굳어 있었다.

 

사실 첫인상만 놓고 보자면 당이주는 도도한 미녀에 속했고, 그 때문인지 그리 나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법, 백모연이 저리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라 여겨졌다.

 

“함께 있던 아이는 네 동생인 단목무호다. 어려서부터 신동소리를 듣고 있는 만큼, 너도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 않게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것이다.”

 

“네.”

 

조윤은 아까 봤던 단목무호를 떠올렸다. 두 살 터울이면 대호와 같은 나이건만 어린아이답지 않게 진중해 보였다.

 

“그 사람은 어디가 아픈 거예요?”

 

“그 사람? 네 아버지 말이냐?”

 

“네.”

 

“앞으로는 그렇게 말하지 마라. 반드시 아버지라 불러야 한다.”

 

“네.”

 

“의원의 말로는 머리에 피가 고여 있다고 하더구나.”

 

‘피가 고여 있다고? 두개내혈종인가?’

 

머리가 충격을 받아 뇌 속의 혈관이 터져서 혈액이 고인 것을 두개내혈종이라 하고, 경막하혈종, 경막외혈종, 뇌내혈종으로 나눈다.

 

하지만 경막하혈종인 경우는 드물고 대부분이 경막외혈종과 경막내혈종이었다. 증상으로는 두통, 메스꺼움, 구토, 졸림이 나타나고, 출혈이 멎지 않고 계속되면 기면 상태와 발작, 의식 상실 등이 나타나며 결국 사망하게 된다.

 

“진찰은 누가 했죠?”

 

“진찰? 진맥을 말하는 것이냐?”

 

“네.”

 

“인근의 의원들은 아무도 원인을 찾지 못했다. 당문에서 의술이 가장 뛰어난 당자기가 와서 진맥을 한 후에 원인이 밝혀졌지만 치료를 하지는 못했다. 해서 며칠 전에는 신의문에서 의원이 왔었다. 흑묘를 치료한 것도 그 사람이다. 하지만 그도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하더구나.”

 

“그 사람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생각지 못한 물음이었던지 백모연이 걸음을 멈추고 조윤을 내려다봤다. 그 시선에는 의아함이 담겨 있었다.

 

“왜 그를 만나려는 것이냐?”

 

“실은 제가 의술을 조금 배웠습니다.”

 

“의술을 할 줄 안단 말이냐?”

 

“네.”

 

백모연이 의외라는 듯이 쳐다보다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아직 조윤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았다. 천민으로 살아왔다지만 조윤의 엄마인 남궁여영이 나름 손을 써놓았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하니 의술을 안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었다.

 

“며칠 후면 당자기가 올 것이다. 그때 만나게 해주마.”

 

“네.”

 

처소로 가는 동안 백모연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물었다. 조윤은 생각나는 대로 대충 대답을 했으나 백모연은 좀 더 세세히 알기를 원했다. 이에 이야기가 길어져서 방에 도착하고 나서도 계속되었다.

 

“하면 네게 의술을 가르쳐준 사람은 누구냐?”

 

“이름은 알지 못합니다. 스스로 화타의 후손이라고만 했습니다.”

 

당연히 거짓말이었다. 현대에서 이십육 년 동안 정수현으로 살며 의술을 배웠다고 하면 누가 믿겠는가? 해서 둘러대려니 당장에 생각나는 사람이 화타밖에 없었다.

 

화타는 후한 말기 사람으로 안휘의 박주현에 위치했던 패국 초현 출신이었다. 사실 화타(華冥)는 당시 선생이라는 뜻의 존칭이고, 원래 이름은 부였다. 동봉, 장기와 더불어 건안삼신의(建安三神醫)로 불릴 정도로 의술이 뛰어나서 주(周) 나라 때의 전설적인 의원인 편작(扁鵲)에 비견되곤 한다. 특히 마비산(麻沸散)을 이용한 외과 수술에 정통해서 외과의사의 시조(始祖)로 여겨지기도 한다. 한데 백모연의 반응이 생각 이상으로 격했다.

 

“화타의 후손이라고?”

 

“지, 지나가는 말로 들어서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조윤은 재빨리 다시 둘러댔다. 다행히 백모연은 더 이상 캐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어쨌든 오늘까지는 푹 쉬도록 해라. 내일부터는 배워야 할 것이 많을 게다.”

 

“네.”

 

백모연이 방을 나가자 조윤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가급적 거짓말은 자제해야 할 것 같았다. 화타의 후손이라니, 자신이 생각해도 그건 좀 아니었다.

 

* * *

 

날이 밝자 조윤은 흑묘의 상태부터 살폈다. 하지만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세수를 하고 나자 백모연이 불러서 무공을 가르쳐 줬다. 몸을 푸는 유연공과 기본 자세를 몇 개 배웠는데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정좌를 하고 단전의 기운을 느끼는 내공 수련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적어도 삼 개월은 수련을 해야 단전의 기운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려면 매일 아침과 저녁에 빠지지 말고 수련을 해야 한다. 기초가 잡히면 낙성십이검(落星十二劍)을 가르쳐주마.”

 

낙성십이검은 단목세가의 가전절기(家傳絶技)였다. 그래서 원래는 가모라고 해도 배울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백모연은 무공이 뛰어나서 단목태성이 수련하는 데 도움을 많이 줬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낙성십이검을 익히게 되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직계인 조윤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이후에 아침을 먹고 백모연은 글을 가르치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러나 조윤이 이미 글을 다 깨우쳤다는 사실을 알고 적지 않게 놀랐다.

 

“그저 읽고 쓰는 것만 조금 할 줄 압니다.”

 

“그럼 오늘부터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공부하자꾸나. 단목세가가 무가(武家)이나 문(文)을 등한시하지 않는다. 또한 명문가의 자제로서 지켜야 할 예법도 배워야 할 것이다.”

 

“네.”

 

대답하며 조윤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서삼경이라니, 현대에서는 쳐다보지도 않던 책이었다. 예법 또한 마찬가지였다. 언제 그런 걸 신경이나 쓰고 살았던가?

 

그러나 싫다고 할 수가 없었다. 안 한다고 해서 내쫓기지는 않겠지만 백모연의 눈 밖에 나서 좋을 것이 없었다.

 

점심을 먹기 전까지 조윤은 글공부를 하고 예법을 배웠다. 이후에는 백모연이 가르쳐 주는 것을 토대로 단목세가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쌓았다.

 

단목세가는 공손세가와 함께 사천당문의 가신 가문들 중에서는 세력이 가장 강했다. 무인들의 수가 이백 명 가까이 되었고, 최정예인 낙성검대 열다섯 명은 특히나 무공이 뛰어났다. 또한 소유하고 있는 토지가 방대해서 부리는 사람들도 많았고, 북천현의 크고 작은 상업에 관여하고 있어 관청에서도 무시하지 못했다.

 

조윤은 단목세가에 대해 알아 갈수록 자신이 과연 이곳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지 고민이 깊어졌다.

 

이후 저녁을 먹고 다시 무공 수련을 하고 나서야 하루 일과가 끝났다. 방으로 돌아온 조윤은 너무 피곤해서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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