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비서 6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6회 작성일소설 읽기 : 신의비서 6화
제3장 흑묘 (1)
조윤은 모처럼 이두와 함께 저녁을 먹었다. 이두는 공소를 상당히 싫어했다. 신분이 다르고 무림인이라서 함부로 대하지는 못했지만 조윤에게 몇 번이나 내보내라고 눈치를 줬다. 그때마다 조윤은 난처한 얼굴로 웃기만 했다.
최근 그나마 좀 살림에 여유가 있었던 것은 공소가 가지고 있던 돈 때문이었다. 더구나 조윤은 공소에게 글을 배웠고, 대호는 어떻게 설득을 했는지 무공을 배우고 있었다. 하니 당장에는 나가라고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이만 가마.”
“네. 내일 봐요.”
이두가 인사를 하며 슬쩍 공소를 한 번 봤다.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간다.”
이두를 문밖까지 배웅한 조윤은 마음이 착잡했다. 이두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을 걱정해서 그런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가끔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로 간섭을 하려 들 때가 있었다. 그의 입장에서야 자신이 이제 열 살 먹은 꼬맹이로 보이겠지만 실상은 스물여섯 해를 살아온 성인이었다. 아무리 좋은 뜻이라고 해도 잔소리가 좋지만은 않았다.
“으아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리자 조윤은 안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멈칫했다. 멀리서 이두가 다급하게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조윤!”
“무슨 일이에요?”
“빨리 들어가라.”
이두는 다짜고짜 조윤을 안아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공소가 이미 밖의 상황을 짐작하고 굳은 얼굴로 칼을 챙기고 있었다.
“조윤은 내가 데리고 가겠다.”
“무슨 소리요?”
이두가 반문하자 공소가 칼을 뽑아 목에 겨눴다. 금방이라도 베어버릴 것 같은 기세에 이두는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기, 기다려요! 무슨 짓이에요?”
조윤이 놀라서 공소를 말렸다. 하나 공소는 칼을 거두지 않고 위협적으로 말했다.
“먼저 묻자. 조윤은 누구냐? 혹여 성이 남궁이 아니라 단목이 아닌가?”
이두의 눈이 살짝 흔들렸다. 공소의 말은 사실이었다. 조윤의 성은 원래 남궁이 아니라 단목이었다. 남궁은 조윤의 어머니 성씨였다.
“맞는군.”
공소가 칼을 거두고 조윤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자 이두가 버럭 화를 내며 소리쳤다. 그로서는 평생의 용기를 낸 것이었다.
“무슨 짓이오? 나를 죽이지 않고는 못 데려가오.”
“지금 누가 왔는지 아나? 저들은 조윤을 노리고 온 거다.”
“그렇다 해도 당신을 어찌 믿으란 말이오? 혹시 당신이 저들을 부른 건 아니요?”
“그랬다면 조윤은 진즉 죽었을 거다. 이전에 말하지 않았나? 나는 단목세가의 무사라고.”
“흥! 그 잘난 세가에서 그분을 내치지 않았소! 그런데 이제 와서 도련님을 데리고 가겠다니, 가당치도 않소.”
“옛날이야기를 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저들은 조윤을 죽이려고 온 거다. 하니 내게 맡겨라.”
“그렇다면 더욱이 그럴 수 없소.”
“이런 답답한 사람 같으니.”
공소가 인상을 쓰며 다시 칼을 뽑아 들었다. 그 기세가 아까와는 사뭇 달랐다. 이번에는 정말 이두를 죽일 것만 같았다. 이에 조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공소는 이두를 그대로 놔두고 문을 박찼다.
쾅!
“으아아악!”
문을 열고 들어오려던 사내가 공소의 칼을 어깨에 맞고 비명을 질렀다. 그 상태에서 공소가 힘껏 밀어붙이자 그 뒤에 있던 사내들이 함께 밀리면서 뒷걸음질을 쳤다.
그걸 보고 마음이 다급해진 이두가 조윤을 안고 뒷문으로 뛰어나갔다. 다행히 그쪽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두는 길을 따라 달렸다.
“잠깐만요! 육예와 대호는요?”
이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 아이들까지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그 아이들이 아니라 조윤이었다.
“멈춰요! 아저씨!”
“헉헉! 시끄럽다! 지금은 아무 생각 말고 조용히 있어라.”
“하지만…….”
조윤이 다시 말을 하려는 찰나, 이두가 앞으로 꼬꾸라졌다. 어둡다고는 하나 늘 다니던 길이었다. 한데 마음이 급해 돌부리에 발이 걸린 것이다.
이두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조윤을 봤다. 넘어질 때 놓친 조윤은 저만치 굴러가 있었다. 아플 텐데도 다행히 울지 않았다. 울면 그 소리를 듣고 저들이 이리로 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불안감에 뒤를 돌아봤다가 순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그들이 빠르게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조윤! 뛰어! 도망가!”
이두가 크게 소리쳤다. 그는 조윤만이라도 무사하기를 바랐다. 그래야 했다. 조윤만 무사하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아저씨!”
“가! 어서 가!”
조윤이 이두를 봤다. 그는 간절한 눈빛으로 계속 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필사적이어서 조윤은 저도 모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헉헉!”
금방 숨이 턱까지 찼으나 조윤은 멈추지 않았다. 깜깜해서 앞도 보이지 않는 길을 따라 필사적으로 뛰었다. 그러다 발이 꼬이면서 앞으로 넘어졌다. 팔과 무릎이 까져서 피가 났으나 워낙에 정신이 없어 그런 줄도 몰랐다.
“으아아아아악!”
뒤에서 이두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두려움으로 인해 몸이 덜덜 떨려 왔다. 이두가 걱정됐지만 그곳으로 돌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침착하자.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방법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주위가 어두워졌다. 뭔가가 달빛을 가리면서 그림자가 생겼기 때문이다. 조윤이 고개를 들었다.
한 사내가 서 있었다. 거대했다. 각진 얼굴에는 귀기(鬼氣)가 흘렀다.
사내가 조윤을 죽이기 위해 천천히 칼을 들어 올렸다.
“죽어라.”
마치 사신(死神)이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 한 마디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조윤의 눈이 사내의 손에 들린 칼로 향했다. 그 순간 칼이 빠르게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조윤의 눈에는 아주 천천히, 마치 정지된 것처럼 보였다.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한순간 모든 감각이 극한까지 열렸기 때문이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이 가끔 겪는 일이었다.
“멈춰요!”
어디에선가 단검 하나가 조윤을 죽이려던 사내를 향해 날아갔다. 사내가 상체를 틀어 그것을 피하자 뒤이어 네 개의 단검이 날아왔다.
첫 번째 날린 단검은 뒤이은 공격을 감추기 위한 속임수였다. 그러나 사내의 무공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재빨리 물러나며 날아오는 단검을 전부 칼로 쳐냈다.
“누구냐?”
물을 필요가 없었다. 어느새 나타나 조윤을 감싸고 검(劒)을 겨누고 있는 여인은 그도 아는 사람이었다.
“흑묘!”
늘 검은 옷을 입고 생긴 것이 마치 고양이 같아서 사람들은 그녀를 흑묘(黑猫)라고 불렀다.
흑묘는 단목세가의 둘째 가모인 백모연의 그림자였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한다. 필시 이번에도 백모연의 명을 받고 왔을 것이다.
‘그녀가 움직였는가? 도대체 왜?’
사내는 의문이 들었다. 백모연은 이번 일에 나설 이유가 없었다. 한데 왜 흑묘를 보낸 것일까?
“괜찮아요? 많이 다치지 않았죠? 울지 않네요. 훌륭해요. 이제 괜찮으니까 겁먹지 말아요. 아무도 해치지 못해요, 아무도.”
흑묘가 품 안의 조윤을 다독였다. 그러자 두려움으로 인해 덜덜 떨리던 조윤의 몸이 거짓말처럼 진정됐다.
“음…….”
사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였다. 흑묘는 강하다. 자신을 앞에 두고 저런 여유를 부릴 만큼.
당연히 혼자서는 상대할 수가 없었다. 그때 함께 온 동료들이 다가오자 조금 자신감이 생겼다.
“같은 집안사람끼리 칼부림을 하고 싶진 않군.”
“저도 마찬가지예요. 이대로 물러나세요.”
“네가 둘째 가모의 명을 받고 왔듯이 우린 셋째 가모의 명을 받고 왔다.”
흑묘가 눈앞에 있는 남자와 그 뒤에 서 있는 자들을 힐끗 봤다.
이당오괴(理塘五怪).
사천의 서쪽 지방에 있는 이당현(理塘縣)에서 명성을 떨치다가 셋째 가모인 공손미부의 눈에 들어 단목세가로 온 자들이었다. 혼자서 상대한다면 문제가 없지만 조윤을 보호하면서 싸운다면 승산이 없었다.
‘어떻게 하지? 다급하니 혼자서 온 것이 실수였어. 가장 먼저 움직였다고 생각했는데.’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흑묘가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해요.”
“말해라.”
“내가 모시는 분의 성격이 어떤지는 당신도 알고 있죠?”
당연히 알고 있었다. 백모연의 성격을 모르는 사람은 단목세가에 없다. 평소의 그녀는 더없이 온화하고 따뜻하지만 한번 화를 내면 걷잡을 수가 없었다.
셋째 가모가 처음 단목세가로 시집왔을 때 아무것도 모르고 백모연을 무시하다가 모두가 보는 앞에서 따귀를 맞은 일은 굉장히 유명했다.
“그래서?”
“이 아이가 죽으면 당신들은 살아남지 못해요. 그러니 이 아이를 못 봤다고 해요. 내가 먼저 와서 데리고 갔다고 하는 거예요.”
“우리보고 지금 셋째 가모를 속이라는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