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호위 44화
무료소설 무적호위: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3,758회 작성일소설 읽기 : 무적호위 44화
“마음대로 생각해라, 이놈.”
“대단한 부단주시군. 근데 장로나 호법이라는 분들은 소성주가 이 꼴을 당하고 있는데도 왜 구경만 하고 계신지 모르겠군요. 부단주와 같은 생각이십니까?”
장천운이 갑자기 공격의 화살을 틀자 장로와 호법들이 흠칫하며 이마를 찌푸렸다.
그러나 얄밉긴 해도 장천운의 말에 틀린 점이 없으니 뭐라고 하기도 애매했다.
결국 노현이 헛기침을 하며 나섰다.
“험, 소성주 앞에서 무슨 짓인가? 그만 앉게나, 부단주.”
“예, 장로.”
더 이상 일이 커지는 것을 바라지 않던 단강선도 장천운을 한번 노려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사마경에게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묵묵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사마경이 그제야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단주 말씀대로 성주가 되지 못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 전까지는 차기 성주로 정해진 사람이에요. 명심하세요. 오늘은 그냥 넘어가지만, 앞으로 또 다시 그런 말이 들리면 구천률에 따라 처리하겠어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하는 그녀에게서 위엄이 느껴졌다.
단강선이 마지못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하오, 소성주.”
사마경은 그의 사과를 듣는 둥 마는 둥하고 몸을 돌렸다.
“그만 가.”
“예, 소성주.”
장천운은 절도 있게 포권을 취하고 그녀를 따라 움직였다. 단강선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보다는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한 사람을 슬쩍 훔쳐보았다.
공손백의 방에 들어갔을 때 봤던 자를.
‘단순한 시종은 아닌 것 같아. 저자를 조심해야겠어.’
아무리 공손백의 시종이라지만, 일개 시종이 호위대를 이루고 있는 간부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부터가 수상했다. 그자와 함께 움직이던 무사들도 평범한 자들이 아니었고.
‘대백이 비밀리에 키운 자들이 있다고 하던데, 저들인가?’
객방으로 들어간 사마경이 아미를 찡그리며 장천운에게 물었다.
“천운, 왜 단강선을 더 화나게 만든 거지?”
영문을 모르는 소연추도 의아한 표정으로 장천운을 쳐다보았다.
피식, 실소를 지은 장천운이 말했다.
“덕분에 성을 떠날 명분이 하나 만들어졌잖습니까?”
“명분?”
“객잔에서 쉬던 중 소성주를 무시하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소성주가 성주 되는 걸 바라지 않는 수하들이 많다는 게 확인되었습니다. 그래서 소성주께선 심각한 고민 끝에 당분간 성을 떠나기로 결정을 내린 겁니다. 그런 식으로 서신을 써서 몇 사람에게 보내십시오. 뭐, 사실을 조금 더 과장해서 써도 좋고요.”
사마경은 장천운이 쓴 소설 아닌 소설의 뜻을 바로 간파했다.
“책임을 저들에게 떠넘긴다?”
“대령주 쪽에서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명분은 서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들었으니까요.”
사마경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소연추는 작은 기회도 놓치지 않는 장천운의 계책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전음을 들은 그녀는 뭔가 이유가 있으니 그러겠지 하며 그의 말대로 하긴 했지만, 불안한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을 이용해서 명분을 만들 줄이야.
“괜찮은 생각이에요, 아가씨. 설령 일이 잘못되어도 명분만 있으면 아가씨를 함부로 할 수 없을 테니까요. 그리고 성에 남은 우리 쪽 사람들도 아가씨의 마음을 이해하고 곧바로 공손백에게 붙진 않을 거예요.”
굳어 있던 사마경의 얼굴도 펴졌다.
“알았어. 그럼 천운 말대로 할 게.”
얼굴이 펴진 사마경의 눈가에 옅은 웃음이 떠올랐다.
“그리고 아까, 진짜 호위는 체면도 지켜줘야 한다던 그 말, 괜찮았어.”
장천운도 씩 웃어 주었다.
사마경의 표정이 풀어진 것만으로도 자신의 모험에 가까운 행동이 후회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소성주도 순진한 구석이 있어.’
***
사마경은 대운사까지 가는 동안 수혼대와 흑월조, 구천호령을 제외하고는 가까이 오지도 못하게 했다.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들과는 대면하기도 싫다는 듯.
장로와 호법들은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그녀를 멀리 했다.
어차피 동행하기에는 간극이 이미 장강에서 황하만큼이나 벌어진 사이였다.
사마경이 제풀에 지쳐서 성주 자리를 포기한다면 그것도 나름대로 괜찮았다.
그러한 상황은 대운사에 도착해서도 이어졌다.
장로와 호법을 비롯한 호위대들은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서 사마경을 포위하듯 둘러쌌다.
다음 날, 대운사의 주지인 영월대사의 주관으로 제사가 진행되었다.
제사를 지내는 세 시진 동안은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염불을 외고 제를 지내는 몇 시진이 무사들에게는 며칠처럼 느껴졌다.
장로와 호법들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하나둘 불당을 빠져나갔다.
사마경도 차라리 그게 편했기에 모른 척하고 놔두었다.
그날 저녁, 승방의 불이 하나씩 꺼지던 시각에도 호위대는 그녀의 움직임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 밤에 가죠.”
“오늘 밤에? 너무 서두르는 거 아냐?”
사마경은 장천운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이제 첫째 날이다. 공손백이 딸려 보낸 호위대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상황.
그들의 경계심이 흐트러지는 마지막 날 실행하는 게 나을 듯했다.
소연추도 같은 마음으로 반문했다.
“마지막 날이 낫지 않을까?”
그러나 장천운의 생각은 그녀들과 달랐다.
“경비를 서고 있는 자들 중에 고위간부들은 보이지 않더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늘은 별 일 없을 거라고 생각하나 봅니다. 그래서 오늘 가자는 거죠.”
“듣고 보니 천운의 말에도 일리가 있어. 좋아, 그럼 언제쯤이 좋을까?”
“경계가 가장 흐트러지는 시간은 축시에서 인시 사이라고 했습니다. 저들의 상황을 계속 주시하다가 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알았어.”
“그 동안은 미리 준비를 해놓고 쉬십시오. 어쩌면 내일은 쉴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요.”
나직이 말하는 장천운의 눈빛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사실 그가 서두르는 것은 단순히 호위대의 상황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만이 지닌 예감. 그 예감이 말하고 있었다.
-해가 뜨기 전에 떠나야 돼!
“편히 주무십시오, 소성주!”
모두에게 들으라는 듯 큰소리로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온 장천운은 요사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는 소성주의 특수 호위조인 흑월조의 조장이다. 그가 지붕을 미친 듯이 오르락내리락 하든, 갑자기 삽을 들고 땅을 파든 의심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하는 거지?’ 그런 의문을 가질지는 몰라도.
하물며 뒷짐 지고 거만한 자세로 호위 상황을 둘러보는 것 정도는 관심 대상도 아니었다.
물론 그가 오만한 말투로 툭툭 던지는 말에는 조금 기분이 나쁠 수도 있지만.
“왜들 이렇게 우왕좌왕 하는 거야? 호위 처음 해보나? 이쪽 호위 책임자가 어떤 분이오?”
경천단 삼대 중 이대주인 채곽도 그의 말에 기분이 팍 상했다.
교대 때문에 잠시 웅성거림이 일었을 뿐인데 그걸 가지고 잔소리를 하다니.
“나네. 뭣 때문에 그러나?”
“소성주께서 피곤하신 모양이오. 내일 아침까지 푹 주무시고 싶다 하시니, 너무 가까이 가서 잠을 깨는 일이 없도록 하쇼. 심심하다고 떠드는 일도 없도록 하시고.”
“걱정 말게. 조금 전에는 교대하느라 약간 소리가 났을 뿐이네.”
“조용히 할 자신 없으면 조금 더 거리를 두쇼. 밖에서 숨어들 놈을 지켜야할 사람들이 왜 다들 안으로 들어와 있는 거요? 겁나서 그런가?”
그 말에 채곽의 눈빛이 어둠 속에서 번뜩였다.
‘이 건방진 놈이! 소성주의 총애를 받으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나?’
일개 조장 따위가 감히 자신에게 명령조로 말하다니!
게다가 뭐라? 겁이 나?
마음 같아서는 주먹으로 주둥이를 쳐버리고 싶지만 꾹 참았다.
동겸의 이를 다 부순 놈, 장로원 경비조의 조장 목을 잘라버린 놈 아닌가.
“우리 경천단은 적을 두려워하지 않네. 자네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으니 거리를 조금 더 두지.”
“그래도 꽉 막힌 분은 아니군. 그럼 수고하쇼.”
장천운은 고개를 한번 까딱 하고는 몸을 돌렸다.
채곽은 장천운의 등을 노려보면서 이를 갈았다.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가까스로 억눌렀다.
‘어린놈하고 말다툼해봐야 나만 손해니까 오늘은 참는다.’
가까이 있어봐야 또 잔소리를 들을지 모르는 일. 그는 수하들을 아예 담장 근처까지 뒤로 물렸다.
그러고는 오늘 밤 호위책임자인 단강선에게 보고했다.
단강선은 보고를 받고 신경질적인 말투로 명을 내렸다.
“그 자식하고 부딪쳐 봐야 좋을 것 없다. 어차피 오늘은 별 일이 없을 것 같으니 담장까지 뒤로 물러서서 호위해.”
상황은 종리성학에게도 전해졌다.
“장천운이란 자가 채곽에게 따진 후로 호위대들이 담장까지 물러났습니다.”
“소성주는?”
“피곤한 모양입니다. 잠을 깨지 않도록 해달라고 지시를 내렸다 합니다.”
종리성학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였다.
소성주는 구천성을 떠나올 때부터 상태가 안 좋았다. 오는 내내 기운이 빠진 표정이었다.
거기다 하루 종일 제사를 지냈으니 지치기도 하겠지.
주군은 그녀를 절대 빠져나가지 못하게 막으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 정도로 그칠 생각이 없었다.
권좌가 손안에 다 들어왔는데 일 년이나 기다릴 이유가 뭐 있단 말인가.
‘때로는 아무리 조심해도 실수할 때가 있는 법이지. 칼에는 눈이 없으니까.’
뒷수습은 나중에 생각하면 될 일.
종리성학의 눈 깊은 곳에서 싸늘한 살기가 번뜩였다.
‘그녀만 없으면 누구도 주군의 앞길을 막지 못해.’
***
구름이 짙게 끼어서 달빛마저 가려진 밤은 유난히 어두웠다.
차가운 바람이 불고, 밤새 울어대는 소리가 서글프게 들리는 시각.
남들은 깊은 잠에 빠져 있는데 차가운 이슬을 맞으며 어둠 속을 부유해야 하는 신세가 처량하기만 했다.
자신들이 왜 이곳에서, 이 시간에 밤을 서성거려야 하는가.
호위대 무사들은 아무런 일도 없이 흐르는 시간이 따분하다 못해 지루했다. 더구나 대화조차 금지되어서 시간이 더욱 더디게 흘렀다.
그렇게 축시가 넘어가자 수마(睡魔)가 피곤한 육신을 유혹했다.
채곽은 주위를 둘러보며 짜증나는 표정을 지었다.
‘빌어먹을. 시간이 왜 이리 안 가는 거야?’
뭔가 일이라도 터지면 이렇게 따분하지는 않을 텐데.
속으로 투덜거린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에 가려져서 달도 별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는 비가 내리기 않기만을 바라야 할 판이었다.
그때 소성주의 거처 쪽에서 미미한 움직임이 일었다.
채곽은 그곳을 바라보았다. 무사 십여 명이 교차하고 있었다.
아마도 구천호령과 흑월조가 임무교대를 하는 듯했다.
장천운이라는 놈의 목소리도 들렸다. 크지 않은 목소리지만 워낙 주위가 조용해서 어렵지 않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수고들 하십시오. 저흰 밖을 한 바퀴 둘러보고 쉬겠습니다. 밤에 어떤 미친 새끼들이 어슬렁거릴지도 모르니까요.”
“그럴 필요 있겠나? 경천단이 잘 지키고 있는데.”
“저번에도 넋 놓고 있다가 당했잖습니까? 귀찮아도 한 번 둘러보고 자죠 뭐.”
“알았네. 그럼 수고하게나.”
채곽은 장천운과 영호관의 대화를 듣고 혀를 찼다.
‘쯔쯔쯔, 흑월조놈들도 잘난 척하는 조장 때문에 고생이 많군. 새파란 놈이 조장이 된 것도 마뜩지 않을 텐데……’
그 사이 흑월조 조원들이 그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선두는 꼴 보기 싫은 장천운이었다.
“외곽을 둘러보고 올 테니 자리 잘 지키고 있으쇼.”
“우리 걱정하지 말고 자네나 잘하게.”
채곽은 툭 쏘아붙이고 몸을 돌렸다.
‘건방진 자식. 지가 뭔데 나보고 잘 지켜라 마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