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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4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5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4화

제2장 적응 (2)

 

 

예전의 형은 이렇게 자신들을 위해 주지 않았었다. 무관심하고 제멋대로였다.

 

한데 몇 달 전부터 사람이 바뀌었다. 착실하게 일도 하고, 돈도 벌어 오고, 가끔 마을 사람들의 병도 봐줬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들떠보지도 않던 집을 관리하고 자신과 육예를 챙겨 주기 시작했다.

 

배우지도 않은 의술을 어떻게 아는지 신기해서 이두한테 물었더니 가끔 머리를 다치면 사람이 이상해지면서 없던 능력도 생긴다고 했다.

 

대호는 형이 바보가 안 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잔소리를 좀 많이 하지만 그마저도 좋았다.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형이 다시 옛날처럼 된다면 암울할 것 같았다. 혹여 무리를 하다가 그렇게 될까 봐 늘 불안했다.

 

“어서 자. 시간 늦었다.”

 

“응.”

 

조윤은 대호와 육예가 자리에 눕는 것을 보고 방으로 와서 눈을 붙였다.

 

잠깐 잔 것 같은데 어느새 아침이었다. 요즘은 항상 이랬다. 너무 피곤해서 절로 숙면을 취하게 된다.

 

떠 온 물로 세수를 하고 대호와 육예를 깨워 아침을 먹었다. 두 사람에게 오늘 할 일을 이야기해 주고 집을 나서니 때마침 이두가 오고 있었다.

 

조윤은 그와 함께 숲으로 향했다. 오늘도 나무를 베어야 푼돈이나마 받을 수가 있었다.

 

한창 구슬땀을 흘리며 도끼질을 하고 있을 때였다. 예닐곱 명의 사내들이 칼을 휘두르면서 조윤과 이두가 있는 쪽으로 왔다.

 

“헉! 조윤! 이쪽이다! 숨어!”

 

이두의 손에 이끌려 조윤은 수풀 뒤로 가서 납작 엎드렸다. 하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해 시야를 가리고 있는 나무를 살짝 밀어내고 앞을 살폈다.

 

날카로운 인상의 중년 사내를 상대로 일곱 명의 장한들이 공격을 하고 있었다. 몇 번 서로의 칼이 부딪치다가 한 명이 비명을 지르면서 쓰러졌다.

 

“으아아악!”

 

“제길!”

 

“옆으로 몰아!”

 

다시 어지럽게 칼이 움직였고, 그 와중에 또 한 명이 나자빠졌다.

 

잠깐 사이에 두 명이 죽었다. 사내는 방어는 생각지도 않는 공격 일변도의 강경한 도법(刀法)을 썼다. 커다란 몸에서 뿜어지는 위압감과 기세에 눌려 또다시 두 명이 쓰러졌다. 하지만 그도 무사하지 못했다. 팔이 베이고 배를 찔렸다.

 

“타핫!”

 

사내가 내려친 칼질에 한 명의 머리가 박살 났다. 남은 두 명이 그걸 보고 승산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도망을 쳤다.

 

사내는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털썩 한쪽 무릎을 꿇었다. 칼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 꽤나 힘들어 보였다. 그러다 수풀로 칼을 겨누며 소리쳤다.

 

“누구냐?”

 

“헉!”

 

이두가 덜덜 떨면서 조윤과 함께 수풀 밖으로 나갔다. 두 사람을 보고 적이 아니라는 걸 안 사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뭐야, 일꾼이냐?”

 

“그렇습니다. 저희는 여기에서 일합니다.”

 

이두가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살려면 이래야 했다. 혹여 뻣뻣하게 굴면 기분 나쁘다고 죽일지도 모른다. 무림인들은 수틀리면 칼부림부터 하는 사람들이었다.

 

“가라. 눈앞에서 알짱대지 말고.”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이두가 급히 몸을 일으켰다. 한데 조윤이 멍하니 서 있는 것이 아닌가?

 

“조윤, 뭐 하는 거냐? 어서 가자.”

 

억지로 손을 잡아끄는데도 조윤은 움직이지 않았다. 약간 상기된 얼굴로 사내를 보고 있었다.

 

이곳이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칼을 휘둘러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처음 봤다. 두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기이한 흥분이 느껴졌다. 이래서 사람들이 격투기 시합을 보고 그렇게 열광을 하나 보다.

 

그러다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사람들을 보자 아침에 먹었던 것을 다 토해냈다. 사람이 죽은 것을 처음 본 것은 아니었다. 병원에 있을 때 몇 번이나 봤었다.

 

하지만 저렇게 엉망으로 베여서 죽은 모습은 아니었다. 구역질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뭐 하는 거냐? 죽고 싶지 않으면 어서 꺼져라!”

 

“알겠습니다. 금방 가겠습니다.”

 

이두가 사색이 되어 머리를 조아리고는 토를 하고 있는 조윤을 부축했다.

 

“어서 가자.”

 

“으…….”

 

조윤은 이두를 붙잡고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떨다가 간신히 진정했다. 그러다 사내가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같이 휘청거리자 자신도 모르게 그리로 뛰어갔다.

 

“괜찮아요?”

 

“뭐, 뭐냐?”

 

사내가 칼을 내밀면서 조윤이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강호는 험한 곳이었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 언제 무슨 일을 당할지 몰랐다.

 

“많이 다쳤어요. 치료를 해야 해요.”

 

“네가 무슨 치료를 한다는 거냐?”

 

사내는 호흡이 거칠었다. 말을 하는 와중에 입가로 핏물이 흘러내렸다. 사실 그는 이곳에 오기 전에 이미 부상을 당한 상태였다. 한데도 일곱 명의 장한들을 상대했고, 이제는 한계에 달해 있었다.

 

“피를 많이 흘렸어요. 지혈을 하지 않으면 위험해요.”

 

“꺼져라. 안 그러면 죽여 버릴…….”

 

칼에 몸을 의지한 채 조윤을 노려보던 사내는 더 버티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조윤이 다급하니 그를 살펴보려는데 뒤에서 이두가 붙잡았다.

 

“놔둬라.”

 

“다쳤는데 어떻게 그래요?”

 

“그래도 놔둬. 치료를 해줬다가 해코지를 당할 수도 있다. 얼마 전에 이가장의 아가씨를 도와주고 당한 일을 벌써 잊은 거냐?”

 

당연히 잊지 않았다. 그날의 일을 어떻게 잊을까?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조윤은 그날 이가장의 여식을 치료한 일을 후회하지 않았다. 뒤끝이 좋지 않았으나 만약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망설이지 않고 치료할 것이다.

 

그는 의사였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환자를 두고 등을 돌린 적이 없었다. 치료가 불가능해도 끝까지 매달리며 최선을 다했었다. 자신이 포기하면 하연이를 치료하는 의사들도 그럴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은 조윤이었으나 그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미 죽었다면 모를까 다친 사람을 이대로 놔두고 갈 수는 없었다.

 

“무림인들은 사람 목숨을 파리 죽이듯이 한다. 더구나 우리는 이 사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흉악무도한 자라서 쫓기고 있었을 수도 있다.”

 

조윤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고 이두가 크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러나 조윤은 이미 도와주기로 마음을 정한 상태였다. 모른 척 그냥 가면 죄책감에 시달릴 것이 분명했다. 어찌 보면 자신이 편하고자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었으나 조윤은 그게 옳다고 믿었다.

 

“상태만 잠깐 볼게요.”

 

“그냥 가자니까.”

 

“그럴 수 없어요.”

 

조윤은 완고했다. 이에 이두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알았다. 그럼 네 뜻대로 해라.”

 

“고마워요.”

 

사내를 살펴보니 여기저기 베이고 찔렸지만 치명상은 없었다. 다만 다친 상태에서 계속 움직이면서 싸웠기 때문에 피를 많이 흘린 것이 문제였다. 이대로 놔두면 출혈 과다로 죽는다.

 

“어떠냐?”

 

이두가 관심을 보이며 물었다.

 

“상태가 좋지 않아요. 상처는 중하지 않은데 피를 많이 흘려서 체온이 떨어지고 있어요. 지혈을 해야 하는데 장비도 없고, 수혈도 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럼 죽는 거냐?”

 

“그건…….”

 

말을 하던 조윤은 갑자기 손목을 꽉 잡히자 화들짝 놀랐다. 정신을 잃은 줄 알았던 사내가 눈을 뜨고 있었다.

 

“놔, 놔요!”

 

조윤이 기겁을 하며 손을 빼려고 했다. 이두가 옆에서 도왔으나 사내의 손은 쉽게 떨쳐지지 않았다.

 

“크윽, 멈춰!”

 

사내의 외침에 조윤과 이두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상처가 심해 다 죽어 가는 사람인데도 기세가 굉장했다.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다. 치료를 부탁…… 돈을 주마.”

 

“우, 우선 이것 좀 놓고…….”

 

사내는 조윤과 이두가 나누는 대화를 모두 들었다. 미덥지는 않아도 꼬맹이가 의술을 좀 아는 것 같으니 어떻게든 붙들어야 했다.

 

“내게는 아이가 있다. 부탁……한다.”

 

부들부들 몸을 떨던 사내가 이내 정신을 잃었다. 조윤은 다시 한 번 그를 살폈다. 그러다 그가 품에서 꺼내려고 했던 주머니를 꺼냈다.

 

은자가 무려 일곱 개에 금자까지 있었다. 그걸 본 조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잠깐 여기 있어라.”

 

이두는 사내가 죽인 사람들을 둘러보며 품을 뒤지기 시작했다. 어찌 보면 강도짓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이미 죽은 사람들이었다. 그대로 놔둬도 어차피 다른 누군가가 가져간다. 잠시 후 이두는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 생각지도 않은 소득이었다. 더구나 제법 많은 돈이었다.

 

“도와줘요.”

 

“그를 데리고 갈 생각이냐?”

 

“네. 데려간다고 해도 살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치료를 해보려고요.”

 

“음…….”

 

이두가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을 짓자 조윤이 웃었다. 그의 걱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정체가 확실하지 않은 사람을, 더구나 무림인을 집으로 데려가려니 꺼려지는 것이다. 조윤 역시 같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대로 놔두고 가자니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살려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무엇보다 마지막에 아이가 있다고 한 말이 걸렸다.

 

“걱정 마세요. 치료를 한 후에 줄로 묶어놓으면 되잖아요. 그럼 움직이지 못할 테니까 나쁜 사람이면 관청에 넘겨요.”

 

“알았다. 그럼 그렇게 하자.”

 

여전히 내키지 않는 것 같았으나 이두는 조윤을 도와 그를 집으로 옮겼다.

 

* * *

 

“으…….”

 

사내, 공소가 낮게 신음 소리를 흘리다가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 보였다. 여기가 어딘지 의아해하다가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설마 그 꼬맹이가 날 살린 건가?’

 

“깼네.”

 

옆에서 들려온 앳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보니 넝마나 다름없는 옷을 입고 있는 소년이 보였다. 대호였다.

 

“누구…….”

 

말을 하며 몸을 일으키려던 공소가 멈칫하며 당황했다. 밧줄로 몸이 둘둘 묶여 있었기 때문이다.

 

“네가 한 짓이냐?”

 

대호는 대답 없이 그를 빤히 쳐다봤다. 그러다 벌떡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형! 나쁜 아저씨 일어났어!”

 

‘나쁜 아저씨?’

 

공소는 소년이 하는 말을 듣고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착한 일만 하며 산 것은 아니지만 처음 보는 아이한테 그런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나쁜 짓은 하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 실소가 절로 나왔다. 그때 방문 대신에 사용하는 거적때기를 밀어내며 정신을 잃기 전에 봤던 꼬맹이가 들어왔다.

 

“일어났네요.”

 

“네가 날 치료한 거냐?”

 

공소는 혹시나 해서 물었다. 묶여 있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상처가 의외로 잘 치료되어 있었다. 이건 어설픈 의원의 솜씨가 아니었다.

 

그러나 사실 조윤은 그를 제대로 치료한 것이 아니었다. 의료 장비가 하나도 없어서 근이 손상되었는지 어쨌는지는 파악할 수도 없었고, 세균 감염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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