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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비서 3화

무료소설 신의비서: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2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신의비서 3화

제2장 적응 (1)

 

 

“음…….”

 

조심스럽게 배를 만져보니 둔위(Breech), 즉 아기가 거꾸로 들어서 있었다. 계속 이러면 문제가 있지만 아직은 괜찮았다. 날짜를 따져보니 임신 26주였다.

 

아기가 거꾸로 들어서는 것은 양수가 너무 많거나 산모의 골반이 좁은 경우, 또는 자궁의 기형, 미숙아 등 여러 가지 원인이 있는데, 그런 상태에서 출산을 하게 되면 위험이 컸다.

 

아기는 몸보다 머리가 더 크다. 그래서 머리가 먼저 나오면 몸은 자연스럽게 딸려 나온다.

 

하지만 그게 거꾸로 되면 팔다리가 걸릴 수도 있고, 탯줄이 몸에 감길 수도 있었다. 다시 말해 사산(死産)될 가능성이 컸다. 물론 제왕절개를 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지만 이 시대에는 그런 수술법이 없었다.

 

우선은 시간이 있으니까 출산 전에 아이가 원위치가 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거꾸로 들어섰을 경우 바르게 돌리는 운동법이 있는데, 효과가 확실한지도 모르고 무엇보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조윤은 흉부외과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산부인과에 관한 건 기초적인 것밖에 몰랐다.

 

“아이가 거꾸로 들어섰지만 아직은 괜찮아요. 마음을 편하게 갖고 안정을 취하세요. 그리고 절대로 무리하게 움직이면 안 돼요. 조금 걷는 정도로만 운동을 하세요.”

 

“그래, 고맙구나.”

 

산모가 애써 웃음을 짓자 조윤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름 당부를 했지만 지켜질 리가 없었다. 천민은 임신을 해도 출산 전까지는 계속 일을 해야 한다. 현대에서 말하는 출산휴가는 꿈도 꿀 수가 없었다.

 

“갈게요.”

 

밖으로 나오니 산모의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멋쩍게 웃으면서 감자 몇 개를 내밀었다.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에는 우스울 테지만 천민에게는 그것도 귀했다. 분명 자신이 먹을 것을 내준 것이리라.

 

“고맙다. 그, 저기, 줄 게 이거밖에 없다.”

 

“고마워요.”

 

조윤은 입안이 썼다. 현대 의학은 전문적으로 세분화되어 있어서 자신의 분야가 아니면 잘 모른다. 더구나 현대에서는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치료에 필요한 장비며 약이 넘쳐난다. 당연히 의학도 그러한 것을 쓰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런데 여기는 아무것도 없었다. 또한 시대도 달랐다. 약을 만들려고 해도 재료가 맞는지 아닌지 파악할 수가 없고 구하기도 힘들었다. 하연이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한의학에도 나름 관심을 가졌었지만 기간이 짧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가볼게요. 아주머니한테 잘해 주세요.”

 

착잡한 기분을 달래며 집으로 오니 마당에서 목검을 휘두르는 대호가 보였다. 녀석은 요즘 무공을 익혀서 명문가의 무사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사실 천민이 무사가 된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명문가에서는 아무나 받아주지 않는다. 신분도 확실하고 기본적으로 어느 정도 무공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무관에 가거나 누군가에게 무공을 배워야 하는데 천민은 그럴 돈이 없었다.

 

결국 저렇게 혼자서 칼을 휘두르다가 낭인이 되거나 청부업자가 되는 것이 정해진 수순이었다. 운이 좋아 명문가의 무사가 된다고 해도 허드렛일만 하다가 칼받이로 쓰이고 버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대호는 이제 여덟 살이었다. 헛된 꿈일망정 꿈을 꾸게 놔두는 것이 좋았다.

 

“형.”

 

“그래, 육예는?”

 

“자고 있어.”

 

육예는 몸이 약해서 하루의 반을 침상에서 보냈다. 먹을 거라도 제대로 챙겨줄 수 있으면 좋으련만, 돈이 풍족하지 않으니 그마저도 어려웠다.

 

“조윤! 안에 있냐?”

 

이두였다. 이 시간에 올 일이 없는데 무슨 일일까?

 

밖으로 나가 보니 이두 말고도 예전에 봤던 그 호위무사가 두 명의 장정들과 함께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따라와라.”

 

호위무사가 날선 어투로 말했다. 상당히 고압적이라 약간 겁이 났다. 천민은 말 한마디만 잘못해도 자칫 잘못하면 목이 날아간다.

 

하지만 그는 조윤에게 빚이 있었다. 그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줬다.

 

“어디로 가는 겁니까?”

 

“이가장으로 간다. 아가씨가 너를 보고 싶어 한다.”

 

‘보상을 해주려는 건가?’

 

조윤은 그때 구한 소녀가 이가장의 장주인 이종염의 여식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이가장은 명문가이니 뭐를 주든 적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불안한 눈으로 보고 있는 이두와 대호를 안심시키고 호위무사를 따라나섰다. 그러자 함께 온 사내 두 명이 양쪽 옆에 서서 걸었다. 이러니까 꼭 죄를 짓고 끌려가는 것 같았지만 기분 탓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한참을 가자 물건을 팔려는 상인들과 오가는 행인들로 북적거리는 대로(大路)가 나왔다. 그들을 지나쳐 곧장 가니 커다란 장원이 한 채 보였다.

 

이가장이었다.

 

조윤은 호위무사를 따라 후원으로 갔다. 거기에는 말에 떨어졌을 때 응급처치를 해줬던 소녀가 있었다. 자색의 옷을 입고 커다란 개와 놀고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그때 다쳤던 팔은 새롭게 부목을 대고 깨끗한 천으로 묶여 있었다.

 

“데리고 왔습니다, 아가씨.”

 

“흐응. 저자인가?”

 

어린 나이에도 말투가 건방지고 오만했다.

 

“아가씨를 뵙습니다.”

 

조윤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이런 꼬맹이에게 인사를 한다는 것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곳은 신분이 깡패였고, 힘이 없으면 숙여야 했다.

 

“천민인 주제에 감히 내 몸에 손을 댔다고 들었다.”

 

“네?”

 

“건방진 것. 용서할 수 없다. 물어!”

 

‘뭐, 뭐라고?’

 

소녀가 잡고 있던 줄을 놓자 커다란 개가 덤벼들었다. 조윤은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러자 개가 위로 올라타서 이빨을 들이댔다.

 

“으아아아악!”

 

조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 소녀가 그걸 보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이대로 개한테 물려 죽는다고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구 몸부림쳤지만 소용이 없었다. 개는 조윤만큼이나 컸다. 얼굴과 팔이 개의 발톱에 쓸렸다. 급기야 개가 조윤의 목을 물려는 찰나, 검집째로 검이 들어와서 개의 입을 막았다. 조윤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호위무사였다.

 

“한무! 왜 말리는 거야?”

 

한무라고 불린 호위무사는 작게 한숨을 쉬며 소녀를 봤다. 성정이 나쁜 건 아닌데 이종염이 너무 오냐오냐하며 키워서 천방지축(天方地軸)이었다. 조윤을 데리고 오라기에 귀찮은 것을 감수하고 갔다 왔건만 이리 대할 줄은 몰랐다.

 

“한번 사람 고기를 먹으면 이후부터 사람에게 덤비게 됩니다. 그럼 이 개를 죽여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하지만 저자는 천민 주제에 내 몸에 손을 댔어.”

 

“그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장주님께서 묵인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나는 용서할 수 없어.”

 

“이 정도면 되었습니다. 이 아이도 자신의 잘못을 뉘우쳤을 겁니다. 명문가의 아가씨는 자애로운 마음도 겸비하셔야 합니다. 아가씨께서 이 아이를 용서해준 걸 알면 사람들이 그 넓은 아량을 칭찬할 겁니다.”

 

“그, 그래? 음……. 알았어. 그럼 이번만 특별히 용서할게. 당장 그 천민을 내보내.”

 

“알겠습니다.”

 

호위무사가 조윤의 뒷덜미를 달랑 들어서 어깨에 들쳐 멨다. 그 와중에도 조윤은 눈물 콧물 다 흘리며 울고 있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어찌나 무서웠던지 바지에 오줌까지 지렸다. 그게 불과 열 살도 안 된 꼬맹이의 심술에 의한 것이라 더욱 충격적이고 분했다.

 

사례를 받을 거라 생각한 자신이 우스웠다. 잠시 잊고 있었다. 이 세계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원리대로 강자가 약자를 먹어치운다. 그렇기에 포악하고 잔인했다. 자신이 먹을 것을 아끼며 감자를 내주던 그런 순박한 사람들만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정문을 나서자 호위무사가 조윤을 내던졌다. 그리고 은자 하나를 던져줬다.

 

“기분 나빠 하지 마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조윤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은자를 주웠다. 말로만 듣던 은자였다. 이거 하나면 사 인 가족이 한 달 먹을 쌀을 살 수가 있었다.

 

은자를 움켜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따위 것 필요 없다고, 이런 걸 원해서 도움을 준 것이 아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저 고맙다는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고, 그게 더 값지다고 외치면서 은자를 던지려고 했으나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게 있으면 대호와 육예가 적어도 세 달은 편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더구나 호위무사의 봉급이 얼마인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그에게도 적은 돈은 아닐 것이다.

 

그 싸가지 없는 꼬맹이가 이걸 줬을 리가 없다. 고개를 들어보니 호위무사는 등을 보이며 저만치 걸어가고 있었다.

 

“제길!”

 

간신히 몸을 일으킨 조윤은 비틀거리며 집으로 향했다.

 

* * *

 

일전에 있었던 일은 조윤에게 적지 않은 깨달음을 줬다. 덕분에 요 며칠간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은 막연하게 현대의 의학 지식을 이곳에서도 활용할 수만 있다면 돈을 벌기가 쉬울 거라 여겼었다. 그럼 대호도 무사가 되는 꿈을 버리지 않아도 되고, 육예도 건강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지금 당장은 어려워도 생활이 나아지면 방법을 찾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만약 그렇게 해서 생활이 나아진다 해도 그걸 지킬 힘이 없으면 소용없었다.

 

천민은 명문가에서 기르는 개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다. 폭행, 강간, 착취는 당연한 거고, 그들의 말 한마디에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평생 인간다운 삶은 꿈조차 꿀 수가 없었다.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조차 못한다.

 

그러니 강해져야 했다. 대호와 육예가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천민이라는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있는 힘이 필요했다. 그러나 생각만 그럴 뿐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현대의 지식이 있다지만 겨우 열 살의 나이에 뭘 하겠는가?

 

지금도 돈이 없어 옷을 사지는 못하고 거친 질감의 재료를 사다가 직접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

 

“우와. 오라버니. 대단해.”

 

육예가 또랑또랑하니 눈을 뜨고 쳐다보며 말했다. 대호도 말은 않고 있었지만 적지 않게 놀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조윤의 바느질은 상당히 능숙했다. 살을 봉합하던 기술을 옷을 바느질하는 데 쓰고 있으니 교수들이 알면 땅을 칠 일이었다.

 

하지만 대호나 육예가 그런 걸 알 리가 없다. 그저 대단하게만 여겨졌다.

 

“다 됐다.”

 

사흘에 걸쳐 드디어 육예의 옷이 완성되었다. 재단을 할 줄 몰라서 바느질 빼고는 전부 엉망이었지만 넝마를 입다가 나름 색도 들어가고 깨끗한 새 옷이다 보니 육예는 마냥 신이 났다. 대호가 부러운 눈으로 보자 조윤이 뭉친 어깨를 두드리면서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네 옷도 금방 만들어 줄게.”

 

말이 금방이지 저녁에만 시간을 내서 만드는 거라 최소 사나흘은 걸렸다. 다만 육예의 옷을 만들어 봤으니까 조금은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내 건 천천히 만들어도 돼. 형 힘들잖아.”

 

의외의 말에 조윤이 대호를 봤다. 가지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데 참는 눈치가 역력했다.

 

‘자식, 기특하네.’

 

조윤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러자 대호가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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