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2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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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9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213화
213화
유원당은 반발하려는 호위무사들을 자제시키고 임강령과 공손후, 제갈상만 대동한 채 안으로 들어갔다.
숲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는 절묘한 장소가 나왔다.
북궁천은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공손후는 북궁천을 보고 무척이나 놀란 표정을 지었다.
“궁주가 어떻게 여기에……?”
놀란 것은 북궁천도 마찬가지였다. 유원당이 그들을 데려 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것이다.
유원당이 북궁천의 마음을 눈치채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누군가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 않겠나? 그래서 데려왔다네. 이 두 사람이라면 감정대로 행동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의외로 북궁천은 유원당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 말씀도 일리가 있군요.”
“이해해 주니 고맙네. 그런데 둘인가, 셋인가?”
“둘로 결정했습니다.”
“다행이군. 잘된 일이야.”
유원당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고는 공손후와 제갈상을 둘러보았다.
“이제 왜 우리가 여기 왔는지 말해 주겠네. 그대들이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의 증인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구먼.”
공손후와 제갈상은 곤혹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유원당이 마치 남의 일을 이야기하듯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나와 임 대협은 북궁 궁주에게 머리를 내주기로 했다네.”
6장. 내가 다시 돌아오는 것을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금화전의 분위기가 숨소리조차 천둥처럼 들릴 만큼 무겁게 가라앉았다.
변성이 무너진 것 자체는 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정파연합과의 정면 격돌에서 큰 피해를 입은 것과 합쳐지자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제는 섬서 정파의 무인들까지 몰려들 테니까.
“교주, 놈들이 더 몰려들기 전에 끝장을 냅시다.”
기련검마의 말에 혈왕 나종백이 살광을 번뜩이며 자신의 생각을 내비쳤다.
“정면 대결보다는 기습으로 놈들의 전력을 약화시키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그는 기련검마와 합공을 펼치고도 영허진인을 이기지 못한 것 때문에 자존심이 크게 상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일파의 주인. 개인의 감정을 자제하고 전쟁에서 이길 방책을 냉정하게 생각했다.
호연도광 역시 정면 대결을 계속할 마음이 없었다.
정파연합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유원당은 여우보다 더 교활하고 침착해서 쉽사리 술수에 말려들지 않았다.
아마 그가 후퇴 명령을 조금만 늦게 내렸다면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졌을 것이거늘.
그렇다면 상황에 맞게 공격 방법을 바꾸어야 했다.
“숙야돈, 놈들이 여명산 기슭에 있다고 했느냐?”
“예, 교주.”
“놈들도 부상자가 많아서 바로 움직이지는 못할 것이다. 전열을 정비해서 본 교의 교도를 셋으로 나누어라. 그중 한 조로 섬서 놈들을 막고, 나머지 두 조와 혈문, 마종보의 무사들을 이용해서 놈들을 철저히 괴롭혀라.”
괴롭히다 보면 기회가 생길 터. 그때 놈들의 숨통을 따 버리면 승리는 천사교로 돌아올 것이다.
“예, 교주. 현명하신 결정이십니다.”
숙야돈이 대답하며 고개를 숙일 때, 밖에서 경비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사의 지존이신 교주님께 아룁니다. 마제가 찾아왔다 하옵니다.”
북궁천이 금천장에 들어선 것은 미시 초였다.
피에 젖은 보따리를 든 냉호가 그의 좌측에서 따라갔고, 표정이 바위처럼 굳은 장추람과 철교신과 적광이 뒤를 따라갔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이번에는 삼룡과 적광을 모두 대동한 것이다.
호연도광은 북궁천이 찾아왔다는 말을 듣고 눈빛을 번뜩였다.
“그가 유원당과 임강령의 머리를 가져왔다고?”
“예, 교주.”
사실이라면 쌍수를 들어서 환영할 일이었다.
“그거 잘됐군. 들어오라고 해.”
“무기를 맡기시고 혼자만 들어가시오.”
위사의 말에 북궁천이 차갑게 반발했다.
“피 묻은 보따리를 나보고 들으라고? 흥! 그럴 수는 없다. 냉호, 네가 그걸 들고 따라와라.”
“예, 주군.”
위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렸다. 상대는 마제인 것이다.
그때 안에서 허락이 떨어졌다.
“그렇게 하라고 해.”
북궁천은 장추람과 철교신과 적광은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피에 젖은 보따리를 든 냉호와 함께 금화전으로 들어갔다.
무기는 위사가 아니라 장추람에게 맡긴 채.
금화전 안에는 숙야돈과 전날 보았던 기련검마 위지완이 오늘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영허진인과 싸웠던 자가 서 있었다.
‘혈왕 나종백…….’
북궁천은 호연도광의 삼 장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보따리를 든 냉호도 그의 뒤에 바짝 붙어서 멈춰 섰다.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자, 호연도광이 사이한 눈빛으로 보따리를 쳐다보았다.
“그 안에 유원당과 임강령의 머리가 들어 있단 말이지?”
북궁천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따리를 풀어 봐라.”
“먼저 아기를 데려와. 그럼 확인시켜 주지.”
호연도광은 미소를 지었다.
금화전 안에는 영허진인조차 이기지 못한 기련검마와 혈왕이 있었다. 거기다 흑마이령과 천사팔혼이 그를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었다.
북궁천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아기를 빼앗아갈 수는 없으리라.
아니, 아기의 안전을 염려해서라도 그는 함부로 손을 쓰지 못할 것이다.
“종척, 아기를 데려와라.”
잠시 후. 종척이 진아를 데려왔다.
아기는 북궁천을 알아봤는지 웃음을 지으며 고사리 같은 손을 흔들었다.
“부…….”
북궁천은 그 모습에 가슴이 터질 것처럼 뛰었다.
‘진아야!’
그때 호연도광이 진아를 안아 들고 북궁천에게 말했다.
“이제 아기를 봤으니 보따리를 풀어라.”
“그 전에 아기의 눈을 가려라. 처참한 광경을 보여 주고 싶지 않으니까.”
“그거야 어려울 것 없지.”
호연도광이 웃음을 지으며 금빛 장포의 넓은 소맷자락으로 아기의 눈을 가렸다.
북궁천이 냉호를 돌아다보았다.
“보따리를 풀어라.”
텅!
냉호가 보따리를 바로 옆의 탁자 위에 내려놓고 매듭을 풀었다.
보따리 안에는 피딱지와 머리카락이 엉킨 채 시뻘겋게 물든 머리 두 개가 들어 있었다.
“나는 약속을 지켰다. 이제 당신이 약속을 지킬 차례야.”
호연도광은 유원당과 임강령의 얼굴을 알지 못했다. 그는 확인을 위해 숙야돈을 바라보았다.
“가서 확인해 봐.”
“예, 교주.”
걸음을 옮긴 숙야돈은 보따리와 다섯 자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북궁천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입이 바짝 마르고, 으슬으슬한 기분이 들었다.
등골을 오싹하게 하는 매서운 눈빛. 가까이 가면 더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겠지만 한 걸음도 더 가고 싶지 않았다.
멈춰 선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따리 속의 머리를 바라보았다.
오전의 싸움에서 유원당을 직접 본 터였다. 선명한 그의 인상이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
그런데 두 개의 머리 중 왼쪽.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피딱지가 묻어 있긴 하지만 유원당의 얼굴이 분명했다.
다른 머리 역시 정파연합을 지휘하던 자들 중 하나였고.
‘드디어 두 놈이 죽었군.’
자신의 판단을 믿은 숙야돈은 호연도광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왼쪽 머리가 유원당입니다, 교주. 그리고 오른쪽 머리가 임강령인 것 같습니다.”
“그래?”
호연도광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진정으로 우려하는 자는 영허진인이 아니었다.
영허진인은 기련검마와 혈왕의 합공을 이겨 내지 못한 자. 앞으로도 얼마든지 상대할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유원당은 달랐다.
그는 자신에게 뒤지지 않는 모사였다.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은 힘이 센 자가 아니라 머리가 뛰어난 자다. 그가 살아 있는 한 자신은 한시도 마음이 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마침내, 모사로서 자신과 비견될 수 있는 유원당의 머리가 몸에서 분리되어 눈앞에 있었다.
“하하하하, 수고했다, 북궁천. 그럼 본좌도 약속을 지켜 볼까?”
호연도광이 호탕하게 웃으며 아기를 두 손으로 잡았다. 그러고는 묘한 표정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북궁천, 너는 본좌가 누군지 아느냐?”
“그대가 천사종 호연도광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던가?”
“흐흐흐, 그럼 내가 어떤 사람이라는 것도 알겠구나.”
왠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무슨 뜻이냐?”
“너는 본좌가 정말로 약속을 지킬 거라 생각하느냐?”
“나는 그대가 비록 악하긴 해도 약속을 어기는 소인배는 아닐 거라 확신하고 있다.”
호연도광의 입가에 떠오른 하얀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순진하기는. 너는 천사의 지존이 어떤 존재인지 모르고 있구나. 한 번의 거짓을 위해서 아홉 번의 진실을 행할 수 있는 사람만이 진정한 천사의 지존이 될 수 있느니라.”
북궁천의 눈빛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말장난하지 마라! 설마 아기를 돌려주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물론 아기야 돌려줘야지.”
“그럼 어서 돌려줘라.”
“단, 한 가지 요구 조건을 더 들어줘야겠다.”
북궁천이 발끈해서 소리쳤다.
“호연도광!”
“놈들이 공격해 오기 전에 머리를 가져왔다면 본좌는 두말 없이 아기를 돌려줬을 거다. 그런데 너는 고의로 시간을 끌고 한 발 늦게 가져왔어.”
“웃기는 소리하지 마라! 시간이 겨우 하루밖에 없었다. 고의로 시간을 끈 것이 아니라 죽일 틈이 없었을 뿐이다!”
“본좌가 네 마음을 모를 줄 아느냐? 너는 아마 정파연합이 본 교를 무너뜨리길 바랐을 거야. 그럼 아기를 얻기가 그만큼 쉬워질 테니까.
그런데 본 교가 그들의 공격을 버텨 내는 걸 보고 별수 없이 유원당과 임강령을 죽인 거지. 더 망설이면 본좌가 화를 낼지 모른다는 걸 넌 알거든.”
말을 맺을 즈음, 호연도광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냉기가 풀풀 날렸다.
“너는 그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해.”
북궁천의 움켜쥔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악다문 이는 어찌나 세게 다물었는지 턱에서 핏대가 툭툭 불거졌다.
그러나 진아가 호연도광의 손에 있는 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결국 분노를 씹어뱉으며 호연도광에게 물었다.
“말해 봐라, 호연도광. 뭘 더 바라는 것이냐?”
“아무래도 영허진인을 네가 죽여 줘야겠어. 그 말코로 인해서 우리 쪽 주요 고수 두 사람의 손발이 묶이니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거든. 따져 보면 이전의 약속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니 너도 결코 큰 손해는 아닐 거다.”
참으로 교활한 자가 아닐 수 없었다.
자신이 영허진인을 죽인다 해도 호연도광은 또 다른 이유를 대고 새로운 요구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새로운 요구를 들어주면 그다음에 또 다른 요구를 할 것이고.
그제야 북궁천은 호연도광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솔직히 말해 봐라, 호연도광. 너는 진아를 인질로 해서 나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내가 정파연합 편에 서지 못하도록 하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지? 그래서 진아를 돌려줄 생각이 없었지? 진아를 돌려주면 내가 정파연합 쪽에 서서 대항할지 모르니까. 안 그런가?”
차가워졌던 호연도광의 얼굴에 다시 웃음이 피어났다.
북궁천의 말이 끝나자 그가 허리를 젖히며 대소를 터트렸다.
“흣, 하하하하! 이제야 눈치챘군! 맞다, 북궁천. 본좌가 정말로 우려한 것은 네가 정파 놈들과 한패가 되었을 경우였느니라. 그래서 아기를 빌미로 너를 붙잡아 두려 했지. 물론 최대한 이용해 먹으면서 말이야. 그런데 정파의 핵심 인사들을 죽여 주었으니 본좌는 매우 만족하고 있느니라.”
“나는 너처럼 약속을 어기는 사람이 아니다. 아기를 받으면 무조건 그냥 돌아갈 것이다. 그러니 아기를 돌려 다오.”
북궁천은 분노도, 자존심도 접고 사정하듯이 말했다.
그러나 호연도광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본좌는 본좌 자신도 믿지 않는다. 그런데 너를 어찌 믿는단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