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20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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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5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206화
206화
찔끔한 소이정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걱정 마시라니까요.”
“어서 가 봐.”
“지금요?”
“그럼 방 늙은이가 사람을 보낼 때까지 기다릴래?”
그럴 수는 없었다.
“알았어요. 지금 가죠, 뭐.”
소이정은 풀죽은 모습으로 몸을 돌려서 자신의 방에 들어갔다. 호법전을 남몰래 빠져나가는 비밀통로가 그 방에 있었으니까.
주서광은 소이정이 밀실로 들어가고 벽이 닫히자 이를 지그시 악물고 허공을 노려보았다.
‘방철산, 네놈이 아무리 날뛰어도 이정이만큼은 넘겨주지 않을 거다.’
3장. 공격 결정은 내려지고
금천장에 웅크리고 있는 천사교가 조용한 반면, 영서에 머물고 있는 정파연합은 구양환이 살해당했음에도 사기가 충천했다.
죽은 줄 알았던 총군사 유원당이 살아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더구나 우영산장의 대승을 실질적으로 이끈 사람이 유원당이라 하지 않은가.
분위기만으로는 당장 천사교를 무너뜨리고 평화를 되찾을 것 같았다.
그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우영산장의 대전에서 열린 정파연합 수뇌부 총회의 열기는 무척이나 뜨거웠다.
“망설일 것이 뭐 있습니까? 당장 공격합시다!”
괄괄한 성격의 진왕리가 당장 달려갈 것처럼 소리쳤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의 말에 찬성했다.
“숫자도 우리가 많고 고수도 많습니다. 질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하루빨리 놈들을 물리치고 강호를 진정시킵시다!”
“구양 궁주도 놈들이 보낸 자객이 죽였을 거요! 총군사! 공격 명령을 내려 주시오!”
당장 검을 빼 들고 뛰쳐나갈 것 같은 기세.
유원당은 그들처럼 형세를 낙관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군웅들의 들끓은 감정을 무시하기에는 분위기가 너무 뜨거웠다.
무작정 붙잡아 두면 갑론을박하다가 그 열기가 내부를 태워 버릴지도 모르는 일.
한편으로는 사기가 올랐을 때 밀어붙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공격해서 효과가 좋으면 그건 그것대로 이익이다.
설사 이익이 크지 않다 해도 북궁천의 제안을 호연도광이 받아들이게 하려면 가만히 있는 것보다 강하게 흔들어 대는 게 나을 터.
결정을 내린 유원당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좋습니다. 전열 정비도 끝났으니 움직여 보지요. 곧 각 세력별로 이동 명령이 떨어질 것이니, 명령이 떨어지면 그대로 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총공격이 눈앞이다!
가슴이 뜨거워진 군웅들은 벌떡벌떡 일어나서 포권을 취하며 반겼다.
“알겠소이다, 총군사!”
“맡겨 주시구려!”
총회의가 끝난 뒤. 유원당은 자신의 방에서 군사직을 수행하던 세 사람과 마주 앉았다.
공손후는 미리 알고 있어서 담담했지만 위효릉과 제갈상은 표정이 제각각이었다. 탐탁지 못한 표정의 위효릉, 경이의 표정을 짓는 제갈상.
유원당은 그들과 반 시진에 걸쳐서 공격 방법을 의논했다.
위효릉이 시시콜콜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공손후가 무조건 유원당 편을 들고, 제갈상은 감정을 배제한 채 냉정히 상황을 판단하다 보니 논의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런데 논의를 마친 세 사람이 방을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영허진인이 찾아왔다.
“총군사, 영허진인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유원당은 눈을 뜨고 자리에서 일어나 영허진인을 맞이했다.
“안으로 모셔라.”
곧 영허진인이 담담한 표정으로 들어왔다.
“어쩐 일이십니까, 진인?”
“상의할 일이 있어 왔네.”
“앉으시지요.”
영허진인이 앉자 시비를 대신해서 시중을 드는 종리기진이 차를 내왔다.
유원당은 영허진인이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차로 입술을 축인 영허진인은 찻잔을 내려놓고 자세를 단정히 하고 입을 열었다.
“어젯밤 북궁 시주를 만났네.”
유원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북궁 시주. 북궁천을 말함일 터.
“그게 사실입니까?”
“대단하더군. 사람들이 왜 마제, 마제 하는지 알 수 있었지.”
유원당은 결과가 궁금해 미칠 것 같았지만 묻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가 저쪽에 있는 이상 모든 일에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도 역시 같은 생각이네. 사실 그래서 찾아온 거지.”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면 뭐든 하시지요.”
“금천장을 공격하기로 한 결정은 나 역시 찬성이네. 단, 그에 대해서 별도의 대책을 마련했으면 하네.”
“어떤 식으로 대처하면 좋겠습니까? 의견이 있으면 말씀해 보시지요.”
“그가 정말 천사교 쪽에 서게 된다면, 적어도 세 명의 고수를 따로 배정해서 그를 상대해야 하네. 그의 수하까지 합하면 모두 일곱이 되겠지. 그 정도의 인원을 빼낼 수 있을지 모르겠군.”
단순한 고수를 말함이 아니다. 정파연합에서 가장 강한 자들이 나서야 될 터.
문제는 그들이 빠질 경우다.
과연 그러한 전력으로 천사교를 이길 수 있을까?
더구나 그들이 북천마제 일행을 이긴다는 보장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 말이다.
“진인이 말씀하신 인원을 빼내면 전력에 큰 차질이 올 겁니다. 사실 그래서 저는 마제를 이번 싸움의 가장 큰 변수로 생각했지요.”
“노도도 총군사의 말을 이해하네. 허어, 직접 겪어 보지 않았다면 노도 역시 믿지 않았을 거야.”
씁쓸함이 영허진인의 얼굴 위로 스쳐갔다.
“공격을 망설인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입니다. 당장 싸움을 벌이면 그는 천사교를 위해서 싸울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아기를 위해서 싸운다고 봐야겠지요.”
정파연합의 적으로 말이다.
“아무래도 그러겠지.”
고개를 주억거리는 영허진인의 표정이 침중해졌다.
“하지만 한껏 올라간 사기가 식으면 그 또한 좋지 않을 것 같아서 공격하기로 결정한 겁니다.”
“으으음, 총군사의 말이 맞네.”
“현재로서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그를 적으로 삼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봅니다.”
“노도가 왜 총군사의 말을 모르겠는가? 그렇게만 된다면야 더 바랄 게 없지.”
“진인, 일단 마제와 관계된 일은 저를 믿고 모든 걸 맡겨 주십시오. 저에게 나름대로 생각이 있습니다.”
영허진인은 그제야 유원당의 말에 또 다른 뭔가가 있음을 간파하고 눈이 커졌다.
“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단 말인가?”
유원당이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최선을 다하면 하늘도 알아주겠지요.”
* * *
신시 초.
쾅!
화살 하나가 임강령의 처소 기둥에 깃만 남기고 꽂혔다.
“뭐, 뭐야?”
“저건 화살이잖아?”
경비무사는 화살을 빼려 했다. 하지만 워낙 깊게 박혀 있어서 쉽게 빠지지 않자 깃에 달린 종이만 떼어 냈다.
종이는 간단한 내용이 적힌 서신이었다.
경비무사는 서신 겉에 쓰인 이름을 보고 곧장 임강령에게 가져다주었다.
임강령은 정황을 전해 듣고 눈살을 찌푸리며 서신을 받아서 펼쳤다. 내용은 정말 간단했다.
[반 시진 후 용호산 뒤쪽 산자락 아래에 있는 산신당에서 봅시다.]
임강령은 서신을 보낸 사람이 북궁천임을 알고 유원당을 찾아갔다.
유원당은 서신을 읽고 눈을 감았다.
임강령이 답답한 마음에 먼저 입을 열었다.
“총군사, 호연도광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거라고 보시오?”
그 말에 눈을 뜬 유원당이 말했다.
“받아들이지 않은 것 같습니다.”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우리 둘의 목숨만으로 협상이 이루어졌다면, 저쪽에서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말이 쓰여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아무 말도 없이 만나자고 하는 걸 보면 우리에게 할 말이 더 있다는 뜻일 거고, 그렇다면 결국 뭔가 더 요구할 것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럼?”
임강령이 걱정스런 어조로 반문하며 유원당을 바라보았다.
유원당은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두어 사람의 목숨을 더 요구했겠지요.”
“한 사람도 아니고 몇 사람이나?”
“남들이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차라리 여러 사람의 목숨을 요구하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한 사람의 목을 요구한다면 그만큼 비중이 큰 사람을 죽여 달라고 할 테니까요.”
임강령은 그 한 사람이 누구를 말하는지 깨닫고 침음을 흘렸다.
“으으음, 그게 사실이라면 북궁 궁주도 고민이 많겠구려.”
“그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기를 천하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요. 아마 한두 사람 더 죽여서 아기를 찾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겁니다.”
“답답하군. 그러다 호연도광이 아기를 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려고…….”
“제 생각으로는, 그럴 가능성이 큽니다.”
생각지 못한 유원당의 말에 임강령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뭐요? 그럼 북궁천이 약속을 지켜도 호연도광이 아기를 돌려주지 않을 거란 말이오?”
“임 대협, 상대가 천사종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그가 살아 있는 한 우리는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 같더군요.”
임강령이 가슴이 서늘했다.
자신도 잠시 잊고 있었다. 천사종이 어떤 사람이라는 걸.
“깨우쳐 줘서 고맙소, 총군사.”
“어쨌든 일단은 북궁 궁주의 생각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총군사가 움직이면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거요. 그러니 내가 먼저 가서 만나 보겠소.”
유원당이 씁쓸한 표정으로 임강령을 쳐다보았다.
걱정하진 않았다. 북궁천이 임강령을 해칠 리는 없으니까.
다만 목숨을 내놓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는 사실이 자신의 한계를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마음이 심란했다.
그런데도 임강령은 유원당이 자신을 걱정하는 줄 알고 짐짓 목에 힘을 주고 말했다.
“임 모는 어제오늘에서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천사교 무리가 얼마나 무서운 자들인지 확실히 깨달았소. 나 역시 목숨을 내주기로 결심하고 나니 세상에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지 뭐요. 걱정 마시오.”
유원당은 쓴웃음이나마 미소를 지어 주었다.
“좋습니다. 그럼 그를 만나시거든 제가 하라는 대로 하십시오.”
* * *
용호산을 넘어가면 완만한 산세가 길게 뻗어 있었다.
계곡의 수만 해도 일곱 개, 산세가 뻗어 나간 길이는 십 리에 달했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산신당은 단 한 곳. 쌍호곡 입구에 지어진 사당뿐이었다.
북궁천은 임강령의 거처 기둥에 서신을 매단 화살을 쏘고 산신당 문 앞 바위에 앉아서 연락이 오기를 기다렸다.
임표와 담운은 모종의 임무를 맡겨서 상주로 보냈고, 장추람 등은 백 장 이상 떨어진 곳에서 혹시 모를 정파연합의 순찰에 대비하고 있는 상태였다.
‘조금 늦는군.’
자신의 서찰이 전해졌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오십 장 밖에서 쏜 화살이 정확히 기둥을 관통하는 것을 본 터였다.
화살에 매달린 종이를 임강령의 방으로 가져가는 것도 보았다.
‘그들이 내 말을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군.’
유원당과 임강령이야 자신들의 목숨을 포기하겠다고 했으니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마음에 걸리는 것은 영허진인이었다.
‘곧 공격을 할 것 같은데…….’
화살을 쏘기 전에 본 우영산장은 충천한 기세가 멀리서도 느껴질 정도였다.
당장 출동하기라도 할 것처럼.
만약 그들이 공격을 시작한다면 일을 처리하기가 그만큼 힘들어진다고 봐야 했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다가오는 게 느껴졌다. 그리고 곧 임강령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래 기다렸는가?”
북궁천은 바위에서 일어나 몸을 돌렸다.
“적당한 시간에 오셨군요. 안으로 들어가시죠.”
임강령은 북궁천의 말을 듣고 한껏 커진 눈을 바르르 떨었다.
“영허진인을 원한다고?”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