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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92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92화

 

192화

 

 

 

 

 

 

 

그때 밖에서 냉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주군, 이조량이 왔습니다.”

 

“뭐? 안으로 들여보내라.”

 

이조량이 상주에 도착한 것은 하루 전이었다. 북궁천의 행적이 워낙 비밀이어서 찾는 데 하루가 걸린 것뿐. 그나마도 마제와 아기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조금이라도 일찍 찾은 것이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소문을 들어서 알고 있는 이조량은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올렸다.

 

“다녀왔습니다, 대형.”

 

“그곳에 있지 않고 왜 온 거냐?”

 

“헌원 소저께서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해하셔서 저를 보냈습니다.”

 

북궁천으로서도 철군성의 소식이 궁금했기에 그를 더 이상 책망하지 않았다.

 

“그래, 려려는 어떻게 지내고 있더냐? 몸은 괜찮더냐?”

 

이조량은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 조금만 아프다고 해도 금방 걱정이 태산처럼 부풀 것 같은 표정이었다.

 

“별일은 없습니다. 소저께선 오히려 대형께서 아기를 찾으시고도 엉뚱한 일을 벌일까 봐 노심초사하고 계십니다.”

 

“내가 무슨 말썽을 부린다고…… 좌우간 별일 없다니 다행이군.”

 

심해 밑바닥까지 가라앉았던 북궁천의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그래, 일단은 최선을 다해 보자. 하다 보면 기회가 생기겠지.’

 

 

 

그렇게 그날 석양이 지기 직전, 진평천이 사람을 보내 만나자는 연락을 취해 왔다.

 

이미 변성의 상황을 흑운대에게 전해 들은 터였다. 그들이 왜 만나자는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북궁천은 잠시 생각을 정리한 후 진평천을 만나 보기로 했다.

 

술시 무렵.

 

북궁천은 혼자서 벽성장을 나섰다.

 

진평천은 현도관에서 십 리가량 떨어진 산촌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도관이 천사교의 감시망에 드러났을 경우를 대비한 듯했다.

 

이각가량 걸려서 그곳에 도착한 북궁천은 산촌 일대에 수십 명의 고수들이 숨어 있다는 걸 알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여기네.”

 

진평천이 커다란 토담집 입구에서 그를 불렀다. 그의 옆에는 장한 둘이 횃불을 들고 서 있었다.

 

북궁천은 진평천을 따라 토담집 안으로 들어갔다.

 

흙과 돌로 둥글게 벽을 쌓아 올린 토담집 안은 상당히 넓고 높았다. 중앙에는 불을 지필 수 있는 화덕이 있고, 화덕 주위에는 요리를 할 수 있는 시설과 통나무로 만든 식탁이 놓여 있었다.

 

북궁천이 들어갔을 때 식탁 주위에는 노도장 둘, 속인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속인 중 한 사람은 전에 본 월영신검 좌일소였고, 한 사람은 모르는 자였다. 두 노도장 역시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고.

 

진평천이 먼저 네 사람을 소개했다.

 

“이분은 종남파의 장문인이신 송광도장이시고, 이쪽 분은 화산파의 장문인이신 명진도장이시네. 그리고 이 사람은 장안의 명숙인 곽 형이네. 강호에서는 웅천도(雄天刀)라 부르지.”

 

웅천도 곽춘양은 진평천에게 뒤지지 않는 이름을 떨치고 있는 강호명숙이었다. 그는 궁금함이 가득 담긴 눈으로 북궁천을 바라보고 있었다.

 

“북궁천입니다.”

 

이제는 북궁천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하기에 북궁천이 평배로 인사를 건네도 누구 하나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배분보다는 북궁천이 마제라는 것이 더 마음에 걸린 듯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진평천은 그들의 마음을 알았지만 모른 척하고 자리를 권했다.

 

“자, 앉게.”

 

북궁천이 앉아서 차로 입술을 적시자, 진평천이 먼저 물었다.

 

“어떻게 된 건가?”

 

“뭐가 말입니까?”

 

“놈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우리보다 먼저 지원군을 보냈더군.”

 

자신을 의심하는 눈빛.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는 듯했다.

 

북궁천은 그들의 마음을 알면서도 담담히 대꾸했다.

 

“그야 일러바친 놈이 있으니 그런 것 아닙니까?”

 

진평천은 북궁천의 말에서 뭔가 수상쩍은 낌새를 눈치채고 이마를 찌푸렸다.

 

“자넨 그가 누군지 알고 있는 것 같군.”

 

“압니다.”

 

“누군가?”

 

“모르는 게 나을 겁니다.”

 

“설마…… 우리 쪽 사람이란 말인가?”

 

‘눈치가 빠르군.’

 

북궁천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말해 주게. 죽은 사람만 오십 명이 넘고 많이 다친 사람도 백 명이나 되네. 배신자가 있다면 가만둘 수 없네.”

 

“정말 알고 싶습니까?”

 

북궁천은 처음과 달리 무심한 목소리로 묻고 좌중을 둘러보았다.

 

“무량수불. 누구든 죄를 지었으면 그 대가를 치러야 하네. 알고 있으면 말해 주시게나.”

 

명진도장이 도호를 외며 북궁천을 직시했다.

 

북궁천은 시선을 돌려 송광도장을 바라보았다.

 

“제자 중에 석정산이라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지금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아십니까?”

 

송광도장의 눈빛이 파랑을 일으켰다. 북궁천의 말만 듣고도 상황을 짐작한 것이다.

 

“원시천존. 서, 설마 그 아이가?”

 

“우리가 우영산장을 쳐서 호연유를 붙잡은 걸 아실 겁니다. 그때 그가 호연유에게 잡혀서 뇌옥에 있다는 걸 알고 빼냈지요.”

 

“맙소사…….”

 

송광도장은 눈을 감고 연신 도호만 외웠다.

 

명진도장과 진평천 등도 놀라서 입을 반쯤 벌린 채 북궁천만 바라보았다.

 

그 때 북궁천이 송광도장에게 전음을 보냈다.

 

―석정산은 호연유의 꾐에 빠져 음마들의 모임인 명화회 회원이 되었습니다. 명화회 회원은 호연유와 구양우경, 선우중 같은 음마들이지요. 다시 말해서…… 그는 잡혀서 간 것이 아니라 호연유가 불러서 간 겁니다.

 

송광도장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 그게 사실인가?

 

―직접 물어보시면 알 일. 제가 뭐하러 거짓말하겠습니까?

 

―세상에, 그토록 순한 아이가 어쩌다…….

 

―나는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송광도장은 그 말의 의미를 깨닫고 이를 악물었다.

 

단순히 호연유에게 잡혀서 입을 열었다는 것과 음마들의 모임인 명화회 회원으로 호연유를 만나러 가서 비밀을 누설한 것은 너무나 큰 차이었다.

 

종남의 존망이 걸려 있을 정도로.

 

그는 북궁천이 뭔가를 요구한다면 종남 전체를 원하는 것이 아닌 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이 늙은 말코에게 뭘 바라는 건가?

 

―종남의 이름을 걸고, 나중에 제 부탁 하나를 들어주시겠다는 약조만 해 주시면 됩니다.

 

마제의 부탁이다. 어쩌면 하늘의 해를 따다 달라는 부탁만큼이나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송광도장은 거부할 용기가 없었다.

 

―종남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겠네.

 

진평천과 명진도장, 좌일소, 곽춘양은 북궁천이 송광도장과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음을 눈치챘다.

 

하지만 워낙 엄청난 일이 벌어진 터라, 뭔가 따로 할 이야기가 있나 보다 생각하고 묵묵히 모른 척했다.

 

그러다 송광도장이 천천히 눈을 뜨는 걸 보고 진평천이 말문을 열었다.

 

“험, 그게 사실이라면 자네를 탓할 수도 없겠군.”

 

“지난 일 가지고 따지는 것은 시간만 아까운 일입니다. 이제 앞으로의 일을 논의해 보지요. 변성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긴 했지만 저들 역시 타격이 크다고 들었습니다. 게다가 저들은 영서의 계획이 실패하면서 워낙 큰 피해를 입은 만큼 변성에서 고수들을 철수시킬 수밖에 없을 겁니다. 아주 좋은 기회 같은데, 재차 공격할 계획은 없습니까?”

 

“그 일을 논하기 전에 물어볼 게 있네.”

 

“말씀해 보십시오.”

 

“오늘 오전, 천사지존과 만났다 들었네. 결과를 알려 줄 수 있는가?”

 

“모르는 게 나을 겁니다.”

 

좀 전과 똑같은 대꾸.

 

진평천은 정말로 물어보는 것이 겁났다.

 

하지만 물어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래도 듣고 싶군.”

 

“여러분들이 뭐라 해도 어차피 제 결정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 일 때문에 저와 함께하는 것이 못 미덥다면 어쩔 수 없지요. 언제든 생각이 있으면 연락을 주십시오.”

 

북궁천은 무심한 어조로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 곽춘양이 눈에 힘을 주고 말했다.

 

“그대가 천사지존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면 정파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되네.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순순히 보내 줄 수 없네.”

 

북궁천의 눈이 진평천을 향했다.

 

“진 노사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후우, 솔직히 말해서 나는 오늘 일이 원만하게 대화로 해결되길 바라네. 하지만 말해 주지 않으면 나로서도 다른 사람의 뜻을 막을 수가 없다네.”

 

진평천을 바라보는 북궁천의 눈빛이 빛 한 점 없는 심해처럼 깊어졌다.

 

“진 노사께선 아직 저를 모르시는군요.”

 

“무슨 말인가?”

 

“제가 왜 이곳에 혼자 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설마 진 노사만 계신 줄 알고 혼자 온 거라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지요?”

 

“자네가 강한 것은 나도 잘 아네. 하지만 이곳에는 우리들만 있는 게 아니네.”

 

순간, 북궁천의 입가로 냉소가 번졌다.

 

“정말 나를 모르고 있었군. 아마 천사지존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면 당신들보다 배 이상의 전력을 데려왔을 거요. 그래야 붙잡아 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질 테니까.”

 

당신들 힘으로는 어림도 없어!

 

그 말이다.

 

“북천의 촌놈이 광오하구나! 대우해 주니까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느냐!”

 

곽춘양이 버럭 노성을 내질렀다.

 

찰나였다.

 

북궁천이 일 장 정도 떨어진 그를 향해 우수를 뻗으며 건곤패력장을 펼쳤다.

 

콰아아아!

 

곽춘양은 갑자기 숨이 턱 막히고 온몸이 짓눌리자 황급히 쌍장을 들어서 방어했다.

 

쾅!

 

토담집을 울리는 굉음이 울리고, 곽춘양의 몸이 뒤로 일 장가량 날아간 뒤 바닥을 두어 바퀴 뒹굴었다.

 

진평천과 송광도장. 명진도장은 눈을 부릅뜨고 표정이 굳어졌다.

 

아무리 갑작스런 상황이고, 곽천양이 도객이어서 장법이 약하다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가 힘들었다.

 

“낫을 걸어 놓은 한 가닥 명주실을 잡고 있는 기분이 어떤지 아시오? 지금 내가 그런 기분이오. 그러니 나를 건드리려면…… 누구든 목숨을 내놓을 각오를 해야 할 거요.”

 

북궁천의 가늘게 벌어진 입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나직이 흘러나왔다.

 

그는 말을 맺자마자 몸을 돌려서 걸음을 옮겼다.

 

안하무인처럼 보이는 행동.

 

그럼에도 선뜻 나서서 그를 막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 곽춘양이 몸을 일으키더니 칼을 뽑아 들었다.

 

“이놈! 어디 내 도를 받아 봐라!”

 

악에 바친 노성을 내지른 그는 전 공력을 도에 집중시키고 북궁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바로 그 순간!

 

홱, 몸을 돌린 북궁천이 몸을 날린 그를 향해 패왕일보를 내디뎠다.

 

쿵!

 

땅에서 전해진 충격이 커다란 토담집 전체를 뒤흔들었다.

 

동시에 북궁천의 내디딘 발에서 뻗어 나간 기운이 바위처럼 단단한 바닥을 쩍쩍 가르더니 통나무 탁자마저 터트려 버렸다.

 

퍼버벅!

 

그와 동시!

 

쾅!

 

탁자 위를 날아오던 곽춘양이 철벽에 부딪친 듯 뒤로 튕겨 나갔다.

 

북궁천이야 피를 보지 않으려고 펼친 패왕일보였지만, 그 위력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고도 남았다.

 

아연실색한 표정으로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선 네 명의 고수.

 

북궁천은 굳어 버린 그들을 둘러보고 다시 몸을 돌렸다. 그리고 걸어가면서 나직이 말했다.

 

“부탁하건대, 내 앞을 막으려 하지 마시오. 내가 아기를 데리고 북천으로 돌아가는 걸 방해한 자들은 누구든 용서치 않을 거요. 하늘이 온통 핏빛으로 물들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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