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8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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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81화
181화
호연유는 잠령과 귀령이 여인과 석정산을 어깨에 메고 나가자, 의자에 앉아서 앞에 놓인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그 때 사야승의 다급히 방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소존, 긴급히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피범벅이 된 방을 보고도 그에 대해선 일절 토를 달지 않았다.
호연유가 짜증 난 말투로 물었다.
“뭐가 그리 급하단 말이오?”
“적산채에 있던 정파연합 놈들이 이곳으로 오고 있다 합니다.”
“뭐요? 빌어먹을!”
쨍그랑!
술잔을 바닥에 내던진 호연유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사야승을 다그쳤다.
“대체 금천장에서는 왜 지원무사들이 아직도 오지 않는 거요? 연락은 제대로 했소?”
“했습니다.”
“했는데 안 온다? 흥! 아버님이 설마 나를 시험하시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시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미끼로 내준 것이다.
하지만 사야승은 그 말을 하지 않았다.
소존은 며칠 전의 그가 아니었다. 지금 그 말을 해 봐야 소존의 광기만 부채질하는 꼴이 될 게 분명했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지원무사가 올 때까지 일단 제가 천귀군주와 함께 무사들을 이끌고 나가서 놈들이 오는 길목을 막아 보겠습니다, 소존.”
“가능하겠소?”
“이십여 리 앞쪽에 있는 계곡은 폭이 좁습니다. 삼백이면 일천을 막을 수 있는 지형이지요. 어둠 속에서 암기와 활을 이용해 철저히 막으면 놈들에게 상당한 피해를 입힐 수 있을 것입니다.”
“좋소. 그럼 혈교령이 수고해 주시오. 그리고 금천장에 사람을 보내서 곧 삼서의 정파 놈들이 변성을 공격할 거라고 전하시오.”
“예?”
“석정산이 제 목숨과 바꾸려고 한 말이니 잘못된 정보는 아닐 거요.”
3장. 막는 자는 죽는다!
숙야돈이 수상한 무리에 대한 보고를 받은 것은 일천오백 무사를 영서로 보낸 지 반 시진가량 지났을 때였다.
“수상한 자들?”
“현재까지 두 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숫자는 각 무리마다 삼사십 명 정도인데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다 합니다.”
“어떤 놈들인지 알아보았느냐?”
“순찰무사들이 그들을 정지시키려다 당했다고 합니다.”
“어떤 놈들이지?”
“정체가 아직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습니다만, 정파연합 놈들이 본 교를 총공격하기 전에 감시망을 먼저 와해시키려고 보낸 자들이 아닐까 짐작하고 있습니다.”
얼마든지 가능한 추측이다.
그러한 이유 외에는 달리 생각하기도 어정쩡하고.
“이놈들이 잔머리를 쓰는군. 흥! 쉽지 않을걸?”
숙야돈은 법당주 둘을 불러서 그들로 하여금 각기 무사 일백을 이끌고 수상한 자들을 쫓게 했다.
그때만 해도 그는 무사 이백을 동원하는 것쯤이야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오랜 시간이 걸릴 것도 아니고, 전체 전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으니까.
* * *
무사들이 우영산장을 나서는 게 보였다.
대략 삼백여 명. 오륙백 명이라 했으니 반쯤 나서는 듯했다.
북궁천은 언덕 위에서 팔짱을 끼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좌측에는 장추람과 냉호가 서 있고, 우측에는 철교신과 북풍사객이 서 있었다.
그들은 북궁천보다 한 시진 먼저 도착해서 우영산장 내부와 주위 일대를 살펴본 터였다.
노중문과 호영곽을 비롯한 흑운대가 보이지 않았는데, 그들은 금천장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이었다.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뭐가 말입니까?”
북궁천의 말에 장추람이 반문하며 큰 눈을 껌벅였다.
북궁천이 전방을 향해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
“저자들, 정파연합을 상대하기 위해서 출동하는 거겠지?”
“아무래도 그런 것이겠죠. 그런데 숫자가 너무 적군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겠지. 천사교에서 쌍뇌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모사꾼인 사야승이 그것도 모르고 저 인원만 움직이겠어?”
“그럼 뭐가 이상하다는 겁니까?”
“가마를 탄 놈이 하나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가마를 탈 만한 놈은 소존과 사야승뿐이지. 그런데 행색을 보니 소존은 아니고 사야승 같아. 그게 이상해. 군사가 싸움에 앞장서다니.”
북궁천의 그 말에 냉호가 조소를 지었다.
“되게 부지런하군요. 북천궁의 불여우 같으면 뒤에서 손짓이나 하고 있을 텐데 말입니다.”
“부지런해서가 아니야.”
“그럼 왜 나섰다고 보시는 겁니까?”
북궁천의 눈빛이 싸늘하게 번뜩였다.
“사야승의 머리라면 천사지존이 영서를 미끼로 내놓았다는 걸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뭔가 꿍꿍이가 있겠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우영산장에서 나온 무사들이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졌다.
북궁천은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우영산장을 응시했다.
“어쨌든 우리에게는 잘된 일이야. 이제 소존을 잡으러 가 볼까?”
나직이 입을 연 그는 품속에서 복면을 꺼내 얼굴을 감췄다.
만약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나중에 누군가가 자신을 추궁해도 발뺌할 수 있는 조치.
장추람을 비롯한 북궁천의 고수들도 말없이 복면을 뒤집어썼다.
“가자!”
짧은 외마디 외침과 함께 북궁천이 언덕 아래로 신형을 날렸다.
언덕을 내려온 북궁천은 경공을 펼치던 그대로 우영산장의 담장을 넘었다.
산장 내부에 대한 탐색이나 남은 자들에 대한 조사 따위는 처음부터 생각지도 않은 움직임이었다.
장추람과 냉호, 철교신, 북풍사객도 단단히 각오를 다진 채 북궁천의 뒤를 따라서 우영산장으로 진입했다.
북궁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그들의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삭풍이 휘몰아치는 북천을 누비며 만인을 굴복시키던 때의 북천마제는 그야말로 무적의 패왕이었다.
그가 앞에서는 오직 굴복만이 존재했다.
― 따르는 자는 살 것이오, 거부하는 자는 죽는다!
그의 걸음걸음마다 혈해가 펼쳐졌다!
거칠 것 없이 패도의 길을 가던 북천의 마제!
스물다섯 나이에 북천을 거머쥔 무적의 패왕!
오늘, 그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는 것이다.
“웬 놈들이냐!”
경비무사들이 날아드는 북궁천 일행을 보고 소리쳤다.
북궁천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검을 휘둘렀다.
쉬아아아악!
“개새끼를 잡으러 왔느니라!”
묵혼에서 뻗어 나간 벼락이 경비무사들을 휩쓸었다.
단숨에 경비무사들을 쓸어버린 북궁천은 일직선으로 몸을 날렸다.
우영산장의 건물 배치는 이미 파악한 상태. 그는 소존이 있다는 중앙 건물로 날아갔다.
“적이다!”
“몇 놈 안 된다! 막아!”
여기저기서 무사들이 악을 쓰며 달려왔다.
장추람과 냉호, 철교신, 북풍사객이 광기에 가까운 살기를 번뜩이며 그들을 덮쳤다.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은 이각, 그 안에 최대한 타격을 줘야 했다.
“으아악!”
“크억!”
“으으으, 정신 바짝 차리고 협공해!”
비명과 아우성이 연이어 터져 나오며 어둠으로 물든 땅이 시뻘겋게 변해 갔다.
그사이 북궁천은 중앙의 건물 앞에 내려섰다.
그 때 건물의 좌우는 물론 안에서도 무사들이 벌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단순한 경비무사들이 아닌 소존을 경호하던 역천군의 정예들이었다.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날뛴단 말이냐!”
북궁천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적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역천군 무사들은 그때까지도 자신들 앞에 염왕조차 고개를 젓는 패왕이 내려섰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이 그 사실을 깨닫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 없었다.
쩌저저적!
묵혼에서 터져 나온 벼락이 다섯 명을 한꺼번에 쓸어버렸다.
무기와 몸이 갈라지면서 핏물이 시커멓게 뿜어졌다.
온몸이 저릿해지는 섬뜩한 광경!
그러나 역천군 무사들은 놀랄 시간도 없었다.
북궁천이 방향을 틀며 검을 내쳐 셋을 더 베어 버리고, 좌수로 건곤패력장을 펼친 것이다.
콰광!
고막을 울리는 일성 굉음!
숨조차 쉬지 못하던 역천군 넷이 뒤로 날아가 널브러졌다.
“크어억!”
털썩!
“웩!”
한순간에 열두 사람이 회복불능 상태로 죽거나 쓰러진 상황.
그럼에도 북궁천은 살수를 멈추지 않았다.
역천군 무사들은 몸뚱이가 갈라지고, 목이 떨어지고, 칠공에서 피를 뿜으며 튕겨 나갔다.
상대는 천사교의 정예. 마기에 물든 자들이다. 손에 사정을 둘 이유가 없었다.
북궁천이 적진으로 뛰어들고 숨을 다섯 번 쉴 시간이 흘렀다.
그 짧은 시간, 그의 앞에선 스물일곱 명의 몸에서 흘러나온 선혈이 골을 이루며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으로 전각을 향해 좌수를 뻗었다.
쾅!
일장에 전각문이 박살 나며 전각 안의 등잔불이 꺼질 것처럼 흔들렸다.
그 때였다.
강력한 기운을 지닌 중년무사 여섯이 노성을 내지르며 북궁천의 뒤쪽에서 날아들었다.
혈사도 우안각을 비롯한 혈문과 마종보의 고수들이었다.
“멈춰라, 이놈!”
“크하하하! 우리가 갈기갈기 찢어서 죽여 주마!”
끈적끈적하면서도 음습한 기운.
거리가 먼데도 마기의 강렬함이 느껴진다.
북궁천의 입가에 냉소가 떠올랐다.
장포가 바람도 없는데 펄럭거렸다.
적의 마기가 강할수록 그의 살심도 그만큼 커졌다.
바로 그 때, 날아들던 자들이 일제히 공세를 퍼부었다.
“죽어라, 이놈!”
파바바바박!
북궁천이 서 있는 주위로 막강한 기운이 폭우처럼 쏟아지면서 바닥의 석판이 부서져 튀며 먼지가 일었다.
그러나 그를 중심으로 반경 일 장 안쪽은 바람조차 없이 고요했다.
날아들던 자들이 이 장 안으로 들어온 순간!
홱, 몸을 돌린 북궁천이 그들을 향해 한 걸음 내디디며 묵혼을 뻗었다.
쩌저저적!
묵혼의 끝에서 뻗어 나간 벼락에 어둠이 갈지자로 쪼개졌다.
가히 천붕의 일격!
가공할 검세와 정면으로 맞닥뜨린 두 사람의 얼굴이 나찰귀처럼 일그러졌다.
콰과광!
굉음이 천공을 울리며 두 사람의 몸뚱이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다른 세 사람도 검세에 휩쓸려서 겨우 중심을 잡고 내려선 후 비틀거렸다.
동시에 북궁천의 신형이 엿가락처럼 죽 늘어났다.
“헉!”
“놈을 막아!”
겨우 중심을 잡은 세 사람이 기겁한 표정으로 물러났다.
괴이하게도 세 사람이 동시에 같은 표정이었다. 북궁천이 그들 모두에게 달려드는 것처럼 보인 것이다.
찰나!
쩍!
어둠이 세로로 갈라지며 한 줄기 벼락이 떨어졌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사검(蛇劍)을 들고 있던 비사검 호동각이 눈을 부릅뜨고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가 몸을 떨자 이마에서 목까지 얼굴에 혈선이 생겨났다. 머리가 수직으로 갈라진 것이다.
북궁천은 일검으로 한 사람의 목숨을 취하고 환영처럼 옆으로 미끄러지며 좌수를 내리눌렀다.
만 관 바위도 으깨 버릴 가공할 압력이 시뻘건 혈장을 펼치던 혈수인마 추안등의 머리 위를 짓눌렀다.
“이이익!”
마종보의 장로인 추안등은 혼신의 힘을 다해 대항했다.
하지만 작정하고 손을 쓴 북궁천의 일수를 감당하기에는 그의 공력이 턱없이 부족했다.
콰직!
“끄어억!”
위력이 얼마나 강한지 추안등은 두 손이 으스러진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북궁천은 거기에서 손을 멈추지 않고 추안등의 머리 위 다섯 자 허공에서 패왕일보를 펼치며 발을 굴렀다.
우드득!
“크엑!”
목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공포에 찬 비명이 터져 나오고, 머리가 어깨 사이로 쑥 들어가며 턱이 가슴에 닿았다.
충혈된 눈이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추안등은 공포에 질려서 부들부들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