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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78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7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78화

 

178화

 

 

 

 

 

 

 

“잘 읽어 보게나.”

 

“대충 읽어 봤소. 그런데 누가 쓴 서찰인데 나에게 내미는 거요?”

 

“끝까지 모른 척할 건가?”

 

“모르는 것을 그럼 모른다고 해야지, 안다고 해야 한단 말이오?”

 

“설마 나에게 서찰이 이것밖에 없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허어, 정말…….”

 

‘내가 그 여우 같은 놈을 믿은 게 잘못이지.’

 

이미 죽은 자를 또 죽일 수도 없고…….

 

주서광은 미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여기서 인정할 수는 없는 일. 끝까지 버텼다.

 

“쓸데없는 말씀 하시려면 그만 가서 쉬시지요. 언제 마제가 올지 모르니 교주님의 호법을 총괄해야 하는 저로선 노닥거릴 시간이 없습니다만.”

 

“역시 교주님의 신임을 얻을 만하네. 하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거야.”

 

“나는 원주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정말 모르겠소이다.”

 

주서광이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자, 방철산이 넌지시 자신의 본뜻을 밝혔다.

 

“나는 좋게 해결해 보려고 하는데, 주 총령은 그럴 마음이 없는 것 같구먼.”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시오?”

 

“서로 상부상조하자는 거네.”

 

“상부상조?”

 

“나는 큰 걸 바라지 않네. 자네가 약간만 양보를 하면 이번 일을 무마할 수도 있지. 그런데 나를 너무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는 것 같군.”

 

주서광의 눈 깊은 곳에서 기광이 번뜩이다 사라졌다.

 

흥정할 의사가 있다는 뜻. 그렇다면 들어 보지 못할 것도 없다.

 

“뭘 양보하라는 말씀이시오?”

 

“이번에 장로를 다섯 명 정도 새로이 임명할 생각이네. 그 일에 반대하지만 않으면 되네.”

 

“그런 일이야 교주님의 허락만 떨어지면 되는 것인데, 내가 양보하고 말고 할 것이 뭐 있겠소?”

 

“흠, 그런가? 그럼 찬성하는 걸로 알고 있어도 되겠지?”

 

“물론이오.”

 

“허허허, 역시 주 총령은 말이 통하는군. 말하길 잘했어.”

 

주소광은 속이 무척이나 쓰렸다.

 

장로가 다섯 명 늘어나면 호법전의 힘을 압도하게 된다.

 

더구나 방철산이 작정하고 장로를 늘리려 하는 이상 그만큼 주요 인물을 장로원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반면 호법의 숫자는 고정시킬 것이고.

 

더 화가 나는 것은 요구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점이었다.

 

속에서 불길이 치솟지만 약점을 잡힌 지금으로선 어쩔 수가 없었다.

 

‘능구렁이 같은 영감 같으니라고. 두고 봐라, 방철산, 네 마음대로 되지만은 않을 거다.’

 

‘이 정도로 끝날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주소광. 이제 시작일 뿐이야. 너는 결국 내 발바닥을 핥게 될 거다.’

 

방철산은 후련해진 마음으로 몸을 돌렸다.

 

“그럼 이만 가 볼 테니 쉬게나. 아, 그 서찰은 자네가 갖게.”

 

 

 

주소광은 방철산이 나간 문을 뱀처럼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며 이를 빠드득 갈았다.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늙은이. 내가 네놈의 시커먼 속을 모를 줄 아느냐? 아직은 확증이 없어서 참고 있다만, 곧 네놈의 뒤통수를 갈겨 줄 것이다.’

 

이를 간 그는 고개를 돌려서 누군가를 불렀다.

 

“이정아.”

 

그런데 숨을 두어 번 쉴 동안 기다려 봤지만 아무런 대답도 없고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마를 찌푸리고 조금 더 크게 불러 보았다.

 

“이정아!”

 

그래도 대답이 없자 눈을 치켜뜨고 벽처럼 생긴 뒷문을 향해 다가갔다.

 

그 때 벽이 열리며 부스스한 얼굴이 나타났다.

 

“부르셨습니까?”

 

“살수는 아무리 깊은 잠이 들어도 항상 경계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했거늘, 할아비가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단 말이냐?”

 

“자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왜 부르신 겁니까?”

 

주서광은 꼬박꼬박 토를 다는 소이정을 보고 울화통이 터졌다. 그러나 어쩌랴, 하나밖에 없는 외손자이자 제자이거늘.

 

더구나 실력도 제법이고, 혼을 내 주려면 대들어서 어떻게 하고 싶어도 쉽지가 않았다.

 

‘끄응, 딸년이 죽어 갈 때 한 부탁만 아니었어도 확 목을 따 버릴 텐데.’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버리다시피 했다가 마흔이 되어서 찾은 딸의 하나뿐인 자식이었다. 당연히 자신에게도 유일한 핏줄이고.

 

게다가 사문의 절학을 유일하게 익힌 제자이기도 했다.

 

별수 없이 화를 속으로 삭인 그는 소이정을 노려보며 명령을 내렸다.

 

“할 일이 있다.”

 

“뭔데요?”

 

“북혈회의 단천이라는 놈을 조사해 봐라.”

 

“그놈이 어떤 놈인데요?”

 

“조사해 보면 알 것이 아니냐!”

 

“조사를 제대로 하려면 뭐라도 좀 알아야죠?”

 

주서광의 숨이 거칠어졌다.

 

성격이 살모사처럼 차가워서 어떤 경우에도 심적 동요를 일으키지 않는 그이거늘, 소이정만 대하면 이상할 정도로 열이 뻗쳤다.

 

하지만 소이정의 말도 틀린 것이 없으니 대놓고 야단칠 수도 없었다.

 

“동마방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놈이다. 어제는 사교령이 불러서 만났다더군. 키가 크고 건들거리는 게 영락없이 한량처럼 보인다고 들었다만, 그놈이 한 일을 보면 속에 능구렁이가 몇 마리 들어 있는 놈인 것 같다. 어쩌면 그놈이 악동초의 비밀서류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그놈이 악동초를 죽였으니까. 가서 그놈을 조사해 보고 놈에게 방철산과 관련된 서류가 있는지 알아보도록 해라.”

 

“여차하면 사교령에게 일러바칠지 모르는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만약 그런 낌새가 보이면 서류만 빼앗고 죽여 버려.”

 

“그러다 사교령께서 알게 되면요?”

 

“자신 없으면 하지 마. 다른 사람에게 맡길 테니까.”

 

주소광은 마지막 수단으로 소이정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순간 소이정의 눈빛이 달라졌다.

 

“누가 자신 없다고 했습니까? 좋습니다, 제가 그놈의 속옷까지 탈탈 벗겨서 서류를 찾아오죠!”

 

자신 있게 말한 그는 비밀문을 쾅 닫았다.

 

“저놈이……!”

 

벽 너머에서 욕이 들려왔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씨발, 언제까지 여기서 이렇게 지내야 돼?’

 

그는 금천장에서 갇혀 있다시피 지내는 게 싫었다. 솔직히 천사교도 싫었다.

 

세상을 훌훌 날아다니고 싶었다.

 

외조부가 걱정되지만 않아도 그렇게 살 텐데, 지금은 늙어도 죽지 않는 방철산 때문에 마음 놓고 떠날 수가 없었다.

 

‘어떤 놈인지 몰라도 너 잘 걸렸다. 내가 확실히 벗겨 주마.’

 

 

 

 

 

 

 

2장. 내 뜻대로

 

 

 

 

 

아침이 되자 천사교도 수백 명이 금천장을 나와 상주 일대를 들쑤셨다.

 

그들은 좌우로 길게 늘어서서 마치 사냥할 때 짐승을 몰듯이 상주를 쓸고 지나갔다.

 

어느 곳도 예외가 없었다. 일반 가정집은 물론이고 서마련과 남패령, 북혈회의 권역도 철저히 조사했다.

 

심지어 관가까지 직접 들어가서 휘젓고 다녔다.

 

천사교는 상주에서 제왕의 권위를 발휘했다. 누구도 그들을 제지하지 못했다. 수천 리 밖에 있는 황궁보다 눈앞에 있는 칼이 더 두려웠다.

 

 

 

북궁천은 소식을 듣고 이를 악물었다.

 

천사교의 수색은 무서울 것이 없었다. 자신은 사교령의 명령을 이행하는 사람이고 방철산과도 연결되어 있었다. 천사지존이 직접 나서지 않는 한 자신을 강제할 수 없었다.

 

문제는 수색하는 천사교도들이 퍼뜨리는 소문의 내용이었다.

 

천사지존은 오늘이 지나면 약속대로 아기를 해칠 거라 했다.

 

북궁천은 그 말이 단순하게 위협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기에 가슴이 새카맣게 탔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뿐.

 

‘좋아! 결판을 내자, 천사지존!’

 

결정을 내린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기울여서 천사교를 흔들기로 했다.

 

“양곽.”

 

북궁천이 밖을 향해 부르자 경비무사들을 이끌고 있던 호양곽이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가서 정화문을 데려와라.”

 

 

 

일각이 지나지 않아서 정화문이 북궁천을 찾아왔다.

 

“무슨 일로 부르셨소?”

 

“오늘 밤에 시작할 거요.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맡길 일이 있으니 미리 말을 전해서 나와 만날 수 있도록 하시오.”

 

정화문의 눈이 커졌다.

 

“오늘 밤요?”

 

“정확한 시간은 자정이 막 지날 때쯤이 좋을 것 같소.”

 

정화문이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전하겠소.”

 

“장소는 어디가 좋을지 당신이 생각해 보시오.”

 

“평사전 뒤쪽이 괜찮을 거요. 주방이 있는 건물이어서 다른 곳보다 경비가 덜한 곳이오. 그리고 비밀통로가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소.”

 

북궁천은 정화문이 방을 나가자 호양곽을 바라보았다.

 

“전에 말했던 자들은 몇 명이나 포섭했지?”

 

“모두 열 명입니다.”

 

“그들에게 전해서 오늘밤 금천장 안에 불이 나면 혼란을 조장하라고 해.”

 

“예, 주군.”

 

굳은 표정으로 대답한 호양곽은 소리 나지 않게 숨을 들이쉬었다.

 

 

 

호양곽을 내보낸 북궁천은 한참 동안 허공을 노려보고는 서찰 두 개를 작성했다.

 

서찰을 다 쓴 그는 장추람을 불렀다.

 

“추람!”

 

장추람이 기다렸다는 듯 안으로 들어왔다. 그도 돌아가는 상황이 워낙 급박하다 보니 초조한 듯했다.

 

“부르셨습니까, 대형?”

 

“이걸 가지고 가서 내가 하라는 대로 해라.”

 

“뭡니까?”

 

“천사지존에게 보내는 서찰이다. 금천장에서 동쪽으로 오십 리 정도 떨어진 곳에 가서 천사교도가 보이면 순서대로 건네줘.”

 

“그렇게만 하면 됩니까?”

 

“먼저 하나를 건네고 근처에서 기다리면 놈들이 어떤 식으로든 말을 전달하려고 할 거다. 그때 두 번째 서찰을 건네주고 돌아와. 얼굴이 드러나면 안 되니까 복면을 써.”

 

 

 

* * *

 

 

 

북궁천이 보낸 첫 번째 서찰은 한 시진이 조금 넘었을 때 호연도광에게 전해졌다.

 

마침 숙야돈과 함께 있던 호연도광은 서찰을 읽고 조소를 지었다.

 

“그가 서찰을 보냈다. 곡천 일대를 순찰하던 무사들이 전달받았다는군.”

 

곡천이라면 금천장에서 동쪽으로 오십 리 정도 떨어져 있다.

 

어젯밤 침입한 놈이 지나갔다는 곳.

 

그곳에서 서찰을 전했다면 마제 역시 그 근처에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무슨 내용입니까?”

 

“아기를 건네준다면 전쟁에 관여하지 않고 떠나겠다는구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호연도광이 하얗게 웃었다.

 

“그럴 것이었다면 아기를 데리고 있을 이유가 없지.”

 

“놈이 원한을 품고 정파연합 쪽에 서서 싸운다면 저희 쪽의 피해도 막대해질 겁니다.”

 

“놈은 절대 그럴 수 없다. 아마 아기의 손가락 하나가 잘라졌다는 소식만 들어도 당장 무릎을 꿇을걸?”

 

“그럼 지금 그렇게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야 그렇게 하고 싶지. 그런데 아쉽게도 아기의 절맥증 때문에 잘못하면 목숨이 끊어질지도 모른다는군.”

 

손가락 이야기는 그냥 해 본 말이 아니었다.

 

호연도광은 정말 아쉬웠다.

 

“일단 놈에게 알려라. 아기는 절대 돌려줄 수 없으며, 본좌가 한 말 역시 절대 바뀌지 않을 거라고 말이야. 어디 누가 이기는지 보자.”

 

“예, 교주.”

 

 

 

숙야돈은 서찰을 받았다는 곳으로 사람을 보내서 호연도광의 뜻을 사방팔방에 떠들게 했다.

 

장추람은 그 소리를 듣고 분노가 솟구쳤다.

 

그는 천사교도 한 놈의 머리를 자른 다음, 두 번째 서찰을 입에 꽂아 놓아서 바위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천사교도가 서찰을 회수하는 걸 확인하고는 답을 기다렸다.

 

답이 돌아온 것은 정확히 한 시진 후였다.

 

장추람은 답을 듣고 나서야 조양장으로 돌아갔다.

 

북궁천이 보고를 받은 것은 그로부터 반 시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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