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7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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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74화
174화
“허허허, 네 아비에게도 그렇게 웃는 모습을 보이도록 해라. 그래야 내 말을 잘 듣지. 네 아비가 내 말을 잘 들어야 너도 살 수 있느니라.”
아기가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호연도광을 빤히 쳐다보았다.
호연도광의 입가에 잔잔한 웃음이 걸렸다.
“그 녀석, 눈이 어찌나 맑은지 쏙 빼서 씹어 먹으면 비린내도 안 나겠군. 허허허허.”
그러고 보면 마제가 바로 찾아오지 않는 것도 괜찮을 듯했다.
어차피 아기를 찾기 위해 위험을 감수할 놈이라면, 눈알 하나 빼내고 팔 하나쯤 떼어 낸다 해도 놈은 아기를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그 때 아기가 뭔가를 느꼈는지 겁먹은 표정으로 멈칫거렸다.
호연도광은 그 모습을 보며 더욱 살기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이놈아, 내가 겁나느냐?”
10장. 잠입
북궁천이 도착했을 때 현도관에는 진평천만이 와 있었다.
명원 도장과 송선 도장은 각 문파의 제자들과 함께 모처에서 대기 중이라 했다.
북궁천도 일대일이 편했다. 그나마 진평천이 두 도장보다는 말도 잘 통했고.
마음이 홀가분해진 그는 시간을 끌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내일 밤 시작하죠.”
무엇 때문인지 깊은 생각에 잠겨 있던 진평천이 흠칫하며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너무 빠르지 않나?”
“시간을 끌어 봐야 좋을 것도 없습니다.”
“자네 말대로 정파연합에 연락을 취했네. 그들이 제때 도착할지 모르겠군. 기왕이면 손발을 맞추는 게 나을 텐데 말이야.”
“손발이야 맞춰야지요. 그 전에 한 발 먼저 흔들어 놓자는 겁니다. 치고 빠지면 저들의 시선이 무의식중에 이쪽으로 쏠릴 겁니다. 그때 정파연합이 우영산장마저 무너뜨리면 우왕좌왕하겠지요. 본격적인 공격은 그때부터 시작하도록 하죠.”
“당연히 자네도 우리 쪽 공격에 합류하겠지?”
“저희는 따로 할 일이 있습니다.”
진평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우리와 천사교 사이에 싸움을 붙여 놓고 자네들은 빠지겠다는 건가?”
“저희는 천사교 내부를 뒤집어 놓을 겁니다. 그 일을 그쪽에서 하시려면 하시든지. 그만한 능력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진평천은 자존심이 조금 상했지만, 북궁천 말대로 그럴 능력이 없으니 그에 대해선 대꾸하지 못하고 넌지시 물었다.
“내부를 뒤집어 놓는단 말이지? 자네들이 하려는 일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있겠나? 그걸 알아야 우리도 갑작스런 상황이 닥치면 대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는 북궁천의 합류를 원했다.
자신보다 강한 단천이 빠진다면 자신들이 생각한 전력에 상당한 공백이 생기는 셈이었다.
하지만 북궁천은 설명해 줄 마음이 없었다. 아니, 마음이 없다기보다는 할 수가 없었다.
자세히 설명해 주면 진평천이 자신의 목적을 눈치챌 테니까.
대신 그는 아주 간단하게 말해 주었다.
“먼저 천사교의 이인자 자리를 노리는 방철산과 주서광 사이를 이간질해서 서로를 돕지 못하도록 할 생각입니다.”
“그게 가능한가?”
“가능하니까 하려는 것 아닙니까? 못 믿겠으면 지금까지 한 말 없던 걸로 하시든가요. 저야 아쉬울 것 없으니까요.”
솔직히 말하면 무척 아쉬울 것이다.
하지만 사실대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은 하수들이나 할 짓이었다.
다행히 진평천은 북궁천의 의견을 거부하지 않았다.
“으음, 좋네. 외곽을 치고 빠지는 일 정도야 크게 어려울 것은 없지.”
“좋습니다. 그럼 이제 자세한 계획을 세워 보지요.”
그 때였다.
북궁천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진평천이 불쑥 물었다.
“혹시…… 자네가 북천마제 아닌가?”
쿵!
“…….”
북궁천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언제까지 속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진평천은 숙야돈과 달리 자신과 직접 손을 맞대 본 사이. 방문을 봤으면 그 정도 추측은 충분히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하루 정도는 시간 여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거늘.
‘젠장! 괜히 그 여우에게 방문을 붙이라는 말을 해 주었나?’
모른 척 부정할 수도 있었다.
그런다 해서 진평천이 자신을 어떻게 할 수 있으랴!
하지만 그는 잠깐 사이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차피 알 일. 어쩌면 지금이 때인지도…….
그는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진평천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진평천은 심장이 싸늘하게 식었다.
솔직히 반반의 가능성을 가지고 물었다. 아닐 거라는 생각이 조금은 더 강했다.
그런데 말투를 보아하니 진짜 북천마제가 분명했다.
“중요하지. 아주.”
“어차피 지금까지 저를 마도 사람으로 알았지 않습니까?”
“그야 그렇지. 하지만 무명인 사람과 마제는 그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네.”
“제가 마제면 함께하시지 않을 생각이었습니까?”
“그건 아니네.”
“그럼 아무 문제 될 것이 없군요.”
“문제가 되네.”
“뭐가 문제란 말입니까?”
“자네가 마제라면 아들을 구하는 게 최우선일 거야. 안 그런가?”
진평천이 북궁천의 가슴을 콕 찔렀다.
북궁천은 가슴이 찌릿했지만 별문제 될 것 없다는 투로 말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약속을 어기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말, 믿어도 되겠지?”
자신이 아기를 구한 후 발을 뺄까 봐 걱정되었나 보다.
하긴 진아를 구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자신이 아닌가?
북궁천은 그럴수록 더욱 자신 있게 답했다.
“제 이름을 걸지요. 그럼 되겠습니까?”
“약속을 어기면 이번 일을 세상에 공표할 거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네.”
그러든 말든.
북궁천은 조금도 걱정할 것 없다는 투로 말했다.
최대한 낮게 깔아서, 아주 무겁게.
“좋을 대로 하시죠.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그런데 저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도 압니까?”
진평천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자네와 손잡는 걸 반대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라서 말하지 않았네. 하지만 당시 자네와 만났던 사람 중 몇은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놓고 공론화하지 않았다는 것은 개인적인 의심에 머물러 있다는 뜻이다. 아니면 진평천과 같은 우려 때문에 말을 아끼고 있든지.
‘그나마 다행이군.’
화산과 종남은 정파를 대표하는 문파. 자신을 싫어할 자들이 몇은 있다고 봐야 했다. 더구나 그들 속에 천사교의 간자가 없으란 법도 없고.
“자연스럽게 밝혀질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십시오.”
“나도 그럴 생각이네.”
* * *
조양장으로 돌아온 북궁천은 장추람과 북풍사객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리고는, 자시가 되기 일각 전 노중문과 함께 금천장으로 향했다.
어둠 속에서 수십 개의 화톳불이 타오르는 금천장의 모습은 귀기스럽게 보일 지경이었다.
노중문은 북궁천을 안내해서 금천장의 남문으로 다가갔다.
장원이 워낙 크다 보니 동쪽의 정문 외에도 남, 서, 북에 큰 문이 세 개나 더 있었다.
남문의 위사는 장로원 쪽 사람들. 노중문은 그 문을 통해 서너 번 드나들면서 위사들과 안면을 터놓은 상태였다. 약간의 돈이 필요한 일이었지만.
“잠시만 기다리쇼.”
위사는 노중문에게 은자 한 냥을 받고 희희낙락해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물론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자도 한 냥을 받았다.
그리고 잠시 후, 장환이 나왔다.
장환은 아무 말 없이 북궁천과 노중문을 데리고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더니 장로원 옆 건물의 구석진 방으로 들어갔다.
“자네가 단천인가?”
장환은 방으로 들어간 후에야 물었다.
“그렇습니다.”
“서찰이 더 있다고 했던 것 같던데, 가져왔는가?”
“물론 가져왔죠.”
“이리 주게.”
“죄송하지만 원주께 직접 드릴 생각입니다.”
거부할 줄은 생각지 못한 듯 장환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나에게 주면 원주께 드리는 것과 매한가지네.”
“그래도 원주님은 아니잖습니까?”
“내가 전해 드린다고 하지 않나?”
“제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직접.”
“지금 나를 못 믿겠다는 건가?”
“직접 전해 드린다는 것과 못 믿는다는 게 무슨 상관입니까? 저는 다만 서찰을 드리면서 따로 말씀드릴 게 있어서 그럽니다.”
“그 말도 나에게 해 보게.”
“정말 이상한 분이시네. 제가 직접 한다니까요?”
“뭐야? 내가 이상해?”
“원주님께 직접 말하겠다는데 왜 귀하가 먼저 듣겠다는 겁니까? 이상하잖습니까?”
“네가 지금 나를…….”
장환은 ‘못 믿겠다는 것이냐?’라고 말하려다 뒷말을 삼켰다.
그러면 또 그게 무슨 상관이냐며 따질 놈 같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어쨌든 지금 패를 쥐고 있는 것은 단천이라는 놈이었다. 그는 화를 삭이고 싸늘한 눈빛으로 쏘아보며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몰라도 쓸데없는 말이라면 원주님만 피곤해지신다. 그러니 나에게 먼저 말하라는 거다.”
“왜 내 말을 귀하가 판단하겠다는 겁니까? 쓸데없는 말인지 필요한 말인지 판단하는 것은 원주님 아닙니까? 그러니 가서 말씀이나 드려 주쇼.”
장환은 속이 답답해지면서 은근히 울화가 치밀었다.
하지만 상대의 말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별 볼 일 없는 말이기만 해 봐라, 이놈!’
그는 꼬투리가 잡히기만 바라며 북궁천의 뜻을 수용했다.
“좋다, 가서 원주님께 그대로 말씀드리마.”
반 각이 지나갈 즈음, 장환이 방철산과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네가 북혈회에 새로 들어왔다는 단천이냐?”
방철산이 회색빛 눈으로 북궁천을 살펴보며 물었다.
북궁천은 알아준 것만으로도 황송하다는 듯 굽실거리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저에 대해서 들으셨나 보군요.”
“귀가 따갑도록 들었지.”
장환이 감정 섞인 말투로 자세히 말해 주었다. 정신적으로 이상한 놈 같다는 말까지도.
그는 평소와 다른 장환의 표정을 보고 어떤 놈이 장환의 감정을 건드렸는지 궁금했다.
“그래, 나에게 왜 그런 서찰을 보냈는지 이유를 말해 보거라.”
“그야 필요할 것 같아서 보냈지요.”
“그런 서찰이 왜 나에게 필요할 거라 생각했지?”
“홍무수 같은 자와 결탁해서 천사교의 위엄을 더럽히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또한 한 산에 호랑이는 한 마리만 있으면 되는 일이라 생각했지요.”
방철산은 짐짓 노기 띤 목소리로 북궁천을 윽박질렀다.
“네 말이 지금 무슨 뜻인지 아느냐? 감히 나를 모욕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
북궁천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황급히 변명했다.
“제가 어찌! 저는 다만 원주님께서 호랑이의 위치에 오를 자격이 있다고 봤을 뿐입니다.”
“흠, 그래?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긴 해도 그리 기분 나쁘진 않군.”
“그냥 하는 말이 아닙니다. 확실한 진실입죠. 해서 저희 북혈회는 어르신을 모시기로 했습니다.”
“나를 모신다?”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많은 돈이 필요할 때가 있지 않습니까? 이제 동마방은 무너졌으니 저희가 원주께서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 드리겠습니다.”
“허허허허,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나는 돈을 밝히는 사람이 아니니라. 내가 동마방에서 돈을 받은 것은 본 교의 사람 중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지.”
‘별 개소리를 다 듣는군.’
속으로는 그래도 겉으로는 웃었다.
“정말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앞으로는 저희를 믿고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마음껏 하십시오.”
“내 뜻을 이해해 주니 고맙군. 그런데 금액에 대해서도 들었는지 모르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