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73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4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73화
173화
“천사지존이 그 정도 크기라면 내가 걱정하지도 않아.”
“그럼 공격할 곳은 생각해 보셨습니까?”
북궁천은 세 사람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조금 이상하지 않아?”
“예?”
“아무리 금천장에서 영서의 우영산장까지 거리가 얼마 안 된다지만, 천사교주가 지원 병력을 보내지 않고 있다. 왜 안 보내는 걸까?”
냉호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정파연합을 철저히 감시하고 있을 테니, 그들이 공격해 온다는 걸 알고 난 후에 보내도 된다고 보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말이야, 내 생각은 조금 달라.”
“어떤 생각이신데…….”
“큰 싸움에서는 미끼가 아주 중요한 법이다.”
장추람이 그러잖아도 큰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천사교주가 그들을 미끼로 내놓을지 모른단 말입니까? 에이, 소문을 들으니 소존은 천사교주의 아들이라고 하던데, 아무리 승패가 중요해도 아들을 미끼로 내놓겠습니까?”
대답하는 북궁천의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미끼가 크고 먹음직스러워야 대물을 잡을 수 있는 법이야. 게다가 상대는 천사지존이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자식도 내던질 수 있는 자…….”
“으음, 주군의 말씀이 사실이면 영서는 함정이나 마찬가지로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 때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냉호가 흠칫하며 물었다.
“설마 함정 속으로 자진해서 뛰어들겠단 말씀은 아니겠지요?”
“저들이 노리는 건 우리가 아니다. 내 생각이 사실로 확인되면 오히려 우리에게는 기회라 할 수 있어. 소존, 그 개새끼 머리는 꼭 내 손으로 박살 내 버릴 거다.”
말투가 어찌나 싸늘한지 세 사람은 등줄기가 오싹했다.
그런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설마 우리만으로 영서에 있는 놈들을 친다는 건 아니겠지?’
북궁천은 장추람 등을 방에서 내보내고 노중문을 불러들였다.
“가서 방철산을 만나라.”
“예, 주군.”
“그에게 이걸 선물로 줘.”
북궁천은 노중문에게 서찰 두 장을 건넸다.
홍무수의 비밀 서랍에 있던 주머니에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값진 물건이 들어 있었다. 단순히 황금이나 전표가 아닌 형형색색의 보주와 가치를 알 수 없는 기보들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납작한 함 두 개 중 하나에는 서찰이 들어 있었다.
그가 노중문에게 건네는 서찰 뭉치는 바로 그 서찰 중 일부였다.
“홍무수와 주서광이 주고받은 서찰이다. 아주 재밌는 내용이 들어 있더군. 방철산에게 그 서찰이 내가 가진 것 중 일부라고 전하고, 더 보기를 원한다면 내가 직접 그곳으로 찾아간다고 해.”
“시간은 언제쯤으로 잡으면 되겠습니까?”
“보는 눈이 적을 때가 좋겠지.”
* * *
노중문이 북궁천에게서 서신을 받은 지 한 시진.
방철산은 서찰을 다 읽고 시퍼런 눈빛을 번들거렸다.
깨끗한 척하던 주서광의 치부가 낱낱이 적혀 있었다. 처먹은 것도 더 많고 더러운 짓도 더 많이 했다.
서찰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주서광을 짓누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그는 서찰을 더 가지고 있다는 북혈회의 애송이를 직접 만나 보기로 했다.
“장환, 서찰이 더 있다고 했지?”
“예, 원주. 원하신다면 밤늦게 찾아뵙는다고 했다 합니다.”
“자시에 찾아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장환이 대답하고 방을 나가자 방철산의 입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후후후, 주서광. 너는 이제 내 발바닥이나 핥아야 할 거다.’
한편, 주서광은 서마련이 설문에게 넘어갔다는 수하의 보고를 받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홍무수가 죽었단 말이지?”
“예, 총령. 소매 속에 지니고 있던 절명침이 오발되어서 복부와 가슴에 꽂혔다고 합니다.”
“멍청한 새끼. 똑똑한 척은 혼자 다 하더니…….”
“그런데 제가 알아본 바에 의하면 그 전에 북혈회의 단천이라는 놈이 찾아왔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그놈이 수상합니다.”
“놈이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냐?”
“홍무수가 죽었다면 한바탕 난리가 일어나야 하는데 너무 조용합니다.”
“동마방이 괴멸된 데다 련주까지 죽었으니, 자신들도 어떻게 될지 몰라서 긴장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 않느냐?”
“그런 것일 수도 있습니다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꼭 짜인 대로 움직이는 것처럼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주서광은 자신의 눈과 귀 역할을 하는 오지관의 말을 무시하지 않았다.
방철산에게 장환이 있다면 그에게는 오지관이 있었다.
오지관은 그를 십 년 동안 보좌하면서 한 번도 허튼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좋아, 네 생각이 그렇다면 가서 설문이라는 놈을 만나 봐라. 단천이라는 놈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리고 가거든 홍무수가 남긴 것이 없는지 철저히 알아봐. 그 여우새끼가 서신을 태우지 않고 어디다 숨겨 놓았을지도 모르니까.”
“존명.”
* * *
“자시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적당하군.”
“방철산은 욕심이 많은 자이기도 하지만 잔혹하고 교활한 자입니다. 조심하십시오.”
북궁천은 노중문의 말에 느릿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라. 그런 자에게 당할 사람은 아니니까.”
노중문의 눈빛에 곤혹감이 떠올랐다.
회안마존 방철산.
정녕 두려운 이름이 아닐 수 없었다.
천하 마도고수 중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절대고수가 그다. 어지간한 마도고수는 손가락 하나로 눌러 죽일 수 있는 마도의 거물 중 거물.
천사종 호연도광이 아니면 누가 감히 그를 아래에 두고 움직일 수 있으랴.
그런데도 새로 모신 주군은 그를 대단치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문제는 그러한 태도가 허풍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대체 주군의 정체는 뭘까?
회안마존을 대단치 않게 여길 수 있는 사람이 강호에 얼마나 될까?
열? 스물? 적어도 그 이상은 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자 중 젊은 사람은 더욱 적을 것이고.
‘일처리하시는 걸 보면 강호에 갓 나오신 분은 절대 아닌데…….’
그 때 문득 오전에 상주를 떠들썩하게 만든 소란이 떠올랐다.
머릿속에서 번개가 쳤다.
‘마, 맙소사! 그럼 주군께서……?’
그의 눈이 자신도 모르게 커졌다.
“그대가 눈치챈 걸 보니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을 것 같군.”
북궁천이 무심한 눈으로 노중문을 보며 말했다.
노중문은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내달리는 전율에 온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 그럼 정말 주군께서…… 마제라는 말씀……?”
“내 사람이 된 것을 후회하나?”
노중문은 무너지듯이 무릎을 꿇었다.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그대는 나와 함께한다. 나중에 북천까지 함께 갈 것인지는 그대가 선택해.”
깊게 생각할 것도 없었다. 노중문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따라가겠습니다!”
“그래? 그럼 끝까지 살아남아.”
“예, 주군!”
노중문을 내보낸 북궁천은 장추람을 불러들였다.
“부르셨습니까?”
“현도관에 갔다 와라.”
장추람을 현도관으로 보낸 북궁천은 자신의 방에 틀어박혀서 운기행공에 전념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운기행공을 하며 천조혈심기를 함께 운용했다.
천조혈심기는 다른 사람의 혈맥을 뚫는 것에만 효과가 있는 게 아니었다.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진기가 구석구석을 누비며 주요 혈도를 돌고 나면 온몸이 상쾌해졌다.
직접적으로 공력이 늘어난다거나 하진 않지만, 그로 인해서 진기 유통이 훨씬 원활해졌다. 간접적으로나마 진기가 늘어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한 시진에 걸쳐서 대주천을 마치고 눈을 뜬 그는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천조혈심기라면 진아의 절맥증도 고칠 수 있을지 모르겠군. 방 의원에게 한번 물어봐야겠어.’
천조혈심기의 굵기가 전보다 더욱 가늘어졌다. 아기의 미세한 맥도 충분히 다스릴 수 있을 만큼. 그렇다고 해서 약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질기고 강해졌다.
진아의 절맥증을 자신의 손으로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진 그는 몸을 일으켰다. 절맥증을 고치는 것도 진아를 구한 다음의 일이었다.
그가 밖으로 나가자 기다렸다는 듯 장추람이 다가왔다.
“현도관에서 술시 말에 만나기로 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 가면 되겠군. 냉호.”
북궁천이 고개를 돌려 한쪽에서 팔짱을 끼고 기둥에 기대서 있는 냉호를 불렀다.
냉호가 기둥에서 몸을 떼고 자세를 바로 했다.
“예, 대형.”
“저녁 식사 후 교신과 함께 서마련에 가서 설문을 도와줘라.”
* * *
방철산은 석양을 등진 채 교주의 거처인 금화전으로 들어갔다.
넓은 금화전의 좌우에 석상처럼 고요히 서 있는 교주의 친위무사 천사팔혼(天邪八魂)의 시선이 그를 따라 움직였다.
눈구멍에 얼음을 박아 넣은 듯 온기 하나 없는 그들의 시선은 천하에 두려울 것 없다는 회안마존조차 서늘함이 느껴질 정도였다.
천사지존이 이십 년간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낸 노력의 결정체.
개개인이 초절정 경지에 이른 고수고, 셋이면 절대지경의 고수조차 죽일 수 있다는 자들.
만약 자신이 지존을 해하려 한다면 저들의 손에 먼저 당할지 몰랐다.
방철산은 그들 사이를 지나 호연도광에게 다가갔다.
호연도광은 최근 들어서 아기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그 시간만큼은 아기를 정말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표정이 밝았다.
그러나 방철산은 그 표정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천사지존은 악의 화신이다. 어떤 이유로든 그가 아기를 순수하게 좋아할 사람이라면 지금의 그는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방철산이 일 장 반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선 후에야 호연도광이 고개를 돌렸다.
“이 시간에 어쩐 일인가, 방 장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그래? 어디 말해 보게.”
“최근 들어서 본 교의 간부들 중 일부가 외부 세력과 결탁해 부를 챙긴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게 사실인가?”
“소문을 듣고 조사하는 중입니다만, 지금까지 조사한 것만으로도 사실인 것처럼 보입니다.”
“못된 놈들이군. 천사의 세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가진 것도 바쳐야 할 놈들이 감히 사욕을 챙기려 하다니.”
“개중에는 간부급 인사들도 상당수 있다고 합니다.”
“그게 사실인가?”
“교주께서 허락해 주신다면 제가 샅샅이 조사해서 밝혀내겠습니다.”
“그런 일이라면 걱정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해 보게. 본좌가 얼마든지 밀어줄 테니까.”
“감사합니다, 교주.”
방철산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주소광, 네놈의 숨통을 천천히 조여 주마.’
그 때 호연도광이 물었다.
“며칠 전에 무너진 동마방의 방주 악동초도 본 교의 간부와 가깝게 지내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네. 그 일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는가?”
한껏 기분이 고조되었던 방철산은 머리 위에 찬물이 쏟아진 듯 흠칫했다.
“그 일은 아직…… 제가 철저히 조사해 보겠습니다.”
“그렇게 하게나. 단, 확실한 증거를 찾아내기 전에는 바람이 커지지 않도록 조심하게.”
“예, 교주.”
대답하는 방철산의 표정이 이지러졌다.
호연도광은 방철산이 나가는 것을 쳐다보지도 않고 아기와 놀았다.
“어이구, 이 녀석. 조심해라. 그러다 넘어지겠구나.”
까르르르.
아기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아장아장 걸음을 옮겼다.
아직 다리에 힘이 없는지 곧잘 주저앉았다. 하지만 곧 다시 일어나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