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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70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5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70화

 

170화

 

 

 

 

 

 

 

퍽!

 

어중달의 몸뚱이가 강력한 철퇴라도 되는 것처럼 강욱이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뒤로 튕겨 나갔다.

 

그사이 초산쌍마의 둘째 조낙청이 옆구리에 매달린 도를 빼 들고 북궁천의 빈틈을 노리며 달려들었다.

 

쉬이익!

 

북궁천은 몸을 비틀며 주먹을 도세 사이로 뻗었다.

 

강력한 북두패왕권이 조낙청의 도세를 튕겨 내고 가슴에 작렬했다.

 

쾅!

 

“크억!”

 

조낙청이 비명을 터트리며 뒤로 날아갔다.

 

단숨에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 낸 북궁천은 목을 움켜쥐고 있던 어중달을 탁자 위에 내리꽂았다.

 

콰당!

 

쩌저적!

 

단단한 원목탁자가 어중달의 머리와 함께 부서지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겨우 몸을 일으킨 강욱과 조낙청은 분노할 정신도 없이 얼빠진 표정으로 그 모습을 보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절정고수인 자신들이 맥 한 번 못 추고 당했다는 게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죽고 싶으면 덤벼. 얼마든지 죽여 줄 수 있으니까. 지금 기분이면 백 명 정도는 죽여야 조금 풀어질 것 같거든?”

 

북궁천이 무심한 눈으로 그들을 응시하며 나직이 말했다.

 

그 눈빛이 어찌나 살벌한지 강욱과 조낙청은 입도 뻥끗 못 했다.

 

그 때 적주원이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나섰다.

 

“이제 그만하게나. 이리 오게. 나하고 이야기할 게 있다고 했지?”

 

“잠깐만 기다리쇼. 먼저 저 사람들하고의 일을 매듭짓고 봅시다.”

 

“그 정도면 됐네. 어차피 어 형이 먼저 자네를 쳤으니 저분들도 더 이상 따지지 않을 거네. 안 그렇소, 강 형, 조 형?”

 

강욱과 조낙청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들은 객기를 부리다 뺨 한 대 치고 생을 마감한 어중달 꼴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실로 들어간 북궁천은 털썩, 의자에 몸을 묻었다.

 

적주원은 그의 거만하게 느껴지는 태도를 보고도 아무 말 못 했다.

 

기분이 안 좋다고 어중달의 목을 꺾고 탁자에 패대기친 인간이다. 아무리 자신이 한성격 한다 해도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씨발, 엊그제는 대충 맛만 보여 준 거였어. 새파란 놈이 뭐 저리 강해?’

 

힐끔거리며 자리에 앉은 그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험, 어디 말해 보게. 왜 보자고 한 건가?”

 

북궁천이 고개만 살짝 쳐들고 말했다. 약간 삐딱하게.

 

“좀 전에 사교령 숙야돈을 만나고 왔소.”

 

“사교령을?”

 

“솔직히 묻겠소. 적 령주는 천사교가 남패령을 다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을 거요?”

 

“무슨 말인가? 설마……?”

 

되묻던 적주원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졌다.

 

북궁천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 연 회주는 절대 안 내놓을 거요. 기껏해야 법당주 자리를 줄 텐데, 미쳤소?”

 

적주원도 열을 받았는지 얼굴이 벌게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법당주 되려고 여기서 죽을 둥 살 둥 싸운 줄 아나?”

 

“내가 더 싫은 것은 천사교의 교도가 되어야 한다는 거요.”

 

“여길 떠났으면 떠났지 천사교도는 되지 않을 거네.”

 

여자를 좋아하는 그에게 천사교는 지옥이었다.

 

천사교도라 해서 여자와 함께 살지 말란 법은 없지만 자유로움이 없었다.

 

그는 무엇보다 그게 싫었다.

 

“설마 나를 떠보려고 그런 말 하는 건 아니겠지?”

 

당연히 떠보려고 한 말이지.

 

그래도 겉으로는 버럭 성질을 냈다.

 

“내가 누구처럼 잔머리나 굴리는 사람인지 아쇼?”

 

“하하하, 하긴 자넨 그럴 사람이 아니지.”

 

순진하긴.

 

“우리가 뭉치면 천사교도 함부로 할 수 없소.”

 

“맞네. 정파연합 때문에라도 우리의 도움이 필요할 테니까. 정 안 되겠으면 그동안 번 것 가지고 튈 거네.”

 

그동안의 노력이 아깝긴 하지만 천사교에 몽땅 바치는 것보단 나았다.

 

“하긴 마종보나 혈문으로 가면 천사교보다 훨씬 더 나은 대우를 해 줄 거요.”

 

북궁천이 슬쩍 찔러 봤다.

 

호양곽에게 듣기로 남패령이 마종보와 은밀한 거래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홍무수는 천사교의 고위 간부와 연결되어 있고.

 

아니나 다를까, 적주원은 움찔하더니 못 들은 척 딴소리를 했다.

 

“꼭 마종보로 갈 필요가 있나?”

 

북궁천도 그에 대해선 모른 척해 주었다.

 

“홍 련주도 같은 생각일지 모르겠소.”

 

“흥, 그 인간이 더 싫어할걸?”

 

적주원이 코웃음 치며 말했다.

 

홍무수의 성격으로 봐서 천사교에 별다른 반감이 없을 거라 생각한 북궁천으로선 뜻밖의 말이었다.

 

“왜 싫어한단 말이오?”

 

“그 인간은 자기 것을 누가 빼앗아 가는 걸 극도로 싫어하네. 천사교가 다 내놓으라고 하면 거품을 물고 달려들 거야.”

 

“흠, 그럼 홍 련주도 만나서 의견을 물어봐야겠소.”

 

“조심하게. 뒤통수 맞지 말고. 홍가는 그러고도 남을 인간이니까.”

 

“알았소. 그럼 이만 가 보겠소.”

 

“잘 가게.”

 

그런데 자리에서 일어나 돌아서려던 북궁천이 멈칫했다.

 

“나는 말이오. 배신하는 놈을 제일 싫어하오. 뭐, 적 련주는 그럴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오만.”

 

적주원의 이마가 땀으로 번들거렸다.

 

“하, 하, 하. 걱정 말게! 이 적주원의 머릿속에는 배신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다네!”

 

 

 

* * *

 

 

 

화정루를 나선 북궁천은 곧바로 홍무수를 찾아갔다.

 

홍무수는 북궁천의 말을 듣고 연신 염소수염만 잡아당겼다.

 

아마 머릿속에서는 눈 한 번 깜박일 동안 뇌가 열두 바퀴는 돌아가고 있을 것이었다.

 

북궁천은 그가 눈을 빠르게 두어 번 깜박이고 시선을 들자 불쑥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겠소.”

 

홍무수가 수염 만지던 손을 멈추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죽으면 죽었지 천사교에 다 넘겨줄 순 없네.”

 

“그럼 우리와 함께할 거요?”

 

“당연히 그래야지. 그런데 천사교에 대응할 마땅한 방법은 있나?”

 

“홍 련주가 함께하겠다면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오.”

 

“그래? 어디 말해 보게.”

 

“정파연합이 곧 공격을 시작할 거요. 일단 그때까지 시간을 끌면 애가 타는 건 천사교 쪽이오. 그때 가서 애들 조금 던져 주고 이곳을 정리합시다.”

 

“이곳을 정리한다?”

 

“어차피 어느 쪽이 이기나 우리한테는 좋을 게 없잖소?”

 

“그건 그렇지.”

 

“여기서 모은 돈과 사람이면 어디 가서든 세력을 이루고 떵떵거리고 살 수 있을 거요. 그런데 뭐하러 눈치 보면서 여기에 머문단 말이오?”

 

“그건 자네 말이 옳네.”

 

“시간은 내가 끌어 볼 테니 그동안 정리나 잘 하쇼.”

 

“생각해 줘서 고맙군.”

 

“그럼 그렇게 알고 이만 가 보겠소. 자세한 이야기는 내일 저녁에 함께 만나서 합시다.”

 

“그러지.”

 

 

 

북궁천은 일사천리로 일을 매듭짓고 대원보를 나섰다.

 

홍무수는 그가 방을 나서고도 한참 있다가 서찰 하나를 작성하고는 최측근인 설문을 불렀다.

 

“가서 총령을 만나 뵙고 이걸 전해 드려라.”

 

“예, 련주.”

 

“반드시 답을 받아 와야 한다.”

 

설문이라는 중년인은 서찰 봉투를 받아서 품속 깊이 넣고 방을 나섰다.

 

홍무수는 방문이 닫히자 의자에 등을 깊숙이 기댔다.

 

어린놈의 말이 옳긴 했다. 천사교에 모든 것을 내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아무것도 못 해 보고 이곳을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잘하면 상주를 내 손아귀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클클클, 어리석은 놈들. 그따위 머리로 감히 나를 움직이려고 하다니. 힘만 앞세우는 놈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한편, 대원보를 나선 북궁천은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말 비가 오려는지 대기가 축축했다.

 

그는 그곳에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대원보 쪽에서 밤새처럼 날듯이 달려오는 자가 보였다.

 

‘쩝, 역시 잔머리만 굴리는 놈들은 어쩔 수 없어.’

 

뒷짐을 진 그는 다가오는 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미끄러지듯이 죽 나아간 그의 신형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설문은 환영처럼 앞에 나타난 검은 그림자를 보고 대경했다.

 

“누구……?”

 

퍽!

 

북궁천은 다짜고짜 주먹을 휘둘렀다.

 

설문이 피하려고 했지만 북궁천의 주먹질이 그가 피하려는 모든 방위를 차단한 뒤였다.

 

퍼버벅!

 

“크윽!”

 

한순간에 서너 대를 두들겨 맞은 설문은 영문도 모르고 땅에 머리를 처박았다.

 

그는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무공은 서마련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상대는 그런 자신을 어린아이 손목 비틀듯이 가볍게 두들겨 팼다.

 

단 몇 수만에 극렬한 고통과 함께 온몸에 힘이 빠진 그는 땅에 머리를 처박고 나서야 상대가 누군지 알았다.

 

‘제길, 그였어.’

 

그 때 그의 머리맡에 내려선 북궁천이 나직이 물었다.

 

“천사교로 가던 중인가? 홍무수가 왜 보냈는지 말해 봐.”

 

끄르르륵.

 

“나, 나는 무슨 일인지 모르…….”

 

“버텨 보겠다? 그것도 괜찮지. 꿀꿀한 날씨에 분위기 제대로 맞춰 주는군. 심심하진 않겠어.”

 

북궁천은 땅을 긁으며 몸을 일으키려는 그의 목을 콱 밟았다.

 

“끄…….”

 

비명이 나오다가 목구멍에서 막혔다.

 

북궁천이 지풍을 튕겨서 아혈과 마혈을 짚어 버린 것이다.

 

“버티고 싶으면 버텨. 죽는다 해도 나는 아쉬울 것 없으니까.”

 

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설문의 목을 밟은 발에 조금씩 힘을 더했다.

 

설문의 몸이 푸들푸들 떨렸다.

 

공포가 온몸을 짓누르며 머릿속이 텅 비었다.

 

조금만 더 세게 밟으면 목뼈가 으스러져 죽을 게 분명한 상황.

 

그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손가락으로 땅을 긁으며 자신의 의사를 전달했다. 마혈이 짚여서 움직일 수 있는 곳은 기껏 해야 손가락 정도였다.

 

그걸 본 북궁천이 아혈을 풀어 주고 목을 밟은 발에서 살짝 힘을 뺐다.

 

“셋 셀 동안 기회를 줄 테니까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봐. 하나, 둘…….”

 

“푸, 품속에 서찰…….”

 

북궁천은 설문의 품을 향해 손을 저었다.

 

옷자락이 칼로 자른 듯이 길게 갈라지며 하얀 서찰 봉투가 드러났다.

 

“진즉 그랬으면 좋았잖아? 내가 물을 때까지 조용히 있어. 그러면 살 수 있을지 모르니까.”

 

그는 설문을 다독이며 손을 뻗었다. 그의 손안으로 서찰이 빨려 들어왔다.

 

서찰 봉투의 봉인을 뜯은 북궁천은 서찰을 빼다 말고 멈칫했다.

 

서찰과 함께 뭔가가 딸려 나왔다.

 

그걸 본 북궁천의 입이 귀에 걸렸다.

 

“우리 아들은 복도 많군. 아버지와 행복하게 살라고 이렇게 큰 선물을 주는 사람이 있다니 말이야.”

 

전표였다. 그것도 은자 이천 냥짜리!

 

일단 전표를 품속에 넣은 그는 서찰을 훑어보았다. 별 하나 없는 어둠이었지만 그가 서찰을 읽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 않았다.

 

서찰을 다 읽은 그는 냉소를 지었다.

 

“훗, 과연 홍무수다운 생각이군. 우리를 팔아서 안전을 도모해 보겠다?”

 

그의 눈이 설문을 향했다.

 

“누구에게 주려고 했지?”

 

서찰에는 수신자의 이름이 없었다. 최악의 경우를 생각한 배려인 듯했다.

 

설문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순순히 입을 열었다.

 

“천사총령…… 주서광이오.”

 

“홍무수가 언제부터 그와 연관되어 있었지?”

 

“두 달 전부터요.”

 

“이 서찰을 갖다주고 대답을 들어 오라고 했겠군.”

 

서찰의 내용을 보고 충분히 추측해 낼 수 있는 생각이었다.

 

그럼에도 설문은 홍무수의 생각을 단번에 꿰뚫는 북궁천을 보고 진정으로 두려워졌다.

 

“그렇소.”

 

“죽고 싶어, 살고 싶어?”

 

설문은 홍무수와 상주에 들어섰을 때부터 함께한 사이로, 의심 많은 홍무수가 자신의 뒤를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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