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6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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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2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68화
168화
거기다 자세히 봐도 가짜인지 진짜인지 구별이 가지 않을 만큼 섬세한 점이 코 옆에 두 개 붙어 있었다. 그로 인해서 언뜻 보면 조금 어벙하게 보였다.
조양장을 나선 그는 금천장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건들거리는 걸음, 삐딱한 고개.
영락없이 계집 등쳐먹는 한량처럼 보였다.
“비가 오려나? 하늘이 왜 이리 구려? 내일 갈 걸 괜히 부지런 떨었나? 근데 사교령이라는 양반은 왜 날 보자고 한 거지?”
하늘을 슬쩍 올려다본 그는 투덜대며 금천장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겼다.
그 때였다.
스스스스스.
기다렸다는 듯 곳곳에서 은밀한 움직임이 일었다.
그 움직임은 북궁천을 따라 흘렀다.
‘쉽지 않을 거다, 숙야돈.’
북궁천은 세상이 완전히 어두워졌을 때 금천장에 도착했다.
“굉장하군.”
상주에 온 그날 저녁 멀리서 금천장을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멀리서 봤던 것과 눈앞에서 보는 것은 느낌 자체가 달랐다.
‘진아야, 아버지가 왔다.’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찡하니 울렸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들이 저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가 묘한 표정을 짓자 정문위사가 수상하다는 표정으로 북궁천을 살펴보며 물었다.
“무슨 일로 왔소?”
북궁천이 고개를 삐딱하게 꼬고 대답했다.
“북혈회의 단천이야. 사교령께서 청해서 왔지.”
정문위사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사교령께서?”
“원래는 내일 올까 했는데, 내일은 바쁘다고 하셔서 오늘 온 거야. 대충 묻고 가서 말 좀 전해 주면 좋겠는데.”
“잠깐만 기다리시오.”
숙야돈은 북혈회에서 사람이 왔다는 말을 듣고 사이한 눈빛을 번뜩였다.
그도 북궁천이 이 밤에 찾아올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터였다.
그래도 어쨌든 조금이라도 일찍 자신을 찾아온 것은 칭찬해 줄 만한 일이었다.
‘놈이 정말 범인일까?’
숙야돈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사이한 눈빛을 번뜩였다.
그 때 밖에서 호위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교령께 아룁니다. 단천이란 자를 데려왔습니다.”
“들여보내라.”
곧 문이 열리고 북궁천이 들어왔다. 한량처럼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사방을 둘러보면서.
숙야돈은 그의 행동을 주시하며 이채를 반짝였다.
동마방을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해서 대단한 놈인 줄 알았더니 최소한 겉모습만큼은 별 볼 일 없었다.
아무리 봐도 대단한 고수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실망스런 마음이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도 뭔가 있는 놈이니 동마방을 무너뜨린 거겠지.
“그쪽으로 앉아라.”
“고맙습니다. 근데 정말로 대단한 곳이군요. 말로만 들었을 뿐 처음 와 봤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와 볼 걸 그랬습니다. 하하하하.”
최소한 심약한 놈은 아닌 것 같다. 자신 앞에서 저런 태도라니.
‘간덩이가 부은 놈이군.’
숙야돈은 편한 자세로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질문을 던졌다.
“상주에 왔으면 바로 이곳으로 올 것이지 왜 북혈회에 들어갔느냐?”
“흐흐흐, 혹시 연소랑이라는 여자 봤습니까?”
“봤다. 혹시 그 계집 때문에?”
“그 정도 여자라면 인생을 걸어 볼 만하잖습니까? 저는 얼굴만 예쁜 여자보다 그렇게 까칠한 여자가 좋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한번 해 보려고 들어갔죠.”
“그럼 동마방을 친 것도?”
“동마방을 무너뜨려서 약해 빠진 북혈회를 강하게 만들면 저에게 마음을 줄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이런 미친놈. 겨우 그런 이유 때문에 동마방을 무너뜨려?’
숙야돈은 어이가 없는 한편으로 앞에 있는 미친놈에게 호기심이 동했다.
“그래서? 연소랑이 너에게 넘어왔느냐?”
“절반쯤은 넘어왔습죠. 흐흐흐흐.”
“정말 연소랑 때문이라면 본 교로 들어와라. 그럼 내 그 계집을 너에게 주지.”
“남이 주는 것을 받아먹기는 싫습니다. 남자라면 자고로 자신이 직접 취해야죠.”
“아쉽군. 너 정도면 본 교에 큰 힘이 될 것 같은데 말이야. 언제든 생각이 있으면 말해. 내 중용할 테니까.”
“아닙니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제도 모르고 욕심을 부리면 탈이 나는 법이죠.”
‘정신은 제대로 박힌 놈인데 여자를 너무 밝히는군.’
“그럼 계속 북혈회에 있을 것이냐?”
“당분간은 그럴 생각입니다.”
“좋아, 네 마음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런데 사문은 어떻게 되느냐?”
북궁천은 찰나도 망설이지 않고 준비해 놓은 대답을 했다.
“뇌검문의 팔대 제자입니다.”
“뇌검문?”
“잘 모르실 겁니다. 일인전승으로 전해 오는 데다 사부께서 강호활동을 거의 안 하셨으니까요.”
“흠, 그래?”
“그런데 저를 왜 부르신 겁니까?”
숙야돈의 눈빛이 지금까지와 달리 차가워졌다.
“귀안당주 교호명과 귀안당 무사들의 죽음 때문이다. 너희들이 그들을 죽였느냐?”
북궁천이 움찔한 태도를 보이며 눈길을 슬쩍 돌렸다.
‘역시 이놈들이었어!’
숙야돈이 그 모습을 보고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다그쳤다.
“솔직히 말해라. 거짓말해 봐야 소용없으니까. 도망갈 생각도 말고. 이곳은 지금 개미새끼 한 마리 빠져나갈 수 없게 포위되어 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다. 천장과 벽 뒤에 열 명 이상의 고수가 은잠하고 있었다. 밖에도 있고.
물론 북궁천도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어깨를 으쓱한 그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사실대로 말했다.
“뭐, 다 아시는 거 같으니까 사실대로 말하죠. 맞습니다. 저희가 죽였습니다.”
“왜 죽였지?”
“저는 뒤밟히는 걸 무척 싫어하거든요. 근데 누가 자꾸 뒤를 쫓아오지 뭡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붙잡은 다음에 왜 그러냐고 물어볼까 했는데, 동마방과의 싸움이 코앞이어서 급한 마음에 그냥 죽여 버렸죠. 그런데 나중에 알아보니까 천사교 사람이지 뭡니까? 천사교 사람인 줄 알았으면 그냥 다리만 부러뜨리고 말았을 텐데…….”
숙야돈이 냉랭하게 코웃음 치며 북궁천을 몰아붙였다.
“흥! 천사교의 무사를 죽인 놈이 당당하구나. 네 죄가 얼마나 큰지 모른단 말이냐?”
“몰라서 죽였다니까요. 그러게 왜 몰래 뒤를 따라다닙니까?”
“알았든 몰랐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책임을 져요? 어느 정도나……?”
“강호에서 목숨 빚은 목숨으로 갚는다는 걸 모르느냐?”
순간!
“목숨으로? 지미, 정말 그러시깁니까?”
북궁천이 짜증을 내듯이 탁자를 손바닥으로 내려쳤다.
탕!
그러고는 눈을 치켜뜨고 공력을 끌어 올렸다.
쏴아아아아.
방 안에 갑자기 패도적인 기운이 휘돌았다.
천장과 벽 뒤에 숨어 있던 자들도 강력한 기운에 반응해서 반사적으로 기운을 흘려 내며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당황한 숙야돈은 언제든 뒤로 물러날 자세를 취한 채 북궁천을 노려보았다.
누구든 이 상황이 되면 봐 달라고 사정을 한다. 그런데 설마하니 이곳에서 무력을 자랑할 줄이야!
‘뭐야 이놈? 미친놈 아니야?’
그 때 북궁천이 턱을 내밀며 말했다.
“모르고 그랬다는데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그러지 마시고 돈으로 해결합시다. 이번에 좀 벌었거든요?”
숙야돈이 발끈해서 다그쳤다.
“교 당주의 목숨을 돈과 바꾸자고? 네가 지금 나와 장난하자는 거냐?”
“그럼 어떻게 하란 말입니까? 다시 살려 놓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제 머리를 잘라 드릴 수도 없잖습니까? 정말 끝까지 제 목을 내놓으라고 한다면, 저도 이판사판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제 목을 가져가려면 쉽지 않을걸요?”
숙야돈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툭툭 말을 내뱉는 북궁천을 솜털까지 살펴보았다.
기운이 강력하긴 해도 그 이상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일순간의 감정으로 공력을 끌어 올린 것처럼 보일 뿐.
‘단순한 놈이 무공은 정말 대단하군.’
그는 자신의 판단을 믿었다. 지금 한 행동이 연기라면 이놈은 경극에 나가도 일류 소리를 들을 수 있으리라.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냉랭히 쏘아붙였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네 머리 따위는 필요 없다. 정 그렇다면 빚을 갚을 방법을 일러 주마.”
그 순간 방 안을 맴돌던 기운이 빠르게 가라앉았다.
“진작 그러시지. 어디 말씀해 보십쇼.”
“앞으로 상주의 모든 일을 우리가 직접 관리할 것이다. 그러려면 북혈회는 물론이고 남패령과 서마련을 완전히 장악해야 한다. 네가 그 일을 해결해라. 그럼 용서해 주지.”
역시나 자신의 생각대로다.
천사교는 상주의 마도세력을 손도 안 대고 꿀꺽할 생각이다.
북궁천은 어려울 것 없다는 듯 가볍게 대답했다.
“어렵지 않은 일이군요. 근데 싸우는 건 자신 있어도 관리하는 일은 영 소질이 없는데…….”
“넌 싸워서 놈들을 굴복시키기만 하면 돼. 관리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렇다면 뭐 그렇게 하죠.”
그 때 숙야돈이 눈을 가늘게 뜨고 북궁천을 살펴보며 느닷없이 물었다.
“혹시 북천마제에 대해서 들어 봤느냐?”
북궁천은 눈을 깜박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북천마제요? 혹시 산서 저 위쪽에 산다는 그 피에 미친놈 말입니까?”
“맞다. 바로 그놈을 말하는 거다.”
“저도 귀가 있으니 이름이야 들어 봤죠. 하지만 만나 보지는 못했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놈도 천사교의 사람을 죽였습니까?”
“아주 많이 죽였지.”
“이상하군요. 만 리 떨어진 곳에 사는 북천마제가 천사교 사람을 죽였다니. 그가 정말 신통력이라도 있는 걸까요?”
“신통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직접 내려와서 죽인 거다.”
북궁천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게 정말입니까? 북천마제가 진짜로 이곳에 나타났단 말이죠? 이야! 정말 놀랄 일이군요. 성격이 포악하긴 해도 엄청 강하다던데.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꼭 한번 만나서 누가 센지 겨뤄 보고 싶었는데.”
“네가?”
“무시하지 마십쇼. 비록 강호에 나온 지는 얼마 안 되었지만, 아직 져 본 적이 없는 접니다.”
숙야돈도 무시하지 않았다.
조금 전의 무형지기만 해도 어지간한 고수들은 흉내 내기도 어려운 경지였다.
북천마제를 운운해 본 것도 사실 그 때문이다.
혹시 모르니까.
“그래도 아직은 안 돼. 마제는 천하제일을 논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비록 본 교에는 함부로 대들 수 없지만.”
“예? 왜 대들지 못합니까? 그럼 마제가 천사교 무사들을 죽였다는 말은 또 뭡니까?”
숙야돈은 의아해하는 북궁천을 눈썹 한 올의 흔들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날카로운 눈빛으로 살펴보며 아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물론 죽였지. 그런데 이제는 아들이 죽을까 봐 그럴 수가 없느니라.”
“아들이 죽어요? 북천마제는 장가가지도 않았는데 아들이라니요?”
“그런 일이 있다. 아마 놈이 나타나지 않으면 교주께서 본보기로 놈 아들의 팔을 하나 잘라 버릴 거다. 팔을 잘라서 정문에 내걸면 놈도 안 나타날 수 없겠지.”
“대체 얼마나 사이가 안 좋은데 어린 아기의 팔을 자른다는 겁니까? 그 말 정말입니까? 거짓말이죠?”
“내가 왜 거짓말을 한단 말이냐? 물론 놈이 나타나서 우리와 협상을 한다면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지지도 않겠지. 하지만 이삼 일 안으로 안 나타난다면 교주께서는 망설이지 않으실 게야.”
“거 이상하네. 그런 일이라면 멍청하게 기다리기만 할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에 방문을 써 붙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마제란 작자가 아직 모를 수도 있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