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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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64화
164화
자신이 방관해서 남패령과 서마련의 피해가 커진다 해도 그로선 나쁠 것이 없는 것이다.
적주원이나 홍무수가 그러한 사실을 알면 치를 떨 테지만, 북궁천은 그들의 마음을 챙겨 줄 여유가 없었다.
아들을 구하기 위한 소모품.
그것이 바로 북궁천이 생각하는 남패령과 서마련의 가치였으니까.
하기에 그는 난전에 일절 관여하지 않고 곧장 내부로 진입했다.
이미 호양곽으로부터 벽성장 내부에 대한 설명을 들은 터였다.
악동초는 벽화전이라는 이 층 전각에 기거하고 있으며, 그곳에 동마방이 지닌 재력의 대부분이 숨겨져 있다고 했다.
혈전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데도 나오지 않는 걸 보니 아직 그 안에 있는 듯했다.
“저놈들을 막아!”
벽화전 근처에 있던 동마방 무사들이 북궁천 일행을 보고 악을 쓰며 달려들었다.
장추람과 냉호, 철교신, 북풍사객이 그의 좌우에서 따라가며 막아서는 동마방 무사들을 휩쓸었다.
일개 마도 무리가 북천궁 최강의 싸움꾼인 삼룡사객을 막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다.
검, 도, 창이 어둠을 가르며 휘둘러질 때마다 마른 갈대가 잘 벼려진 낫에 잘려 나가듯 동마방 무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저 앞에 있는 건물이 벽화전입니다, 주군.”
바짝 붙어서 뒤따라오던 호양곽이 앞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북궁천은 승천무풍행으로 몸을 날리며 우장을 내쳤다.
쾅!
전각의 문이 폭발한 것처럼 터져 나갔다.
북궁천이 부서진 문을 통과한 순간, 사방에서 예리한 기운이 쏟아졌다.
모두 네 줄기. 악동초의 호위무사들이 기다렸다는 듯 암습을 감행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북궁천의 몸에 접근도 못 해 보고 철벽에 부딪친 것처럼 튕겨 나갔다.
퍼버버벅!
“크억!”
“케에엑!”
내심 침입자의 죽음을 기대했던 악동초는 그 광경을 보고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서, 설마…… 호, 호신강기?”
“네가 악동초인가 보군!”
북궁천이 냉랭히 그를 부르며 우수를 뻗었다.
찰나간 공간이 이지러지며 가공할 장력이 밀려갔다.
술이 아직 덜 깬 악동초는 숨이 턱 막혔다.
하지만 끈기와 악기로 이십 년 넘게 강호를 횡행한 그는 순순히 굴복하지 않고 귀혈부를 빼 들었다.
“오냐! 내가 악동초다, 개자식아! 으아아아아아!”
그는 미친 듯이 귀혈부를 휘두르면서 북궁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건곤패력장은 악동초 따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강력했다. 더구나 북궁천은 시간을 끌고 싶지 않아서 팔성의 공력을 끌어 올린 상태였다.
콰르릉!
“크어억!”
붕, 이 장을 날아간 악동초는 탁자를 부수며 나가떨어졌다.
북궁천은 한 걸음에 거리를 좁히고 악동초의 앞에 섰다.
“사람을 개밥으로 준다면서? 어디 이번에는 네놈이 한번 개밥이 되어 봐라, 악동초.”
“으으으으.”
악동초는 상상만으로도 공포에 질린 듯 몸을 덜덜 떨었다.
“왜 두려우냐?”
그 때 벽화전을 빙 돌아서 뒤쪽으로 갔던 철교신이 무거운 표정을 지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주군, 저 뒤쪽에 송아지만 한 개가 있습니다.”
“그래?”
“그 안에 뼈만 남은 시신이 있는데, 머리도 다 뜯어먹고 반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호양곽도 그 광경을 봤는지 착잡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번에 영월루에 왔던 풍단입니다, 주군.”
비록 죽이고 싶을 만큼 싫어하는 자였지만 개의 먹이가 된 걸 보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북궁천은 그 말을 듣고 눈빛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정말 사람이기를 포기한 놈이로군. 너 같은 놈은 개밥으로 주기도 아깝다.”
퍽!
북궁천이 발로 차서 악동초를 호양곽 앞으로 날려 버렸다.
“호양곽, 네가 처리해라.”
호양곽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발을 들어서 악동초의 등을 밟아 버렸다.
우드드득.
등뼈가 으스러지며 악동초의 쩍 벌어진 입에서 핏덩이가 쏟아졌다.
“끄어어어억.”
북궁천은 악동초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명을 내렸다.
“냉호. 그 개새끼들, 목을 쳐서 죽여라. 그리고 호양곽, 이놈이 숨긴 것을 모두 찾아내라.”
* * *
동마방의 몰락 사실이 금천장에 알려진 것은 자시가 거의 다 지나갈 무렵이었다.
숙야돈은 귀밀영 수좌인 고구선의 보고를 받고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뭐? 동마방이 무너졌다고?”
“예, 교령. 그리고 교 당주와 귀안당 무사 셋이 시신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숙야돈은 어이가 없었다.
손쓸 새도 없이 상주의 판도가 뒤집어졌다.
설마 이렇게 빨리 동마방이 무너질 줄이야.
게다가 상황 파악을 위해 상주에 나가 있던 교호명과 귀안당 무사들마저 시체로 발견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유원당을 암살했다는 보고를 받고 즐거웠던 기분이 한순간에 더럽게 변해 버렸다.
뭐가 어디서 어떻게 잘못된 걸까?
‘안 되겠군. 그동안 놈들을 너무 방치했어.’
정파연합과 대치한 상태에서 우군이라 할 수 있는 자들을 억지로 건드릴 이유가 없었다.
언제든 필요하면 동원할 수 있는 자들인데 신경전을 벌일 이유가 뭐 있단 말인가?
게다가 대부분이 어중이떠중이 낭인들이어서 실제 쓸 만한 자는 얼마 되지 않았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놔두었는데 일이 이상하게 꼬이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놈들을 본 교의 틀 안에 가두어 놓고 철저히 관리해야겠어.’
천사교의 당주가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그들을 억누를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에 골치가 아팠다.
그들이 왜 교호명을 죽인 걸까?
교호명을 죽이면 천사교가 가만있지 않을 거라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만약 그들이 죽이지 않았다면? 그럼 누가 죽인 걸까?
교호명을 죽여야만 할 이유가 있는 사람은?
‘아무래도 이상해.’
어쩌면 동마방의 괴멸보다 교호명의 죽음이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구선, 네가 직접 나서서 교호명의 사인을 철저히 조사해 봐라.”
“예, 교령.”
동마방 괴멸 소식은 장로원에도 전해졌다.
장로원주 방철산의 오른팔이라 할 수 있는 장환이 득달같이 달려가서 소식을 전한 것이다.
“멍청한 새끼! 내 그렇게 함부로 날뛰지 말라고 했거늘!”
방철산은 소식을 듣고 얼굴이 벌게졌다.
악동초의 뒤를 봐준 지 석 달. 그동안 동마방은 승승장구해서 상주 제일의 세력이 되었다. 당연히 그의 호주머니도 두툼해졌고.
덕분에 그는 그 돈으로 간부들을 관리해서 천사총령 주서광에게 미약하나마 우세인 입장이었다.
그런데 돈줄이던 동마방이 무너졌으니 앞으로는 간부들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또 다른 세력을 끌어들인다면 몰라도.
시간이 가면서 분노를 가라앉힌 그는 동마방에 대한 미련을 털어 버리고 대책을 강구했다.
“그 일을 북혈회가 주도했다고?”
“그런 것으로 압니다, 원주.”
“언제 그놈들을 한번 만나 봐야겠군.”
“원주, 차라리 적주원이나 홍무수를 만나 보시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들을?”
“승리를 하긴 했어도 암중으로는 북혈회에 위협을 느끼고 있을 겁니다. 아마 원주께서 손을 내민다면 감격하며 무릎을 꿇을 겁니다.”
“흐음,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허락하신다면 속하가 먼저 그들의 마음을 떠보겠습니다.”
방철산은 장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자신이 직접 나서는 것보다는 수하가 나서는 게 나았다.
“그렇게 해.”
* * *
동마방이 무너진 지 한 시진 후.
삼파의 수뇌부는 영월루에 모여서 동마방 권역을 나누었다.
누가 뭐래도 북혈회의 공이 가장 컸다. 그 점은 적주원이나 홍무수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공이 크다 해서 자신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얻게 할 수는 없었다.
북혈회의 입장을 대변하는 연소랑은 북궁천이 말해 준 대로 적주원과 홍무수를 상대했다.
“우리도 남패령이나 서마련보다 월등히 많은 것을 얻을 생각은 없어요. 당장의 이득을 위해서 우리 관계를 해치고 싶진 않으니까요. 그래도 최소한 벽성장만큼은 우리에게 넘겨주셔야 해요.”
벽성장은 동마방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곳을 얻으면 동마방의 반을 얻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적주원과 홍무수로서는 아깝긴 해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벽성장을 나누어 가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세 세력 중 벽성장을 차지할 자격이 가장 큰 곳은 북혈회인 것이다.
“대신 화화루 일대는 우리 남패령이 갖겠소.”
적주원은 벽성장을 넘겨주는 대신 화화루를 택했다.
홍무수도 서쪽 대로와 이어진 환금장의 비밀 도박장과 포목전 일대의 권리를 택했다. 그 정도면 벽성장 만은 못해도 화화루 일대의 이권에 뒤지지 않았다.
삼파의 수뇌부가 상주의 상권을 놓고 머리싸움을 하고 있을 때, 북궁천은 벽화전을 뒤져서 가져온 노획물을 살펴보았다.
호양곽 덕분에 악동초의 비밀창고를 쉽게 찾아서 포대에 싹 쓸어 담아 온 터였다.
대부분이 황금과 전표였고, 만금의 가치가 있는 보물도 상당수였다.
악동초가 얼마나 긁어모았는지 금액을 계산하기도 힘들 만큼 거액이었다.
거기다 이런저런 서류도 있었는데, 제법 흥미로운 서류가 많았다.
돈을 지출한 내역 중 방철산의 이름이 있었고, 그가 보낸 서찰 몇 장도 첨부되어 있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않게 부자가 되었군.”
뜻밖의 횡재가 싫진 않았다.
황금은 귀신도 부린다고 했다.
지금 눈앞에 있는 황금이 진아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호양곽, 최근 들어 천사교에 가입한 자들 중 돈으로 움직일 수 있는 자를 알고 있느냐?”
“몇 명이나 필요하십니까?”
최근 천사교에 가입한 자들은 기존의 교도들과 마음가짐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들이 천사교에 가입한 목적은 욕망 때문이다.
목숨을 내걸어도 될 만큼 거금을 안겨 준다면 손을 내밀 자가 부지기수다.
“액수는 상관없으니 쓸 만한 자들을 알아봐. 기왕이면 금천장 내부에 있는 자들로.”
“예, 주군.”
그 때 밖에서 경비무사가 안에 대고 말했다.
“대주,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경비를 서고 있는 자들은 호양곽의 수하인 흑운대 무사들이었다.
호양곽은 북궁천을 향해 고개를 숙여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들어오더니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주군, 악동초의 최측근이었던 노중문이 주군을 뵙자고 합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그대가 봤을 때 그는 어떤 자인가?”
“손속이 독해서 단혼절수라 불립니다만, 악동초처럼 극악한 친구는 아닙니다.”
“자네와의 사이는 어땠지?”
“동마방에서 마음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는 몇 안 되었습니다. 그런 친구 중 하나였지요.”
“그런 자가 어떻게 악동초의 호위무사대를 맡았지?”
“무당파 제자를 죽이고 쫓길 때 악동초가 목숨을 구해 준 적이 있습니다.”
“그래? 좋아, 그대를 믿고 만나 보겠다.”
* * *
노중문은 구석진 골목길 안쪽에 있는 낡은 주루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얼굴이 시뻘겠다.
호양곽이 북궁천과 함께 주루로 들어가자 고개를 돌린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두들겨 맞은 강아지처럼 떠나더니 혈색이 좋아졌군.”
호양곽이 노중문의 맞은편에 앉으며 투덜댔다.
“너도 나처럼 개밥 취급을 받으면 미련 없이 박차고 나왔을걸?”
“크크, 그건 그렇지. 나도 개밥은 되기 싫으니까.”
“풍단을 개밥으로 만들었더군.”
“하나 있는 친구를 떠나게 만들었으니 개밥이 되어도 싼 놈이지.”
“악동초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없더군. 어떻게 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