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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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58화
158화
“흥, 못 믿겠으면 맡기지 마요.”
연소랑으로선 튕길 만했다. 어차피 북궁천 일행은 그 돈을 들고 다닐 수 없을 테니까.
북궁천도 모르지 않았다. 하기에 그쯤에서 화제를 돌렸다.
“서마련과 남패령에는 사람 보냈어?”
“지금쯤 도착했을 거예요.”
“좋아, 그럼 한 곳 더 쳐서 악동초의 혼을 빼놓아야겠군.”
북궁천 일행은 다시 영월루를 나섰다.
그들이 영월루에서 백여 장 정도 멀어졌을 때 누군가가 어두운 골목 안에서 나왔다.
“잠깐 이야기 좀 하세.”
목소리의 주인은 진평천이었는데, 다섯 사람이 그의 뒤에 서 있었다. 뒤늦게 도착해서 환금장을 지켜보던 자들이었다.
“바쁘니까 짧게 말씀하시죠.”
북궁천의 말투가 오만하게 들렸는지 뒤에 서 있던 자들 중 하나가 눈에 힘을 주었다.
“젊은 친구의 말투가 꽤나 건방지군. 진 대협께 그게 무슨 말버릇인가?”
사십 대 중후반 정도의 나이, 등에는 검을 한 자루 매고 있었는데 특별한 특징이 없는 평범한 얼굴의 중년인이었다.
북궁천은 그를 빤히 바라보며 입술을 비틀었다. 지하에서 진평천이 한 말을 떠올린 그는 중년인의 정체를 짐작했다.
“화산에서 오셨나 보군.”
중년인의 눈빛이 찰나간 흔들렸다.
모습을 숨긴다고 숨겼는데 어떻게 안 걸까?
그는 진평천이 화산에 대해서 말했다는 걸 아직 알지 못했다.
“귀하들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으니 내 말투가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신경 끄쇼.”
“이 사람이 정말!”
“그만하게, 청인.”
진평천이 쓴웃음을 지으며 중년인을 말렸다.
북궁천은 발끈한 중년인을 상대하지 않고 진평천을 바라보았다.
“더 할 말 없으시면 가 보겠습니다. 한 건 더 하려면 바쁘게 움직여야 하니까요?”
“그럼 가면서 이야기할까?”
“그것도 괜찮겠군요. 그런데 먼 곳에 가는 게 아니니 최대한 간략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지.”
“나는 자네가 마도인이 아니라는 걸 아네.”
“뭘 보고 그렇게 생각하신 겁니까?”
“자네가 마도인이었다면 지하에서 나를 죽였을 거야.”
진평천의 말에 화산파 제자들이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은 아직 환금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자세한 내막을 듣지 못한 것이다.
“진 대협,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별거 아니네. 환금장 지하에서 이 친구와 싸우다가 죽을 뻔했거든. 정말 강하더군.”
자존심이 상하는 이야기일 텐데도 진평천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다만 오초도 견디지 못했다는 말은 창피해서 도저히 말할 수가 없었다.
“예?”
화산파 제자들은 경악한 표정으로 진평천과 북궁천을 번갈아 보았다.
북궁천은 어깨를 슬쩍 한 번 추켜올리고 정말 별것도 아니라는 듯 담담히 말했다.
“말은 똑바로 합시다. 내가 좋은 사람이어서 안 죽인 게 아니라 귀하가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아서 안 죽인 거요.”
“어쨌든 자네가 마인이라면 절대 나를 살려 주지 않았을 거야. 내가 마인들에게 평이 좀 안 좋거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서로 상부상조하면 어떻겠나?”
“상부상조? 제가 영월루에서 나오는 것 못 봤습니까? 설마 영월루가 북혈회와 연관된 곳이라는 걸 모르고 있진 않겠죠?”
“그랬나? 어쩐지 마도 놈들이 얼쩡거린다 했더니…….”
“이제라도 알면 됐습니다. 그럼 바빠서 이만.”
북궁천은 그쯤에서 진평천 일행과 헤어지려 했다. 하지만 진평천은 그를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북혈회가 그렇게 대단한 곳이었나? 내가 알기로는 자네와 자네 일행을 포용할 정도는 아닌 걸로 아는데?”
“그럴 수도 있죠.”
“좋아. 뭐, 자네가 북혈회와 관련되어 있다고 해도 상관없네. 북혈회는 그나마 상주의 마도사파 중에서 제일 평판이 좋은 편이니까. 회주인 연풍척도 아주 악한 자는 아니고 말이야.”
“그래 봐야 마도세력입니다.”
“자네가 합류한 이상 그렇게 생각할 수만은 없지. 내 생각으로는 뭔가 이유가 있어서 그곳에 들어간 것 같은데. 안 그런가?”
“꽤 끈질기시군. 목적이 뭡니까?”
“어차피 상주는 마도천하가 되었네. 그리고 배후에는 천사교가 있지. 자네는 천사교를 어떻게 생각하나?”
어떻게 생각하긴? 모조리 똥통에 처박아서 삭혀 죽일 놈들이라고 생각하지!
북궁천은 그 말을 간단하게 표현했다.
“죽어도 싼 놈들이죠.”
감히 진아를 훔쳐가다니!
진평천은 북궁천에게서 흘러나오는 분노를 느끼고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그럼 이렇게 하지. 다른 일은 서로 상관하지 않고, 천사교를 상대할 때만 상부상조하는 거야. 어떤가?”
“제가 천사교와 싸울 거라고 보십니까?”
“그럴 것 같은데?”
진평천이 북궁천에 대해 확신을 가진 이유는 자신의 눈을 믿기 때문이었다.
인신매매하는 걸 보고 분노해서 상대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죽인 북궁천이다. 팔려 온 여인들을 상품이 아닌 가련한 여인으로 보던 그다.
심지어 자신조차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답던 반라의 여인을 보고도 측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천하의 어떤 정파 청년이 그토록 정대한 심성을 지닐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자가 마도인일 리 없었다. 여자를 안겨 줘도 반응이 없는 고자라면 몰라도.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라면 천사교의 사악한 짓을 알고도 나 몰라라 하지 않을 것이었다.
진평천의 나이 쉰다섯. 강호 생활 삼십삼 년. 인생을 걸고 내기를 하라면 할 수 있었다.
“내기라도 할까?”
질 게 뻔한 내기. 북궁천은 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진평천과의 협조 역시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넝쿨째 굴러 들어온 호박을 왜 차 버린단 말인가?
“천사교와 싸우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진평천은 북궁천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걸 알고 쾌재를 불렀다.
“그럼? 달리 바라는 거라도 있나?”
북궁천이 저만치 앞을 가리켰다.
청등홍등이 불야성처럼 켜진 커다란 주루가 손끝에 걸렸다.
“저기가 동마방의 중요 지부 중 하나인 화화루입니다. 우린 지금 저곳을 치러 가는 길입니다. 그 일부터 상부상조하죠.”
4장. 신월을 그리는 자
벽성장(壁星莊).
한때 금천장 아래에서 상주의 상권 중 상당 부분을 장악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동마방의 총단이 된 곳.
그 중앙의 이 층 전각에는 밤이 늦었는데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고, 안에서는 분노에 찬 악동초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북혈회 놈들을 철저히 짓밟아서 본 방을 건드리면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알려 줘야겠어! 이번 일을 어영부영 넘어간다면 남패령과 서마련이 우릴 비웃을 것이다!”
이를 갈면서 외치는 악동초 앞에는 열한 명의 간부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옆에는 최근에 영입한 두 명의 마도고수, 쌍혈신이 서 있었다.
사천 광산 일대에서 마신으로까지 추앙받던 그들은 천사교에서 한자리 할까 하고 상주에 왔다가 거금에 눈이 멀어서 동마방에 자리 잡은 자들이었다.
나이가 쉰 전후인 그들은 악동초의 분노가 극에 이르자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씩 했다.
“껄껄껄, 이제야 밥값을 하게 생겼군.”
“악 방주, 이 기회에 다른 곳도 쓸어버리는 게 어떻겠는가?”
악동초인들 어찌 그러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남패령과 서마련은 쉽지 않은 상대였다. 더구나 그들 역시 상주로 들어온 마도의 절정고수 중 일부를 암암리에 포섭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두 봉공의 활약을 기대하겠소이다. 남패령과 서마련에 대한 일은 일단 북혈회를 쓸어버리고 나서 생각합시다.”
악동초는 두 사람의 기분을 맞춰 주면서 단상을 내려왔다.
그 때 멀리서 고함인지 비명인지 모를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무슨 소리지?”
그가 멈칫하며 청력을 집중한 순간!
덜컹!
문이 부서질 듯이 세차게 열리며 무사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악동초는 들어온 자의 표정을 보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일언반구도 없이 무작정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순찰 책임자인 마혼대주 이면추였다.
그런데 평소 술을 좋아해서 불그스름하던 얼굴이 회칠을 한 듯 창백했다.
“무슨 일이냐, 이 대주?”
“화화루가 공격받고 있습니다, 방주!”
악동초는 간부와 이백 무사를 이끌고 화화루로 달려갔다.
화화루까지의 거리는 기껏 해야 삼백여 장. 벽성장을 나선 그들이 화화루에 도착하기까지는 반의반 각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이 도착했을 때, 불야성 아래에서 환락에 젖어 있어야 할 화화루는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변해 있었다.
화화루를 경비하던 동마방 무사 오십여 명 중 살아남은 사람은 여섯 명뿐.
악동초는 난장판이 된 화화루를 보며 극한의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이 개새끼들이……!”
으드득! 이를 가는 그의 곁으로 이면추가 다가왔다.
“방주, 목격자들 말을 들어 보니 이번에도 그놈들 같습니다. 그런데 숫자가 열두어 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놈들. 환금장을 뒤집어 놓은 자들을 말하는 것일 터.
악동추는 분노하는 와중에도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연소랑에게 정신이 팔려 앞뒤 분간을 못 한 적이 있긴 했지만, 반년도 안 되는 사이 동마방을 일으킨 그는 결코 둔한 자가 아니었다.
‘이상해, 북혈회에 언제 그런 놈들이 있었지?’
북혈회에 특별한 자들이 가입했다는 보고는 없었다. 그런데 소수에 의해서 동마방의 주요 거점이 연이어 박살 났다.
어떤 놈들일까?
그런 고수가 느닷없이 나타났다는 게 이상했다. 게다가 한둘도 아니고 여덟 명이나 되었다. 아니, 이번에는 대여섯 명이 더 추가되었다.
혹시 동마방을 노리고 남패령과 서마련에서 특별히 파견된 놈들?
하지만 그들이 북혈회를 도와준다는 것도 어폐가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서로 못 잡아먹어서 한이던 사이가 아닌가?
하루아침에 손잡고 동마방을 공격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때 문득 어떤 두려운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우리 동마방이 너무 갑작스럽게 커지니까 천사교가 견제하려고 고수를 파견한 것 아닐까?’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다.
상주의 마도세력은 천사교에 직접적으로 속하지 않았다. 천사교 쪽에서 보면 그 점이 건방지게 보일지도 몰랐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자신들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해 북혈회를 이용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악동초로선 먼저 그 점을 확인해 봐야 했다.
“중문.”
“예, 방주.”
“지금 즉시 금천장으로 가서 어르신을 찾아뵙고, 천사교가 혹시 북혈회에 고수를 파견한 적이 있는지 알아봐.”
“알겠습니다, 방주.”
악동초는 노중문이 밖으로 나가자 좌측에 서 있는 이면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애들을 풀어서 놈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철저히 감시해.”
* * *
동마방의 주요 거점이 하룻밤 새 두 군데나 박살 났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상주 전역으로 퍼졌다.
가장 놀란 사람은 콩고물이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남패령주 적주원과 서마련주 홍무수였다.
느긋이 구경하다가 동마방의 권역을 은근슬쩍 취하려 했던 그들은 화들짝 놀라서 급히 북혈회로 사자를 보냈다.
뒷짐 지고 있다가 동마방이 진짜 무너지기라도 하면 북혈회를 도와주지 않은 쪽은 곤경에 처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연풍척은 앞다투어 달려온 사자를 흐뭇한 표정으로 접견했다.
“흠, 령주와 련주께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