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5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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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85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55화
155화
짝사랑했던 여인이 아픈 자신의 이마를 만져 주었을 때만큼이나 격렬했다.
‘크다, 너무 커! 이 독심마도가 하늘을 만난 건가?’
* * *
풍단은 호양곽이 흑운대 무사들을 데리고 영월루에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만 해도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월루에 있는 북혈회 무사들이 호양곽을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이상함을 눈치챘다.
그는 즉시 악동초를 만났다. 그리고 사실과 거짓을 교묘히 섞어서 악동초를 자극했다.
“호양곽의 행동이 수상합니다, 방주. 어제 실수로 목숨이 위태로워지니 아예 북혈회 쪽으로 넘어갈 생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영월루의 북혈회 무사들이 호양곽을 순순히 받아 줄 리 없지 않습니까?”
“뭐야? 호양곽이 배신을 해?”
“사실 저는 어제부터 그의 눈빛을 보고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하나 붙여 놓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오전부터 이상한 행동을 하더니, 조금 전에 몰래 영월루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게다가 북혈회 무사들이 대하는 태도도 적을 대하는 것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런 개새끼가!”
악동초는 노발대발해서 당장 호양곽을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당장 가서 잡아 와! 필요하면 영월루를 완전히 박살 내 버려도 좋다!”
풍단은 쾌재를 부르며 혈운대원을 비롯해서 일백 명이 넘는 무사들을 데리고 영월루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는 영월루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밖에서 저지당했다.
“내가 바로 동마방의 혈운대주 풍단이다. 비켜라!”
풍단의 앞을 막은 사람은 장추람과 냉호였다.
“풍단이든 풍뎅이든, 당신 이름은 내 알 바 아니고, 동마방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어. 그러니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돌아가.”
“이런 건방진 놈! 연풍척이 그리 말하라 가르치더냐?”
“거, 말귀 못 알아듣네. 죽기 싫으면 가라고오오. 꺼져어어! 살기 싫어?”
장추람이 신이 난 표정으로 풍단을 다그쳤다.
마치 달려들기를 바라며 재촉하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반면 옆에 있는 냉호는 조금 다르게 반응했다.
“죽고 싶은 사람, 앞으로 나와. 거기 사팔뜨기, 네가 먼저 덤빌 거냐?”
풍단은 머리 꼭대기가 펑 터질 것처럼 열이 났다.
“오냐, 이놈들! 원한다면 모두 죽여 주지! 막는 놈들은 죽여도 상관없다! 들어가서 호양곽을 잡아라!”
동마방 무사들이 우르르 영월루로 몰려갔다.
그러나 입구를 통해 들어가려던 자들은 장추람과 냉호에 의해 막히고, 담장을 넘으려던 자들은 철교신과 북풍사객을 상대해야 했다.
거기다 연소랑이 끌고 온 북혈회 무사 삼십 명이 출동해 있던 터였다.
자신만만하게 달려들던 동마방 무사들은 그들의 방어벽을 뚫지 못하고 순식간에 이십여 명이 쓰러졌다.
장추람과 냉호는 각자 대여섯 명을 쓰러뜨리고도 양에 차지 않는지 눈에 불을 켜고 또 다른 자들을 덮쳤다.
그들의 일검 일도를 제대로 막아 내는 자조차 드물었다.
도검이 청광을 번뜩이며 어둠을 가를 때마다 한두 명씩 비명을 내지르며 튕겨 나갔다.
뒤늦게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인식한 풍단이 눈을 부릅뜨고 소리쳤다.
“놈들을 우회해서 안으로 들어가라!”
연소랑도 지지 않았다.
“놈들을 막아! 뚫리면 하루 굶을 줄 알아! 대신 막으면 내가 술 한잔 산다!”
밤하늘에 울려 퍼지는 그녀의 낭랑한 목소리.
북혈회 무사들은 아름다운 연소랑의 술을 얻어먹기 위해서 젖 먹던 힘까지 끌어냈다.
북궁천은 혼전이 벌어진 상황을 무심한 눈으로 이 층에서 내려다보았다.
“고수들은 안 온 것 같군.”
“풍가가 공을 욕심내고 데려오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자가 풍가인가?”
“혈운대 대주 풍단이란 자입니다. 아주 교활하고 음험한 놈이지요.”
호양곽이 이를 갈듯이 냉랭히 말했다.
북궁천은 그 말만 듣고도 둘 사이의 관계를 유추할 수 있었다.
“그대와 사이가 안 좋았나 보군.”
“견원지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악동초의 신임 정도는?”
“아주 가깝게 지내는 사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악동초는 아무도 믿지 않습니다. 풍단은 그가 자신을 신임하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것은 풍단만의 착각이지요.”
“만약 이곳에서 대패해 돌아간다면 악동초가 그를 어떻게 대할 거라고 보는가?”
“개밥으로 만들지 않으면 다행이지요.”
“흠, 개밥이란 말이지?”
나직이 되뇌던 북궁천이 훌쩍 몸을 날렸다.
호양곽이 그의 행적을 쫓으며 창가에 바짝 붙었다.
북궁천은 어느새 풍단의 머리 위에까지 날아가 있었다.
‘가공할 신법이군.’
승천무풍행으로 십여 장을 날아간 북궁천은 풍단 앞에 내려서며 오른손을 뻗었다.
“헉! 웬 놈이……!”
대경한 풍단은 다급히 검을 들어서 반격을 취했다.
그러나 검을 반도 뻗기 전에 북궁천의 장력이 그를 강타했다.
쾅!
“크억!”
풍단은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지르며 정신없이 물러섰다.
그러나 북궁천의 공격은 한 번에서 그치지 않았다.
퍼버버벅!
그는 풍단의 어깨와 가슴, 옆구리, 허벅지를 손과 발로 직접 두들겨 주었다.
그의 장력과 주먹이 허공을 격한 채 풍단을 두들길 때마다 강풍에 휘날리는 깃발처럼 온몸이 흔들렸다.
푸억!
결국 입에서 피를 분수처럼 뿜어낸 풍단의 몸이 바람 빠진 포대처럼 널브러졌다.
“대주!”
뒤늦게 혈운대 무사 셋이 그를 구하기 위해서 북궁천을 공격했다.
북궁천은 그들을 보지도 않고 북두패왕권을 휘둘렀다.
떠더덩!
달려들던 혈운대 무사 셋이 철벽에 부딪친 것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혈맥이 터져 나간 그들은 피를 게우며 바닥을 기다가 얼굴을 땅바닥에 처박았다.
북궁천은 격전의 중앙에 오연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싸움이 벌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동마방 무사 중 서 있는 자는 반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 멀쩡한 동마방 무사 대부분도 전의를 상실한 채 우왕좌왕하며 눈치만 봤다.
그 때 누군가가 소리쳤다.
“후퇴해! 돌아간다!”
동마방 무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일제히 어둠 속으로 도주했다.
그들 중 누구도 바닥을 기고 있는 풍단을 챙겨 가지 않았다.
북궁천은 북혈회 무사 하나가 칼을 들고 그에게 다가가자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돌아섰다.
“그냥 놔둬. 개밥으로 쓰라고 살려 둔 거니까.”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개밥’이라는 말을 악동초에게 맞아 죽을 거라는 뜻의 은유적인 표현 정도로 알았다.
잠시 후.
북혈회 무사들은 영월루 일대에 널브러져 있는 시신을 치우고 부상자를 한쪽으로 옮겼다.
바닥을 기던 풍단은 사력을 다해서 겨우 그곳을 벗어났다. 그가 떠나가도 북혈회 무사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즈음, 북궁천 일행과 연소랑, 북혈회 간부 둘, 호양곽이 영월루 이 층에서 마주앉았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동마방이 가만있지 않을 텐데?”
연소랑이 긴장감 역력한 표정으로 물었다.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큰일이 단천 일행이 오자마자 연이어 터졌다. 어차피 곪은 종기가 때맞춰서 터진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 중심에 단천 일행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녀만이 아니라 북혈회 간부 둘도 안색이 잔뜩 굳어 있었다. 삼십 대 중반인 그들은 혈검당의 당주 전대강과 일향주 진추였다.
그들은 사실 북궁천 일행에 대한 소문을 듣고도 반신반의했다. 그러나 지금은 소문이 사실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씨발, 풍단을 그렇게 개박살 내다니.’
‘어디로 이런 놈들이 나타난 거지? 새파란 놈들이 뭐 이리 강해?’
하지만 좀 전의 싸움만으로 동마방을 평가할 순 없었다.
동마방은 고수 몇 명이 합류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세력이 아닌 것이다.
그럼에도 북궁천은 조금도 걱정되지 않는 표정으로 담담히 말했다.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
“곧 서마련과 남패령도 이곳에서 벌어진 일을 알게 될 거다. 그쪽에 사람을 보내서 함께 동마방을 상대하자고 해.”
“그들이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
“당장 도와주진 않겠지만 무작정 마다하지도 않을 거다. 아마 어떻게 하는 게 이익인지 저울질하면서 사태를 관망하겠지. 어느 쪽이 망하든 자신들로서는 손해 볼 게 없으니까.”
“그런데 왜 그들에게 도움을 청해?”
“우리도 손해 볼 게 없으니까. 우리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걸 알면 동마방도 그들을 신경 쓸 수밖에 없을 거다.”
“그건 그러네.”
“그리고 그들이 우리를 돕지 않는다 해도, 동마방과 우리가 정말로 전면전을 벌이면 그 틈을 이용해서 이익을 취하려 할 거야. 이러나저러나 동마방으로선 우리 쪽에 전력을 투입할 수 없는 상황이 되는 거지.”
연소랑은 끄덕끄덕 고개를 주억거리고 조금 걱정스런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 단천의 말이 옳다고 해. 그런데 남패령주 적주원은 힘만 앞세우는 자이니 걱정할 게 없지만, 서마련주 홍무수는 웃는 얼굴로 사람을 죽이는 정말 무서운 자야. 잘못하면 도와준다고 해 놓고 거꾸로 우리를 삼키려 할지 몰라.”
“내가 있으니 그렇게 되진 않을 거다. 그리고 그런 걱정은 그때 가서 해도 돼.”
자신만만한 말투. 광오하게 들릴 정도다.
그럼에도 연소랑은 그의 말을 들으니 불안감이 많이 가셨다.
“알았어. 그럼 되든 안 되든 사람을 보내서 도움을 요청할게.”
그녀는 단천 일행이 싸우는 걸 보고 나서야 어제의 일이 우연이 아님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들이 북혈회에 있는 이상 남패령이나 서마련도 함부로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오늘의 북혈회는 어제와 다른 것이다.
‘이러다 정말 아침에 말한 대로 되는 거 아냐?’
그 때 혈검당주 전대강이 불쑥 물었다.
“동마방이 앞뒤 가리지 않고 우리만 집중적으로 공격해 오면 어떡할 거요?”
북궁천이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답을 내놓았다.
“걱정 마쇼. 동마방의 거점을 한두 군데 흔들어 놓으면 놈들도 함부로 움직일 수 없을 테니까. 양곽, 악동초에게 충격을 줄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알고 있으면 말해 봐라.”
3장. 상부상조
“할 말 있으면 해 봐.”
악동초는 주저앉아 있는 풍단을 보며 냉랭히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방주. 놈들이 그렇게 강할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풍단은 그 와중에도 호양곽과 흑운대를 물고 늘어졌다.
“놈들이 미리 나와서 요소요소를 지키고 있었던 걸 보면, 흑운대가 본 방의 움직임을 저놈들에게 알려 준 것 같습니다.”
“죽일 놈들!”
“호양곽이 방주께서 자신의 배신을 눈치채면 죽일지 모른다는 걸 알고 지시를 내렸을 겁니다, 방주.”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호양곽이 겉으로 보면 머리를 쓰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 제법 잔머리를 잘 쓰거든.”
“이 기회에 북혈회를 쓸어버리는 게 어떨지…….”
“나도 그럴 생각이다. 두 번이나 당하고도 참으면 남들이 나를 병신 취급할 테니까.”
“현명하신 생각입니다, 방주. 저도 빨리 몸을 추스르고…….”
풍단은 혼신의 힘을 다해서 악동초의 기분을 맞춰 주었다.
악동초가 그를 내려다보았다.
눈초리가 약간 치켜 올라간 두 눈에서 스산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너는 신경 쓸 것 없다.”
“방주…….”
“방도를 칠십 명이나 죽이고 온 놈이 설마 살 생각을 한 것은 아니겠지? 더구나 팔다리 부러진 병신이 뭘 어떻게 도와줘?”
“하, 하지만 저는 최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