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4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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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3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47화
147화
호연유가 이를 갈며 아기의 안위를 들먹였다.
“아들이 죽어도 좋은가 보군. 당장 저들과 싸우지 않으면, 그 대가로 네 아들이 참담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다, 북궁천!”
“네놈이 감. 히!”
북궁천의 눈에서 분노의 불길이 일렁거렸다.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한 번쯤 저놈의 부탁을 들어주고 아기를 데려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쉽게 아기를 돌려줄 놈이 아니었다. 약속을 헌신짝처럼 취급하고도 남을 놈이었다. 한번 요구를 들어주면 계속 들어줘야 할 터.
그는 그걸 알기에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마음을 다잡고, 역으로 호연유를 몰아붙였다.
“이제 보니 너는 남자 새끼도 아니구나! 무사란 놈이 아기를 해치겠다는 위협을 하다니! 잘 들어라, 소존. 네놈이 한 번만 더 그딴 소리를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네놈부터 죽이고 말 것이다!”
노성을 내지른 그는 북천명왕공을 실어서 발을 굴렀다.
쿠웅!
건물 전체가 와르르 떨리고 조각조각 부서진 기와가 폭발하듯이 튀었다.
촤아아아악!
공력이 실린 기와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쏘아져서 근처에 몰려와 있는 무사들을 덮쳤다.
퍼벅! 퍽!
“으악!”
“피해!”
“크으윽!”
“셋을 셀 동안 아기가 있는 곳을 답해라, 소존! 하지 않으면 본좌도 더 참지 않을 것이니라!”
호연유의 눈빛이 격렬하게 떨렸다.
저놈은 정말로 아기가 죽든 말든 상관없단 말인가?
‘제기랄! 정말 그럴지도 몰라. 저놈은 북천에서 수천 명을 죽인 놈이 아닌가?’
상대는 피도 눈물도 없다고 소문난 마제다. 자신 역시 마인이고.
아비의 마음을 모르는 그는, 자신이라 해도 아기 때문에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것 같았다.
아기는 다시 낳으면 되니까.
아기가 이곳에 있으면 직접적으로 위협할 수 있을 텐데…….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죽든가 말든가 그냥 이곳에 둘걸.’
후회해도 아기는 돌아오지 않는다.
밖에서는 정파연합이 전면적으로 공격해 오는 상황.
북궁천이 정말 자신들을 공격한다면 안팎으로 위험에 처한다. 그 전에 자신을 죽이겠다고 달려들지도 모르고.
머리를 굴린 그는 북궁천과 아기에 대한 일을 천사지존에게 떠넘기기로 작정했다.
부친이라면 저놈 정도는 충분히 요리할 수 있으리라!
그 와중에도 북궁천은 바짝 마른 입을 크게 벌리며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두우울! 세에에…….”
“좋다, 북궁천! 네가 원한다면 알려 주지. 대신 약속대로 이곳을 떠나라!”
“걱정 마라. 약속은 반드시 지키니까.”
북궁천은 주먹을 불끈 쥐고, 표정을 관리하면서 턱을 치켜들었다.
“이제 말해 봐라. 아기는 어디에 있느냐?”
“네 아기는 교주님께서 계신 곳으로 보냈다. 아마 지금쯤은 도착했을 거다.”
북궁천은 촌각이 아까웠다.
어둠 속에서 격전이 점점 격렬해지고 있지만, 철은보를 누가 차지하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 그는 몸을 솟구쳐서 어둠 속으로 날아갔다.
“네놈에 대한 죄는 다음에 묻겠다, 소존!”
그 직후 함성이 철은보를 뒤덮었다.
와아아아아아!
“천사교 놈들을 척살하라!”
“이 땅에서 마도 놈들을 몰아내라!”
“천사의 종들이여! 위선자들의 목을 쳐서 천사의 세상을 누려라!”
“천사의 세상을 위하여!”
호연유는 그제야 고통을 느낀 듯 어깨를 움켜쥐고 악을 쓰듯 외쳤다.
“모두 가서 놈들을 막으시오!”
* * *
유원당은 정문 지붕 위에서 정파연합이 총공세를 펼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적의 기세가 예상했던 것보다 쉽게 무너지고 있었다.
정파연합이 강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감시조를 단숨에 괴멸시키고 철은보에 도착했을 때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누군가가 천사교 무리와 싸움을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약했다면 자신들에게도 불리하게 작용했을 게 분명했다. 적이 조금이라도 먼저 자신들의 공격을 눈치챘을 테니까.
그러나 그들은 소수임에도 강했고, 그들에 의해서 천사교 무리 수십 명이 죽거나 부상당한 상태였다.
또한 백수십 명이 그들을 잡기 위해 장원을 떠나 외부로 나온 터였다.
정파연합의 고수들로 조직된 선두가 그들을 해일처럼 덮쳤다. 포말이 부서지듯 천사교 무리 백수십 명이 지리멸렬하여 무너졌다.
천사교 무리의 전체 전력 천여 명에서 백수십 명은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들을 먼저 제거한 덕분에 정파연합으로선 적의 주력을 수월하게 공격할 수 있었다.
철은보를 공격한 자들이 누군지 몰라도 정파연합에겐 행운이었다.
‘소수가 그 정도의 위력을 발휘하다니, 어떤 자들인지 모르겠군.’
유원당이 그들을 떠올리는 동안 한밤의 혈전은 막바지를 향해 달려갔다.
격렬한 싸움으로 인해 한쪽에서는 불길이 타오르고 있었다.
감시조를 제거한 고수들은 철은보의 격전에서도 유감없이 자신들의 실력을 발휘했다.
천사교도들이 아무리 독해도, 혈문과 마종보 고수들이 합류해 있음에도 사기가 충천한 정파연합 고수들을 막지 못했다.
뒤늦게 상남에서 천사교 무리 삼백이 달려오긴 했지만 그들 역시 전황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렇게 철은보에 진입한 지 이각이 지날 무렵이었다.
“총군사! 놈들을 후원까지 몰아냈습니다!”
천종원이 안쪽에서 달려오며 밝은 표정으로 소리쳤다.
‘됐어!’
유원당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최대 삼 할의 피해를 목표로 잡고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서 이 할 정도에 그칠 듯했다.
그 정도면 대승이라 할 수 있었다.
자신들보다 철은보를 먼저 공격한 자들 영향이 컸다.
‘어떤 자들인지 몰라도 거나하게 술 한잔 사 주고 싶군.’
그 때 천종원이 말했다.
“총군사, 조금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뭐가 말이오?”
“소존이라는 자와 장로, 호법 등 천사교 놈들의 주력 중 몇 명이 부상을 입은 상태입니다. 심지어 광혼마도 벽주청은 팔이 하나 잘리고 배가 뚫려서 죽어 가고 있었다 합니다.”
“우리 쪽 고수와 싸우지 않았는데도 말이오?”
“그렇습니다, 총군사.”
천종원의 말대로 이상한 일이었다.
누가 적진 중앙에 뛰어들어서 소존과 천사교의 장로, 호법에게 부상을 입히고 유유히 빠져나갈 수 있단 말인가?
천하를 통틀어도 정파에 그러한 고수는 두세 명에 불과하다.
오군 중 첫째이며 천하제일을 논할 때 항상 거론되는 절대고수, 수룡천군(水龍天君) 신도관. 무당파 개파 이래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도성(道聖) 영허진인. 그리고 천무회주 천무검제 사공력 정도뿐.
하지만 그들이 나타났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 외에도 억지로 꼽으면 몇 명을 더 꼽을 수 있지만 의미가 없었다. 그들 중에는 천사교 진영의 중앙에 뛰어들 자가 없으니까.
그럼 누가?
그 때 문득, 유원당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설마 그가……?”
북궁천이라면 가능하다. 이유도 충분하고.
또한 정말 그라면 자신들보다 철은보를 먼저 공격한 자들에 대해서도 설명이 된다.
유원당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는 아기가 가짜라는 것을 알고 왔을까? 아니면 단순히 아기를 납치한 천사교에 복수를 하려고?
상황으로 봐선 두 번째여야 맞았다. 첫 번째라면 아기 때문에라도 그들을 공격할 수 없을 테니까.
그러나 그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였다.
아기를 가진 소존이 그대로 당하기만 했을 리는 없었다.
그럼 북궁천은 왜 그들과 싸운 걸까?
처음에는 복수를 위해서 싸웠다 해도, 자신이 데리고 있는 아기가 가짜라는 걸 알았다면 싸우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아는 거야, 모르는 거야? 북궁천이 아니라 다른 사람인가?’
유원당의 머리가 지끈거릴 때 저 안쪽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아!
“놈들이 도망간다!”
“이겼다!”
유원당은 일단 정문 지붕 위에서 내려왔다.
호위무사들이 그를 에워쌌다.
하지만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기도 전에 잠은각 무사 하나가 달려오더니 마른나무같이 굳은 표정으로 천종원에게 보고했다.
“령주, 잠입해 있던 잠은각 요원들을 발견했습니다.”
발견했다?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란 소리.
“어디에 있느냐?”
“뇌옥으로 보이는 곳 지하에 있었습니다. 혹시나 천사교 놈들에게 잡힌 정파무인이 없나 해서 조사해 봤는데…….”
잠은각 무사는 말을 잊지 못하고 눈빛을 잘게 떨었다.
천종원은 상황을 짐작하고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죽었느냐?”
“차마…… 눈 뜨고 볼 수가 없었습니다. 놈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이라면 어떻게…….”
유원당은 옆에서 보고를 들으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북궁천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엉켜서 잠은각 무사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정말로 그가 왔다면 대책을 세워야 해.’
아기를 구했다면야 문제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아기를 구하지 못했다면, 아기가 아직도 천사교 쪽에 있다면 그는 잠재적인 적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 * *
어둠 속의 관운묘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북궁천이 도착했을 때 장추람 일행 모두 관운묘에 모두 돌아와 있었다.
그가 전각으로 들어가자 장추람이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소군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발작을 한 모양이다. 놈들이 치료를 한답시고 상주로 옮겼다고 하는군.”
담담히 말하는 북궁천의 눈매가 잘게 떨렸다.
태연한 척하려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들키기 전에 고개를 돌려 소동동을 바라보았다.
“지내기는 괜찮아?”
“예, 괜찮아요.”
“그 더러운 놈은 정파연합에 밀려서 도주했다. 이제 안심해도 될 거다.”
“정말요?”
“그래. 더구나 내 검에 상처를 깊게 입어서 한동안 고생해야 할 거다. 팔 하나 정도는 잘라 버리려고 했는데, 여우 같은 놈이 재빨리 몸을 빼서 실패했다.”
소동동이 작은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말했다.
“잘하셨어요!”
“어떻게 할 거냐? 지금 돌아갈 거냐? 상남에 있던 놈들도 전부 도망친 것 같던데.”
“그래야죠.”
그 때 장추람이 슬그머니 나섰다.
“저, 제가 데려다 주고 오겠습니다, 주군.”
“네가? 왜?”
“다른 사람들은 부상을 입어서 쉬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 하, 하.”
북궁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냉호와 철교신도 자잘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담운과 지송문은 더했고.
“자강은 안 싸워서 멀쩡하잖아?”
“하, 하. 상남에 가서 뭘 좀 사 올 것이 있습니다.”
“자강에게 시키지 그래?”
“그냥 제가 가면 되는데 왜 다른 사람을 시킵니까?”
“정말 그 이유 때문이야?”
“그, 그렇다니까요?”
“동동이와 함께 있고 싶어서 그런 것은 아니고?”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근데 정말 이상하네. 왜 아까부터 얼굴이 붉어져?”
“얼굴이 붉긴 뭐가 붉다고 그러십니까? 저 불빛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거죠.”
“정말 네가 데려다 주고 싶어?”
“데려다 주고 바로 오겠습니다.”
“물건 산다며?”
“그, 그거야 당연히 사야죠.”
“좋아, 그럼 갔다 와. 동동, 추람하고 함께 가도 되겠어? 무섭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