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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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50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46화
146화
“켈! 죽어라!”
“무기가 장식용이 아니라면 뽑아라, 이놈!”
두 사람에게서 뻗어 나온 강력한 기운이 북궁천을 뒤덮었다.
튕겨 나갔던 호연유와 벽주청도 공력을 끌어 올리고 기회를 노렸다
북궁천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검을 뽑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빠져나가려면 검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의 검은 묵혼이 아닌 푸른빛이 번뜩이는 청강검이었다. 검을 보고 자신을 알아볼까 봐 잠시 임표와 검을 바꾼 것이다.
“죽고 싶다면 죽여 주지!”
냉랭한 일갈과 함께 검첨에서 뻗어 나간 섬전이 어둠을 가르며 상대의 공세를 철저히 부쉈다.
쩌저정! 떠덩!
탈혼객과 귀찰편은 검과 편을 통해 밀려드는 가공할 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기회만 엿보던 호연유와 벽주청이 다시 달려들었다.
제아무리 북궁천이 강하다 해도 전력을 다하지 않고는 연속된 고수들의 공격을 막기가 쉽지 않았다.
‘별수 없군.’
그는 숨기려 했던 북천명왕공을 끌어 올려서 호연유와 벽주청의 공격에 대응했다.
고오오오오!
북궁천이 검을 휘두르자 고막을 먹먹케 하는 기음이 어둠을 찢어발겼다.
작정하고 펼친 뇌정무적세!
십여 줄기 벼락이 일순간에 호연유와 벽주청을 집어삼켰다.
“헉! 너는……!”
호연유는 검에서 뻗치는 북천명왕공을 느끼고 그제야 북궁천의 정체를 눈치챘다.
기겁한 그는 전력을 다해서 음혼혈마장을 펼쳤다.
음산하면서도 강맹한 장력이 다섯 자 앞에서 핏빛 장막을 형성했다.
그러나 음혼혈마장만으로는 작정하고 펼친 뇌정무적세를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떠더덩!
둔중한 폭음과 함께 핏빛 장막이 터져 나가고, 호연유가 신음을 토하며 정신없이 뒤로 물러섰다.
“크으으윽.”
늘어뜨린 그의 두 손이 잘게 떨리고, 어깨와 가슴에서 흘러나온 피가 비단옷을 적시며 붉게 번졌다.
북궁천은 그를 놔둔 채 검첨을 벽주청에게 돌렸다.
시퍼런 검강이 검첨에서 번쩍 빛을 발하며 터져 나갔다.
미처 물러서지 못한 벽주청은 이를 악물고 도를 휘둘렀다.
콰과광!
어둠을 뒤흔드는 굉음!
“끄어억!”
벽주청이 비명을 내지르며 미친 듯이 십여 걸음을 물러섰다.
도를 든 팔은 땅에 떨어져서 펄떡거리고, 팔이 떨어져 나간 어깨에서는 피분수가 솟구쳤다.
거기다 옆구리에 뚫린 구멍에서도 내장이 머리를 내밀었다.
비틀거리던 그는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더 견디지 못하고 꼬꾸라지듯이 무릎을 꿇었다.
“흐으으으윽.”
주위에는 탈혼객과 귀찰편, 그 외에도 고수라 할 수 있는 자들이 상당수 있었다. 싸움이 벌어진 소리를 듣고 몰려든 자들도 수십 명이었고.
그러나 벽주청이 당하는 가공할 광경을 목도한 그들은 몸이 굳어 버린 듯 북궁천에게 달려들 생각을 못 했다.
북궁천은 소존의 팔을 잘라 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신형을 날렸다.
“멈춰라, 단화린! 아니, 북. 궁. 천!”
호연유가 악을 쓰듯 외쳤다.
철은보 하늘 위에 북궁천의 이름이 메아리쳤다.
9장. 돌에 꽃이 피고
장추람은 호연유의 외침을 듣고 검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계획대로 외곽을 치며 적의 이목을 끌었다.
천사교 무리가 그들을 상대하기 위해 개떼처럼 몰려나왔다. 대충 봐도 백 명이 넘는 인원. 개중에는 상당한 실력을 지닌 고수들도 칠팔 명은 되었다.
장추람 등은 그들과 싸우면서 철은보에서 멀어졌다.
소기의 목적은 달성한 셈.
이제 북궁천이 아기를 구해서 나올 때까지만 버티다 물러서면 되었다.
그런데 어둠을 뚫고 북궁천의 이름이 들리는 게 아닌가?
“빌어먹을! 주군께서 정체를 들키셨군.”
“돼지야, 그만 가자!”
냉호가 소리쳤다.
북궁천이 철은보에서 빠져나오고 있다면 자신들도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장추람은 냉호를 째려보고는 먼저 몸을 날렸다.
뒤이어 냉호와 철교신, 임표와 담운, 지송문이 땅을 박차고 뒤따라갔다.
그 때 어둠 저편에서 검은 구름이 빠른 속도로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구름이 아니라 수백에 이르는 사람들이었다. 몰려오는 속도로 봐서 무인들임이 분명했다.
상남에 있던 자들이 오는 걸까?
사실이라면 골치 아픈 상황이다.
그는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전력을 다해 경공을 펼쳤다.
냉호 등도 몰려오는 자들을 봤는지 꽁지에 불붙은 말처럼 장추람을 따라서 내달렸다.
장추람 일행을 뒤쫓던 천사교 무리 역시 몰려오는 자들을 보았다.
처음에는 그들도 장추람 일행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몰려오는 기세가 왠지 수상쩍었다.
그들이 멈칫한 사이, 거리가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리고 곧 쏟아지는 달빛에 몰려오는 자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드러났다.
한편, 승천무풍행을 펼치며 날아가던 북궁천은 호연유가 자신의 본명을 부르자 은화원 건너편 전각의 용마루 위에 표표히 내려섰다.
그는 재차 신형을 날리지 않고 천천히 돌아섰다.
밤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옷자락이 휘날렸다.
달빛 아래 고요히 서 있던 그는 호연유를 직시한 채 무심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
“아기가 무척 귀엽더군. 깨물어 주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내가 얼마나 인내했는지 넌 모를 거다. 후후후후.”
호연유의 입에서 나직한 조소가 흘러나왔다.
북궁천은 분노가 머리꼭대기까지 솟구쳤다.
퍼버버벅!
그가 밟고 서 있는 지붕의 기와가 폭죽이 터지듯이 사방으로 터져 나갔다.
하지만 그는 진아를 생각하며 이를 악물고 참았다.
“다시 묻겠다. 아이는 어디 있느냐?”
“네 아이는 이곳에 없다. 아기를 무사히 찾고 싶다면 순순히 내 말을 들어라.”
“이곳에 없다고?”
호연유는 득의만만해했다.
그동안 당한 것이 얼마던가!
북궁천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모습을 볼 때마다 통쾌해서 웃음이 절로 나왔다.
“후후후. 그래, 없다. 알고 보니 네 아이의 몸에 이상이 있더군. 그래서 치료를 위해 잠시 다른 곳으로 보냈지.”
그랬던가? 그래서 없었나?
차라리 어제 저녁에 곧바로 공격할 걸 그랬나? 그랬으면 구해 냈을지도 모르거늘.
하지만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북궁천은 미어지는 가슴을 억누르고 최대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이만 내준다면 조용히 떠나마. 너도 그걸 바랄 텐데?”
“전에는 그랬지.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그 이유를 모르진 않겠지?”
“상황이 다르다? 맞아, 그때만 해도 나는 단화린이었고, 너희들에 대한 분노도 없었지. 내 목적은 하나였으니까. 그런데 지금의 나는 북궁천으로서 너희들에게 분노하고 있으니 확실히 다르긴 다르군.”
나직이 으르렁거리는 목소리에 극렬한 분노가 실려 있다.
호연유는 그 분노를 즐겼다.
결정적인 패가 자신의 손안에 있는데 염려할 일이 뭐 있단 말인가?
“아아, 진정해라, 북궁천. 네가 내 요구 조건만 몇 가지 들어준다면 아들을 돌려줄 테니까. 설마 자존심 때문에 아들을 포기할 생각은 아니겠지?”
북궁천은 입을 다물고 어둠을 응시했다.
그가 서 있는 전각 주위로 천사교 무리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강아지들은 아무리 수가 많아도 호랑이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법. 그는 그들에게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 쓸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숨을 한 번 쉬는 짧은 시간.
생각을 정리한 그는 달빛조차 얼려 버릴 것 같은 눈빛으로 밑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물론 포기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천사교의 꼭두각시가 되지도 않을 것이다. 너는 내가 누군 줄 알았다면, 마제가 어떠한 존재인지도 알았어야 했다, 소존. 마제란 너 같은 개 따위에게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운명을 지닌 사람이니라!”
“북궁천, 어리석은 생각 말고…….”
그 때였다.
저 멀리 외곽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적이다!”
“적이 몰려온다!”
적의 공격은 조금 전에도 있었다. 하기에 호연유를 비롯해서 은화원에 있던 사람들은 그 외침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전혀 달랐다.
뒤이어 들려오는 소리는 그들을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정파연합 놈들이 쳐들어온다!”
“천사의 제자들이여! 밖으로 나가서 놈들을 막아라!”
“뭐야? 정파 놈들이 쳐들어온다고?”
대경한 호연유의 눈빛이 흔들렸다.
서평과 상남 사이에는 세 겹의 감시망이 펼쳐져 있다. 길목마다 감시조가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적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다.
그런데 적이 이곳까지 올 동안 왜 연락 한 번 없었단 말인가?
‘호교이령은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뭐 하고 있었던 거야?’
당황하기는 사야승도 마찬가지였다.
한쪽에 서서 북궁천의 마음을 분석하고 있던 그는 사밀영을 급파했다.
“빨리 가서 상황을 알아봐!”
그동안에도 외곽에서 외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놈들을 막아라!”
“남쪽에서도 온다! 일단 장원으로 물러서라!”
호연유의 얼굴에서 여유가 사라졌다.
천사교의 힘은 철은보와 상남 일대에 분산되어 있다. 전에 정파연합이 그랬던 것처럼.
정파연합이 전면적인 공격을 감행해 오고 있다면 전력에서 밀리는 상황.
거기다 북천마제 북궁천마저 적이 된다면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진 그는 북궁천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북궁천, 이렇게 하면 어떠냐? 저놈들을 막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면 아들을 돌려주마! 구양환이 너를 이용했으니 너도 저놈들이 싫을 것 아니냐?”
물론 북궁천도 구양환이 싫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소존은 더 싫었다. 짓뭉개 버리고 싶을 정도로!
솔직히 그는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았다. 속은 이미 다 타 버려서 하얗게 재만 남은 상태였다.
억지로 소존의 말에 반발하고는 있지만,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진아에게 해가 될까 걱정되어서 미칠 것 같았다.
그나마 그가 소존의 요구에 반발할 수 있는 것은 이곳에 진아가 없기 때문이었다.
만약 진아가 소존의 손에 있었다면, 소존이 진아를 들이대며 위협했다면…… 그는 소존의 요구대로 정파연합과 싸웠을 것이 분명했다.
없으니 다행이라는, 그야말로 모순된 상황.
북궁천은 판단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점을 최대한 이용했다.
목에 잔뜩 힘을 주고, 여유 있는 표정을 지으며.
“소존, 아기를 어디로 보냈는지 말해라. 그럼 나는 수하들을 데리고 조용히 물러가겠다.”
반대로 호연유가 미친 듯이 소리쳤다.
“아기를 살리고 싶으면 내 요구대로 해라, 북궁천!”
“내가 조금 전에 한 말을 잊었나 보군. 나는 네가 말할 때까지 정파연합을 도와서 너희들을 죽일 생각이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냐?”
“북궁천!”
이름을 외치는 호연유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당황할수록 북궁천의 목소리는 안정되었다.
“철은보를 뺏기고 싶지 않다면 어서 말해라. 이곳에 있는 자들도 나가서 싸워야 할 것이 아니냐? 나까지 적으로 삼아도 이길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