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4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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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9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41화
141화
방 안으로 들어간 호연유는 침상 위에 눕혀져 있는 아기에게 다가갔다.
푸르스름한 피부. 눈을 꼭 감은 채 숨을 쉬는데 숨소리가 가래라도 끓는 것처럼 거칠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냐? 언제부터 이랬지?”
호연유는 아기를 보고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유모가 덜덜 떨면서 대답했다.
“이각 전부터 이럽니다, 나으리. 갑자기 젖을 토하고 숨소리가 거칠어지더니 몸이 이렇게…….”
퍽!
호연유는 신경질적으로 장력을 내쳐서 유모를 구석에 처박았다.
강한 경력에 내부가 진탕된 유모는 두어 번 몸을 꿈틀대더니 조용해졌다.
“병신 같은 년. 아기 하나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다니.”
싸늘한 눈으로 유모를 노려본 호연유는 고개를 돌려 사야승을 바라보았다.
“왜 이런 증상을 보이는 거라 생각하시오?”
“아무래도 전부터 몸에 이상이 있었나 봅니다. 상남에서 제일 뛰어난 의원을 데려오라고 했으니 조금만 기다려 보시지요.”
반 시진이 지날 즈음 쉰 살가량의 의원이 도착했다.
굳은 표정으로 방에 들어온 의원은 눈치를 보며 아기 앞으로 다가갔다.
“진맥을 해 보시오. 어떤 병인지 정확히 알아내면 큰 상을 내리겠소.”
의원은 상이고 뭐고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
그도 소문을 들은 터라 철은보를 사악한 천사교 무리가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오래 있어서 좋을 게 없었다.
아기 앞에 앉은 의원은 가녀린 아기의 손을 잡고 진맥을 했다.
일각이 지난 뒤에는 몸 여기저기를 살펴보며 자신의 모든 의학적 지식을 동원해서 아기의 병명을 알아내려 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의원이 딱딱해진 표정으로 아기에게서 손을 뗐다.
입을 꾹 다문 채 바라보고 있던 호연유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무슨 병이오?”
“제 생각으로는 아무래도 절맥증의 일종인 것 같습니다.”
“절맥증?”
“예, 공자. 삼양맥이 무척이나 약하고 뒤틀린 것 같아 보입니다. 뛰어난 의원이 손을 봤는지 당장 큰일이 생길 정도는 아닙니다만, 지속적으로 치료를 하지 않으면 문제가 커질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치료할 수 있겠소?”
호연유가 뚫어지게 바라보며 다그치듯이 묻자 노의원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게 저……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 늙은 의원의 실력으로는 치료하기가 쉽지 않은 병입니다. 급한 상황은 넘길 수 있습니다만…….”
“그럼 누가 이 아이를 치료할 수 있소?”
“왕옥산 백의곡의 황 신의라면 가능할지도…….”
호연유는 이마를 찡그렸다.
왕옥산까지 사람을 보내 신의를 데려오려면 시간이 너무 걸렸다.
‘꼭 완치시킬 필요가 있나?’
완치시키진 못한다 해도 당장 급한 상황은 넘길 수 있다지 않은가? 그렇다면 북궁천을 이용할 때까지만 노의원에게 맡겨 놓아도 될 듯했다.
그런데 그 때 사야승이 말했다.
“소존, 절명마의에게 보이면 어떻겠습니까?”
절명마의 곡화산.
성격이 사악하고 괴팍하긴 하지만 의술 실력 하나만큼은 신의와 비견된다는 자다.
그는 천사지존 곁에 머물며 천사교 주요 인물들의 부상과 병의 치료를 도맡고 있었다.
어차피 아기를 자신이 데리고 있는 것보다는 상주로 보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 호연유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군. 가서 청사령을 들어오라고 하시오.”
* * *
유원당은 군웅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공격하기 전에 적이 눈치채지 못하게 감시망을 와해시키는 게 우선입니다. 지도를 봐 주십시오.”
그는 커다란 탁자 위의 지도를 지휘봉으로 가리켰다.
탁자 둘레에는 각 세력의 대표자 열두 명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지휘봉을 따라서 지도를 바라보았다.
서평에서 상남까지는 백 리 길.
언제 적이 공격해 올지 모르는 터라 정파연합과 천사교는 감시를 철저히 하며 상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별 차이가 없는 전력.
감시망을 무너뜨리지 않고 공격을 감행해서는 이긴다 해도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군웅들도 유원당이 말하고자 하는 뜻을 알기에 귀를 기울였다.
“이곳과 이곳, 그리고 이곳에 있는 감시망은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실패하면 계획 자체를 바꿔야 합니다.”
등조립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냥 힘으로 밀어붙여도 충분하지 않겠소?”
“이길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그다음이 문젭니다. 상주에 있는 적의 주력이 꿈틀대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려온다면 큰 피해를 입은 전력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럼 감시망을 와해시킬 방법은 세웠소?”
유원당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의 눈 깊은 곳에서 싸늘한 한광이 번뜩였다가 사라졌다.
“제 말에 따라 주시기만 하면 가능합니다.”
“어디 말해 보시구려. 총군사의 명령을 누가 어기겠소이까?”
진왕리가 걸걸한 목소리로 별걱정 다 한다는 듯 말했다.
다른 몇 사람도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평까지 단숨에 되찾은 유원당이었다.
물론 무력이 뒷받침되었으니 가능한 일이긴 하나, 전과 비교하면 전략 면에서 차이가 컸다.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이 조소를 지었지만, 이제는 유원당의 전략을 비웃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직 몇 사람은 마음에 안 들어 했지만.
유원당은 그 사람들을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모두가 그를 따를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좋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말씀드리지요. 적에게 도망가거나 신호를 보낼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해서는 소수의 고수를 보내야만 합니다. 먼저 제가 생각한 분들을 말씀드리지요. 등 대협과 관 대협, 백리 대협, 임 대협…….”
유원당은 연합 세력에서 고수라 할 만한 자 스물네 명을 호명했다.
적의 주력도 아니고, 일개 감시망을 와해시키는 일에 투입하기에는 엄청난 전력이었다.
오죽했으면 뜨악한 표정을 짓는 사람조차 있었다.
하지만 유원당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단숨에 제거하지 않으면 모든 사람의 노력이 공염불이 됩니다. 작전이 시작되면 은밀하고 빠르게 움직여서…….”
그의 설명이 이어지면서 가벼운 탄성과 침음이 번갈아 흘러나왔다.
“호오, 그거 괜찮은 방법이구려.”
“으음, 무리하는 감이 없진 않지만, 방법이 그것밖에 없다면 할 수 없지요.”
일사천리로 설명을 마친 유원당은 반론할 시간도 주지 않고 조를 짰다.
군웅들을 부를 때 이미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다는 듯, 한 조에 네 명씩 모두 여섯 조가 만들어졌다.
천무회, 무림맹, 삼성궁, 백검맹, 철군성의 고수가 각기 일조를 이루고, 등조립과 임강령이 강호명숙인 현천검(玄天劍) 육지광, 대풍쌍객(大風雙客) 경씨 형제와 함께 일조를 이루었다.
유원당은 조를 짜자마자 번갯불에 콩 튀겨 먹듯이 지시를 내렸다.
“이각 후에 출발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출발하면 일각 후에 본진이 출발할 것입니다.”
그렇게 빨리?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유원당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유원당은 입가에 웃음까지 띠어 가며 말했다.
“적이 눈치채기 전에 공격해야 성공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지 않겠습니까? 제 계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 분은 허심탄회하게 말씀하십시오. 작전에서 빼 드리겠습니다.”
두어 사람이 불만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유원당은 겉보기보다 꼬장꼬장했다.
말해 봐야 먹히지도 않을 게 분명했다. 괜히 사람들에게 눈총만 받을 뿐.
* * *
사야승은 찾아온 손님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눈초리에서 혈기가 느껴지는 섬뜩한 인상, 쉰 전후의 나이. 다름 아닌 혈문의 대표라 할 수 있는 혈귀령주(血鬼令主), 혈사도(血死刀) 우안각이었다.
“이 시간에 우 령주께서 어쩐 일이시오?”
“본 문의 노 당주가 점심 이후부터 보이지 않소.”
사야승은 그 말을 듣고 이마를 잔뜩 찌푸렸다.
“점심 이후부터? 그걸 왜 이제야 말씀하시는 것이오?”
“멀리 가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우리 힘으로 찾아보려고 했소. 그런데 찾을 수가 없지 뭐요.”
사야승은 화가 났지만 겉으로 표 내지는 않았다.
우안각은 혈문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어가는 고수였다. 또한 혈문의 주인 혈왕(血王) 나종백의 사제이기도 했다.
아직은 이용 가치가 높은 자, 심기를 건들 필요는 없었다.
“자세히 이야기해 보시오. 어떻게 된 거요?”
“점심 때 술을 한잔하고는 얼큰하게 취해서 뒷간에 간다고 나갔는데 그 후로 보이지 않았다 하오.”
“뒷간에 간 후로 사라졌다? 그가 밖으로 나간 것을 본 사람도 없었소?”
“객잔에 있던 사람은 물론 근처의 사람들에게도 모두 물어보았다고 하오. 그런데도 밖에서 노 당주를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하오.”
사야승의 이마에 파인 골이 깊어졌다. 쥐눈처럼 작은 눈이 더욱 작아졌다.
술에 취했다면 길을 잃었을 수도 있었다. 아니면 어디 구석진 곳에 가서 곯아떨어졌든가.
하지만 그것도 짧은 시간일 때 이야기다. 두 시진이 넘도록 안 나타났다면 가능성은 둘뿐.
도망갔든가, 아니면 납치되었든가.
“혹시 싸우는 게 무서워서 도망간 것은 아니오?”
“우리 혈문의 간부는 싸우는 걸 두려워하지 않소. 더구나 노 당주는 싸우는 걸 즐기는 성격이어서 도망칠 사람이 아니오.”
우안각이 기분 상한 표정을 지으며 투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사야승도 우안각의 기분을 모르지 않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도망치지 않았다면 납치되었다는 말.
문제가 심각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노굉화가 간부이긴 해도 아는 것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알았소이다. 본인이 한번 알아보도록 하지요.”
그가 알아보려는 것은 우안각이 원하는 것과 달랐다. 하지만 우안각은 사야승의 속내를 알 수가 없었다.
“그럼 부탁하겠소.”
사야승은 우안각이 나가자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에 밖을 향해 말했다.
“미산을 불러와라.”
잠시 후.
삼십 초반의 싸늘한 표정을 지닌 늘씬한 여인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녹의를 입고 있었는데, 걸음을 옮기면서 치마가 너풀거릴 때마다 하얀 속살이 살짝살짝 드러났다.
사밀령 다섯 조장 중 유일한 여인인 독심요(毒心妖) 사미산. 그녀는 사야승의 친동생이기도 했다.
“부르셨어요, 오라버니?”
“미산, 장원 안에 정파 놈들이 풀어 놓은 박쥐가 몇 마리나 들어와 있느냐?”
“현재까지 세 마리가 확인되었어요.”
“지금 즉시 그들을 모두 잡아들여.”
“예.”
“그리고 놈들 중 혈문의 추혈당주 노굉화를 아는 놈이 있는지 알아봐라.”
“제가 갖고 놀아도 돼요?”
“네 마음대로 해. 대신 정보를 확실하게 알아내야 한다.”
순간, 사미산의 얇은 입술 사이로 하얀 이가 드러났다. 섬뜩함이 느껴지는 미소였다.
“호호호호. 고마워요, 오라버니.”
* * *
석양이 진령의 산줄기로 곤두박질칠 무렵, 임표와 구자강이 관운묘로 돌아왔다.
“아직 별다른 움직임은 없습니다, 주군.”
“송문과 담운은?”
“무사히 안으로 들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