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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28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9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28화

 

128화

 

 

 

 

 

 

 

주르륵 서너 걸음을 물러난 장한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장추람을 노려보았다.

 

“한 번 더 막으면 그때는 갈비뼈가 부러질 것이다.”

 

장추람이 냉랭히 말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동료가 당하는 것을 본 또 다른 무사 둘이 무기를 빼 들었다.

 

순간, 장추람의 눈빛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후회할 일은 하지 않는 게 좋을 텐데?”

 

그 눈빛이 어찌나 살벌한지 검을 빼든 무사 둘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물러섰다.

 

그 때 방 안에서 걸쭉한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데 이리 소란이냐?”

 

“웬 자들이 루주를 만나겠다고 소란을 피웁니다, 소보주.”

 

“루주를?”

 

곧 방문이 열렸다.

 

화려한 방 안에는 머리가 흐트러진 청년 하나와 젊은 여인 둘이 앉아 있었다.

 

문을 연 사람은 어린 소녀였는데,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은 채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다.

 

북궁천은 방문이 열리자 지체하지 않고 방으로 다가갔다.

 

“멈춰라!”

 

검을 든 호위무사 둘이 그의 앞을 막았다.

 

북궁천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퍼벅!

 

두 무사가 철벽에 부딪친 사람처럼 튕겨서 양쪽으로 나가떨어졌다.

 

북궁천은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유유히 걸어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있던 청년은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이 늦은 밤에 무슨 일로 루주를 만나겠다는 건가?”

 

“왕두평의 말을 듣고 요청할 일이 있어서 찾아왔다. 그대가 이곳의 주인이 아니라면 그대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관여치 마라.”

 

“왕두평? 남경 암경회 회주 말인가?”

 

“맞아.”

 

청년은 왕두평의 이름을 듣더니 머리를 쓸어 올리며 피식 웃었다.

 

“왕두평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지 몰랐군. 나는 은검보의 조무성이라는 사람이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내일 이야기하면 안 되겠나?”

 

은검보는 등주 남쪽 백 리 떨어진 곳에 있는 무가였다.

 

등주 일대에서 가장 강한 힘을 지닌 세력.

 

삼성궁이나 천무회와 비교하면 대단할 것도 없지만, 흑도 무리인 암경회에 비해선 강력한 힘을 지녔다고 봐야 했다.

 

취향루의 총관이 왕두평과 저울질을 한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조무성 자신은 지닌 능력을 인정받아서 하남 무림의 뛰어난 후기지수 열 명 중 하나로 꼽혔다.

 

앞에 있는 자에게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위압감이 느껴지긴 하지만 밀리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상대는 왕두평이 아닌 북궁천이었다.

 

“그대는 내 일에 신경 쓸 것 없다.”

 

여전히 무시하는 말투.

 

조무성의 미간에 골이 파였다. 아마 그의 성격이 조금만 급했다면 손부터 나갔을지 몰랐다.

 

“말을 너무 함부로 하는군.”

 

“나는 지금 쓸데없는 이야기로 시간이 가는 게 너무나 아까워서 미칠 것 같다. 그러니 내 일에 끼어들지 말고 조용히 있어.”

 

조무성은 북궁천의 무심한 목소리를 듣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몸이 굳은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정말 오만한 자군. 내가 왕두평이라는 이름에 겁을 먹을 거라 생각했나? 착각하지 마시지.”

 

방으로 들어서던 냉호가 그 말을 듣고 냉랭히 대꾸했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주군께서는 너를 죽이는 시간조차 아까워서 가만 놔두고 있으신 거다. 그러니 입 다물고 한쪽에 찌그러져 있어라.”

 

“뭐야?”

 

발끈한 조무성이 탁자를 손으로 내리쳤다.

 

탕! 소리와 함께 술잔이 허공으로 한 자가량 떠올랐다.

 

조무성은 허공에 때오른 술잔을 손등으로 후려쳤다.

 

술잔은 마치 잡아서 힘껏 던진 것처럼 냉호를 향해 날아갔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서 조무성의 손짓이 멈췄을 때는 이미 술잔이 냉호의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하지만 냉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손을 들었다.

 

누가 봐도 늦은 것처럼 보였다. 술잔은 냉호의 코에 틀어박혀서 코뼈를 짓뭉갤 것 같았다.

 

그러나 손이 움직였다 싶은 순간, 술잔이 그의 손에 잡혀 있었다.

 

술잔 속에 술이 그대로 든 채.

 

냉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술잔 속의 술을 목구멍에 털어 넣었다. 코끝을 찡그린 그의 입에서 기분 좋은 탄성이 흘러나왔다.

 

“크으, 제법 독한데? 덕분에 뜻하지 않은 술을 마셨군. 잔은 돌려주지.”

 

냉호는 술잔을 가볍게 밀치듯이 던졌다.

 

술잔은 느릿하게 조무성을 향해 날아갔다.

 

조무성의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날아드는 술잔이 점점 크게 보였다. 만근 바위가 날아드는 듯했다.

 

그는 전 공력을 끌어 올려서 손을 뻗었다.

 

흐트러져 있던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듯이 나풀거렸다.

 

엄지와 검지, 중지를 뻗은 그는 조심스럽게 잔을 잡았다.

 

손가락 끝에서 짜르르한 전율이 일더니, 팔을 타고 온몸을 흔들었다.

 

부르르, 몸을 떤 그는 이를 악물었다.

 

푹.

 

앉아 있던 의자가 세 치가량 밑으로 꺼졌다. 이가 보일 정도로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다행히 그 이상의 충격은 없었다. 온몸을 짓누르던 상대의 기운도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내심 안도한 조무성은 술잔을 내려놓고 냉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흘러내린 머리카락 사이의 눈빛에는 자괴감이 떠올라 있었다.

 

“훗, 사공강후에게 멋모르고 덤볐다 박살 난 후로 오랜만에 패대기쳐진 개구리 신세가 되어 보는군.”

 

사공강후에게 형편없이 패한 후 실의에 빠져서 천사교와 싸우는 일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렇다 해서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는 생각은 해 보지 않았다. 사공강후가 비현실적으로 뛰어난 것일 뿐.

 

그런데 오늘, 확실하게 알았다.

 

세상은 넓고, 자신은 별 볼 일 없는 사람에 불과하다는 걸.

 

“크크크, 그동안 내 주제를 너무 몰랐어. 빌어먹을!”

 

자조에 찬 웃음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 때 임강령이 들어오며 한마디 했다.

 

“너무 자신을 비하할 필요는 없네. 질 사람에게 졌을 뿐이니까.”

 

멈칫하며 입구를 바라보던 조무성은 임강령을 알아보고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임 대협께서 이곳에는 웬일로……?”

 

“인사는 나중에 나누지. 촌각이 급하니까.”

 

조무성의 입을 틀어막은 임강령은 내심 안도하며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조무성의 부친 조수문은 그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조무성이 술기운을 빌어 공연한 객기라도 부렸다면 몸이 성치 못했을 터. 자존심이 꺾인 정도로 끝난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비록 사공강후에게 패한 뒤 자괴감에 빠져 자학하듯이 지내고 있지만, 조무성은 임강령이 괜찮게 생각하는 젊은이 중 하나였다.

 

그는 이번 일이 조무성에게 약이 되길 바랐다.

 

“저 친구는 내가 잘 아네. 관여치 말고 볼일을 보게.”

 

북궁천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두 여인을 바라보았다.

 

한 여인은 일어나 있고, 한 여인은 그때까지도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이는 이십 대 중반 정도. 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은 백의를, 서 있는 여인은 녹의를 입었는데 두 여인 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

 

“누가 이곳의 주인인가?”

 

두 여인은 자신들마저 조무성과 똑같이 대하는 북궁천을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들이 이런 대접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기분이 나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천녀가 이곳의 주인인 추상화예요.”

 

앉아 있던 백의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이제 스물대여섯밖에 안 될 것 같은 여인이 이렇게 큰 기루를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북궁천은 그에 대해서 조금도 의문을 품지 않았다. 능력만 있다면 더 어린 나이라 해도 얼마든지 주인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자격은 충분했다.

 

“왕두평이 그러더군. 무슨 일이든지 그대가 도와줄 거라고.”

 

“왕 회주님을 잘 아시나요?”

 

“조금.”

 

“그분이 그렇게 말했다는 걸 어떻게 믿지요?”

 

“그가 얼마 전에 누군가를 찾기 위해서 사람을 보낸 적이 있을 거다.”

 

“맞아요. 그런 적이 있어요. 공자와 연관 있는 일인가 보죠?”

 

“내가 시킨 일이라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군.”

 

백의여인, 추상화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그녀는 상황 판단이 빠른 여인이었다. 혼자의 힘으로 삼 년 만에 취향루를 열 배 이상 성장시켰을 정도로 머리 회전이 빠르고 영리했다.

 

―말 한마디로 왕두평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

 

그녀는 북궁천을 그렇게 평가했다.

 

수하로 보이는 자들의 뛰어남만 봐도 헛소리가 아니란 것 정도는 짐작하고도 남았다.

 

그녀는 자질구레한 질문을 모두 접었다. 상대에 따라 대하는 방법을 달리해야 하는 법.

 

눈앞의 청년에게는 시간을 끄는 게 독이 될 뿐이다.

 

“좋아요. 왕 회주님이 그리 말씀하셨다면 도와 드려야죠. 그런데 뭘 도와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지?”

 

“보표와 일꾼을 합하면 백 명 정도 된답니다.”

 

많진 않지만 적은 인원도 아니다. 더구나 그들은 등주 성내를 잘 아는 사람들. 등주 안으로 스며든 자들을 찾는 데는 어설픈 무사 몇 백보다 차라리 그들이 나았다.

 

“오늘 밤, 당하와 남양 사이의 길을 통해서 등주로 들어온 자들이 있다. 숫자는 모두 셋. 옷은 흑의를 입었고, 무기를 등에 맸으며, 한 사람은 제법 큰 보따리를 메고 있었을 거다. 그들이 들어온 시간은 한 시진 전후. 등주를 모조리 뒤엎어서라도 최대한 빨리 그들을 찾아 주었으면 좋겠군.”

 

“등주를 모두 뒤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군요.”

 

“날이 샐 때까지 찾으면 된다.”

 

어이가 없는지 추상화가 입을 반쯤 벌린 채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요. 운이 좋아서 바로 발견한다면 모를까, 그들이 숨어 있다면 불가능한 시간이에요.”

 

“어차피 그들은 오래 숨어 있지 않을 거다. 꼬리를 밟히기 전에 자기들의 본진으로 돌아가야 하니까. 어쩌면 이미 움직였을지도 모르겠군.”

 

그 말에 추상화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렇다면 전혀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군요.”

 

“한 가지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 그들이 지닌 보따리에 아기가 들어 있다. 아기가 다치면 안 되니 발견하더라도 함부로 접근하지 말고 우리에게 알려라.”

 

“아기요? 그들이 아기를 납치한 건가요?”

 

“돌 지난 지 몇 달 된 아기다. 그 아기를 찾기 위해서 놈들을 쫓고 있는 것이지.”

 

그 말을 하는 북궁천의 두 눈에서 스산함과 안타까운 아픔이 동시에 비쳤다.

 

추상화는 그 눈빛을 보고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정말 나쁜 사람들이군요. 알았어요. 그런 일이라면 최대한 협조하겠어요.”

 

그 때 임강령이 조무성에게 말했다.

 

“자네도 좀 도와줘야겠네.”

 

조무성은 자신의 자존심을 형편없이 구겨 놓은 자들을 도와줘야 한다는 게 마뜩치 않았다. 한밤중에 누군가를 쫓기 위해서 뛰어다니기도 싫었고.

 

하지만 그에게는 임강령의 말을 거절할 만한 배포가 없었다.

 

아마 부친이 있었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러죠.”

 

 

 

 

 

 

 

2장. 삼구통 흑미당

 

 

 

 

 

취향루에서 파견한 사람들은 동문 쪽부터 수소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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