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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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6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22화
122화
그가 명령을 내리자, 옆에 있던 무사가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아 올렸다.
쉬이이익, 펑!
폭음과 함께 이십 장 허공에서 붉은 폭죽이 터졌다.
그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좌우에서 무사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천사교의 지원무사 뒤쪽으로 쏟아져 내려가며 함성을 내질렀다.
“천사교 놈들을 척살하라!”
“모조리 지옥으로 보내 줘라!”
와아아아아!
“으아악!”
“놈들이 뒤에서 나타났다! 뒤를 막아!”
“천사의 영광을 위하여 놈들과 함께 죽자!”
천사교도들은 조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연합 세력 무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마종보나 혈문의 무사들은 천사교도와 달랐다. 그들은 방어에 치중하면서 빠져나갈 기회만 노렸다.
천사교 무리를 지휘하던 동마신 여립은 어이없는 상황에 이를 갈았다.
지원무사가 반밖에 안 온 상태에서 거꾸로 적이 양면협공을 해 온다.
여차하면 이곳에서 모두 뼈를 묻어야 할 상황.
“제기랄! 대체 소존과 혈뇌는 뭐 하고 있는 거야?”
교도들이 동귀어진을 망설이지 않으며 적에게 대항해 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무너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더구나 마종보와 혈문 무사들은 도망갈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전멸은 시간문제.
그는 결단을 내리고 악을 쓰듯이 후퇴 명령을 내렸다.
“모두 이곳을 빠져나가라! 후퇴!”
“후퇴!”
“후퇴하라!”
천사교 무리들은 썰물처럼 뒤로 물러나고, 정파 연합 세력은 기를 쓰며 그들을 추적했다.
시뻘겋게 채색된 골짜기에 남은 것은 팔백 구의 시신뿐.
시신에서 흘러나온 피가 골을 따라 흘렀다.
* * *
대승을 거두고 진원보를 완전히 탈환한 정파 연합 세력 수뇌부들은 후원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얼이 반쯤 빠졌다.
“저자는 나등위가 아닌가?”
“헉! 저 늙은이는 귀곡사 궁치! 도대체 저 노마를 누가 죽였단 말인가?”
“아미타불, 어쩐지 저들의 지원무사의 숫자가 적다 했더니, 허어어…….”
대충 세어 봐도 백수십 명이 죽거나 죽어 가고 있었다.
개중에는 강호에서 내로라하는 고수들조차 경악할 만한 자들도 제법 되었다.
임강령은 사람들이 경악해서 우왕좌왕하는 사이, 북궁천 일행이 남긴 흔적을 따라서 담장을 넘었다.
‘멀리 가진 않았을 거다.’
기다리고 있으면 북궁천이 연락해 올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한시가 급한 상황. 마음이 다급해서 기다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적산의 능선에서 진원보를 바라보고 있던 북궁천은 달려오는 사람이 임강령인 것을 알아보았다.
“여기요, 임 대협!”
진기가 실린 음성은 메아리를 일으키지 않고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 근 오 리나 떨어져 있는 임강령에게까지 들렸다.
임강령은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았다.
저 멀리 산 능선에 몇 사람이 서 있는 게 보였다. 북궁천과 그의 일행들이었다.
그가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빨리 내려오시게!”
북궁천은 임강령이 자신을 찾기 위해 직접 나선 걸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임강령은 구양환에게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입장이다. 자칫하면 구양환이 트집을 잡을 테니까.
그런데 전혀 그런 느낌이 없었다.
들켜도 상관없다는 듯.
심상치 않음을 느낀 북궁천은 산을 내려갔다.
“가 보자.”
북궁천을 만난 임강령은 구양영의 일에 대해서 말해 주었다.
담담하던 북궁천의 표정이 납덩이처럼 굳어졌다.
“그러니까, 구양영이 아기에 대해서 천사교 놈들에게 일러바쳤단 말입니까?”
임강령이 씁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하네. 하지만 정확한 장소는 구양 궁주도 말하지 않았다는군.”
장소를 알고 모르고는 나중 문제다.
천사교가 알고 있다는 것. 그들이 이미 움직였을 거라는 것. 그 자체가 큰일이다.
“아기는 어디에 있다고 합니까?”
북궁천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차가워졌다.
임강령은 착잡한 표정으로 자신이 아는 바를 말해 주었다.
“포원산장 동쪽 이십 리 떨어진 농원이라 하네. 이미 황보청과 종리기진이 연합 세력 고수 몇 명과 함께 아기를 찾기 위해서 떠났네.”
북궁천은 그 말을 듣고도 표정이 펴지지 않았다.
“그 사실을 좀 더 빨리 알려 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원보를 공격하기 전에 말이다.
임강령의 눈빛이 흔들렸다.
“솔직히 말하면…… 자네 말이 맞네. 비록 구양환과 약속을 하긴 했지만, 나 하나 욕먹을 각오를 했으면 알려 줄 수도 있었네. 총군사도 마찬가지 마음이었고. 그런데 워낙 많은 목숨이 걸린 일이다 보니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더군. 정말 미안하네.”
북궁천도 수천 무사를 지휘해 본 사람이다.
빌어먹을 그 입장을 어찌 모를까.
그는 무심한 눈으로 임강령을 지그시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저는 임 대협과 유 원주를 존중합니다. 계속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군요.”
아기가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그 일에 관련된 사람들은 각오해야 할 것이다.
누구든!
임강령이 왜 북궁천의 뜻을 모를까?
그는 입술을 깨물고 바람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겼다.
“나도 함께 가겠네. 그 일에 대해선 나도 책임이 있으니까.”
* * *
초강은 암경회 무사 셋과 함께 포원산장 주위 수십 리를 샅샅이 뒤지고 다녔다.
가지고 있는 초상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도 하고, 처음 보는 자가 머무는지도 세세히 알아보았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 밤이 다 되도록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역시 이곳이 아닌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몰랐다.
포원산장과 헌원려려의 관계를 잘 아는 구양환이다. 포원산장이 알게 되면 금방 소문이 날 텐데 왜 이곳에 숨긴단 말인가?
‘내가 너무 의외의 경우만 생각한 것 같군.’
쓴웃음을 지은 초강은 날이 밝으면 사형제들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그날 밤이었다.
“공자, 객잔 주인이 그러는데, 북쪽으로 십 리 떨어진 계곡에 농사짓는 작은 농원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 가 보시겠습니까?”
“농원?”
“그곳도 포원산장의 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말이 농원이지 실제로는 화전이나 다름없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고아가 된 아이들이 그곳에서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마지막으로 한 곳 더 수색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좋소. 그럼 내일 아침을 먹고 가 봅시다.”
아침이 되자 초강은 암경회 무사들과 함께 고아들이 산다는 곳으로 향했다.
십 리쯤 가자 완만한 산이 보였다.
암경회 무사 중 정만중이 손을 들어 산을 가리켰다.
“저 너머인가 봅니다, 공자.”
초강은 그가 가리키는 산을 바라보았다.
산은 대부분이 돌밭이었다. 저런 곳에 농사를 지을 곳이 있을까 싶었다.
누구보다도 아기의 중요성을 잘 아는 구양환이 아기를 저런 곳으로 보냈을까?
의문이 들긴 했지만 어느 곳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할 수는 없었다.
“가 보지요.”
* * *
선선한 봄날의 아침.
능상악은 차를 한 잔 가득 따르고는 천천히 입가로 가져가 다향을 음미했다.
자신들이 머무는 건물 앞쪽, 고아들이 사는 곳에서 떠들어 대는 소리가 참새 지저귀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담담히 웃으며 그 소리를 즐겼다.
이곳에 온 지 어느덧 두 달.
언젠가부터 수룡위사대원들이 고아들 중 몇 명에게 사소한 무공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고아들의 숫자는 삼십여 명. 남자애가 스물, 계집아이가 열 명 정도 되었다.
나이는 이제 일고여덟 살부터 열댓 살까지 다양했다.
그 아이들 중 몇 명은 체격 조건이나 근골이 빼어나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했다.
하기에 자신도 고아들 중 두 아이에게 심심풀이로 무공을 가르치고 있었는데, 지금 밖이 시끄러운 것은 그 아이들이 기초적인 체력 단련을 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의외로 괜찮은 아이들이 많아.’
능상악은 자신이 직접 가르치는 두 아이를 삼성궁으로 데려갈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 중이었다.
자신이 고민할 만큼 뛰어난 아이들이었다.
‘수룡위사대가 되기에 충분한 아이들이야.’
그런 아이들을 포원산장에 넘겨줄 순 없는 일.
그는 내심 결정을 내리고 찻잔을 입에 가져갔다.
그런데 바로 그 때.
‘음?’
섬뜩한 느낌에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찻잔을 내려놓은 그는 고개를 들고 공력을 끌어 올려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사방에서 싸늘한 기운이 밀려들고 있었다.
상당히 강한 기운!
‘웬 놈들이?’
능상악은 옆에 놓인 검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밖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누구냐!”
“웬 놈인지 몰라도 걸음을 멈춰라!”
직후, 날카로우면서도 강맹한 기운이 농원 내부로 짓쳐 들어갔다.
“놈들이 아기의 방으로 간다! 막아!”
능상악은 찰나도 지체하지 않고 몸을 날렸다.
그가 밖으로 나가기도 전에 신음이 들렸다.
“크윽!”
덜컹!
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간 능상악은 아기가 있는 방을 바라보았다.
방문은 부서져 있고, 부서진 방문 앞에는 무사 하나가 가슴에서 피를 흘리며 안간힘을 다해 일어나려 하고 있었다.
그가 데리고 온 수룡위사대 일조원 일곱 중 하나였다.
나머지 일조원 여섯은 흑의괴인 넷과 뒤엉켜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쩌저정! 채챙!
수룡위사대 중에서도 고르고 고른 일조원들이다. 숫자도 그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흑의인들에게 밀렸다.
능상악은 그들을 놔둔 채 아기가 있는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목과 풍만한 가슴에서 시뻘건 피가 쏟아지는 유모가 보였다. 그런데 그녀에게 안겨 있어야 할 아기가 보이지 않았다.
방의 반대쪽 창문이 부서진 상태.
그야말로 숨 한 번 쉴 시간 만에 침입자가 아기를 납치해 간 것이다.
“빌어먹을!”
그는 곧장 부서진 창문을 통해 뒤뜰로 나갔다.
그 직후, 구양우경이 미친 듯이 소리치며 방으로 들어왔다.
“우리 진아! 진아야! 진아야!”
그는 피로 범벅된 방 안을 둘러보더니 몸을 덜덜 떨었다.
“지, 진아…… 우리 진아가, 내 진아가…….”
덜덜 떨며 쉴 새 없이 두리번거리는 그의 두 눈에서 광기가 일렁거렸다.
막 산을 넘어가던 초강은 산 너머 계곡 쪽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리자 흠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소리만 들어도 예사로운 싸움이 아니었다.
‘상당한 실력을 지닌 자들이 싸우고 있다!’
그는 암경회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암경회에서 한가락 하는 자들일지는 몰라도 강호의 고수들을 상대할 정도는 아니다.
저 너머에서 싸우는 자들이 적이라면 목숨을 부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여기 있으시오.”
암경회 무사 셋도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바짝 긴장한 터였다.
강호 고수들의 싸움에 끼어들 마음이 조금도 없던 그들은 초강의 말이 고맙기만 했다.
“예? 예.”
“내가 넘어간 후로도 계속 싸우는 소리가 나거든, 즉시 돌아가서 사람들에게 알리시오.”
“알겠습니다, 공자.”
초강은 그들을 놔두고 능선을 넘어갔다.
싸우는 소리가 좀 더 확실하게 들렸다.
‘사형들이나 조량이 왔을 리는 없다. 그럼 누구지?’
누가, 왜 싸움을 벌이는 걸까?
그 때 누군가의 외침이 들렸다.
“진아야! 진아야아아!”
초강이 눈을 치켜떴다.
진아!
대형 아기의 이름이 아닌가?
그는 몸을 낮추고 싸우는 소리가 나는 곳으로 전진했다.
산을 거의 다 내려갔을 즈음 비명이 들렸다.
“으악!”
“아기를 안은 놈을 막아!”
“대공자를 지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