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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19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5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19화

 

119화

 

 

 

 

 

 

 

냉랭한 임강령의 말에 구양영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서찰을 받고 없앨 틈도 없이 주위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 바람에 일단 품속에 간직한 채 회의에 참석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몰려든 것이 임강령의 술수였단 말인가?

 

그가 부들부들 떠는 사이 임강령이 서찰을 펼쳤다. 슬쩍 서찰을 살펴보던 그의 표정이 급변했다.

 

“이, 이런!”

 

느닷없는 그의 변화에 유원당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내용인데 그리 놀라시는 거요?”

 

임강령은 그 서찰을 구양환이 볼 수 있도록 돌려서 내밀었다.

 

“읽어 보시오.”

 

굳이 받을 것도 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서찰을 본 구양환이 눈을 치켜떴다.

 

홱 고개를 돌린 그가 구양영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네, 네놈이 미쳤구나!”

 

 

 

공격 계획이 정해지면 즉시 연락할 것. 아기의 위치를 좀 더 정확히 알아낼 것. 천사의 영광을 위하여.

 

 

 

그때였다.

 

구양영이 턱을 쳐들더니 차갑게 소리쳤다.

 

“천사의 뜻을 거스르는 자는 죽어서 모두 지옥으로 던져질 것이다!”

 

사람들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구양영을 쳐다보았다.

 

순간, 구양영의 몸이 부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얼굴빛이 파랗게 물들어 가며 뻣뻣한 자세로 쓰러졌다.

 

임강령은 처음부터 그가 자결할지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혈을 막지 않았다.

 

그가 간세라는 것만 밝히면 되었다. 굳이 정보를 얻기 위해서 고문할 생각은 없었다.

 

천사교도들은 죽음과 고통을 웃으면서 맞이하는 자들, 세상의 어떤 고문도 통하지 않는 자들인 것이다.

 

오히려 그보다는 아기에 대한 문제가 더 중요했다.

 

구양영이 아기에 대해서 천사교에 알려 준 듯했다. 문제는 그들이 어디까지 아느냐 하는 것이었다.

 

“궁주, 구양영에게 아기에 대해서 얼마나 알려 주었습니까!”

 

구양환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당황하고 있던 연합 세력 간부들은 아기 이야기가 나오자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무슨 아기?”

 

“아기라니? 대체 그게 무슨 말이오?”

 

“궁주!”

 

임강령이 다시 한번 답을 재촉했다.

 

그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구양환이 입술을 깨물고 말했다.

 

“걱정할 것 없네. 정확한 위치에 대해선 알려 주지 않았으니까.”

 

이번에는 유원당이 다급히 물었다.

 

“좀 더 정확히 알아내라는 말인즉 대충은 알고 있단 말이 아닙니까?”

 

“흥, 남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 있다고만 했네. 그 정도로는 찾을 수 없을 거네.”

 

“정말입니까?”

 

“정말이네. 그런데 자네들은 아기에 대해서 어떻게 알지? 그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나와 약속했는데. 흥, 그러고 보니 그가 나와의 약속을 어겼군.”

 

구양환은 그 상황에서도 북궁천이 약속을 어긴 점을 추궁했다.

 

하지만 유원당과 임강령은 북궁천이 아니었다. 그에 대한 책임 문제는 나중에 논의해도 되었다.

 

―천사교 놈들이 아기를 찾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누구보다 궁주께서 잘 아실 겁니다. 아기가 있는 곳을 알려 주십시오.

 

임강령이 전음으로 다그쳤다. 회의장 안팎에 또 다른 간세가 있을지 누구도 모르는 것이다.

 

하지만 구양환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들은 찾지 못하네.

 

―어차피 이번 일이 끝나면 아기를 돌려주기로 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굳이 숨길 것도 없는 일 아닙니까?

 

그 말에 구양환의 마음이 흔들렸다.

 

내일 싸움이 벌어질 것이다. 그 싸움에서 북궁천이 도와 승리한다면 아기를 돌려줘야 한다.

 

아기를 지금 찾으러 간다 해도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는 돌아올 수 없을 터. 말하지 못할 것도 없었다.

 

다만 문제는 북궁천이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경우였다.

 

―좋네. 단, 북궁천에게 미리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게. 그리고 아기를 찾으러 사람을 보낼 때 내가 붙여 주는 사람과 함께 보내도록 하게. 북궁천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해야 하니까. 그는 이미 약속을 어긴 자가 아닌가?

 

임강령으로선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아기는 어디에 있습니까?

 

 

 

 

 

 

 

8장. 피를 보기에 좋은 날씨

 

 

 

 

 

새벽어스름이 안개를 몰고 밀려들 무렵.

 

북궁천은 궁산을 나와 진원보에서 십 리가량 떨어진 적산까지 접근했다.

 

적산의 능선에 서면 진원보가 한눈에 들어왔다.

 

거리가 좀 멀어서 사람을 분간하기가 쉽진 않지만, 전체적인 움직임을 살펴보는 것 정도는 무리가 없었다.

 

북궁천은 그곳에서 정파 연합 세력의 공격을 기다리기로 하고 적당한 장소에 자리를 잡고 쉬었다.

 

언제 공격할지 정확한 시간을 알 순 없었다.

 

그래도 오늘을 넘기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유원당이 자신에 대해 알고 있는 이상 공격을 미루지는 않을 것이었다.

 

“추람, 아기가 나를 닮았으면 무척 잘생겼을 거야. 그렇지?”

 

바위에 등을 기대고 있던 북궁천이 심심한 듯 엉뚱한 소리를 했다.

 

장추람은 당연하다는 듯 대답하며 박자를 맞췄다.

 

“물론이지요.”

 

냉호와 철교신이 장추람을 째려보았다.

 

‘어디를 봐서?’

 

‘저 인간이 아부를 잘하는 줄은 오늘 처음 알았군.’

 

사실 북궁천은 잘생겼다.

 

판단 기준이 냉호나 철교신과 조금 다를 뿐.

 

냉호는 북궁천과 장추람이 잘생겼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

 

우선 키가 너무 컸다. 지금은 살이 많이 빠져서 그나마 낫지만, 북궁천도 장추람 이상으로 덩치가 컸다. 얼굴도 잘 뜯어보면 우락부락하게 생겼고.

 

남자답게 생겼다고 하면 몰라도 잘생긴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철교신 역시 냉호와 생각이 비슷했다.

 

남자라면 적어도 자신처럼 생겨야 잘생겼다고 할 수 있었다.

 

적당한 키, 적당하면서도 단단한 몸, 묵직한 표정.

 

그런데 북궁천과 장추람은 너무 컸다. 자신보다 단단하게 보이지도 않았고, 표정도 자신보다 가벼웠다.

 

북궁천은 그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고 꿈을 꾸듯이 말했다.

 

“나는 조부님처럼 내 아들을 힘들게 키우지 않을 거다. 어릴 때는 많이 놀게 해 주고, 자유스럽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할 거다.”

 

“그러면 아이가 자기 좋아하는 일만 하려고 한다던데요?”

 

“하라지, 뭐.”

 

“아이가 처음에 길을 잘못 들면 나중에 고칠 때 무척이나 힘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주군.”

 

“힘들어도 내가 힘든 거 아니겠어? 내가 편하기 위해서 어릴 때부터 아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강요할 순 없잖아?”

 

“버릇이 없는 아이는 아무리 똑똑해도 미움받는 법입니다. 그래서 가정교육이 필요한 거죠.”

 

“아들 있어?”

 

“……아직 장가도 안 갔습니다.”

 

“없으면서 왜 미리부터 걱정을 해?”

 

“그래도 아이는 엄하게 키워야 한다고 어른들이 말하지 않습니까?”

 

“엄하게 키우는 것은 려려가 잘할 거야. 내 청혼을 일언지하에 거절해 버린 여자가 바로 려려 아니야? 한번 한다고 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하는 여자지.”

 

장추람이 커다란 눈을 깜박였다.

 

“주모가 주군의 청혼을 거부했었단 말입니까?”

 

냉호가 실눈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생각해 본다며 미룬 게 아니었습니까? 그러다 갑자기 떠났다면서요?”

 

오직 철교신만이 주군의 말에 대해서 토를 달지 않았다.

 

‘어쩐지…….’

 

속으로만 뇌까렸을 뿐.

 

사실 그들로서는 그런 말을 할 만도 했다.

 

이전에 북궁천이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청혼하자 헌원려려가 생각해 보겠다는 말을 했다고.

 

그것만으로도 장추람 등은 헌원려려의 배포가 제법 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차 버렸다니!

 

북천마제를!

 

그러고도 육 개월 동안이나 버텼다고?

 

북천마제의 고집이 얼마나 센데!

 

정말 대단한 여인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니 려려는 아기를 엄하게 키우고, 나는 놀아 주고. 그럼 되는 거 아니겠어?”

 

북궁천은 그렇게 말을 맺었다.

 

결국 힘든 자식 교육은 부인에게 맡기고, 자신은 아들과 놀기만 하겠다는 뜻.

 

장추람과 냉호, 철교신은 어이가 없었다.

 

아들 하나 생겼다고 북천마제가 저렇게 변해 버리다니!

 

그 때, 능선 위에서 진원보를 감시하던 임표가 달려왔다.

 

“주군, 진원보의 움직임이 바빠지고 있습니다.”

 

북궁천이 언제 그랬냐는 듯 무심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피를 보기에는 좋은 날씨군. 이런 날은 피 색깔이 선홍빛으로 아름답게 반짝거리지.”

 

그를 흘겨보던 장추람과 냉호, 철교신도 어깨를 펴고 일어났다.

 

계곡을 어루만지며 스쳐 가던 봄바람이 한겨울 북천의 대지를 꽁꽁 얼려 버리는 한풍처럼 차가워졌다.

 

 

 

* * *

 

 

 

“총군사, 그에게 정말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겠소?”

 

유원당은 임강령의 질문을 받고 허공을 바라보았다.

 

약속을 했으니 지켜야 한다. 약속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은 전체를 지휘할 자격이 없다.

 

하지만 욕을 먹고 총군사 직위에서 물러나더라도 북궁천을 찾아서 사실을 말해 주고 싶었다.

 

오늘의 싸움이 일천, 아니, 앞으로 싸울 것까지 생각할 경우 수천의 목숨이 걸린 일만 아니라면 말이다.

 

“임 대협, 저도 그러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가 나중에 저를 원망한다 해도…….”

 

“그가 약속을 내팽개치고 달려갈 것이 우려되오?”

 

임강령의 그 말에 유원당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분명히 그럴 사람입니다.”

 

임강령도 모르지 않았다. 북궁천에게는 중원의 운명을 건 싸움보다 아기가 더 중요할 테니까.

 

“만에 하나 아기가 잘못되면 그가 우리를 향해 분노할 수도 있소.”

 

“그럴지도 모르지요. 그때는…… 제가 목숨을 내놓고 용서를 빌겠습니다.”

 

결연한 유원당의 말에 임강령이 흠칫했다.

 

“총군사?”

 

“사람을 보냈으니 일단 그들을 믿어 보도록 하지요.”

 

“차라리 공격을 늦추고 아기를 찾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어떻겠소?”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저들도 지금쯤 구양영의 죽음을 알았을 것이니, 우리가 공격을 늦추면 마제가 아기를 찾기 위해 이곳에 없다는 걸 짐작하고 먼저 공격해 올 겁니다.”

 

“철저히 수비를 하면…….”

 

임강형이 이마를 찌푸리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유원당이 느릿하니 고개를 저었다.

 

“지금 상황에서 양패구상은 패배나 마찬가집니다.”

 

답답하지만 길은 외길밖에 없었다.

 

 

 

* * *

 

 

 

사시가 얼마 남지 않은 시각.

 

이백여 명으로 보이는 무사단이 진원보의 서쪽에서 나타나더니 빠르게 진원보 안으로 사라졌다.

 

그로부터 한 시진 정도 흘렀을 때, 진원보에서 사오백에 달하는 무사가 쏟아져 나왔다.

 

그 직후, 인근 마을에 머물고 있던 무사 오백 역시 마을을 빠져나와 그들과 합류했다.

 

그들은 진원보에서 동쪽으로 십여 리 떨어진 언덕 위, 공격과 방어에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서 연합 세력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가 볼까?”

 

북궁천이 움직인 것은 그때였다.

 

그들은 적산을 내려와서 진원보로 향했다.

 

겉은 한량처럼 느긋했지만 속에선 투지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적산에서 진원보 사이에는 야트막한 언덕이 서너 개 이어져 있었다.

 

북궁천 일행은 가슴 어림까지 자란 잡초를 헤치고 일직선으로 나아갔다.

 

그들을 처음으로 발견한 자들은 남쪽을 순찰하던 제팔 법당주 휘하 삼조 조원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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