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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15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1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15화

 

115화

 

 

 

 

 

 

 

* * *

 

 

 

진원보에 있던 호연유는 단화린이 나타났다는 보고를 받고 눈을 부릅떴다.

 

“그놈이 또 나타났다고?”

 

“헌원려려에게 아기가 있었는데, 그동안 삼성궁 깊숙한 곳에서 몰래 키운 것 같습니다. 헌원려려가 부상을 당해서 정신을 잃는 바람에 모르고 떠났다가 뒤늦게 그녀의 말을 듣고 찾으러 왔다고 합니다.”

 

“헌원려려에게 아기가 있다? 누구의 아기지? 설마…… 북천마제의 아기?”

 

호연유가 눈빛을 번뜩이며 정확히 짚어 냈다.

 

혈뇌 사야승도 같은 생각인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것 같습니다, 소존.”

 

“아기는 지금 어디 있소?”

 

“아기가 있는 장소를 아는 사람은 구양환뿐입니다.”

 

“아기를 어딘가로 데려갔다면 데려간 사람이 있을 것 아니오?”

 

“호교육령도 수룡위사대주 능상악이 데려갔다는 것만 파악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능상악은 아기를 데려간 후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능상악을 찾으면 아기 있는 곳도 찾을 수 있단 말이군.”

 

“아기를 찾으면 단화린을 제어할 수 있을 겁니다.”

 

호연유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사악한 눈빛을 번뜩였다.

 

“바로 그거요. 즉시 사람을 보내서 능상악의 위치를 찾아보시오.”

 

“예, 소존.”

 

“상주에 계신 천사지존께서 진원보에 도착하시면 본격적인 공격이 시작될 것이니, 그 전에 찾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야…….”

 

“최대한 빨리 찾아보겠습니다.”

 

 

 

* * *

 

 

 

석검장으로 돌아간 구양환이 차를 마시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구양영이 들어왔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형님?”

 

“내일 대답해 준다더군.”

 

“시간을 끌겠다는 뜻이군요.”

 

“흥, 그래 봐야 소용없을 거다. 결국 제 놈의 속만 탈 뿐이지.”

 

“놈은 분명 다른 사람에게 알릴 것입니다. 그래야 형님을 구석으로 몰아서 자신의 뜻을 관철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하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다.”

 

구양환은 냉랭히 말하고는 구양영을 직시했다.

 

“상곡진의 싸움은 어떻게 되고 있느냐?”

 

“백리진이 유원당의 계획에 따라서 저들을 공격했다가 물러서고, 공격했다가 물러서고를 반복하는 상황이라 합니다.”

 

“쯔쯔쯔, 그게 무슨 짓인지 원. 그렇게 해서 언제 놈들을 이긴단 말이냐?”

 

“그래도 적은 피해로 상당한 적을 추살한 모양입니다.”

 

“잔머리는 제법이다만, 대국을 보는 눈이 없군.”

 

“조금 더 지켜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다시 위 각주를 내세워야겠습니다.”

 

“일단 단화린이 내 요구만 받아들인다면 상황을 급변시킬 수 있다. 그때 가서 바꿔 버리자.”

 

“예, 형님. 그런데 진아라는 아이는 어디에 있는 겁니까?”

 

구양환의 얼굴에 조소가 떠올랐다.

 

“후후후, 사람들이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곳에 있다. 아마 단화린이란 놈도 아기가 그곳에 있는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을 거다.”

 

 

 

* * *

 

 

 

북궁천은 밤을 이용해서 내향으로 들어갔다.

 

유원당은 석검장에서 백여 장 떨어진 작은 장원에 기거했다.

 

장원은 비록 작지만 각 세력이 거주하는 곳의 중앙이어서 어떠한 명령을 내리기에는 위치상으로 가장 적당했다.

 

또한 연합 세력에게 둘러싸인 데다 오십여 명의 호위가 그를 지키고 있어서 안전에서도 걱정이 없었다.

 

그래 봐야 북궁천이 안으로 들어갔는데도 그림자조차 발견하지 못했지만.

 

황보청과 종리기진은 유령처럼 눈앞에 나타난 북궁천을 보고 포권을 취했다.

 

임강령의 말을 듣고 이제나저제나 하며 기다리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반가움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기만 할 뿐, 남의 귀를 의식해서 인사를 건네지는 않았다.

 

북궁천도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종리기진이 방문을 열자 안으로 들어갔다.

 

유원당은 담담히 웃으며 북궁천을 맞이했다.

 

“어서 오게.”

 

“총군사가 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원주.”

 

“글쎄. 이게 축하받을 일인지 모르겠군. 어깨만 무거워졌는데 말이야.”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니잖습니까?”

 

“그건 그렇지. 자, 앉게나.”

 

북궁천이 의자에 앉자 종리기진이 찻잔을 놓고 차를 따랐다.

 

유원당은 일단 차로 입술을 축인 후 말문을 열었다.

 

“마음이 답답하겠군.”

 

“결국 제가 멍청해서 벌어진 일이죠. 솔직한 마음으로는 한바탕 뒤집어 버리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더 화가 납니다.”

 

“구양 궁주도 적이 삼성궁 지척까지 밀려와 있으니 마음이 조급할 거야.”

 

“아무리 그래도 아기를 볼모로 삼는 것은 정파인이 할 일이 아니잖습니까?”

 

“물론 그렇지.”

 

“그는 일단 두 가지 요구를 들어주면 아기를 건네주겠다고 합니다. 남은 세 가지 요구는 그 후에 들어 달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유 원주님의 의견을 들어 보고 싶습니다.”

 

유원당은 찻잔을 내려놓고 북궁천을 직시했다.

 

“대협이 되어야 한다고 했지 아마?”

 

북궁천의 입가에 쓴웃음이 매달렸다.

 

“려려가 그걸 원했지요.”

 

“그 마음 아직 버린 것은 아니겠지?”

 

북궁천은 유원당의 말투에서 수상함을 느끼고 슬쩍 말을 비틀었다.

 

“이제는 려려도 제 마음을 이해해 주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대협이라는 말에 얽매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도 대협이라 불리면 그녀가 더욱 좋아할 것 같은데.”

 

그러긴 할 것이다.

 

하지만 조건 때문에 대협이 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네가 아기를 구하기 위해서 천사교와 싸우면, 그나마 남아 있던 앙금마저 털어 낼 것처럼 보이네만.”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북궁천은 유원당을 직시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원주께서도 제가 구양환의 조건을 받아들이기를 바라시는 겁니까?”

 

“솔직히 말하겠네. 구양 궁주는 내가 말을 해도 듣지 않을 사람이네. 그러니 일단은 구양 궁주의 조건을 받아들였으면 싶네. 그럼 내가 책임지고 아들을 무사히 돌려주도록 힘쓰겠네.”

 

북궁천의 눈빛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유 원주께서 그리 말씀하시다니, 실망이 크군요.”

 

“북천궁의 운명이 걸린 큰 싸움에서 패배가 눈앞에 닥쳤는데 마침 큰 힘이 되어 줄 사람이 나타났다고 생각해 보게. 자네라면 어떡하겠나? 내 생각으로는 자네도 나와 다름없는 선택을 했을 것 같네만.”

 

“전에는 그랬을지 몰라도 지금은 안 합니다.”

 

“나 역시 군사가 아니었다면 무조건 반대했을 거네. 하지만 군사가 된 이상은 승리가 최대의 목적이네. 내 사람을 살리고, 강호를 지켜야 하니까. 더구나 나는 북천마제처럼 힘 있는 사람이 아니라네. 욕을 먹고 자네에게 도움을 받을 수만 있다면 열 번이라도 먹겠네.”

 

“정말 그러실 겁니까?”

 

“아기를 떠나서, 도와준다 생각하고 한 번만 나서 주게. 자네가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서 싸우는 것도 나쁠 것은 없지 않은가?”

 

북궁천은 입을 꾹 다물고 유원당을 노려보았다.

 

그 때였다.

 

유원당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털썩 무릎을 꿇고 허리를 숙였다.

 

“도와주게, 궁주!”

 

황보청과 종리기진도 그를 따라서 무릎을 꿇고 머리를 깊숙이 숙였다.

 

“도와주십시오, 대형!”

 

“대형!”

 

북궁천의 눈빛이 흔들렸다.

 

유원당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이다. 남이 하란다고 해서 무릎 꿇을 사람이 아니다. 황제라 해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뻣뻣할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무릎 꿇고 사정한다.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도 아니고, 명예욕 때문도 아니다.

 

북궁천은 문득 ‘대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유원당이야말로 대협이라 불릴 수 있는 사람일지 몰랐다.

 

‘빌어먹을.’

 

넙죽 받아들이자니 마음에 안 들고, 그렇다고 매몰차게 거절할 수도 없고…….

 

“후우우우.”

 

한숨을 길게 쉰 그는 유원당을 째려보았다.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유 원주님을 원망할지도 모릅니다.”

 

유원당은 북궁천이 승낙하기로 했다는 걸 알고 고개를 들었다.

 

“고맙네.”

 

“그만 일어나십쇼. 제가 꼭 나쁜 놈 같지 않습니까?”

 

유원당은 몸을 일으키고 미소를 지었다.

 

“북천 사람들이 자네를 왜 마제라고 부르는지 영문을 모르겠군. 내가 보기에는 의협심을 품고 있는 멋진 사람인데 말이야.”

 

유원당을 째려보는 북궁천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낯간지러운 소리 그만하십시오. 그보다, 밖에 계신 분들을 들어오라고 하시지요? 밤에 불러 놓고 너무 오래 세워 두시는 거 아닙니까?”

 

유원당이 그제야 고개를 돌리고 정중히 말했다.

 

“모시고 들어오게.”

 

곧 방문이 열리고 사공강후가 관호명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오랜만이오, 단 형.”

 

“잘 지냈나?”

 

북궁천도 그 두 사람에 대해선 나쁜 감정이 없었기에 담담한 표정으로 인사를 받았다.

 

“잘 지냈으면 좋을 텐데, 그러지 못해서 문제요.”

 

“자, 서서 그러지 마시고 앉으시지요.”

 

유원당이 미소를 지으며 의자를 가리켰다.

 

 

 

차를 따르는 사이 잠시 침묵이 흘렀다.

 

유원당이 직접 차를 따르고 주전자를 내려놓자, 차를 한 모금 마신 관호명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역시 구양 궁주의 행위가 마음에 안 드네. 아기의 안전에 대해서 본 회도 보증을 서지. 만약 구양 궁주가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천무회의 이름으로 강호에 모든 사실을 알리고 삼성궁과의 연합에서 손을 떼겠네.”

 

북궁천은 삼성궁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었다.

 

그들이 망하든 말든 그들보다 아기가 더 중요했다.

 

“그보다 다른 약속을 해 주시죠.”

 

“다른 약속? 뭔가?”

 

“만약 요구한 일을 이행하는 도중에라도 아기가 있는 곳을 알게 되면 찾아내는 일을 도와주십시오.”

 

“그거야 어려울 것 없지. 대신 아기를 찾더라도 도와주겠다는 약속은 지켜야 하네.”

 

“걱정 마십시오. 한번 한 약속은 하늘이 무너져도 지키는 사람이니까.”

 

사공강후가 그 말을 듣고는 북궁천에게 물었다.

 

“만약 북천마제가 아기를 데리고 곧장 돌아오라고 한다면? 그래도 단 형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여기에 남을 거요?”

 

유원당과 황보청, 종리기진이 거의 동시에 슬쩍 북궁천을 쳐다보았다.

 

과연 뭐라고 대답할까?

 

그런데 북궁천이 말했다.

 

“북천마제는 그런 명령을 내리지 않을 거요.”

 

“그걸 단 형이 어찌 단언할 수 있단 말이오?”

 

“북천마제가 약속을 지킨다고 자신의 입으로 말했으니까.”

 

“예? 언제……?”

 

“방금.”

 

사공강후는 그 말을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의아한 표정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관호명은 북궁천의 정체를 눈치채고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맙소사, 설마 자네가……?”

 

북궁천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이에게 이상이 생기면, 중원은 천사교보다 더 독한 싸움꾼들을 상대해야 할 거요.”

 

뒤늦게 사실을 깨달은 사공강후가 벌떡 일어났다.

 

“그, 그럼 단형이 북천마제 북궁천?”

 

“그렇소. 나는 단화린이기도 하고, 북궁천이기도 하오. 그러니 미리 알려 주지 않았다고 해서 서운해하진 마시오. 그리고 될 수 있으면 앞으로도 계속 단화린으로 불러 주시오.”

 

서운하진 않았다.

 

간이 떨어질 것처럼 놀랐을 뿐.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른 사공강후가 다급히 말했다.

 

“구양 궁주도 단 형의 정체를 알면 아기를 돌려주지 않겠소?”

 

“그는 이미 알고 있소.”

 

“알고도 아기를 돌려주지 않았단 말이오?”

 

“아니까 돌려주지 않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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