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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13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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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마정록 113화

 

113화

 

 

 

 

 

 

 

“정말 똑같이 그렸군. 아주 완벽해.”

 

북궁천은 화공에게 똑같은 그림을 석 장 그리게 했다. 그리고 그림을 다 그린 화공에게 은자 열 냥을 줘서 내보냈다.

 

누구에게도 오늘 일을 발설하면 안 된다는 걸 두 번, 세 번 상기시킨 후.

 

화공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은자를 꽉 움켜쥐고 상기된 얼굴로 방을 나갔다.

 

북궁천은 석 장의 초상을 작게 접어서 이조량에게 건네주었다.

 

“남양의 암평도국을 찾아가서 그곳 주인인 왕두평이란 자를 만나라. 그에게 내가 보냈다고 말하고, 삼성궁에서 동쪽, 동남쪽, 동북쪽으로 이백 리 이내를 샅샅이 뒤져 이 그림에 있는 자를 최대한 빨리 찾아내라고 해라.” 

 

“예, 대형.”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 되니 가까이 접근하지 말라고 해. 아기가 다칠지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정한, 네가 호량과 초강을 데리고 따라가라.”

 

“예, 대형.”

 

“너희를 믿겠다.”

 

이정한은 북궁천의 그 말에 가슴이 찡하니 울렸다.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기다.

 

대형은 자신들을 믿고 가장 큰 임무를 맡긴 것이다.

 

“최선을 다해서, 반드시 아기를 찾아내겠습니다, 대형!”

 

 

 

* * *

 

 

 

“빠아아아아.”

 

“헤헤헤. 진아야, 배고파?”

 

“빠아아아. 쭈우우우.”

 

“헤헤헤, 조금만 기다려.”

 

청년은 문을 열고 밖을 향해 소리쳤다.

 

“아줌마, 빨리 와! 진아 배고프대!”

 

곧 삼십 대로 보이는 여인이 달려왔다.

 

방으로 들어간 그녀는 아기를 안고 두어 번 흔들어 주더니 코를 찡그렸다.

 

“오줌 쌌구나, 우리 진아.”

 

“좀 전에 쌌어. 내 옷도 젖었어.”

 

청년이 자신의 가슴을 가리켰다. 청년의 옷이 누렇게 물들어 있었다.

 

“아이고, 공자님. 그럼 저에게 말씀하셔야죠.”

 

“헤헤헤, 괜찮아. 진아가 싼 건데, 뭐.”

 

“어서 벗으세요. 그대로 놔두면 제가 혼나요.”

 

“괜찮다니까?”

 

“벗으라니까요.”

 

방 안에서 청년과 여인이 오줌에 젖은 옷을 두고 실랑이를 벌인다.

 

밖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중년인은 착잡한 표정으로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차라리 그렇게 사시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소, 대공자.’

 

풍운의 꿈을 안고 삼성궁에 들어온 지 이십오 년.

 

이십 년 만에 수룡위사대 대주위에 오른 그는 정파인으로서 한 번도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수룡위사대 중 대공자를 호위하는 조원들이 이상한 일을 하고 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젊은 주인을 모시다 보니 그런 것이려니 했다.

 

그늘에서 살아가다 보면 옳고 그름을 분간 못 할 때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더구나 수룡위사대는 호위할 대상자와 한 몸처럼 움직여야 하는 만큼 오직 호위 대상자의 명령만 받게 되어 있다.

 

숨기려 마음먹으면 자신은 알 수조차 없었다.

 

단순히 핑계일지 모르지만, 그래서 그들이 그토록 참혹한 짓을 저질렀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 결과 대공자 구양우경이 저렇게 되었고, 수룡위사대는 와해되다시피 했다.

 

일이 그렇게 된 것에는 어쨌든 자신의 책임이 컸다.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후우우우. 이번 일만 끝나면 궁을 떠나야 할 것 같구나.”

 

그 때 방 안에서 구양우경이 투덜거리며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삼성궁이 보유하고 있던 영약과 검신가의 원로들이 전력을 기울인 덕에 그의 부상은 예상했던 것보다 많이 완화되었다.

 

하지만 한쪽 무릎은 완전히 부서져서 뼈가 붙긴 했어도 관절이 구부러지지 않아 지팡이가 없으면 걷기 힘들 만큼 심하게 절었다.

 

정신 상태도 오락가락했고.

 

“싫어! 아줌마는 진아 젖이나 줘!”

 

능상악은 쓴웃음을 지으며 구양우경에게 말했다.

 

“대공자, 옷을 벗어 주고 새 옷으로 갈아입으십시오.”

 

그런데 구양우경이 눈을 부릅뜨고 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뭐야? 지금 나에게 명령을 내리겠다는 거냐?”

 

“공자…….”

 

능상악은 갑자기 달라진 구양우경의 목소리에 흠칫했다.

 

그는 가끔 제정신이 들곤 했는데, 그럴 때는 과격한 행동을 했다.

 

만약 그런 행동을 한다면 재빨리 수혈을 제압해야 구양우경이 다치지 않았다.

 

무공을 잃은 데다 다리까지 불구인 그가 예전 생각만 하고 무리한 행동을 할 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구양우경은 곧 얼굴을 찡그리더니 어린아이 고집 부리듯이 칭얼댔다.

 

“정말 싫다니까? 귀찮단 말이야. 능 대주가 아줌마 좀 말려 줘. 나 이 옷 내일 벗을 거야. 어차피 내일도 진아가 내 옷에 오줌 쌀 텐데, 뭐.”

 

능상악은 한숨을 쉬었다.

 

구양우경은 어제도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내일 벗을 것인지는 내일이 되어 봐야 알았다.

 

그래도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습니다. 그럼 내일은 꼭 벗어야 합니다?”

 

“알았어. 그렇게 할게.”

 

구양우경은 활짝 웃더니 절룩거리며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아줌마, 능 대주가 허락했어. 이제 진아 젖이나 먹여. 나는 아줌마 젖이나 구경할 테니까.”

 

“공자님!”

 

“우와! 크다! 한번 만져 보면 안 될까?”

 

“진아가 젖 먹고 있잖아요.”

 

“이쪽은 안 먹잖아. 진아야, 맛있어? 으으음, 나도 먹고 싶다.”

 

능상악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몸을 돌렸다.

 

‘이제 죽만 먹여야 할까 보군.’

 

진아라는 아기는 몸이 약해서 약이 든 죽과 젖을 번갈아 먹이고 있었다.

 

그런데 구양우경 때문에라도 젖을 떼야 할 듯했다.

 

‘이 일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군.’

 

 

 

* * *

 

 

 

밤새 고민하던 천종원은 유원당과 상의해 보기로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단화린이었다.

 

그는 단화린의 무서움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남들은 단화린의 강함만 걱정하지만, 천종원은 단화린이 지닌 절대경지의 무공보다 구양우경과 선우중을 단숨에 잡아낸 두뇌가 더 두려웠다.

 

만에 하나 일이 이상하게 흐르기라도 하면 연합 세력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지도 몰랐다.

 

그런데 다행히도 유원당이 단화린과 친했다.

 

유원당이라면 최악의 경우가 발생해도 적절하게 상황을 조절할 수 있을 듯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총군사.”

 

“말씀해 보시오, 천 령주.”

 

“어젯밤 구양 궁주께서 석검장을 나와 어딘가를 다녀오셨습니다.”

 

“궁주께서요?”

 

“적미진의 공자묘에 다녀오신 것 같습니다.”

 

“적미진까지? 사람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말이오?”

 

“예, 총군사.”

 

“왜 그곳까지 가신 거요? 삼성궁에 가시려 했던 거요?”

 

“아닙니다. 궁주께선…… 단화린을 만나러 갔습니다.”

 

유원당의 눈이 커졌다.

 

“지금 단화린이라고 했소?”

 

“그렇습니다, 총군사.”

 

“계속 말해 보시오. 아는 것 전부.”

 

“아직 별일이 있는 것은 아니니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진 마십시오.”

 

“아니오. 매우 심각한 일이오.”

 

“예?”

 

“그 일에 비하면 상곡진의 승패는 아무것도 아니오. 그러니 아는 것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모두 말하시오.”

 

천종원은 유원당이 자신보다도 더 단화린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일단 말하기로 작정한 터. 그는 단화린이 아기를 찾아서 삼성궁에 찾아왔으며, 그 일로 적미진의 공자묘에서 구양환을 만났다는 것까지 모두 이야기했다.

 

유원당은 이야기를 모두 듣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맙소사, 그녀에게 아기가 있었다니…….’

 

그렇다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더욱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앞만 뚫어지게 노려보는 그를 보고 천종원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유원당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정말 그 깊이의 끝을 알 수가 없는 사람이군.’

 

 

 

유원당이 입을 연 것은 일각 만이었다.

 

“단화린이 지금 일행과 함께 적미진에 있다고 했소?”

 

천종원은 그가 입을 연 것이 너무나 반가웠다.

 

“그렇습니다, 총군사.”

 

“혹시 그를 감시하기 위해서 사람을 보냈소?”

 

천종원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잠은각에서 사람을 보냈는데 연락이 끊겼다고 합니다.”

 

어젯밤 북궁천 일행에게 죽은 감시자들 중에 잠은각 무사도 둘이나 섞여 있었다.

 

“그 친구, 화가 단단히 났군. 즉시 잠은각주에게 연락해서 절대 감시자를 보내지 말라고 하시오. 백이면 백, 모두 죽을 테니까.”

 

“예, 총군사.”

 

“앞으로 단 공자를 상대하는 것은 내가 알아서 하겠소. 그대들이 협조해 준다면 돌아가는 상황을 알려 줄 것이니 판단은 알아서 하시오.”

 

“각주께 그리 말씀드리겠습니다.”

 

 

 

 

 

 

 

6장. 흥정

 

 

 

 

 

남양까지 쉬지 않고 달려간 이조량과 태극문 제자들이 암평도국에 도착한 것은 그날 오시 무렵이었다.

 

도국 안으로 들어간 그들이 안채 쪽 회랑으로 향하자, 험악한 인상을 뽐내는 장한 둘이 턱을 쳐들고 막아섰다.

 

“어이, 무사님들. 놀러 오셨으면 저기서 노시지?”

 

“얼굴도 이쁘장한 분이 길을 잃으면 쓰나?”

 

장한의 키는 이조량보다 한 뼘 이상 컸다. 얼굴은 곱상하게 생긴 이조량보다 배는 컸고.

 

하지만 이조량도 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상황에 따라 처신하는 방법을 이제는 아는 것이다.

 

“당신 대장 어딨지?”

 

“누구?”

 

“왕 회주 말이야. 급한 일로 왔으니까 안내해.”

 

장한은 이조량을 쓰윽 훑어보더니 음침한 미소를 지었다.

 

“흐흐흐, 회주님을 만나려면 일단 몸수색부터 해야 하거든? 어디 옷을 전부 벗어 봐라. 얼굴이 곱상한 걸 보니 물건이나 제대로 달렸는지 모르겠군.”

 

그 때였다.

 

퍽!

 

초강의 발이 발목까지 복부에 박혔다.

 

입을 쩍 벌린 장한의 허리가 절로 숙여지자, 초강이 목을 움켜쥐었다.

 

“목뼈 부러져서 한동안 굶고 싶으면 얼마든지 말해. 확실하게 부러뜨려 줄 테니까.”

 

“끄으으으.”

 

장한의 얼굴이 시뻘게지자 주위에 있던 자들이 이조량과 태극문 제자들을 에워쌌다.

 

“그 손 놓고 물러서라!”

 

“씨발놈이 죽으려고 작정했나? 여기가 어디라고……?”

 

초강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장한의 목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손가락이 한 마디 이상 목을 파고들었다.

 

“끄으으으, 커컥!”

 

다가가던 장한들이 멈칫했다.

 

그 때 이조량이 뒷짐을 진 채 여유 있는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가서 왕 회주에게 내 말이나 전해. 단씨 성을 쓰는 공자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사람들이 왔다고. 어서! 늦으면 이놈은 물론이고 너희들도 저승 구경을 하게 될 거다.”

 

찰나였다.

 

이정한의 우수가 검을 잡아가는가 싶더니 번갯불이 번쩍였다.

 

동시에 몰래 다가오던 두 장한의 허리띠가 끊어지며 바지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헉!”

 

“윽, 이 비겁한 놈이…….”

 

“비겁? 좋아, 다음에는 조금 더 안쪽을 잘라 주지.”

 

흘러내린 바지를 움켜쥔 장한들은 화들짝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도국의 경비 책임자인 임찬화는 이조량의 입에서 ‘단씨 성을 쓰는 공자’라는 말이 나오자, 바로 옆에 있는 수하에게 다급히 말했다.

 

“빨리 회주님께 달려가서 들은 대로 말씀드려라.”

 

그러고는 수하가 안으로 달려가자 이조량 등을 향해 다가갔다.

 

“그 친구의 목은 놓고 이야기하는 게 어떻겠소?”

 

 

 

왕두평은 수하의 보고를 받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분명 단씨 성을 쓰는 공자라고 했느냐?”

 

“예, 회주.”

 

왕두평은 황제라도 찾아온 것처럼 부리나케 방을 나섰다.

 

그의 거처는 암평도국의 뒷문과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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