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0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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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0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08화
108화
가히 절대라는 말이 어울리는 가공할 위세!
‘설마 무형탄강?’
무형지기의 정체를 눈치챈 그의 눈빛이 거세게 떨렸다.
구양환과 등조립, 선우명이 합공하고도 이기지 못했다는 소문을 듣긴 했다. 하지만 그도 다른 사람처럼 그 소문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눈앞에서 그의 위세를 접하니 그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는 아기만 찾아가면 됩니다. 서로 피곤한 일은 벌이지 맙시다.”
북궁천이 무심한 말투로 말하고 방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구양신걸은 더 이상 그를 막지 못했다. 아니, 막을 수가 없었다.
북궁천 일행이 방에서 나오자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북궁천 일행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마당으로 내려섰다.
그러고는 궁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자, 조곽이 인상을 쓰며 앞을 막았다.
“어딜 가려고 하느냐?”
“영선원. 그대가 안내해 주겠소?”
“뭐야? 내가 왜 너희들을 그곳으로 안내한단 말이냐?”
“안내해 주지 않을 거라면 비켜.”
“네가 어디서…….”
찰나였다.
북궁천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저벅, 저벅, 저벅.
조곽은 가공할 압박감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그는 자신도 모르게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그를 향해 북궁천이 냉랭히 말했다.
“다 죽여야 갈 수 있다면 그렇게 하지. 선택은 그대가 알아서 하도록.”
조곽의 어깨가 잘게 떨렸다.
이제야 그는 세상이 왜 그의 이름으로 들썩거렸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디서 이런 자가……!’
그 때 방을 나온 구양신걸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조 당주, 자네가 그들을 영선원으로 안내해 줘라. 그곳은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는 곳, 노부가 허락했다고 하면 들여보내 줄 것이다.”
4장. 아기는 어디에
영선원은 삼성궁의 뒤쪽 계곡의 깊숙한 곳에 있었다.
말이 삼성궁 내부지, 건물군에서 오백 장이나 떨어져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외부나 마찬가지였다.
영선원에는 검신가의 최고 원로 세 사람이 기거했는데, 평상시 사람들의 출입을 엄격하게 통제했다.
하지만 조곽이 직접 그곳까지 안내해서 구양신걸의 허락을 받았다고 하자 안으로 들여보내 주었다.
단, 북궁천 한 사람만.
북궁천이 조곽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는데 마침 건물 안에서 노인이 나왔다.
쭈글쭈글한 살결, 눈처럼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 나이를 짐작키 힘든 노인이었다.
노인은 두 사람을 보더니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이곳에는 무슨 일로 왔느냐?”
조곽이 대답하기 전에 북궁천이 먼저 말했다.
“아이 하나가 이곳에 있다 들었습니다. 그 아이를 데려가려고 왔습니다.”
그 말에 노인이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아이라…….”
“돌이 지난 지 몇 달 된 아이지요. 어디에 있습니까?”
“흘흘흘, 그 아이는 두어 달 전에 이곳을 떠났느니라.”
순간적으로 북궁천의 머릿속이 텅 비었다.
“떠났다고요?”
“그래. 몸이 약해서 치료를 받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디론가 데려갔지.”
곧 정신을 차린 북궁천이 다급히 물었다.
“누가 데려갔습니까? 아니, 누구의 명령으로 데려갔습니까?”
“이 늙은이도 그것까지는 모른다.”
그 때 다른 방에서 노인 하나가 고개를 내밀었다.
노인은 달처럼 둥근 얼굴에 박힌 동글동글한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진아릉 창능가(진아를 찾는가)?”
처음 노인이 그 노인의 말에 대답했다.
“그런가 봅니다, 형님.”
“그 애능 송주 명느링가 보냉 살랑들이 데령갔당. 워낭 귀영웅 놈잉어서 보냉지 않으령공 행능데, 치룡 때뭉에 꼭 다릉 공스로 옮겨양 항다고 상정해서 어정 수 없잉 보냈징.(그 애는 손주 며느리가 보낸 사람들이 데려갔다. 워낙 귀여운 놈이어서 보내지 않으려고 했는데, 치료 때문에 꼭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사정해서 어쩔 수 없이 보냈지.)”
이가 거의 다 빠져서 말을 제대로 알아듣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중요한 몇 마디는 놓치지 않았다.
‘손주 며느리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사정해서 어쩔 수 없이 보냈다?’
북궁천은 그 노인에게 물으려다가 고개를 돌려 처음 노인에게 물었다.
“손주 며느리라고 하면 어떤 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흘흘흘, 그야 궁주 부인이지.”
“어디로 옮겼는지 아십니까?”
두 노인이 모두 고개를 저었다.
“모르네.”
“그냥 멍 공스로 데령강다공만 하덩궁나.(그냥 먼 곳으로 데려간다고만 하더구나.)”
두어 달 전이면 헌원려려와 떠나기 직전이다.
부인 혼자서 아이를 옮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구양환이 작정하고 아기를 옮긴 것 같다.
좋은 뜻으로 옮긴 것은 아닐 터.
북궁천의 두 눈에서 싸늘한 한기가 출렁거렸다.
몸을 돌린 그는 조곽을 직시했다.
“궁주 부인을 만나야겠소. 안내해 주시오.”
조곽은 그의 눈빛을 보고 등골이 오싹했다.
하지만 무작정 그를 궁주 부인에게 안내할 수도 없었다.
“허락이 없으면 만날 수 없소.”
북궁천은 더 말하지 않고 영선원을 나섰다.
그가 빈손으로 나오자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정한이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대형? 아기는?”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군. 그걸 알기 위해서 궁주 부인을 만나러 갈 생각이다.”
조관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
“조금 전에도 말했지만 허락이 있기 전에는…….”
“그럼 지금 가서 허락을 맡으시오. 내가 도착할 때까지. 만약 늦으면 더 이상 참지 않을 것이오.”
북궁천은 그 말만 하고 걸음을 옮겼다.
당황한 조곽은 잠시 생각하더니 수하 하나를 구양신걸에게 보냈다.
북궁천 일행이 삼성궁의 전각군이 있는 곳에 도착했을 때 구양신걸이 나와 있었다.
“궁주 부인을 만나겠다고?”
“그렇소. 지금 당장.”
“미안하지만 궁주 부인은 이 시간에 사람을 만나지 않네.”
“만나야 할 거요.”
“고집을 부리겠다는 건가?”
그 때였다.
북궁천이 냉랭한 목소리로 장추람 등을 불렀다.
“추람, 호, 교신!”
묵묵히 뒤에 서 있던 장추람 등이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시지요.”
“이제부터 궁주 부인이 있는 곳까지 갈 것이다. 앞을 막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목을 쳐라! 백이든 천이든 상관없다!”
“존명!”
차창! 스릉!
세 사람과 북풍사객은 두말하지 않고 무기를 빼 들었다.
구양신걸이 대경실색해서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
“죽고 싶다면 얼마든지 내 앞을 막으시오.”
무심한 목소리를 내뱉은 북궁천은 서슴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런 건방진!”
구양신걸의 좌우에 늘어서 있던 자들 중 넷이 몸을 날려 앞을 막았다.
순간, 북풍사객이 먼저 앞으로 튀어나가며 도검을 휘둘렀다.
쩌저정! 떠덩!
“크억!”
“으헉!”
단 일격에 삼성궁 무사 넷이 뒤로 튕겨지며 나가떨어졌다.
갑작스런 상황에 잠시 멍해져 있던 삼성궁 무사 이십여 명이 북궁천 일행을 막아섰다.
“비켜라!”
장추람이 일갈을 내지르고는 커다란 검을 신경질적으로 내쳤다.
가공할 검세가 폭풍처럼 전방을 휩쓸었다.
떠더더덩! 쩌정!
검풍에 휘말린 자들 대여섯 명이 정신없이 물러섰다.
개중에는 옷자락이 갈라져서 피가 보이는 자도 있었다.
뒤이어서 냉호가 도를 휘두르고, 철교신도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며 창을 휘돌리며 뻗었다.
쒜에에엑!
콰아아아아!
가공할 기운이 폭풍처럼 일어나며 삼성궁 무사들을 덮쳤다.
마치 호랑이 세 마리가 양떼들 속으로 뛰어든 듯했다.
한순간에 십여 명이 나가떨어지자, 대경한 구양신걸이 다급히 소리쳤다.
“모두 물러서라!”
삼성궁 무사들은 멀찌감치 물러나서 질겁한 표정으로 북궁천 일행을 주시했다.
북궁천은 삼성궁 무사들이 부상은 당했을지언정 죽은 자가 없자 눈살을 찌푸렸다.
“너희들 손도 많이 무뎌졌군.”
장추람이 어깨를 으쓱했다.
“소군을 찾는 게 먼저인 것 같아서 말입니다.”
냉호는 조금도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냉랭히 말했다.
“지금부터는 확실하게 숨통을 끊어 놓죠.”
철교신도 무뚝뚝하게 변명답지 않은 변명을 했다.
“상대도 상대다워야 죽이는 맛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 때였다.
잔뜩 긴장해 있던 동호량이 이때라는 듯 재빨리 나섰다.
“대형, 제가 대장로께 다시 한번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그러고는 구양신걸을 향해 말했다.
“대장로, 저희와 싸워서 무슨 득이 있겠습니까? 궁주 부인을 만나서 한 가지만 물어보면 되는 일이니 서로 좋게, 좋게 풀어 나가도록 하지요.”
구양신걸로서는 분노할 여력도 없었다.
자신과 함께 있던 무사들은 삼성궁의 정예무사들이다. 그런데 십여 명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더구나 단화린은 그들보다 더한 절대고수!
아마 저들이 손에 사정을 두지 않았다면 그들 대부분이 죽었을지 모른다.
정말 싸움이 벌어진다면 얼마나 많은 무사들이 죽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 상황.
구양신걸은 그제야 왜 궁주가 싸우지 말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정말 부인만 만나면 되는가?”
“부인께 아기가 어디로 갔는지에 대해서만 들으면 됩니다. 그리 중요하지도 않은 일 때문에 수많은 무사들이 죽는다면 너무 안타까운 일 아닙니까?”
구양신걸은 북궁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심한 표정, 뒷짐 지고 있는 북궁천에게서 거역키 힘든 위엄이 느껴졌다.
‘저자는 절대 평범한 자가 아니다. 절대자의 위치에 올라 본 자가 아니면 지닐 수 없는 기도야.’
어쨌든 동호량의 말대로 궁주 부인에게 질문 하나 하는 것을 막겠다고 무사들을 죽음으로 내몰 수는 없는 일.
그는 분노를 안으로 삼키고 동호량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네. 함께 가도록 하세. 단, 궁주 부인을 만나는 사람은 자네 혼자여야 되네.”
* * *
구양환의 부인인 백소하는 삼성궁의 안주인답게 품위 있는 모습으로 북궁천을 맞이했다.
그녀는 북궁천이 앞에 서 있는데도 태연하게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분홍빛 수건으로 입술을 가볍게 찍어 내고 미소를 띤 표정으로 물었다.
“저를 만나자고 하셨다고요?”
북궁천은 가타부타 설명을 잘라 내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아기를 어디로 옮겼습니까?”
이미 북궁천이 왜 찾아왔는지 구양신걸에게 들은 그녀는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말할 수 없어요.”
“말하셔야 합니다.”
“말하지 않으면 죽일 것처럼 말하는군요.”
“아기를 찾기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습니다.”
순간, 백소하 옆에 있던 스물두세 살쯤 된 아름다운 여인이 눈을 치켜떴다.
“뭐라구요? 지금 어머니를 협박하겠다는 건가요?”
구양환의 딸인 구양수향이었다.
그녀도 단화린의 이름을 들어 보긴 했다.
도대체 어떤 자인데 헌원려려를 데려가기 위해서 만 리 길을 왔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호기심에 나와 봤는데, 감히 삼성궁 궁주 부인에게 협박조로 말하다니!
생각도 못 한 상황에 어이가 없고 분노가 치민 그녀는 한 소리 내지르고는 북궁천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북궁천은 그녀의 말에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맞아. 협박하는 거야.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아마 당신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참혹한 결과가 벌어질 거야.”
“당신 정말……!”
구양수향이 발끈했다.
그 때였다.
북궁천의 전신에서 무형의 기운이 스멀거리며 흘러나왔다.
절대의 무형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