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1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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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7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105화
105화
목여진이 북궁천 일행을 둘러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공손 성주는 딸을 생각해서 너를 그냥 보내 줬을지 몰라도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
북궁천은 은근히 짜증이 났지만 공연한 소란을 피하기 위해서 꾹 참고 말했다.
“싸우기라도 하겠다는 거요?”
“네가 정말 소문대로 강한지 한번 봐야겠다.”
그 말에 화운결이 나섰다.
“목 숙부, 제가 대적해 보겠습니다.”
목여진은 화운결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화운결은 젊은 나이지만 결코 자신에게 뒤지는 실력이 아니었다.
‘갑자기 유명해진 북천궁의 애송이 정도는 이길 수 있겠지.’
그런 마음으로 목여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화운결이 북궁천을 향해 두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동조립과 구양환, 선우명이 합공하고도 단화린을 이기지 못했다는 말은 멀리까지 퍼지지 않았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세 사람의 체면을 생각해서 말하지 않은 점도 있었지만, 일부 몇 사람이 퍼뜨린 말도 백 리를 벗어나기도 전에 허풍으로 치부되고 말았다.
하긴 그 말을 누가 믿을 것인가?
두 사람 역시 그러한 사실은 허풍으로조차도 듣지 못한 터였다.
“비무라 생각해도 좋소. 한번 겨뤄 봅시다.”
“무엇을 위해서 싸우자는 거요?”
“솔직히 나는 단 형이 정말 소문만큼 강한지 알아보고 싶소.”
말은 그렇게 하지만 강한 승부욕 뒤에는 질시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 때 뒤쪽에 서 있던 장추람이 입을 열었다.
“제가 상대하죠.”
북궁천은 손을 들어서 저었다.
“내가 한다.”
짜증 난 기분도 풀 겸.
북궁천은 앞으로 걸어가며 주먹을 우두둑 말아 쥐었다.
“일단 검을 뽑을 만한 상대가 되나 봐야겠군.”
화운결의 눈에서 분노의 눈빛이 흘러나왔다.
“보기보다 더 오만하군.”
“먼저 싸움을 건 것은 그대가 아닌가?”
“좋아, 그렇다면 나도 솔직히 말하지. 나는 네가 천사교와의 싸움에서 공을 세워 유명해졌든, 아니면 음마를 잡아서 유명해졌든, 그건 상관하지 않는다. 다만 북천마궁의 마인이 협사인 것처럼 행세하는 게 마음에 안 들 뿐이야.”
“솔직해서 좋군. 진작 그랬으면 말하기가 더 편했을 텐데 말이야.”
“지금이라도 검을 뽑아라. 내 도는 무척 사나우니까.”
“걱정 말고 도를 뽑아. 내 주먹은 검 못지않으니까.”
“후회할 텐데?”
“나도 솔직히 말하지.”
담담하게 말하던 북궁천의 표정이 무심하게 가라앉았다.
“화운결, 그대는 아직 나에게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
화운결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정말 건방지구나, 단화린!”
그는 노성을 내지르며 도를 뽑았다.
촤아앙!
“이제는 후회해도 늦었다!”
냉랭히 소리친 그는 땅을 박차고 몸을 날리며 도를 내리그었다.
시퍼런 도기가 벼락처럼 하늘에서 떨어졌다.
북궁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도세 안으로 발을 디디며 북두패왕권을 펼쳤다.
면산에서 지내는 동안 그도 얻은 게 많았다.
천조혈심기를 익히며 공력이 더욱 정화되었고, 흡수되지 않았던 화혈조 알의 기운을 마저 자신의 것으로 만든 그였다.
같은 공력을 써도 북두패왕권의 위력이 전과 판이하게 달랐다.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우우웅!
허공이 터져 나갈 것 같은 진공음과 함께 막강한 권세가 화운결의 도세를 정면으로 두들겼다.
콰광!
굉음과 함께 화운결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이 장을 날아가 겨우 중심을 잡고 내려선 그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결쳤다.
하지만 북궁천은 서서 기다리지 않았다.
스윽, 단숨에 공간을 좁힌 그는 화운결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머리통보다 훨씬 큰 권영이 눈을 가득 메우며 날아들자, 화운결은 눈을 부릅뜨고 도를 휘둘렀다.
“타아앗!”
떠더더덩!
찰나간에 칠도를 휘둘러서여 권영을 막아 낸 그는 훌쩍 삼 장을 물러났다.
하지만 충격이 적지 않은지 안색이 창백해졌다.
“정말 엄청난 위력의 권법이구나. 하지만 아직 이겼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를 악문 그는 도를 어깨 높이로 들어 올리고 전 공력을 끌어 올렸다.
일반적인 도법으로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가문의 비전도법인 천화도(天華刀)만이 상대의 패도적인 권을 막을 수 있을 듯했다.
대결을 시작하자마자 천화도를 펼쳐야 한다는 게 어이없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화르르르!
그의 도에서 푸른빛을 발하는 도기가 피어올랐다. 그리고 곧 밝은 광채를 발하는 도강이 도첨에서 쭉 뻗어 나갔다.
도강을 일으킨 그는 땅을 박차고 북궁천을 향해 날아가며 도를 휘둘렀다.
광풍폭우와 같은 도세가 북궁천을 뒤덮었다.
허공이 얼음 갈라지듯 쩍쩍 갈라졌다.
하지만 북궁천의 표정은 처음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조금 낫군.”
그것이 화운결의 천화도에 대한 그의 평가 전부였다.
그는 좌수로 북두패왕권을, 우수로 앙천회류장을 펼쳐서 화운결의 도세를 차단했다.
떠더더덩!
금방이라도 북궁천을 양단할 것 같던 도세가 철벽에 막힌 것처럼 튕겨 나갔다.
동시에 반탄력의 충격을 이기지 못한 화운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고, 그 역시 뒤로 날아갔다.
그 때 철주처럼 우뚝 서 있던 북궁천이 그를 그림자처럼 따라갔다.
“조심해라!”
목여진이 눈을 치켜뜨고 소리쳤다.
순간, 북궁천의 두 손에서 십여 개의 권영이 피어나며 화운결을 뒤덮었다.
화운결은 땅에 내려서자마자 뒤로 대여섯 걸음 물러나면서 도를 휘둘러 방어했다.
푸른빛을 발하는 도막이 그를 에워싸며 날아드는 권영을 차단했다.
하지만 그의 도세로 막기에는 북두패왕권의 위력이 너무 강력했다.
쩌저정!
도막이 산산이 부서지며 도강의 파편이 폭발하듯 허공으로 튀었다.
악착같이 버티던 화운결은 바닥에 기다란 고랑을 파며 열다섯 자나 밀려났다.
“크으윽!”
화운결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핏물이 비쳤다.
그 때 목여진이 참지 못하고 신형을 날렸다.
기다렸다는 듯 장추람이 몸을 날리며 등 뒤의 커다란 검을 뽑았다.
“당신은 내가 상대해 주지!”
북궁천은 고개만 돌려서 무심한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는 다시 화운결에게 시선을 줬다.
그사이 화천장 무사들이 무기를 빼 들고 재빨리 화운결의 앞을 막아섰다.
화운결은 후들거리는 두 다리에 힘을 주고 겨우 버텼다.
가슴이 먹먹해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후욱, 후욱. 정말, 정말 강하구나, 단화린.”
북궁천이 무심한 어조로 그 말에 답했다.
“가끔 사람들은 착각을 하지.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어떤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고 말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생각보다 냉혹하고 비정하지. 들뜬 희망은 단지 꿈일 뿐. 그대는 세상을 좀 더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어.”
화운결의 눈꺼풀이 잠자리 날개처럼 파르르 떨렸다.
“내가 자만했다는 건가?”
“자만? 그럴지도 모르겠군.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을 테니까. 하지만 내 눈에 그대는…… 아직 자만할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
화운결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항상 칭찬만 받던 그였다.
모두가 그를 차대 산서강호를 책임질 기재로 꼽는 걸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자만할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니!
그 말은 지금껏 들었던 그 어떤 말보다 충격이었다.
혀를 깨물어서 죽고 싶을 정도로!
묘한 것은 분노가 일기보다 창피함이 앞선다는 것이다.
정중지와(井中之蛙).
자신은 우물 속에서 놀며 세상이 좁다며 조소하던 개구리에 불과했던 것일까?
북궁천은 이를 악문 화운결의 얼굴이 상기되자, 고개를 돌려 장추람과 목여진의 대결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쉬지 않고 삼초 공방을 주고받던 두 사람이 정면으로 격돌했다.
쾅!
두 사람의 기운이 부딪치며 굉음을 토해 냈다.
직후, 뒤로 주르륵 물러선 목여진은 머리카락을 산발한 채 눈을 부릅떴다.
장추람도 성큼성큼 세 걸음을 물러선 뒤 냉정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검을 들었다.
“굉장하군. 과연 경천도야! 하지만 그 정도로는 내 검을 이길 수 없다.”
목여진은 어이가 없었다.
단화린을 무릎 꿇리려 했거늘, 그의 수하조차 이기지 못했다.
이기기는커녕 자신이 밀린 상황.
믿기지 않는 상황에 그는 치켜뜬 눈으로 장추람을 직시하며 잇새로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장씨.”
성만 불쑥 말하는 장추람의 대답에 치켜뜬 목여진의 눈빛에 분노가 서렸다.
하지만 그는 노회한 자답게 북천궁의 청년 중 장씨 성을 쓰며, 덩치가 크고, 자신보다 강하거나 비슷한 자를 기억 속에서 추려 냈다.
“설마…… 흑룡대주?”
“제법 아는 게 많군.”
“네가 왜 이곳에……?”
그 때 북궁천이 말했다.
“추람, 갈 길이 바쁘다. 끝장을 내려면 빨리 끝내든가, 아니면 그만 가자.”
장추람은 커다란 검을 앞으로 뻗었다.
“끝장을 볼 거면 덤벼 보시지.”
목여진의 눈빛이 거세게 흔들렸다.
화운결은 이미 패배한 상태.
자신 역시 상대가 흑룡대주 장추람이라면 승산이 없다.
더구나 아직 나서지 않은 자들도 모두 고수들이다. 화천장 무사들만으로는 버거운 상대들.
재빨리 계산을 마친 그는 도를 내리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섰다.
“오늘은 이쯤에서 물러가지. 하지만 다음에는 쉽지 않을 거다.”
장추람은 피식 웃으며 도를 거두었다.
“나는 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야. 언제든 자신 있으면 덤벼.”
북궁천은 더 볼 일 없다는 듯 몸을 돌리고는 주저 없이 걸음을 옮겼다.
화운결은 멀어지는 북궁천을 보며 부서지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곧 악을 쓰듯이 소리쳤다.
“다음에 다시 대결을 신청하겠다! 그때는 오늘과 다를 것이다, 단화린!”
북궁천은 듣지 못한 사람처럼 빠르게 멀어져 갔다.
3장. 유원당, 총군사가 되다
북궁천 일행이 황하에 도착한 것은 면산을 떠난 지 사흘 만이었다.
배에서 황하를 바라보는 북궁천은 감회가 새로웠다.
세 번째 황하를 건넌다.
한 번은 그리운 마음으로 려려를 찾아서, 또 한 번은 혼절한 려려를 안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리고 이번에는 상상치도 못했던 아들을 찾기 위해 건너간다.
처음에 건널 때는 가을이 깊어 갈 때였고, 지금은 봄꽃이 만개하는 시기다.
온갖 감정이 버무려져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진아가 엄마를 닮았다면 정말 귀여울 거야.’
북궁천은 봄 햇살이 쏟아지는 하늘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솔직히 그는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는, 부모에게 어리광 부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싫었다.
어쩌면 부러움 때문일지 몰랐다.
자신은 한 번도 그래 보지를 못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세상의 온갖 아기가 진아라는 자신의 아들과 비교되었다.
빨리 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다.
“대형, 도착했습니다. 내리시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다가 이정한이 부른 다음에야 배가 송하진에 도착한 것을 알게 된 것도 다 그런 마음 때문이었다.
“정한, 아기가 말을 할 수 있을까?”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던진 것 역시.
“저도 잘…….”
이정한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말을 할 수 있으면 좋은데 말이야. 누구 아는 사람 없어?”
북풍사객 중 첫째, 임표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넌지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