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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00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05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00화

 

100화

 

 

 

 

 

 

 

도움이 된다는 말에 북궁천이 멈칫했다.

 

절대지경의 고수인 그가 그 말의 의미를 모를 리 없었다.

 

“정말 도움이 될 거라 보시오?”

 

“어릴 때 방치해 놓아서 경맥이 탁하고 굳어 있더군. 너의 고강한 공력으로 천조혈심기를 펼쳐서 정화시켜 주면 공력에 빠른 진보가 있을 거다.”

 

충분히 이해되는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해도 결국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일 뿐 순수한 도움이라 할 수 없다. 자칫하면 도움은커녕 다칠지도 모르고.

 

북궁천이 갈등하고 있는데 방곡추가 한마디 추가했다.

 

“너무 걱정할 것 없다. 위험지경까지 기를 운용할 필요는 없으니까. 그리고 육가가 가진 것 중 하나를 얻어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는 약을 만들어 복용시키면 보다 더 효과적일 거다.”

 

그 정도라면 미안함이 덜어질 것 같다.

 

그래도 당사자의 뜻을 알아보기 위해서 북궁천은 태극문의 세 제자와 이조량을 불렀다.

 

네 사람은 북궁천의 말을 듣더니 털썩 무릎을 꿇고 사정하듯이 말했다.

 

“죽어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대형!”

 

“어떤 고통도 이겨 낼 수 있으니 걱정 마십시오!”

 

오히려 그들은 행여나 북궁천이 청을 철회할까 봐 걱정되는 표정이었다.

 

 

 

육대기는 방곡추의 말을 듣고 펄쩍펄쩍 뛰었다.

 

“뭐라고요? 금령초(金鈴草)의 열매를 내놓으라고요? 당 형, 그게 어떤 건데…….”

 

금령초의 열매는 그가 가진 두 가지 보물 중 하나였다.

 

그가 그것을 보유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방곡추뿐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 알았다면 전처럼 빼앗기 위해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을지 몰랐다.

 

“못 줍니다, 못 줘요! 제가 왜 그걸 줘야 한단 말입니까?”

 

육대기는 거부하는 것만으로는 안심이 안 되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는 이제 그만 가 보렵니다. 솔직히 제가 특별히 도울 것도 없잖습니까?”

 

그 때 방곡추가 말했다.

 

“그걸 내놓으면 자네가 전에 달라고 했던 것을 주지.”

 

“글쎄, 못 준다니…….”

 

막무가내로 거부하던 육대기의 움직임이 갑자기 멎었다.

 

눈을 두어 번 깜박인 그는 방곡추를 빤히 쳐다보며 확인하듯이 물었다.

 

“정말입니까?”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하, 하, 하. 그거야 저도 알죠. 당 형이야말로 입 밖에 내뱉은 말은 목이 달아나도 지키는 분 아닙니까?”

 

머쓱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인 육대기는 방곡추를 향해 머리를 바짝 들이밀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데 당 형, 왜 저자를 도와주려고 그 아까운 것들을 다 허비하시는 겁니까?”

 

육대기는 정말로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그는 안다. 방곡추가 쓴 약재들이 천금을 줘도 살 수 없는 희귀한 것들이란 걸.

 

그러나 방곡추에게는 천금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었다.

 

“단순한 치료가 아닌, 이 방곡추의 자존심이 걸린 싸움이야. 막힌 미세혈맥을 뚫진 못했지만, 다른 것만큼은 나의 치료법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네. 그런데 천조혈심기의 치료가 실패한다면 그조차 증명할 수 없으니 반드시 성공해야만 해.”

 

“그래 봐야 결국은 천조혈심기의 효과만 부각되는 것 아닙니까?”

 

“흥, 내가 일 차로 헌원려려의 상태를 다스려 놓았기에 망정이지 천조혈심기만으로는 절대 그녀를 깨어나게 할 수 없네. 그것은 그저 미세혈맥을 뚫는 단편적인 치료일 뿐이니까. 그러니 이번 치료가 성공할 경우, 내가 천조혈심기를 대체할 수 있는 방법만 깨닫는다면 나 혼자서도 똑같은 상태에 처한 환자를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겠나?”

 

“그것도 그렇군요. 뭐, 좋습니다. 당 형께서 그리 말씀하시니 저도 협조하죠. 그런데 말이죠. 혹시…… 전에 받아 두었던 단화린의 피 남지 않았습니까?”

 

“약재와 버무려서 달인 후 환으로 만들어 두었네. 이번에 그것도 함께 쓸 생각이야.”

 

“전부요? 남으면 저도 좀…… 헤헤헤.”

 

 

 

* * *

 

 

 

이정한과 동호량, 초강, 이조량은 방곡추가 조제한 약을 복용하며 북궁천의 실험 상대가 되었다.

 

북궁천은 약기운이 그들의 내부에서 활성화되었을 때 실험을 시작했다.

 

방곡추가 조제한 약은 양기가 무척 강했다. 응집하면 찌꺼기처럼 달라붙어 있는 탁기를 태워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뜨거웠다.

 

북궁천은 먼저 그들의 십이정경과 기경팔맥을 정화하는 데 힘썼다. 주요 경맥이 먼저 정리되어야만 세맥에 손댈 수 있었다.

 

사흘에 걸쳐서 주요 경맥을 정화시킨 그는 천조혈심기로 양기를 인도해서 서서히 세맥을 통과했다.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기운이 양기를 머금은 채 세맥을 통과할 때마다 실험 상대의 몸이 진동하듯이 떨렸다.

 

하지만 북궁천은 멈추지 않았다. 대신 너무 빠르게 진행하면 충격을 받을지 모르는 터라 최대한 속도를 늦추고 전진시켰다.

 

 

 

나흘에 걸친 실험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

 

태극문 제자들과 이조량에게는 기연이나 다름없었다.

 

경맥이 정화되었을 뿐만 아니라 방곡추가 조제한 영약 덕분에 내공마저 일취월장한 것이다.

 

마침내 천조혈심기의 운용에 자신이 생긴 북궁천은 헌원려려의 미세혈맥을 뚫는 일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헌원려려와 마주 앉았다.

 

그동안 방곡추가 먹인 약의 효과 덕분인지 헌원려려는 조금 전에 잠이 든 것처럼 보였다.

 

“네 피와 섞어 만든 탕약으로 인해서 이 여인의 몸속에는 지금 강한 양기가 똬리를 틀고 있다. 그 양기로 미세혈맥을 막고 있는 엉킨 피를 녹여라.”

 

방곡추가 북궁천에게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했다.

 

북궁천은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오른손은 헌원려려의 명문혈에, 왼손은 풍부혈에 얹었다.

 

이제 모든 것은 그의 손에 달려 있었다.

 

 

 

* * *

 

 

 

미세혈맥의 막힌 부분을 뚫는 일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것보다 더 조심해야 했다.

 

하나하나가 극히 위험한 곳에 위치해 있어서 긴장을 늦출 새가 없었다.

 

게다가 너무 빨라도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굼벵이 기어가는 것조차 쾌속으로 느낄 만큼 느릿하게 진행해야만 했다.

 

그렇게 이틀을 쉬지 않고 천조혈심기를 운용한 북궁천은 사흘째 새벽이 되자 탈진한 사람처럼 축 처져서 헌원려려의 몸에 대고 있던 손을 떼었다.

 

막 방으로 들어서던 방곡추가 눈빛을 반짝이며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되었나?”

 

“방 의원이 말한 혈맥은 다 뚫은 것 같소.”

 

“그래?”

 

방곡추는 헌원려려의 풍부혈에 손을 대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반 각이 지날 무렵 눈을 뜨고 말했다.

 

“일단 미세혈맥은 대부분 뚫렸군.”

 

“그럼 이제 깨어나는 거요?”

 

“며칠 기다려 봐야지.”

 

“미세혈맥이 뚫렸는데도 깨어나지 못할 수 있단 말이오?”

 

“그거야 하늘에 달렸지. 이제 나에게 맡기고 그만 나가 봐. 이곳에 있으면 방해만 되니까.”

 

방곡추는 조금도 고민하지 않고 간단하게 축객령을 내렸다.

 

북궁천은 좀 더 지켜보고 싶었지만 방곡추가 신중한 표정으로 장침을 꺼내는 걸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침이 헌원려려의 머리에 꽂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마치 자신의 머리에 저 기다란 침이 꽂히는 것만 같아서 고문이 따로 없었다.

 

 

 

밖으로 나가자 공손설이 달려왔다.

 

“어떻게 되었어요?”

 

“일단 미세혈맥은 뚫었다만 조금 더 기다려 봐야 할 것 같다.”

 

“휴우, 어쨌든 성공했다니 다행이에요. 언니가 빨리 깨어나야 할 텐데…….”

 

“아우들은 어디 갔지?”

 

“저 위쪽에서 수련하고 있을 거예요. 방 의원님과 오빠 덕분에 내공이 늘어난 이후로, 한 줌의 진기라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면서 거의 미친 사람처럼 수련만 하고 있어요.”

 

“그래?”

 

무덤덤하게 대답한 북궁천은 갑자기 생각나기라도 한 듯 공손설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그런데 너는 왜 여태 안 가고 여기 있는 거냐?”

 

공손설을 울고 싶었다.

 

하지만 우는 대신 북궁천을 째려보며 톡 쏘아붙였다.

 

“청승맞은 어떤 오빠가 절벽에서 떨어질까 봐 걱정돼서 안 가고 있는 거라구요!”

 

 

 

* * *

 

 

 

미세혈맥이 뚫리고 방곡추가 치료를 재개한 지 사흘째 되던 날.

 

“오빠아아아!”

 

불상을 향해 천 번째 절을 올린 북궁천이 막 몸을 세웠을 때 공손설의 뾰족한 외침이 운봉사를 뒤흔들었다.

 

북궁천은 헌원려려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싶어서 날듯이 불전을 뛰쳐나갔다.

 

“무슨 일이냐?”

 

“언니가 깨어났어요!”

 

북궁천은 입이 바로 열리지 않았다.

 

석상이 된 것처럼 멍하니 공손설을 바라보던 그는, 금방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그녀의 표정을 보고나서야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려려가, 려려가 깨어났다고?”

 

나직이 말을 되뇐 그는 바닥을 박차고 헌원려려가 있는 방까지 한걸음에 날아갔다.

 

급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방곡추가 그를 째려보았다.

 

“겨우 깨어났는데 또 정신을 잃게 만들 생각인가?”

 

“정말, 정말 깨어났소?”

 

“이제 겨우 눈만 한 번 떴을 뿐이다. 제대로 정신을 차리려면 시간이 걸릴 것이니 방정 떨지 말고 차분히 기다려.”

 

북궁천은 졸지에 방정 떠는 사람이 되었음에도 기쁨을 금치 못했다.

 

“고맙소, 방 의원. 정말 고맙소! 내 은혜를 잊지 않겠소!”

 

육대기도 자신의 공을 자랑했다.

 

“내 공도 잊지 마쇼. 밤잠도 못 자고 옆에서 심부름하고 약재까지 내놓았으니까.”

 

대신 낮에 실컷 잤다.

 

내놓은 약재 이상의 이득도 보았다.

 

북궁천도 그걸 알았지만 순순히 육대기의 공을 인정해 주었다.

 

“수고했소. 앞으로도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부탁하겠소.”

 

“피, 필요한 거요? 뭐…… 그러죠.”

 

‘지미, 괜히 자랑했네.’

 

 

 

그날 저녁, 헌원려려가 또 눈을 떴다.

 

이번에는 바로 감지 않고 한참 동안 허공을 바라보았다.

 

“려려, 내가 보여?”

 

북궁천이 바짝 다가앉으며 물었다.

 

헌원려려의 눈동자가 느릿하게 돌더니 북궁천을 응시했다.

 

“려려…….”

 

북궁천이 그녀를 부르며 손을 잡았다.

 

그 때였다. 헌원려려의 눈에 물기가 고이더니 주르륵,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북궁천은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울지 마라, 려려. 무려 두 달 만에 정신을 차렸단다. 빨리 털고 일어나서 나와 놀러가자. 벌써 봄이 왔거든.”

 

잔잔하게 말하는 그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목소리도 잘게 떨렸다.

 

헌원려려는 가늘게 몸을 떨더니 가만히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한참이 지나도록 눈을 뜨지 않았다.

 

북궁천은 그녀가 다시 잠에 빠졌다는 걸 알고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고맙다, 깨어나 줘서 정말 고맙다, 려려.’

 

헌원려려의 손을 잡은 그는 잠든 그녀를 바라보며 꼬박 밤을 보냈다.

 

방으로 들어오려던 사람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보고 슬그머니 나갔다. 공손설조차 손가락으로 눈물을 찍으며 돌아섰다.

 

 

 

헌원려려가 다시 눈을 뜬 것은 이튿날 아침이었다.

 

북궁천은 그녀가 눈을 뜨자 반갑게 말을 붙였다.

 

“정신이 들어? 내가 보여?”

 

헌원려려는 힘겹게 눈을 돌려서 그를 바라보았다. 눈 가장자리가 가늘게 떨리는 걸 보니 그의 말을 알아들은 듯했다.

 

북궁천은 가슴이 먹먹해서 웃음만 지을 뿐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런데 한참 동안 그를 바라보던 그녀가 들릴 듯 말 듯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여긴 어디……?”

 

“면산의 운봉사라는 사찰이다. 백의곡에서도 네가 깨어나지 않아서 이곳까지 왔다. 다행히 방곡추라는 의원을 만나서 네가 지금 이렇게 정신을 차린 거다, 려려.”

 

북궁천은 그간의 사정을 쉬지 않고 말해 주었다.

 

헌원려려는 기쁨에 찬 그가 가슴에 쌓인 말을 모두 쏟아 낸 뒤에야 다시 말문을 열었다.

 

“우리…… 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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