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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99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99화

 

99화

 

 

 

 

 

 

 

“뭐? 그걸 복용했다고? 그런데 어떻게 살아 있단 말인가?”

 

“나도 죽는 줄 알았소. 그런데 운이 좋아서 살 수 있었소.”

 

“거짓말! 사람의 몸으로는 천년화혈조의 극양지기를 견딜 수 없어!”

 

“사실이오. 그래서 내 몸속에 아직도 열양진기가 남아 있소.”

 

방곡추는 입을 반쯤 벌린 채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북궁천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느꼈는지 어이없다는 투로 말했다.

 

“자네가 천하제일의 내공이라도 지녔단 말인가? 그렇지 않고서는 화혈조의 극양지기를 견딜 수 없을 텐데?”

 

“천하제일은 아닐지 몰라도 남에게 뒤질 정도는 아니오.”

 

육대기가 한마디 덧붙여서 그의 말을 뒷받침했다.

 

“금황신군 관호명과 비등할 정도니 사실일 거요, 당 형.”

 

방곡추도 금황신군 관호명의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기에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도가 달라지진 않았다.

 

“알을 언제 복용했지?”

 

“넉 달 정도 되었소.”

 

“그래?”

 

북궁천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방곡추는 바닥에 놓았던 송곳 같은 칼과 옥으로 된 약대접을 집어 들고 일어났다.

 

“그럼 별수 없이 자네 피라도 받아야겠군. 아직 약효가 반 이상 남아 있을 거야. 두려워하지 마. 한 종지만 받을 거니까.”

 

피를 주는 거야 얼마든지 줄 수 있다. 헌원려려가 살아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인들 못 할까?

 

그런데 번들거리는 방곡추의 눈빛이 마음에 걸렸다.

 

한 종지가 아니라 한 대접을 모두 받을 것 같은 표정이다.

 

“정말 한 종지만 있으면 되는 거요?”

 

그 때였다.

 

꿀꺽.

 

옆에서 육대기가 침을 삼키며 넌지시 말했다.

 

“뽑는 김에 조금만 더 뽑으쇼, 당 형. 혹시 압니까? 모자랄지.”

 

 

 

* * *

 

 

 

치료를 시작한 지 닷새.

 

방곡추의 치료법은 황유와 극단적으로 달랐다.

 

비슷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 약재나 치료 방법이 천양지차였다.

 

그래도 효과는 있는지 기색이 엄엄하던 헌원려려의 몸이 활기를 찾아 갔다.

 

하지만 그뿐, 헌원려려의 정신은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사흘이 흘렀다.

 

헌원려려의 정신이 여전히 깨어날 생각을 않자, 그토록 냉막하던 방곡추의 표정에도 초조감이 보이기 시작했다.

 

북궁천은 그나마 헌원려려의 기력이 강해진 것을 보고 안도했다.

 

깨어나면 더없이 좋겠지만 설령 깨어나지 않는다 해도 죽지만 않는다면 원이 없었다.

 

그녀를 자신의 곁에 두고 영원히 보살피며 살면 될 것이 아닌가.

 

그는 방곡추가 치료를 마치고 나면 행여나 헌원려려의 몸이 굳을까 봐 근육과 관절을 추궁과혈로 풀어 주고, 혈도도 막히지 않도록 진기를 불어 넣었다.

 

그리고 방곡추가 치료하는 동안에는 매일 운봉사의 부처상을 보며 빌었다.

 

처음에는 속으로만 빌었지만 나중에는 안으로 들어가서 운몽 대사를 따라 절을 하며 빌었다.

 

부처를 믿고 따르기보다 그저 간절함으로 하는 절이었다.

 

헌원려려를 살려 달라는, 그녀의 눈이 떠지기를 바라는 마음 말이다.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하루에 수천 배.

 

곁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가 북궁천의 간절함이 담긴 정성에 숙연해졌다.

 

 

 

북궁천이 간절함을 담아서 헌원려려가 깨어나길 비는 동안 공손설은 엽청문을 철군성으로 보냈다.

 

일반적인 사정은 이미 소문으로 어느 정도 알려져 있을 테니, 간단하면서도 중요한 사정만 전했다.

 

자신은 운봉사에 있으며, 안전하니 아무 걱정할 것 없다는 것. 행여나 자신을 데려가겠다고 사람을 보내면 절대, 절대로 안 된다는 것 등.

 

단 북궁천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선 말하지 못하게 했다. 엉뚱한 일이라도 벌어지면 평생 후회할 일이 발생할지 몰랐다.

 

한편, 태극문 제자들과 이조량은 수련에 열중했다.

 

자신들이 강했다면 헌원려려가 다칠 일도 없었다. 그녀가 다친 것은 결국 자신들의 잘못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늘이 보살펴 그녀가 깨어난다면, 두 번 다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리라!

 

그렇게 각오를 다진 그들은 강해져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대부분을 수련에 투자했다.

 

염구악은 심심하던 차에 잘됐다는 듯 네 사람의 수련을 도와주었다.

 

그는 네 사람의 자질이 보기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알고 놀라 감탄해 마지않았다.

 

북궁천에게 배우며 초식 운용에 대해서만큼은 이미 일류 수준을 넘어선 상태. 초식만으로 대결하면 염구악조차 방심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약한 공력이었다.

 

북궁천이 가르쳐 준 심법을 배운 지 이제 겨우 서너 달. 지닌 실력에 비해서 공력이 상대적으로 약했다.

 

염구악은 그 점이 너무 아쉬웠지만 당장 다른 방법이 없었다.

 

 

 

 

 

 

 

10장. 천조혈심기

 

 

 

 

 

따사로운 햇빛이 쏟아지던 어느 날.

 

방곡추가 치료를 시작한 지 열흘이 흘렀을 때였다.

 

북궁천은 방곡추가 찾는다고 하자 행여나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득달같이 달려갔다.

 

헌원려려 앞에 앉아 있는 방곡추의 표정은 전과 달리 침중했다.

 

자신감이 넘쳐 광기마저 느껴지던 눈빛은 깊게 가라앉아 있고, 그러잖아도 무표정하던 얼굴은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가슴이 철렁한 북궁천은 급히 그의 옆으로 가서 걱정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소?”

 

그런데 방곡추가 고개를 들더니 뜻밖의 요구를 했다.

 

“전에 육가가 준 상자 속의 불상을 좀 봤으면 싶군.”

 

불상을 왜 보자는 걸까?

 

북궁천은 의아한 표정을 지은 채 흑옥불상을 꺼내서 건네주었다.

 

방곡추는 흑옥불상 하나를 꺼내더니 갑자기 밖으로 나갔다.

 

북궁천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은 채 그를 따라 나갔다.

 

밖으로 나간 방곡추는 태양 쪽을 향해 불상을 들고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살펴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그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흘러나왔다.

 

“역시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니군.”

 

“그게 무슨 말이오?”

 

“이건 사백 년 전의 천조괴승(天嘲怪僧)이 만든 것이다. 이 안에 그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네가 이 안의 천조혈심기(天嘲穴心氣)라는 운기법을 깨닫는다면 저 여인의 미세혈맥을 뚫을 수 있을 거다.”

 

뜬금없는 말.

 

의아해하던 북궁천은 그가 한 말 뜻을 천천히 음미해 보았다.

 

그리고 곧 방곡추한 말의 의미를 확연히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 안에 천조괴승이라는 사람의 절기가 있고, 내가 그걸 깨달으면 려려를 깨어나게 할 수 있다, 그 말이오?”

 

“정확히는 그 운기법으로 미세혈맥의 막힌 부분을 뚫을 수 있다는 뜻이다. 미세혈맥만 뚫는다면 정신을 차릴 가능성이 지금보다 배로 늘어날 거다.”

 

북궁천이 방곡추를 노려보며 소리치듯 말했다.

 

“그런데 왜 진작 말하지 않았소!”

 

“천조괴승은 별호 그대로 하늘을 농락할 정도의 의술을 지녔던 기승(奇僧)이다. 그도 나처럼 정통 의술에서 벗어난 괴이한 의술을 익혔지. 나는 내가 가진 재주가 그에게 뒤진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그 생각은 마찬가지고. 하지만 네 여인을 깨어나게 하는 것만큼은 그가 나보다 나을지 모르겠다. 최소한 무공 쪽은 그가 나보다 앞서 있으니까.”

 

려려가 죽을지 모르는데 호승심 때문에 말하지 않다니!

 

그것도 열흘이 지나도록!

 

북궁천의 가슴에서 분노가 치밀었다.

 

하지만 방곡추의 눈을 직시한 그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한 점 흔들림 없는 방곡추의 눈빛은 자신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사실 그는 최선을 다했다.

 

어차피 흑옥불상의 내력을 알든 모르든 그간의 과정을 거쳐야 했다. 죽은피를 빼내고 기를 북돋아 줘야 했으니까.

 

다만 미세혈맥을 뚫는 것도 자신의 실력으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었을 뿐.

 

‘정말 괴팍한 성격이군.’

 

북궁천은 차분히 생각을 가다듬고 분노를 가라앉혔다.

 

방곡추에게 무슨 죄가 있을까?

 

그나마 헌원려려가 아직 살아 있고, 금방이라도 깨어날 것처럼 기력이 충만한 것도 모두 방곡추 덕분이 아닌가?

 

그로선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판이었다.

 

쓴웃음을 지은 그는 흑옥불상을 바라보며 물었다.

 

“이 안에 있다는 천조혈심기는 어떤 것이오?”

 

“그건 네가 알아봐라.”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미세혈맥을 뚫을 수 있다고 자신한단 말이오?”

 

“내가 아는 것은, 천조혈심기를 익히면 머리카락보다 가느다란 진기를 발출해서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미세혈맥을 뚫지 못할 것도 없지.”

 

“부작용은 없소?”

 

“부작용이 없는 치료법은 없다. 세기를 잘못 조절하면 뇌에 손상이 올 수도 있다. 그럼 죽을지도 모르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북궁천의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젠장, 뭐 하나 쉬운 게 없군.’

 

 

 

* * *

 

 

 

하나의 흑옥불상에는 모두 서른여섯 개의 선이 그어져 있었다.

 

셋을 합쳐 백팔 개의 선.

 

태양에 비추면 마치 불상이 살아 있기라도 하듯 그 선을 따라서 빛이 움직였다.

 

북궁천은 사흘 동안 백팔 개의 선을 따라 움직이는 빛의 진로를 머릿속에 완벽하게 기억했다.

 

그리고 빛의 진로를 따라 자신의 기운을 움직였다.

 

괴이하게도 빛은 정상적인 경맥의 이동로를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정상적으로 흐르다가도 느닷없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생경한 곳으로 흘렀다.

 

기의 운행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그러한 기의 운행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르지 않을 것이었다.

 

하지만 북궁천은 이를 악물고 불상에 그어져 있는 선을 따라서 진기를 이동시켰다.

 

헌원려려를 깨울 방법이 달리 없는 이상 그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나마 무공과 연관된 요상법이라는 게 그에게는 다행이었다.

 

처음에는 통로가 완전히 막혀 있기라도 하듯 격렬한 거부감으로 경맥이 요동쳤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기를 운행시키자 미세한 통로가 열리면서 조금씩, 조금씩 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수련을 시작한 지 사흘 만이었다.

 

북궁천은 새로운 경험이 신기하기만 했다.

 

동시에 헌원려려를 깨우는 일이 정말 가능할지 모른다는 희망에 들떠서 더욱더 천조혈심기의 수련에 매진했다.

 

 

 

북궁천이 백팔 개의 선과 동일한 진로로 진기를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은 보름째 되던 날이었다.

 

그때부터는 진기의 강약을 조절하는 데 집중했다.

 

그렇게 수련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나자, 마침내 천조혈심기를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북궁천은 머리카락처럼 가느다란 진기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했다.

 

단 한 번의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실수 한 번이 헌원려려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혼자서 연습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그가 천조혈심기를 사용하려는 상대는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을 상대로 연습해 보지 않고선 완벽하게 기를 다스릴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그 일을 잘 아는 사람이 방곡추였다.

 

그는 북궁천이 고민하는 걸 보고 방법을 조언해 주었다.

 

“네 아우들을 상대로 시험해 봐라.”

 

북궁천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싫소. 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아우들을 이용하고 싶진 않소.”

 

“성공하면 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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