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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90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7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90화

 

90화

 

 

 

 

 

 

 

북궁천이 그를 째려봤다.

 

‘왜 이리 눈치가 없어?’

 

그 때 눈치 빠른 공손설이 큰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오빠도 떠나요?”

 

“어? 아니 뭐, 그럴까 생각 중이야.”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북궁천은 차마 거짓말을 하진 못하고 살짝 둘러댔다.

 

공손설은 그것만으로도 그가 떠난다는 것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설령 가지 않는다 해도 손해 볼 것은 없으니까.

 

“어마, 잘됐네요. 그럼 함께 가요. 오빠는 언제 출발하실 거예요?”

 

“음…… 조금 후에.”

 

공손설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럼 서둘러서 준비해 놓고 기다릴게요.”

 

이정한은 북궁천의 살기 가득한 눈빛을 조금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녀에게 말했다.

 

“저, 능 소저는 호위로 안 따라가십니까? 아무래도 소저들과 동행하려면 한 분쯤 여무사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마음이 들뜬 공손설은 ‘소저들’이라는 말을 듣고도 이상함을 깨닫지 못했다.

 

“하긴 오빠는 여자를 잘 모르니까 낭랑과 함께 가는 게 낫겠네요.”

 

이정한은 목적이 완수되자 가슴이 쿵쿵거리며 터질 것처럼 뛰었다.

 

반면 북궁천은 그제야 이정한의 목적을 눈치챘다.

 

그렇다고 해서 그 정도 일로 이정한을 다그칠 수도 없는 일. 그는 이정한의 뒤통수를 노려보며 심드렁한 말투로 몇 마디 내뱉고 몸을 돌렸다.

 

“좋을 대로 해. 대신 이각 안으로 와. 늦으면 혼자 갈 거니까 그렇게 알아. 정한, 가자.”

 

“예, 대형. 근데 대형, 어디 안 좋으신 곳이라도 있으십니까?”

 

‘그래,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이정한만 아니었으면 려려와 오손도손 재미있는 여행이 될 텐데. 차마 때릴 수도 없고…….

 

‘제길, 괜히 데려왔어.’

 

 

 

* * *

 

 

 

임강령은 북궁천이 떠난다는 말을 듣고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 역시 유원당과 같은 마음이었다.

 

“아쉽군. 천사교와의 싸움이 마무리된 다음에 떠났으면 했는데.”

 

“성질 더러운 마제가 조용히 떠나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시죠. 사실 폭발 직전이었으니까요.”

 

임강령은 쓴웃음을 지었다. 어찌 보면 북궁천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만약 북궁천이 삼성궁을 상대로 한바탕 난리를 피웠으면 상당히 곤란해졌을 테니까.

 

“하긴 그나마 자네 덕분에 놈들의 함정에서 벗어났으니 그것만 해도 고마운 일이지.”

 

“영진으로 돌아가시거든 놈들을 잘 살펴보십시오. 아무래도 수상쩍은 면이 있습니다.”

 

“무슨 말인가?”

 

“놈들의 움직임에서 작위적인 냄새가 납니다. 누가 봐도 때가 아닌데 움직였다는 것은 다른 목적이 있단 말 아니겠습니까? 게다가 삼성궁의 궁주와 두 가주를 비롯해서 삼성궁을 옹호하는 상당수의 고수들만 남고, 조사대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영진으로 갔습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설마……?”

 

“아닐 수도 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요. 그리고 천사지존이 정말 강호를 농락할 정도의 모사꾼이라면 사소한 기회도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백리 대협과 관 대협을 놔둔 채 두 분만 오라고 한 것도 놈들의 움직임이 수상해서 그런 겁니다.”

 

“으음, 그럼 나도 바로 가 봐야겠군.”

 

“천사교의 주구는 아직 밝혀내지 못했습니까?”

 

“아직 확실한 것은 알아내지 못했네. 다만 수상쩍다고 여겨지는 자가 몇 있어서 그들을 중점적으로 주시하고 있지.”

 

“불리함을 알면서도 강력하게 천사교와 대적하자고 하는 자를 유의해 보십시오. 저들로선 그게 연합 세력을 수렁에 빠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니까.”

 

임강령이 무거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그런 사람을 하나 알고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했는데, 북궁천의 말을 들으니 수상한 점이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잘 알겠네.”

 

“그럼 다음에 뵙지요. 아, 백리 대렵을 만나시거든, 전에 약속했던 대결은 나중으로 미룬다고 전해 주십시오. 제가 나중에 찾아뵐 테니까요.”

 

그런 것은 좀 잊어버리지!

 

임강령은 어색하게 틀어진 표정으로 물었다.

 

“오긴 올 건가?”

 

“대협은 약속을 어기면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 약속도 반드시 지킬 생각입니다.”

 

‘끙, 대협이 사람 잡겠군.’

 

 

 

* * *

 

 

 

“별일 없었지? 수고들 했네. 가서 쉬게나.”

 

잠은각 이조장 모우태는 네 명의 수하들과 함께 뇌옥으로 가서 경비를 교대해 주었다.

 

밤새 뇌옥을 지킨 잠은각 삼조원들의 표정이 밝게 펴졌다.

 

“수고하쇼.”

 

모우태는 그들이 모두 나가자 뇌옥 안을 살펴보았다.

 

뇌옥에 있는 죄수는 지난밤을 뒤집어 놓았던 선우중뿐이었다.

 

모우태는 벽에 기댄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를 보고 냉소를 지었다.

 

그는 잠은각의 이조장이기에 구양우경과 선우중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남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저런 새끼들 때문에 애꿎은 청년들이 총각 귀신이 된다니까. 돌팔매질에 맞아 죽어도 싸지.’

 

속으로 욕을 한바가지 퍼부은 그는 선우중이 자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돌렸다.

 

한두 끼 굶어도 되는 놈들이었다. 식사 시간이 다 되었지만 음식을 갖다 줄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막 몸을 돌리고 걸음을 옮기려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람이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으면 숨 쉬는 움직임이 더 커진다. 어깨든, 머리든, 배든 어느 한 곳은 들썩이기 마련이다.

 

그런데 움직임이 너무 조용했다.

 

고개를 돌린 그는 선우중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곧 그를 불러보았다.

 

“이보쇼! 선우 공자!”

 

마음 같아서는 철저히 죄인 취급을 하고 싶었지만, 아직은 신도가 가주의 아들이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목이 달아날 수 있었다.

 

선우중은 여전히 아무런 움직임도 없었다.

 

모우태는 급히 허리춤에 매달린 열쇠로 뇌옥의 철문을 열었다.

 

“무슨 일입니까, 조장?”

 

잠은각 무사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모우태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선우중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스르르르, 툭.

 

선우중의 몸이 벽을 타고 미끄러지더니 그대로 꼬꾸라졌다.

 

그 때 문득 피로 벌겋게 물든 벽이 눈에 들어왔다. 피는 선우중의 미끄러지는 몸을 따라서 죽 그어져 있었다.

 

모우태는 급히 선우중의 맥을 살펴보았다.

 

온몸이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당연히 맥도 뛰지 않았다.

 

얼굴이 창백해진 모우태가 뒤를 향해 소리쳤다.

 

“죄수가 죽었다! 가서 좌령주께 보고해. 다른 사람에게는 아직 알리지 말고. 빨리 가!”

 

 

 

* * *

 

 

 

헌원려려는 시비와 함께 짐을 싸고 서문각과 함께 방을 나섰다.

 

별원의 마당에는 마차 한 대와 호위를 할 포원산장의 무사 일곱 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헌원려려와 시비가 짐을 들고 나가자, 일곱 무사 중 하나가 눈치 빠르게 앞으로 나와서 짐을 받아 마차에 실었다.

 

헌원려려는 착잡한 표정으로 서문각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먼저 가겠습니다.”

 

서문각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서 가라. 네 고모가 놀랄지 모르니 말 잘하고.”

 

 

 

북궁천은 마차가 호위를 받으며 별원을 나서는 걸 멀리서 바라보았다.

 

‘드디어 떠나는군.’

 

그는 헌원려려가 출발하는 걸 보고 나서야 천광호를 만났다.

 

“간다고? 어딜?”

 

천광호는 북궁천이 떠난다고 하자 대뜸 그렇게 물었다.

 

북궁천은 태연하게 대답했다.

 

“집에 가는 겁니다.”

 

“천사교와 언제 싸울지 모르는데 떠난단 말인가?”

 

“제가 있는 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어쩌겠습니까?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도 있던데, 제가 가야죠.”

 

“누가 자네를 싫어한단 말인가? 말해 보게. 내가 당장 가서 따질 테니까. 궁주인가?”

 

천광호는 상대가 구양환이라 해도 당장 달려가서 따질 것처럼 물었다.

 

그래서 북궁천이 좋아하는 것이기도 했다.

 

“됐습니다. 사실은 좋아하는 여자가 있어서 같이 살려고 가는 겁니다.”

 

“엥? 하필 지금?”

 

“지금이면 안 되는데 어떻게 합니까? 당주도 누군가를 좋아해 보면 아시게 될 겁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원하면 세상이 뒤집어져도 달려가게 되니까요.”

 

북궁천은 엉뚱한 말만 잔뜩 늘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에 와서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당주 같은 분을 만난 것도 좋았고요.”

 

천광호도 북궁천에게 목적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저런 고수가 어찌 회룡당의 말단 무사로 지낸단 말인가?

 

더구나 숨겨진 정체가 뭔가 몰라도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지위에 있는 사람일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막상 떠난다니까 무척이나 아쉬웠다.

 

다른 사람처럼 꼭 천사교 때문만은 아니었다. 좋은 사람과 헤어진다는 것 자체가 아쉬웠다.

 

그리고 북궁천이 떠나면 회룡당의 앞날이 걱정되어서 더 아쉬웠다.

 

‘지미, 이제부터는 진짜 죽었다 생각하고 있어야겠군.’

 

하지만 그는 흔쾌히 북궁천을 보내 주기로 했다.

 

그에게는 그의 길이 있고, 자신에게는 자신의 길이 있었다.

 

천사교와 싸우다 죽는다 해도 그것 역시 자신의 운명일 뿐. 자신의 운명을 계속 단화린에게 맡길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다음에 만나면 그동안 못 마신 술이나 진탕 마시세. 설마 그때도 안 마시는 건 아니겠지?”

 

“그때쯤에는 마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제가 술이 좀 셉니다. 주머니가 두둑하셔야 할 겁니다.”

 

“모자라면 가주께 뜯어내지 뭐.”

 

 

 

천광호의 방을 나선 북궁천이 거처로 가자 황보청과 종리기진, 태극문의 세 제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조량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는 먼저 헌원려려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다음에 만나세.”

 

황보청이 무슨 소리냐는 듯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저희도 따라가겠습니다.”

 

“잔소리 말고 여기 있어. 유 원주님께서 겨우 자네를 허락하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떠나면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황보청의 눈이 동그래졌다.

 

“예? 그게 정말입니까?”

 

“유 소저가 아우 아니면 죽어도 시집 안 간다고 했다더군. 그러니 유 소저를 얻고 싶으면, 엉뚱한 일 벌이지 말고 원주님 말씀 잘 들어. 원래 말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아우 생각해서 말해 주는 거야.”

 

얼굴이 벌게진 황보청은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한 웃음을 지었다. 유소예를 포기하면서까지 북궁천을 따라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북궁천이 만사 제치고 헌원려려와 떠나는 것처럼.

 

“그럼 어쩔 수 없죠. 부디 조심해서 가시고, 나중에 꼭 정주에 들러 주십시오.”

 

“살아남아. 그래야 볼 수 있으니까.”

 

단순한 몇 마디였지만, 황보청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찡했다.

 

“알겠습니다, 대형. 반드시 살아남겠습니다.”

 

“언제든 북천에 갈 기회가 있으면 북천궁에 한번 들르고.”

 

움찔한 황보청이 의아한 표정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북천마궁요?”

 

“왜, 아우도 북천궁을 마인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으로 보나?”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곳의 주인인 북천마제는 피도 눈물도 없는 포악한 패왕이라고 하던데…….”

 

북궁천이 황보청을 쏘아보았다.

 

“포악? 어떤 게 진짜로 포악한 건지 한번 보여 줄까?”

 

“대형이 왜요?”

 

“북천마제가 포악하다며?”

 

“그럼 소문과 다르단 말씀입니까?”

 

“아우가 보기엔 어때?”

 

“예?”

 

“이 우형이 진짜로 포악하게 보이느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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