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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85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81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85화

 

85화

 

 

 

 

 

 

 

능소소가 피식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래 볼까 생각 중이에요. 왜 그런 눈으로 봐요? 그러면 안 돼요?”

 

“응? 아니, 안 된다는 건 아니고…….”

 

그제야 엽청문은 능소소의 마음을 확실히 알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철군성의 빙화, 백화선자가 사랑에 빠진 건가?

 

 

 

* * *

 

 

 

천사교도들이 상주 은사장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사시 말이었다.

 

나무를 깎아 만든 것처럼 무표정한 얼굴, 칙칙한 검은 무복. 천사교도들의 이동은 괴기하게 느껴질 정도로 조용했다.

 

호연유는 지붕이 달린 사인교를 타고서 흑염소를 모는 목동처럼 그들의 뒤를 따라갔다.

 

 

 

호연도광은 호연유가 일천 교도와 함께 떠났다는 보고를 받고 미소를 지었다.

 

“구양환이 다급해졌군.”

 

그의 옆에 공손히 서 있던 홍의중년인이 얇은 입술을 비틀어 조소를 지었다.

 

쥐처럼 작은 눈에 매부리코. 실처럼 얇은 입술 밑으로는 염소수염이 달려 있는 자. 그는 천사지존을 좌우에서 보좌하는 쌍뇌 중 하나, 혈뇌(血腦) 사야승이었다.

 

“그동안 삼성궁을 지배해 오던 검신가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으니 정신이 없을 것입니다.”

 

“사야승, 네가 역천군을 데리고 가서 유아를 돕도록 해라. 구양환은 유아의 움직임만 주시하고 있을 게야. 그러니 동북쪽으로 돌아간 후 유아와 연락하면서 때를 기다려라.”

 

사야승의 쥐눈이 살기로 번들거렸다.

 

“지존의 천명을 받드옵니다.”

 

“후후후, 유아에게 서두르지 말라고 해. 정파 놈들은 말로만 정의를 떠들 뿐 위선으로 가득 찬 놈들이 대부분이다. 구양환이 흔들린 상태라면 놈들의 중심부에 균열이 생길 것이다. 그때 가서 천천히 무너뜨려도 늦지 않아.”

 

“알겠사옵니다.”

 

“천천히, 아주 철저히 무너뜨려서 본좌의 발아래에 엎드리게 만들 것이다. 후후후후!”

 

 

 

* * *

 

 

 

날씨가 우중충하다 싶더니, 정오가 지나자 비와 눈이 섞여서 내렸다.

 

선우중을 감시하던 이조량과 초강이 이정환, 동호량과 교대할 무렵, 전령 하나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철은보로 들어섰다.

 

전령은 곧장 연무장을 가로질러서 구양영의 거처로 달려갔다.

 

전령의 보고를 받은 구양영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드디어 움직였군.’

 

방을 나선 그는 즉시 구양환을 찾아갔다.

 

“형님, 상주에 있는 놈들이 움직였다고 합니다. 대충 봐도 팔구백은 된다고 합니다.”

 

구양환은 구양영의 보고를 받고 반색했다.

 

“이동로는?”

 

“단풍으로 곧장 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 단풍에는 언제쯤 도착할 것 같으냐?”

 

“이동 속도가 빠르지 않으니 내일 오전쯤 도착할 것으로 보입니다.”

 

“좋아, 가서 군웅들을 철심전으로 불러들여라.”

 

 

 

이각 후.

 

군웅들은 날씨만큼이나 복잡한 마음을 안고서 철심전에 모여들었다.

 

“상주에 있는 놈들이 움직였다는 소식이오. 숫자는 일천 정도. 이대로 이동하면 내일쯤 단풍에 도착할 것 같소이다.”

 

철심전을 가득 메운 군웅들은 굳은 표정으로 구양환을 바라보았다.

 

아직 겨울이 다 지나가지도 않았는데 천사교가 움직이다니.

 

“궁주께선 어떻게 하실 생각이오?”

 

먼저 남궁원이 입을 열었다.

 

구양환은 기다렸다는 듯 단호한 어조로 답했다.

 

“우리가 이곳에 있는 목적은 천사교를 무찌르기 위해서요. 놈들이 온다면 당연히 싸워야 하지 않겠소?”

 

천사교와 싸운다는 것에는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

 

겨울이 지나갈 때까지 움직이지 않을 거라던 예상이 빗나가긴 했지만 그들은 어차피 물리쳐야 할 적이 아니던가.

 

문제는 날씨였다.

 

비와 눈이 섞여 내리고 땅이 진창으로 변해 있었다. 밤이 되면 얼어붙을 터. 군막을 친다 해도 어려운 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관호명이 그 점을 지적했다.

 

“궁주, 비와 눈이 내려서 먼 거리를 이동하기가 쉽지 않소이다. 이런 날씨에 장거리를 이동하면 싸우기도 전에 지칠 것이오.”

 

군웅들 중 상당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천사교와 싸워 본 사람들은 그들이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기에 지친 몸으로 싸우고 싶지 않았다.

 

구양환은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관 형의 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날씨가 이렇다고 해서 놈들이 오고 있는데 보고만 있을 수도 없지 않소?”

 

구양영이 그의 말에 힘을 실어 주었다.

 

“단풍은 상주와 상남의 중간 지점인 만큼 놈들이 순순히 장악하게 놔두어선 안 됩니다. 영진에 무사들을 파견해서 놈들이 더 내려오지 못하게 막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놈들도 전력이 비슷하면 당장 싸움을 걸어오진 못할 테니, 적당히 견제하면서 놈들을 감시하다가 기회가 생기면 놈들을 공격하도록 하지요.”

 

그 말에는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단풍은 현재 천사교와 연합 세력 간의 완충지대였다.

 

어느 쪽도 그곳에 대규모 무사를 파견하지 못했다. 단풍은 포위 공격에 취약한 곳이어서, 전력이 월등하거나 사방 일대를 모두 장악하지 못한 상태면 상대의 공격에 큰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바람에 천사교는 단풍에서 서북쪽 사오십 리 떨어진 교천에, 연합 세력은 동쪽의 영진에 감시대를 보내서 서로를 감시하고 있는 상태였다.

 

상대와 비슷한 전력으로 영진에 진을 치고 있으면 저들도 단풍에 함부로 들어오지 못할 터. 현재로선 그 방법이 최선으로 보였다.

 

 

 

북궁천은 철심전에서 돌아온 천광호에게 천사교의 준동 소식을 듣고 눈빛이 무저갱처럼 깊어졌다.

 

천사교가 전력에서 압도적인 우위에 있다면 몰라도 그들 역시 한겨울의 싸움은 바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연합 세력이 섬서의 정파와 손잡고 공격할 것을 걱정하고 있어야 정상이다.

 

그런데도 겨울이 가기도 전에 먼저 움직이다니.

 

왜 천사교가 지금 움직였을까? 정말 연합 세력을 공격하기 위해서 움직인 걸까?

 

저들의 숫자는 팔구백 명 정도, 많으면 일천이라 했다. 그 정도 전력으로는 연합 세력을 이길 수 없다는 걸 모르진 않을 터.

 

뭔지 몰라도 구린 냄새가 났다.

 

‘천사지존이나 소존은 천하를 농락할 만한 머리를 지닌 자들이다. 그런 자들이 대규모 무사를 목적 없이 움직이진 않았을 거다. 분명 뭔가가 있어.’

 

어쩌면 자신이 과민 반응을 보이는 것일지도 몰랐다.

 

천사교와의 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다. 한겨울 동안 한시적으로 멈춘 것일 뿐.

 

더구나 상대는 상식이 통하지 않는 마인들이다. 한동안 조용했던 걸 생각하면 움직일 때가 되긴 했다.

 

다만 의문인 것은 천사교의 이동 시기가 묘하다는 점이었다.

 

만약 저들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움직인 것이라면?

 

‘곧 뭔가 충격적인 일이 벌어지겠지.’

 

 

 

신시 초. 연합 세력의 무사 팔백여 명이 대연무장에 모여들었다. 다행히 눈과 섞여 내리던 비는 멎은 상태였다.

 

북궁천은 한쪽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팔백 무사가 영진에 진을 치고서 천사교와 대치하기로 결정 난 상황.

 

연합 세력의 내로라하는 고수들 대부분이 출동하는 판이었다.

 

백리진과 임강령은 물론이고, 천무회의 사공강후와 관호명도 포함되었다. 무림맹의 남궁원과 공한 대사도 가는 듯했다.

 

음마를 조사하기로 한 조사대 대부분이 나선 것이다.

 

그런데 뒤처리 전담반인 회룡당은 이번 임무에서 제외되었다.

 

싸움이 벌어지지도 않았으니 당연한 일이긴 한데, 북궁천은 그 점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구양환이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자신을 선발진에 포함시킬 줄 알았거늘, 제외된 것을 알면서도 말 한마디 없는 것이다.

 

물론 싫진 않았다. 오히려 구양환이 고마웠다.

 

‘잘됐지 뭐. 려려만 놔두고 떠나기도 찝찝했는데.’

 

편하게 생각한 북궁천은 차가운 매의 눈으로 신도가의 무사들을 둘러보았다.

 

선우중의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번 출동에서 빠졌다는 말.

 

구양환을 비롯한 삼성궁의 세 가주가 모두 남았으니 그가 남은 것을 이상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었다.

 

그가 음마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흥, 네놈 뜻대로 되지는 않을 거다.’

 

북궁천의 입술이 보일 듯 말 듯 비틀렸다.

 

 

 

* * *

 

 

 

팔백여 명이 한꺼번에 빠져나가자 철은보 전체가 한산해졌다.

 

게다가 날씨도 눈비가 오락가락해서 경비무사를 제외하고는 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북궁천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자신의 방 안에서 운공조식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마음 같아서는 헌원려려를 찾아가 종일 죽치고 싶은데, 구양환이 남겨 놓은 시선이 자신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남겨 놓긴 해도 믿을 순 없다는 말인가? 삼성궁의 궁주라는 사람이 속은 더럽게 좁군.’

 

이제 사흘 남았다. 사흘만 조용히 지나가면 떠날 수 있다.

 

그 안에 선우중을 잡아서 음마 문제를 확실히 정리하면 구양환도 뭐라고 하지 못할 것이다.

 

‘선우중의 인내심이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군. 오늘을 넘길 수 있으려나?’

 

북궁천이 선우중의 얍삽한 얼굴을 떠올리며 조소를 짓고 있는데 밖에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 이조량이 방 안에 대고 말했다.

 

“대형, 천기룡이라는 분이 찾아오셨습니다.”

 

천기룡?

 

북궁천은 그 이름을 바로 기억에서 떠올렸다.

 

천기룡은 비룡가 가주인 천군호의 장자로, 천광호가 그나마 괜찮은 놈이라고 평하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안으로 모셔라.”

 

문이 열리고 이십 대 중반의 청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숯처럼 짙은 눈썹, 구레나룻이 턱을 덮어서 강인함이 절로 느껴지는 인상.

 

그가 바로 삼성궁에서 구양우경과 쌍벽을 이룬다는 기재, 운룡공자(雲龍公子) 천기룡이었다.

 

그는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는 북궁천의 일 장 앞까지 다가간 다음 포권을 취했다.

 

“천기룡이오. 단 형에 대해서 말씀은 많이 들었소.”

 

“그리 앉으쇼.”

 

천기룡은 기광이 일렁이는 눈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비룡가의 대를 이을 자신의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눈짓으로 자리를 가리킨다.

 

어떻게 생각하면 오만하고 건방지게 보이는 태도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별반 표정 변화 없이 자리에 앉았다.

 

상대는 구양우경을 단숨에 불구로 만든 사람. 검왕과 고검조차 인정한 절대고수인 것이다.

 

“차가 식었으니 이해하시오.”

 

북궁천은 천기룡의 앞으로 찻잔을 하나 밀어 놓고 차를 따랐다. 그리고 자신의 잔에도 채운 다음 담담한 말투로 물었다.

 

“궁의 높은 양반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을 텐데, 무슨 일로 찾아온 거요?”

 

천사교의 암계에서 연합 세력을 구해 낸 사람도 그였고, 구양우경이 음마라는 것을 밝혀낸 사람도 그였다.

 

삼성궁의 체면을 하늘까지 들어 올렸다가 땅바닥에 처박은 장본인이 바로 북궁천인 것이다. 삼성궁으로선 이를 가는 사람들이 많을 수밖에.

 

그러나 천기룡은 조금도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한 일. 그에 대해선 조금도 서운하게 생각하지 않소.”

 

‘그러겠지. 그 일에 비룡가도 개입했으니까.’

 

“나는 단지 남자로서 단 형을 직접 만나 보고 싶어서 찾아왔을 뿐이오.”

 

북궁천은 좀 더 구체적인 평가를 듣고 싶었다.

 

“내가 한 일이 협의에 어긋난다고 보시오?”

 

천기룡은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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