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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82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7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82화

 

82화

 

 

 

 

 

 

 

더구나 이미 두어 번의 싸움으로 겨울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지 몸서리쳐지게 겪어 보지 않았는가.

 

연합 세력과 천사교가 협상이라도 맺은 듯 상대를 공격하지 않고 눈치만 보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다.

 

그러하기에 구양환도 당장 대규모 격전이 벌어지는 것은 원치 않았다.

 

그러나 단순히 이동하는 것이라면 큰 상관이 없을 듯했다.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니까.

 

“좋다, 한번 해 봐라.”

 

“예, 형님.”

 

구양영이 밖으로 나가자 구양환은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그 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친 구양환이 스산한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상악, 밖에 있으면 안으로 들어와라.”

 

“예, 궁주.”

 

곧 사십 대 초반의 중년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바로 수룡위사대 대주 능상악이었다.

 

“상악, 네가 직접 궁으로 가서 부인을 만나라. 그리고 부인에게 영선원의 아기를 옮겨야 한다고 말한 후 건네받아서 내가 말하는 곳으로 데려가라.”

 

능상악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토를 달진 않았다.

 

하라는 대로 하면 그뿐.

 

“예, 궁주.”

 

“어느 누구에게도 장소를 말해선 안 된다. 내가 부를 때까지는 돌아오지 말고 아기를 지키면서 기다려라.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알겠습니다, 궁주.”

 

구양환은 능상악이 방을 나가자 이를 지그시 악물고 냉소를 지었다.

 

‘어쩌면 마제의 아이일지도 몰라.’

 

 

 

* * *

 

 

 

“찾았네.”

 

임강령은 굳은 표정으로 말하면서 종이 하나를 북궁천 앞으로 밀었다.

 

“천사교를 물리칠 적절한 병법에 대해서 물었지. 이것은 그에 대한 답일세.”

 

그는 삼성궁의 젊은 무사 이십여 명에게 문제가 적힌 서신을 보냈다.

 

멋진 병법을 내놓는 사람에게 상품이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답을 받은 후 필체를 대조했다. 그런데 그중 하나의 필체가 일치했다.

 

북궁천은 임강령이 내민 답지를 읽어 보았다.

 

나름대로 천사교와 싸울 방법에 대해서 적혀 있었다.

 

천사교의 주력이 모여 있는 상주를 은밀히 포위해서 빠져나갈 틈도 없이 전격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북궁천의 시선이 이름을 향하자 임강령이 말했다.

 

“선우중은 선우명 가주의 둘째 아들이네. 이번에 함께 왔지.”

 

고개를 든 북궁천이 물었다.

 

“그에 대한 평판은 어떻습니까?”

 

“술을 좋아하는 것 외에는 그동안 별문제가 없었네. 첫째인 선우승에게 밀려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무공도 뛰어나고 사람 됨됨이도 괜찮은 젊은이지. 솔직히 말하면, 선우중이 음마 중 하나라는 게 믿기지 않네.”

 

“세상에는 가면을 쓰고 사는 사람이 많지요. 철은보 안에 있는 천사교의 간자만 해도 누구보다 정의롭게 행동하고 있을 겁니다.”

 

임강령이 왜 그걸 모를까. 어쩌면 그래서 더 마음이 착잡했다.

 

아직 북궁천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둘 있었다.

 

하나는 전부터 주시하던 자이고, 하나는 새롭게 주시하고 있다.

 

그중 하나라도 천사교의 간자로 밝혀질 경우, 자신 역시 엄청난 심적 충격을 받을 게 분명했다.

 

‘그들은 아니겠지. 그들은 천사교와 손을 잡을 이유가 전혀 없는 사람이야.’

 

임강령은 확신이 설 때까지 그에 대한 사실을 자신의 가슴에만 묻어 두기로 하고, 우선은 눈앞의 일에 충실했다.

 

“이제 어떻게 할 건가? 이것만으로는 그를 잡아넣기에 부족하네. 달리 그가 정말 음마인지 아닌지 알아봐야 할 것 같네만.”

 

필체만으로는 완벽히 올가미를 걸 수 없다.

 

북궁천도 그 점을 모르지 않았다.

 

선우중이 자신의 글이 아니라고, 또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고 악착같이 우길지 모른다.

 

그러면 신도가 가주인 선우명이 먼저 그를 비호할 것이고, 구양환까지 나서서 감쌀 것이 분명하다.

 

보다 완벽한 증거. 걸리면 빠져나갈 수 있는 증거가 필요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 * *

 

 

 

북궁천은 헌원려려를 찾아갔다. 서문각은 자신의 거처로 갔는지 헌원려려만 남아 있었다.

 

헌원려려는 그에게 차를 따라 준 후 구양환과 나눈 이야기를 전했다.

 

“닷새를 기다린 후 그때까지 결론이 나지 않으면 돌아가기로 했어요.”

 

북궁천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구양환이 아무런 대책도 없이 닷새라는 시간을 응낙했을 리 없었다.

 

‘그사이 어떤 식으로든 상황을 변화시켜 보려 하겠지.’

 

그래 봐야 선우중에 대한 것이 밝혀지면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될 터. 기다림은 구양환에게 이득 될 게 없었다.

 

하지만 북궁천의 입장에선 일이 복잡하게 흐르는 것을 원치 않았다.

 

구양환은 막다른 구석에 몰린 상태였다.

 

힘을 가진 자일수록 겉과 속이 다른 법.

 

그가 아무리 정의 운운한다 해도, 절망적 상황에 빠지면 돌변하는 게 보편적인 인심이 아니던가.

 

‘그가 엉뚱한 생각이라도 하면 일이 귀찮게 흐를지 모른다. 그 전에 결정을 내려야만 해. 후우, 려려가 허락만 하면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는데…….’

 

북궁천은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려려는 무엇에 얽매여서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걸까?

 

자신에게 혼인할 수 없다고 할 때는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잘만 말하더니.

 

자신이 그리도 만만하게 보였나?

 

‘도대체 알 수가 없군.’

 

양부인 서문각이 곤경에 빠질 걸 염려해서 그런다는 것을 모르진 않았다. 그래도 도가 지나쳐서 답답할 지경이었다.

 

려려가 떠난다고 해서 설마 삼성궁이 포원산장을 멸망시키기야 할까?

 

구양우경을 좋아해서 남아 있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고.

 

이런저런 가능성을 생각해 보던 북궁천은 결론이 나지 않자, 가슴속에 꽉 들어찬 의문을 넌지시 꺼내 보았다.

 

“려려, 왜 그렇게 삼성궁의 눈치를 보는 거지? 네가 나와 함께 떠나면 포원산장이 곤욕을 치를까 봐 그런 거냐?”

 

헌원려려는 차를 마시는 척하며 잠시 숨을 골랐다.

 

마침내 북궁천이 본격적인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사실대로 다 털어놓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북궁천은 예전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절대의 패왕 북천마제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고, 그럭저럭 강호의 협의지사 언저리에는 도달한 듯했다.

 

무슨 말을 한다 해도 우려했던 것처럼 감정대로 행동하지는 않을 것 같고.

 

북궁천의 변화에 마음이 흔들린 그녀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포원산장의 문제 때문만은 아니에요. 사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어요.”

 

북궁천은 그녀가 감추고 있던 비밀을 털어놓으려 한다는 것을 알고,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로 반가웠다.

 

“더 중요한 일? 뭐냐? 뭐든 말해 봐라. 내가 해결해 주마!”

 

그런데 너무나 반가운 나머지, 깊은 곳에 꾹꾹 눌러져 있던 예전의 성격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헌원려려는 그것만으로도 불안했다.

 

손바닥으로 가슴을 치며 눈빛을 반짝이는데, 마치 문제가 있으면 천하를 뒤엎기라도 할 것 같았다.

 

‘아직은 이른가?’

 

그녀가 머뭇거리자 북궁천은 애가 탔다.

 

그때만큼은 뒷산의 억만 관 바위 같던 부동심도 흔들바위처럼 흔들거리고, 임강령이 감탄할 정도의 치밀함은 아예 흔적조차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말해 보라니까? 어떤 놈이 네 약점을 잡고 몰래 너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냐? 혹시 네 고모부라는 서문각이……? 아니면 구양환이 설마 너를 욕심내는 것은……?”

 

‘후우, 역시 안 되겠어. 사실대로 말하면 당장 난리가 날 거 같아.’

 

헌원려려는 반쯤 열었던 마음의 문을 다시 닫고, 말을 살짝 돌렸다.

 

“그런 것이 아니에요.”

 

“그래? 그럼 뭔데?”

 

“내려올 때 저만 온 것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가 갑자기 궁주님과 함께 떠나면 그 사람들이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사실이 그랬다. 말하고자 했던 핵심에서는 조금 벗어나 있지만, 그녀는 그 사람들을 놔둔 채 자신만 떠난다는 것 역시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비룡가나 신도가의 공자와 맺어지기를 바라는 서문각이 아닌가?

 

그런데 자신이 갑자기 떠나 버리면 그들에게 화풀이할지 모르는 것이다.

 

“네가 떠난다 해도 그 사람들은 서문 장주가 잘 보살펴 줄 것 아니냐? 정 힘들면 검원장으로 돌아가도 될 것이고.”

 

“고숙께서는 제가 떠나는 걸 바라지 않아요. 구양 궁주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러니 제가 허락 없이 떠나면, 그 사람들이 저 대신 두 분의 불만을 모두 떠안게 될 거예요.”

 

헌원려려는 차마 서문각의 의도를 사실대로 말하지 못하고 대충 둘러댔다.

 

그 말을 하면 당장 서문각을 찾아가서 패대기칠지 몰랐다.

 

북궁천은 어렴풋이나마 그녀의 마음을 이해했다.

 

듣기로 그녀는 열 명가량의 일행을 대동하고 하남에 왔다고 했다. 만 리 길을 동고동락한 검원장 사람들을 나 몰라라 할 여인이 아니다.

 

헌원려려가 어디 보통 정이 많은 여인인가?

 

‘려려는 마음씨가 너무 고와서 탈이야. 가솔들을 걱정해서 자신의 행복을 미루다니.’

 

북궁천은 마음씨가 선녀 같은 헌원려려를 위해서 며칠 더 기다리기로 했다.

 

헌원려려가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였다는 것만으로도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대신 닷새가 지나도 보내 주지 않으면 그냥 떠나도록 하자. 포원산장에 있는 가솔들은 아우들에게 말해서 데려오라고 하면 되니까.”

 

헌원려려는 오늘 하려던 말을 그때하기로 했다.

 

하루하루가 달라지고 있었다. 당장만 해도 순순히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는가 말이다.

 

며칠 더 지나면 더 나아지겠지.

 

“알았어요.”

 

북궁천은 떠나기가 싫었지만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검신가의 눈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더구나 헌원려려의 방이 아닌가? 너무 오래 있으면 이상하게 생각할지 몰랐다.

 

그는 나가기 전에서야 선우중에 대해서 물어봤다.

 

“려려, 혹시 구양우경이 선우중을 특별하게 대하거나, 그에 대해서 이상한 말을 한 적이 없었느냐?”

 

잠시 기억을 되짚어 본 헌원려려가 눈을 들고 말했다.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는 선우중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묘한 표정을 지었어요. 다른 사람을 말할 때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죠. 어떤 때는 욕을 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부럽다는 표정을 짓기도 했는데, 그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왠지 음침한 느낌이 들었죠. 왜요, 혹시 그가 서신을 보낸 사람인가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혹시라도 그가 이곳에 오거든, 절대 혼자서는 그를 만나지 마라. 무슨 말인 줄 알지?”

 

섬뜩한 기분이 든 헌원려려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북궁천은 그쯤에서 아쉬움을 접었다.

 

“이만 가 볼 테니 편안한 마음으로 며칠만 기다려라.”

 

“그럴게요.”

 

헌원려려가 돌아선 북궁천에게 바짝 접근하며 대답했다.

 

그 순간이었다. 오래전에, 아주 오래전에 맡아 봤던 국화향이 확 밀려들었다.

 

아찔한 느낌!

 

백회를 뚫고 용천까지 내달리는 전율!

 

홱, 몸을 돌린 북궁천은 양손을 쫙 뻗어서 헌원려려를 끌어당겼다.

 

여섯 자나 떨어져 있던 헌원려려의 몸이 그의 품안으로 빨려들었다.

 

와락, 그녀를 끌어안은 북궁천의 머릿속에서 하얀 폭발이 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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