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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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09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78화
78화
“강한 반발이 있을 것이네. 그에 대해선 준비해 두었나?”
“밖에 있는 자들은 생포해 두었습니까?”
“물론이네. 철은보에서 사람들이 오기 전에 한쪽으로 치워 두었지.”
“그럼 됐습니다. 세 분께서는 구양우경이 저 여인을 이곳으로 납치한 것에 대해서만 증언을 해 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지요.”
밖에서 거칠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계단을 울리는가 싶더니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보였다.
선두는 사공강후와 관호명. 그들의 뒤로 위효릉과 천종원, 백리진, 임강령, 등조립, 선우신, 남궁원, 공한 대사가 내려왔다. 그야말로 각 세력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총망라되었다고 봐도 되었다.
사공강후와 관호명을 제외한 사람들은 눈앞의 광경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특히 위효릉과 등조립, 신도가의 장로 선우신은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소궁주!”
위효릉이 먼저 구양우경에게 달려가고, 등조립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이, 이게 어찌된 일인가?”
북궁천이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자세한 설명은 나가서 하는 게 좋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말씀드리지요.”
지하 석실을 나온 북궁천은 소동동을 유원당에게 맡겼다.
유원당은 그때까지도 몸을 떨고 있는 소동동을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누구도 너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해라, 쯔쯔쯔쯔…….”
구양우경은 위효릉이 맡았는데, 팔다리가 움직일 때마다 구양우경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결국 위효릉은 구양우경의 수혈을 강하게 눌러 기절시킨 후에야 그를 안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조관수가 지하에 있던 등잔불을 가지고 올라오자 컴컴하던 관운묘 내부가 밝아졌다.
“이제 말해 보게.”
등조립이 각질처럼 굳은 표정으로 북궁천을 보며 말했다.
북궁천은 조관의 일부터 설명했다.
“얼마 전, 회룡당의 조 대주가 살해당했습니다. 봐선 안 될 것을 봤기 때문이지요. 그를 죽인 자는 수룡위사대원인…… 저는 죽기 직전인 그를 상남에서 만났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구양우경이 여인을 처참하게 간살한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였지요. 그래서 나름대로 조사를 했는데…….”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사람들의 표정에 경악이 물결쳤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눈앞에 실체가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북궁천은 차가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이삼 일 전, 아우들에게서 구양우경이 저 여인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해서 조 장로님과 유 원주님께 그녀를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지요. 그런데 오늘, 구양우경 밑에 있는 수룡위사대원이 저 여인을 납치했습니다. 그리고 안에서 본 광경이 벌어진 겁니다.”
북궁천은 자신이 구양우경을 회복 불능의 상태로 만든 것에 대해서는 간단히 설명했다.
“구양우경이 약한 자였다면 혈도를 제압하는 것으로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구양우경은 하남에서 사공 형과 쌍벽을 이루는 강자입니다. 해서 어쩔 수 없이 손을 독하게 쓸 수밖에 없었지요.”
결국 자신을 탓하지 말라는 뜻.
위효릉은 눈을 치켜뜨고 북궁천을 노려보았지만 마땅히 반박할 말이 없어서 이만 악물었다.
그 때 등조립이 의문을 제기했다.
“자네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있나? 구양 공자가 이전에 그런 죄를 저질렀다는 것도 장호문의 말을 들었을 뿐이지 않은가?”
“삼성궁의 시비들 사이에서 파다하게 도는 소문을 봉공은 모르시나 보군요.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시비들이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처참한 시신으로 발견되었지요. 그 일에 대해선 저보다 잠은각의 좌령주께서 더 잘 아실 거라 봅니다만.”
사람들의 눈이 천종원을 향했다.
천종원은 굳은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는 그 일을 이상하게 여기고 은밀하게 조사를 벌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그 일에 몇 사람이 연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중 하나가 바로 구양 공자의 측근이었던 장호문입니다.”
천종원의 말은 북궁천의 말과 의미가 달랐다. 잠은각은 삼성궁의 정보를 총괄하는 곳이 아닌가 말이다.
그럼에도 위효릉은 순순히 수긍하지 않았다.
“장호문이 연루되었다고 해서 구양 공자가 반드시 연루되었다고는 볼 수 없지 않은가?”
북궁천이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생각이 조금만 있는 사람이라면, 오늘 일만으로도 구양 공자가 연루되었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을 거라 봅니다만.”
은근히 위효릉을 비꼬는 말투.
위효릉의 눈썹이 송충이처럼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좌우간 보다 확실한 증거가 있다면 모를까, 오늘 일 이외에는 구양 공자의 죄를 물을 수 없네.”
사공강후가 입을 연 것은 그때였다.
“우리도 구양 공자에게 죄를 물을 사안이 하나 있습니다.”
뜻밖의 말에 사람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위효릉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무슨 말이오, 소회주?”
사공강후가 냉랭히 말했다.
“그는 우리 천무회 영호단의 상은호 부단주를 고의적으로 살해했습니다. 그에 대한 증거와 증인을 모두 확보해 두었으니, 그를 위해서 변명하실 생각이라면 거두어 주시기 바랍니다.”
사공강후가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자 위효릉의 표정이 하얗게 탈색되었다.
여인의 납치와 간살. 천무회 간부 살해.
어느 것 하나 단순하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구나 관운묘의 일은 많은 사람이 현장을 직접 목도했으니 억지를 부리는 것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군사, 궁주께 급전을 띄워서 모두 말씀드리도록 하시게.”
조용히 듣고만 있던 백리진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위효릉도 자신 선에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절감하고 해쓱해진 얼굴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궁주님의 말씀이 있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확정적으로 답할 수 없으니, 모두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2장. 아저씨가 아니라 오빠다
천사교와의 싸움이 교착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구양우경의 일이 알려지자, 철은보가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들썩거렸다.
위효릉과 검신가의 간부들은 안간힘을 다해 사건을 축소시키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소문은 확대되고, 정파 인사들의 시선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
그들이 천사교와 싸우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천사교의 사악한 행동을 막겠다는 것이 아니던가 말이다.
그런데 구양우경의 행위는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더 사악했다.
선으로 위장한 악, 더러운 위선인 것이다.
구양우경의 일이 벌어진 지 이틀째 되던 날.
사공강후와 관호명은 구양우경의 여죄를 파악할 필요성이 있다며 조사대를 만들자고 강력히 주장했다.
당연하게도 북궁천의 입김이 들어간 주장이었다.
장호문은 구양우경이 ‘명화회’에 속했다고 했다. 인원이 다수라는 말.
게다가 선우라는 성도 말했었다. 아직 누군지는 모르지만, 신도가에도 명화회 회원이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무엇보다, 조사대가 구성되면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헌원려려를 만날 수 있을 것이었다.
천종원도 북궁천의 말을 듣고 은근슬쩍 조사대 구성을 찬성했다.
어차피 벌어진 일. 깨끗하게 마무리를 지어야만 강호동도들에게 욕먹지 않는다면서.
위효릉과 검신가의 장로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그들의 제안을 수락했다.
조사대는 각 세력에서 두 명씩 뽑았다.
천무회에서 사공강후와 관호명, 삼성궁에서 임강령과 천종원, 백검맹에서 유원당과 조관수, 무림맹에서 남궁원과 공한 대사. 그리고 구양우경의 일을 가장 잘 아는 북궁천이 포함되었다.
그들은 구양우경의 방을 샅샅이 뒤지고, 그와 사이가 가까운 사람들을 조사했다.
그 와중에 북궁천은 헌원려려를 조사하는 일은 자신이 직접 맡겠다고 나섰다. 그래도 혼자서 하면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임강령과 유원당을 대동하기로 했다.
사정을 알든 모르든 특별히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날 오후.
북궁천은 임강령과 유원당을 대동하고 헌원려려를 찾아갔다.
감회가 새로웠다.
다행히 모든 일이 잘 풀려서 이제 떠날 일만 남았다. 그래서 그런지 말하는 중에도 가벼운 웃음이 입가에 걸렸다.
“곧 삼성궁주가 올 것이다. 구양우경이 그리되었으니 그도 너를 더 이상 붙잡아 두지 못하겠지.”
헌원려려는 눈물이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이야기를 다 들었다.
오한이 들 정도로 오싹하고 소름이 돋았다.
만약 북궁천이 그의 죄악을 밝혀내지 않았다면 자신 역시 소동동이라는 소녀처럼 되었을지 모르는 일 아닌가 말이다.
‘맙소사. 그의 행동이 이상하다는 생각은 했지만 설마 그런 짓까지 저질렀다니.’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마음을 진정시킨 그녀는 북궁천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마 바로 보내 주진 않을 거예요.”
“붙잡아 둘 이유가 없는데, 왜?”
“명분 때문이죠. 바로 혼약을 파기시키고 저를 내보내면 스스로 모든 죄를 인정하는 셈이 되니까요.”
“그럼 구양환이 구양우경의 죄를 인정하지 않을 거라는 말이냐?”
잠시 생각하던 현원려려가 보다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했다.
“소동동이라는 여자를 납치한 것은 인정하겠죠. 많은 사람들이 봤으니까요. 하지만 그 외에는 아무런 증거가 없어요. 더구나 저들이 생각할 때는, 소동동이라는 여자가 엄청난 충격을 받긴 했어도 많이 다치지 않았으니 적당한 보상을 하면 된다고 생각할 거예요.”
“천무회의 사람을 죽인 것은?”
“그 일은 천무회와의 일이잖아요.”
“흥, 결국 자신들의 자존심을 위해서 너를 붙잡아 두겠다는 심보란 말이군.”
“이곳 사람들은 남들의 이목을 무척이나 신경 써요. 보내는 것보다 보내지 않는 것이 조금이라도 이익이 된다면 저를 붙잡아 두려 할 거예요. 최소한 조용해질 때까지 만이라도 말이죠.”
“나는 그때까지 너를 이곳에 둘 수 없다. 저들의 마음이 언제 변할지 모르는데 어찌 믿고 기다린단 말이냐?”
이곳에 있고 싶지 않은 마음은 헌원려려가 더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이 마치 자신의 이중성처럼 느껴졌다.
북궁천이 남아 있으면 천사교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데도, 자신은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서 북궁천과 함께 떠나고 싶어 한다. 남은 사람들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북궁천에게 대협이 되라고 한 소리는 빈말이었단 말인가?
하지만 그동안의 극심한 마음고생은 그녀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세상이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해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다만 고향으로 돌아가려면 그 전에 선결되어야 할 문제가 하나 있었다.
진아에 대한 것.
그녀는 그 말을 북궁천에게 할 것인지 몇 번이나 망설였지만 결국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직은 아니었다. 곧 해야겠지만.
만약 자신에게 아기가 있고, 그 아기가 북궁천의 아기라는 걸 알게 되면 당장 자신을 데리고 떠나려 할 것이다.
떠나는 거야 두렵지 않았다. 문제는 삼성궁에서 아기를 내주지 않을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