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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73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73화

 

73화

 

 

 

 

 

 

 

“그런데 내가 알기로, 그 장법은 구양가만이 익힌 무공으로 아네만……. 이제 말해 보게, 누군가?”

 

북궁천은 그쯤에서 진실을 말해 주었다.

 

“그를 죽인 사람은…… 구양우경이오.”

 

순간 관호명의 눈이 한껏 커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가 왜 상은호를 죽인단 말인가?”

 

“짜증이 난 것 같소. 상 부단주가 물러서다가 부상당한 그의 옆구리를 쳤으니까.”

 

북궁천의 말에 관호명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겨우 그런 이유로 상은호를 죽였다고? 혹시 그가 상은호를 적으로 생각하고……?”

 

“검으로만 찔렀다면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지요.”

 

관호명은 북궁천의 말을 바로 알아듣고 표정이 이지러졌다.

 

반사적으로 검을 뻗었다 해도 바로 천무회 사람이라는 걸 알아봤을 것이다. 그 정도 고수라면 중간에서 멈추고도 남았다.

 

그런데 검기가 심장을 완전히 관통했고, 그 후에 장력이 심장을 부쉈다.

 

명백한 고의 살인.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

 

문제는 상은호를 죽인 사람이 구양우경이라는 것이다.

 

당금 연합 세력의 주축인 삼성궁의 소궁주.

 

“정말 그가 맞나?”

 

“내 아우가 모든 걸 봤소.”

 

“그가 왜, 대체 왜 상은호를 죽인 거지? 정말로 순간적인 짜증 때문에 죽였단 말인가?”

 

그 점에 대해서는 관호명만이 아니라 사공강후도 궁금했다.

 

“이제 다 말해 주시오, 단 형.”

 

북궁천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나서 나직이 입을 열었다.

 

“그는 죽이고 싶어서 죽인 거요.”

 

“그게 무슨 말인가? 죽이고 싶어서 죽이다니?”

 

“말 그대로요. 그는 상은호를 짜증이 나서 죽이긴 했지만, 온전히 그것 때문에 죽인 것만은 아니오.”

 

관호명이 그의 말에서 뭔가를 눈치채고 물었다.

 

“설마 그가 느닷없이 살인 욕구를 느끼기라도 했단 말인가?”

 

“갑자기 느낀 것이 아니라 그의 본능이 튀어나온 거요.”

 

“본능? 으음, 그가 살인을 갈구하는 마인처럼 제정신이 아니라는 말처럼 들리는군. 그건 너무 지나친 생각 같은데? 사실 그곳에서는 모두가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이었네. 구양우경처럼 곱게 자란 사람이라면 그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을 거네.”

 

누구든 그렇게 생각할 수 있었다. 더구나 상대가 구양우경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북궁천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남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지금 천사교와의 싸움 때문에 그를 그렇게 평가한 것이 아니오.”

 

“그럼……?”

 

북궁천은 관호명을 직시하고서 말했다.

 

“그는 본래 그런 사람이오. 너무 깊게 감춰져서 아무도 모르는 것뿐.”

 

“…….”

 

관호명과 사공강후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북궁천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리고 북궁천이 허튼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라는 확신이 든 후에야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하아아, 정말 믿을 수가 없군요.”

 

“으으음, 아무리 한 길 사람 속이 천 길 물속보다 깊다지만, 그가 그런 사람이라니…….”

 

살인자가 구양우경이라는 것만 해도 충격이거늘, 그가 마에 물들어 있다니.

 

뒤통수를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분노하는 마음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그러나 분노는 밑으로 가라앉았을 뿐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무겁게 가슴을 짓눌렀다.

 

관호명은 숨을 깊게 들이쉬어서 충격을 안정시키고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그에 대한 것은 상은호가 죽은 것과 또 다른 문제네.”

 

상은호의 죽음만 문제라면 사과와 배상을 하는 것으로 끝날 수도 있다.

 

죽은 상은호는 억울할지 몰라도 그 일로 두 세력이 등지고 돌아설 가능성은 거의 없는 것이다. 당시 산채에서는 대부분 제정신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구양우경이 정말 마에 물든 살인마라면 문제가 달라진다.

 

“만약 자네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면, 그 말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르네. 확실한 증거가 있나?”

 

북궁천은 그쯤에서 두 사람을 자신의 그물 안으로 끌어들였다.

 

“지금 그걸 밝히려 하고 있소. 두 분이 도와주신다면 좀 더 확실하게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소만.”

 

 

 

* * *

 

 

 

“안녕하셨어요!”

 

소동동은 활짝 웃으며 인사를 하고 철은보로 들어섰다.

 

이제 사흘째, 정문 위사들도 그녀가 준 당과를 받아 들고 웃음으로 대했다.

 

그동안 얼굴이 익었는지, 그녀가 안으로 들어가자 몇 사람이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하하하, 혹시나 해서 나와 봤는데 오늘도 또 왔군.”

 

“예쁜 소저에게서 당과를 받아먹으니 더 맛있지 뭔가?”

 

“고마워요! 이거 드세요.”

 

소동동은 팔랑거리는 노란 나비처럼 오가며 당과를 나누어 줬다.

 

그녀는 전날보다 조금은 가벼운 옷을 걸치고 있었다. 목을 둘렀던 천을 벗어서 그런지 훨씬 생기발랄했다.

 

“허허허, 저 여아가 또 왔군.”

 

“오늘도 입이 심심하지 않겠구려. 이러다 천사교와 싸우기도 전에 먼저 당과를 놓고 우리끼리 싸우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무섭소이다.”

 

승려도 도인도 모두 그녀를 반겨 주었다.

 

밝은 표정. 예쁘다기보다 귀엽게 보이는 얼굴. 당찬 목소리.

 

누가 봐도 싫어하지 않을 모습이었다.

 

그녀가 그렇게 반쯤 당과를 나누어 줬을 때, 별원에서 구양우경이 나왔다.

 

그는 이십 장 거리에 있는 소동동을 보고 슬그머니 주먹을 쥐었다.

 

수룡위사대원의 말을 듣고도 당과를 나눠 주는 여자가 예뻐 봐야 얼마나 예쁠까 싶었다. 그런데 제법 먼 거리인데도 가슴이 먼저 반응하고 있었다.

 

‘호오, 제법인데?’ 

 

그는 점점 가까워지는 그녀를 보면서 기이한 눈빛을 반짝였다.

 

만지면 분이 묻어날 것 같은 뽀얀 살결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서 두툼한 겉옷 속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안을 보지 못한다는 게 짜증날 지경이었다.

 

게다가 웃을 때마다 뽀얀 뺨에 파이는 보조개를 보고 있으니 침이 절로 넘어갔다.

 

‘오랜만에 아주 멋진 애를 보는군.’

 

그때 소동동이 그를 향해 쪼르르 달려왔다.

 

“잘생긴 공자님! 공자님도 하나 잡숴 보세요.”

 

그녀는 환한 표정을 지으며 당과를 건넸다.

 

엉겁결에 당과를 받아 든 구양우경은 미소로 답했다.

 

“고맙다.”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맛있으면 나중에 팔아 주세요.”

 

“그래, 알겠다. 내 꼭 그렇게 하마.”

 

“그럼 다음에 뵈어요!”

 

“아, 잠깐만…….”

 

하지만 그가 붙잡을 새도 없이 노란 나비는 당과를 팔기 위해서 다른 곳으로 훨훨 날아갔다.

 

자신이 붙잡는데도 날아가는 나비를 보면서 구양우경은 코끝을 실룩였다.

 

‘건방진 것도 마음에 드는군. 아주 마음에 들어.’

 

당과를 입안에 넣은 그는 묘한 미소를 지으며 돌아섰다.

 

 

 

별원으로 돌아온 구양우경은 운평을 불렀다.

 

“그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라.”

 

“예, 소궁주.”

 

“상남 외곽에 괜찮은 장소가 있는지도 알아보고.”

 

운평이 흠칫하며 고개를 들었다.

 

“상남의 객잔에 상당히 많은 무인들이 머물고 있는데 괜찮겠습니까?”

 

구양우경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그러니 장소를 잘 알아봐야지. 계획도 철저히 세우고.”

 

흠칫한 운평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소궁주.”

 

 

 

구양우경은 운평이 나간 후 이마를 찡그렸다.

 

‘호문만 한 놈이 없군. 호문 같으면 알아서 해결할 텐데, 꼭 말을 몇 번씩 더 하게 만드니 원…… 그건 그렇고 호문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군. 그놈이 살아 있으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지 모르거늘.’

 

당시 지하에 흘린 피의 흔적으로 봐서 중상을 입은 게 분명했다.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은 걸로 봐서 죽었을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아니면 멀리 도망갔을지도 모르고. 장호문 역시 자신이 저지른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는 곧 장호문에 대해서 잊고 붉은 혀로 입술을 축였다.

 

‘혼자 즐기면 심심할 것 같은데, 다른 사람을 불러올까?’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천사교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니, 그 핑계를 대면 어렵지 않게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냐, 아냐. 오랜만에 즐기는 건데, 나 혼자 실컷 즐기는 게 낫겠어. 후후후후.’

 

 

 

한편, 북궁천은 구양우경을 살펴보고 온 황보청과 종리기진에게서 보고를 들었다.

 

“표정으로 봐서는 대단히 만족한 것 같습니다, 대형.”

 

“금방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것 같더군요. 개만도 못한 새끼.”

 

황보청이 구양우경을 욕하며 이를 으드득 갈았다.

 

처음 구양우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설마 했다. 그런데 조금 전에 본 눈빛을 떠올리니 절로 이가 갈렸다.

 

“한시도 시선을 떼선 안 되네. 다른 자들은 천종원이 알아서 감시할 것이니 두 아우는 구양우경만 주시하게.”

 

“알겠습니다, 대형.”

 

천종원뿐만이 아니라 사공강후와 관호명도 암중에서 살펴보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철저히 감시당하고 있다는 걸 구양우경은 꿈에도 모르고 있을 터. 북궁천은 냉소를 지으며 허공을 노려보았다.

 

천사교와 연합 세력 간의 싸움은 그에게 곁가지일 뿐이다.

 

헌원려려를 얻지 못한다면 그딴 싸움에서 이긴들 무슨 소용이랴.

 

‘놈의 껍질을 벗겨 내고 려려와 당당하게 떠날 것이다.’

 

이제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짧으면 이틀, 길어야 닷새.

 

‘구양우경, 어서 본성을 드러내 봐라!’

 

 

 

* * *

 

 

 

“령주. 수룡위사대원 중 하나가 바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래?”

 

천종원은 모우태의 보고를 받고 눈빛을 반짝였다.

 

‘그가 드디어 움직이려고 하는 건가?’

 

모든 일을 꾸민 사람은 단화린이다. 짧은 시간에 꾸민 일 치고는 완벽했다.

 

‘일지 하나만으로 그런 추측을 해내서 일을 진행시키다니. 정말 무서운 놈이군.’

 

머리만 뛰어난 게 아니었다. 무공의 강함은 절대지경의 고수들조차 인정하는 판이었다.

 

그와 적이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

 

“현재 몇 명이 지키고 있느냐?”

 

“다섯입니다, 령주.”

 

“한시도 눈을 떼지 마라. 그렇다고 해서 너무 가까이 접근하지는 말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천종원이 모우태를 돌아보며 나직이 말했다.

 

“그리고 단화린에 대해서도 철저히 살펴봐.”

 

모우태는 슬쩍 눈을 들어 천종원을 살펴보았다.

 

고민이 느껴지는 표정이었다.

 

자신 역시 같은 감정이었다.

 

‘그는 너무 위험한 잔데…….’

 

왜 그를 살펴보라는지 이유를 모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령주가 너무 앞서 나간다는 느낌이었다. 자칫하면 모든 게 엉망으로 틀어질 수도 있거늘.

 

그래도 일단은 령주의 명령에 복종했다.

 

“예, 령주.”

 

 

 

* * *

 

 

 

그 시각.

 

임강령은 미간을 좁히고 작은 책자에 써진 이름 하나를 내려다보았다.

 

‘그거 참, 알 수가 없군.’

 

가로 세 치, 세로 다섯 치의 작은 책에는 세필로 써진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모두 중간 간부 이상이었고, 직위가 없어도 고수라는 꼬리표가 달린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이름 밑에는 자신이 정한 다섯 가지 기준에 따른 표식으로 동그라미와 세모, 가위표가 그려져 있었다.

 

성격, 동료와의 관계, 세력에서의 중요도, 최근의 행적, 과거의 행적.

 

다섯 곳에 표식이 모두 된 것도 있었고, 어떤 이름 밑에는 아직 표식이 마무리가 안 되고 한두 개씩 빠져 있었다.

 

그는 그것으로 의심이 가는 자들을 일 차로 추려 냈다.

 

어차피 혼자서 조사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렇게 일 차로 추려진 인물에 대해서 단화린과 의논한 후 더 깊이 파고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는 그 많은 이름 중 하나가 자꾸만 눈에 밟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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