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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72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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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 : 마정록 72화

 

72화

 

 

 

 

 

 

 

그런데 철은보에서 많은 양을 사간다면, 서너 번만 팔아도 당장 외상값을 갚을 수 있을 듯했다.

 

“알았어요. 맛은 최고로 해서 만들어 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그녀의 밝은 표정을 멍하니 바라보던 북궁천은 그녀가 꾸벅 허리를 숙이며 고마워하자 번뜩 정신을 차렸다.

 

“험, 그럼 일단 은자 열 냥을 선불로 주겠소. 그리고 내일 철은보로 가서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고, 누가 추운데 고생하는 사람을 위해 선심을 베풀었다고 하시오. 나에 대해선 절대 말하지 말고.”

 

소동동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머, 정말요?”

 

“그렇소. 그리고 반드시 아가씨가 가서 나누어 줘야 하오. 그래야 젊은 무사들이 좋아할 테니까.”

 

북궁천의 말에 소동동이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열흘 벌어야 할 돈을 하룻밤 만에 번 것이 즐거워서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알았습니다. 그렇게 할 게요.”

 

“그럼 부탁하겠소.”

 

북궁천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돌아섰다.

 

‘너에게는 해가 가지 않도록 해 주마.’

 

 

 

 

 

 

 

9장. 당과소녀 소동동

 

 

 

 

 

소동동이 철은보에 나타난 것은 무사들이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할 때였다.

 

보따리를 메고 철은보에 도착한 그녀는 정문의 위사들에게 당과를 하나씩 쥐어 주고 싱긋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어어, 소저. 안 된다니까!”

 

정문을 지키던 삼성궁의 구검당 무사가 손짓을 하며 그녀를 불렀다.

 

하지만 그녀는 깊게 파인 보조개를 드러내며 빙그레 웃었다.

 

“수고하는 분께 드리려고 그러는 거라니까요. 이거 나눠 드리고 곧 나올 게요. 설마 제가 무서워서 그런 것은 아니죠? 정 못 믿겠으면 저를 따라다니세요.”

 

그때 동호량이 정문 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제가 그 소저를 따라다니면서 감시하죠. 소저, 일단 하나 줘 보시오. 독이 있나 없나 확인해 봐야겠소.”

 

소동동은 동호량을 흘겨보며 당과를 건네고는 당차게 말했다.

 

“만약 거기에 독이 들었으면 제 목을 쳐도 좋아요.”

 

동호량은 하나를 받아서 먹어 보고 입맛을 다셨다.

 

“독은 없는 것 같군. 하나 더 줘 보쇼.”

 

“다른 분도 드셔야 되니 안 돼요!”

 

“그러지 말고 하나만 더 주쇼. 입맛만 버렸잖소?”

 

소동동은 마지못한 표정으로 하나 더 건넸다.

 

동호량은 당과를 입에 넣고 고갯짓으로 안을 가리켰다.

 

“갑시다.”

 

정문 위사는 그 광경을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동호량은 소동동이 건네준 당과를 입에 물고 그녀를 졸졸 따라다녔다.

 

 

 

점심을 먹고 휴식을 취하던 무사들은 난데없이 나타나 당과를 나누어 주는 소동동을 보며 재미있어 했다.

 

그들 역시 처음에는 독이라도 들어 있지 않나 하는 마음에 주저했다. 하지만 독에 정통한 당가의 장로 당소철이 안심해도 된다고 하자 하나둘씩 슬쩍 손을 내밀었다.

 

“하나씩만 가져가세요. 다른 분도 잡숴야죠.”

 

소동동은 더 달라고 해도 매몰차게 손을 저었다.

 

승려도 도인도, 수염이 허연 장로급 간부들도 그녀가 건네준 당과를 마지못한 표정으로 받으면서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거, 맛이 괜찮구먼.”

 

“낙양에서 사 먹던 것보다 낫소이다. 허허허.”

 

평소에도 이렇게 팔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단숨에 빚을 갚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텐데.

 

소동동은 아쉬움과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며 당과를 나누어 주었다.

 

보따리에 들었던 당과가 빠르게 줄어들더니, 안쪽에 있던 사람들까지 무슨 일인가 싶어 나왔을 때는 모두 떨어져 버렸다.

 

“내일 또 갖다 드릴 게요! 오늘은 떨어졌어요!”

 

그녀는 환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보따리를 탈탈 털어 보였다.

 

내일도 가져오려면 그 사람이 와서 돈을 줘야 하는데, 온다는 보장은 아직 없었다.

 

그래도 사람들이 즐거워하며 먹는 걸 보니 가능성이 반은 넘을 듯했다.

 

제발 그랬으면…….

 

그녀는 보따리를 둘둘 말아서 허리에 두르고 꾸벅 허리를 숙였다.

 

“안녕히 계세요!”

 

 

 

멀리서 소동동이 당과를 나누어 주는 모습을 본 북궁천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예상보다 사람들이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원래 목적은 그런 것이 아니었지만, 어쨌든 분위기가 밝아져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날 밤. 그는 종리기진을 당화점으로 보냈다. 그리고 이번에는 은자 열다섯 냥 어치의 당과를 주문했다.

 

 

 

* * *

 

 

 

다음 날 오후.

 

구양우경은 바깥쪽에서 소란스런 소리가 들리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이지?”

 

천사교가 공격해 왔다면 간부들을 불렀을 터. 그런 것은 아닌 듯했다. 게다가 소란스럽긴 해도 왠지 밝은 목소리였다.

 

“가서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와라.” 

 

궁금함을 참지 못한 그는 수룡위사대원을 임시로 지휘하는 운평을 보내 사실을 알아보라고 했다.

 

일각도 지나지 않아서 운평이 당과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그게 뭔가?”

 

“당과입니다, 소궁주. 상남에서 당과 가게를 하는 소저가 추운 날씨에 상남을 지키느라 애쓴다며 당과를 나눠 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구양우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과를? 천사교가 당과에다 수작을 부리면 어쩌려고 함부로 받아먹는단 말이냐?”

 

“어제부터 나누어 줬는데, 독에 정통한 분들이 아무런 해도 없는 것이라 했다 합니다. 아마 오늘도 확인을 했을 것입니다.”

 

“그거 참, 영문을 알 수 없군. 난데없이 당과라니. 그런데 여자가 나누어 준다고?”

 

“예, 소궁주. 얼굴이 깨끗한 데다 인상이 착하게 생긴 소저인데, 아주 밝은 성격 같았습니다.”

 

“그래?”

 

구양우경은 그 말을 듣고 바깥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운평이 그에게 들으라는 듯 몇 마디 덧붙였다.

 

“솔직히 당과를 팔기에는 아까워 보일 정도입니다. 아직 스물이 안 된 것 같은데, 험한 일을 한다고 보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피부가 깨끗한 여자였습니다.”

 

순간적으로 구양우경의 눈빛에 열기가 피어올랐다.

 

“그대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궁금해지는군. 지금도 있느냐?”

 

“제가 나갔을 때 당과가 다 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가면서 내일 다시 온다고 했으니 궁금하시면 내일 보시지요.”

 

 

 

북궁천은 당과가 다 떨어지기 직전에 수룡위사대원이 나타난 걸 보고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빨리 반응을 보이는군.’

 

구양우경이 직접 나타나진 않았지만 말은 전해질 터. 제대로 전하기만 한다면 내일쯤은 그가 직접 움직일 것 같다.

 

그는 수룡위사대원이 별원으로 들어가는 걸 보며 돌아섰다.

 

그때 청색 도복을 입고 등에는 송문검을 멘 젊은 도인이 그를 향해 다가오며 물었다.

 

“혹시 시주가 회룡당의 단화린이란 분 아니오?”

 

“그렇소만.”

 

북궁천의 일 장 앞에 선 젊은 도인은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태도로 포권을 취했다.

 

“빈도는 무당의 명우라 하오. 소문을 듣고 한번 만나 보고 싶었는데, 같은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도 만나기가 쉽지 않구려.”

 

명우라는 도호를 들은 북궁천은 호기심이 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명우라는 도호는 그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무당에서 배출한 최고의 기재. 무당 부흥의 희망이라고 알려진 젊은 도인. 나이 스물아홉에 무당 최고의 절기인 태극혜검을 얻었다고 했던가?

 

“무당의 청송일검이 관심을 가져 줘서 고맙긴 하오만 부풀려진 소문일 뿐이오.”

 

“언제 기회가 되면 단 시주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 보고 싶소이다.”

 

말로는 이야기를 나눠 보자고 하지만, 눈빛 속에는 검을 겨뤄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북궁천은 명우의 호승심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과거의 영광을 꿈꾸는 무당의 희망이었다. 그리고 천사교가 나타난 것을 기회 삼아서 다시금 힘을 뭉치려는 무림맹이 내세운 일곱 명의 젊은 고수 중 선두 주자였다. 나중을 위해서 가까이 해 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잠들어 있었긴 해도 무림맹은 무림맹인 것이다.

 

거대한 잠룡!

 

“그럼 그날을 기다리리다.”

 

명우는 힘이 실린 눈빛으로 북궁천을 똑바로 바라보며 포권을 취했다.

 

“나중에 봅시다. 바쁜 일이 있어서 이만.”

 

북궁천도 가볍게 두 손을 맞잡아 보이고는 걸음을 옮겼다.

 

명우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숨을 느리게 들이쉬었다.

 

‘도무지 알 수가 없군.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어 보이거늘…….’

 

 

 

거처로 돌아가자 이정한이 다가와서 나직이 말했다.

 

“대형, 사공 공자가 사람을 보냈습니다.”

 

북궁천의 무심한 눈빛이 찰나간 흔들렸다.

 

“뭐라고 하던가?”

 

“밤에 승명정으로 나오라는 말만 전하고 그냥 갔습니다.”

 

그날 이후 증거가 완전히 드러날 때까지 만남을 자제하기로 했는데 만나자고 한다.

 

뭔가를 알아냈다는 말.

 

북궁천은 무심하게 가라앉은 눈을 들어 허공을 바라보았다.

 

‘두 줄기 바람이 겹치면 십자풍이 분다.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폭풍이. 어디 한번 벗어나 봐라, 구양우경.’

 

 

 

* * *

 

 

 

승명정은 철은보에서 남쪽으로 백여 장 떨어진 야산 아래에 있는 작은 정자였다.

 

철은보를 차지한 후 수백 구의 시신을 그 부근에 묻어서 그런지 승명정 일대가 음침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바람에 철은보에 머무는 연합 세력의 무사들은 그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사람의 눈길을 의식하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기에는 적격인 장소.

 

북궁천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사공강후가 먼저 와 있었다.

 

 

 

“가슴을 갈라 봤더니, 단 형 말대로 심장이 완전히 으스러져 있었소. 문제는 그 수법을 밝혀내야 확실하게 옭아맬 수 있다는 것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소.”

 

사공강후의 목소리가 고저 없이 흘러나왔다.

 

분노를 가슴속에서 삭이는 목소리.

 

북궁천은 그가 말을 끝낼 때까지 듣기만 했다.

 

“해서 이틀 전, 어쩔 수 없이 관 숙부께 말씀드렸소. 물론 깊은 이야기는 하지 않고 단지 상흔에 대한 것만 말했소. 그런데 오늘 아침, 관 숙부가 굳은 표정으로 와서 그러더구려. 그러한 장력에 대해서 알아냈다고 말이오.”

 

사공강후는 잠시 말을 끊고 북궁천을 응시했다.

 

빛 한 점 없는 밤. 일 장의 거리를 두고 있었지만 어둠은 그들에게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더구려.”

 

북궁천은 사공강후의 씁쓸해하는 표정을 보고 담담히 물었다.

 

“그래서 함께 온 거요?”

 

그때였다.

 

“그렇다네. 나도 무슨 일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함께 왔지.”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승명정 뒤쪽에서 관호명이 걸어 나왔다.

 

사공강후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직접 말하지 않고 데려온 듯했다.

 

“먼저 알아낸 것에 대해서 말해 보시지요.”

 

“아쉬운 것은 자네일 것 같은데?”

 

“나야 몰라도 큰 상관은 없소.”

 

북궁천의 무심한 목소리에 관호명의 눈매가 꿈틀거렸다.

 

하기야 천무회 사람이 죽은 일이었다. 단화린보다는 자신이 더 관련 깊은 일.

 

사공강후가 말을 해 주면 좋겠지만, 약속을 한 이상 그는 결코 입을 열지 않을 사람이어서 애가 타는 것은 결국 자신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힘으로 억누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고 말이다.

 

북궁천을 노려보던 관호명은 할 수 없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심장을 부순 것은 파벽신장이었네. 가슴의 흔적이 워낙 옅어서 바로 알아볼 수 없었는데, 밤새 생각해 봤더니 이름 하나가 떠오르더군. 내부를 그물처럼 조각내는 장법은 흔한 게 아닌데도 워낙 강호에 알려지지 않은 장법이었거든.”

 

담담하게 말하던 그가 숨을 잠시 멈추더니 은은한 노기가 실린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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