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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71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6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71화

 

71화

 

 

 

 

 

 

 

그런 표정으로 북궁천을 노려본 구양우경이 쌀쌀맞게 축객령을 내렸다.

 

“알았으니 약을 수룡위사대에게 맡기고 그만 가 보게.”

 

“서평에 머물던 소저가 오셨다던데, 몸은 괜찮으시오?”

 

“자네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네.”

 

목소리가 싸늘하게 가라앉은 구양우경의 두 눈에서 은은한 청광이 일렁였다.

 

그때 헌원려려의 방문이 열리고 맑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는 괜찮으니 그만 가 보세요.”

 

북궁천은 고개를 돌려서 그녀를 바라보았다.

 

평온해 보였다. 낯빛이 조금 창백한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큰 이상은 없는 듯했다.

 

그는 심어전성으로 입술하나 움직이지 않고 전음을 보냈다.

 

―려려, 지금이라도 나와 함께 가고 싶다면 말해라.

 

헌원려려는 담담히 웃으며 말했다.

 

“서평에 있을 때 열이 조금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서 아무런 이상이 없어요.”

 

그럴 마음이 없다는 말.

 

그녀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짐작한 북궁천은 가까스로 감정을 억제하며 말했다.

 

“다행이군요.”

 

―나에게 조금만 기회를 줘라. 내가 구양우경의 껍질 속에 숨어 있는 사악함을 밝혀낼 거다. 그때까지 절대 마음을 줘선 안 된다. 알았지?

 

헌원려려의 귓속으로 대답과 전음이 동시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동문서답하듯 엉뚱한 말을 하며 몸을 움츠렸다.

 

“날씨만 풀리면 밖에도 다닐 수 있을 텐데, 그때까지 기다리려니 답답하네요.”

 

순간, 그녀의 말을 들은 북궁천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기다리려니 답답하다고 했다. 날씨만 풀리면 밖에 다닐 수 있다고도 했다.

 

문제가 뭔지는 몰라도 해결만 된다면 자신을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말처럼 들렸다.

 

무엇이 그녀와 구양우경 사이에 틈을 만든 것일까.

 

그런 마음이면 당장 떠나면 될 것을 왜 그러지 못하는 것일까.

 

‘혹시 저놈이 좋아서가 아니라, 피치 못할 사정이 있어서……?’

 

그럴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저 사악한 놈이 무슨 짓을 못할까.

 

구양우경은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것에 짜증과 분노가 치밀었다.

 

그가 평소와 달리 자신의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냉랭히 말했다.

 

“그만 가 보게. 려매도 괜찮다고 하지 않나?”

 

가슴이 후끈 달아오른 북궁천은 그쯤에서 물러났다.

 

“알겠소, 소궁주. 그럼 저는 이만 가 보지요. 소저, 저도 날씨가 빨리 풀리길 바라겠소이다.”

 

 

 

북궁천이 별원을 나가자 구양우경이 헌원려려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드러내지 않았던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려매, 날씨가 차니 안으로 들어가서 쉬시오. 그리고 앞으로는 이런 사소한 일에 나오지 마시구려.”

 

“알았어요, 소궁주.”

 

헌원려려는 담담한 웃음을 지은 채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문을 닫은 후, 떨리는 걸음을 억지로 옮겨서 침상으로 갔다.

 

무너지듯이 털썩 주저앉은 그녀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그녀도 능숙하진 못하지만 전음을 할 줄 알았다. 전음으로 자신의 마음을 좀 더 솔직하게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구양우경이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아서 전음 대신 자신의 마음을 비유해서 말했다.

 

‘그가 알아들었을까?’

 

갑자기 가슴이 미어졌다.

 

결국은 외면했던 그에게 자신을 부탁하고 말았다.

 

철저히 이기적이고 위선에 가득 찬 여자. 그게 자신이다.

 

대협을 운운할 자격도 안 되는 여자.

 

그런 자신 때문에 만 리를 달려온 북궁천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털썩.

 

꼬꾸라지듯이 침상에 엎드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샘솟듯이 흘러나왔다.

 

‘참아야 하는데…… 진아를 위해서라도 참아야 하는데…….’

 

그러고 싶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참을 생각이었다.

 

아기만 건강해지고 무사하다면 자신이야 어떻게 돼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전 구양우경의 눈빛을 본 후로 마음이 흔들렸다. 

 

결코 정상적인 눈빛이 아니었다.

 

기괴한 광기가 서린 눈빛. 너무나 위험한 눈빛이었다.

 

잘못하면 자신뿐만이 아니라 진아에게도 영향이 미칠 것 같았다.

 

그것만큼은 절대로 안 되는 일이었다.

 

 

 

* * *

 

 

 

그날 밤.

 

북궁천은 상남으로 나가 매병루를 찾아갔다.

 

골목으로 들어가는데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앞으로 이런 일은 동생들에게 맡겨야지.’

 

그가 안으로 들어가자, 전에 봤던 삼십 대 여인이 날듯이 달려와서 찰싹 달라붙었다.

 

“호호호, 이제 자주 오시네? 그날 좋았나 봐요?”

 

북궁천은 차마 인상은 쓰지 못하고 짐짓 무뚝뚝한 어조로 말했다.

 

“잔소리 말고 방으로 안내하쇼.”

 

“저를 따라오세요.”

 

여인은 그의 팔을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그녀의 눈빛에서 이번에는 반드시 잡아먹겠다는 결의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녀의 결의는 이 층으로 향하는 계단 앞에서 수포로 돌아갔다.

 

“어마, 오셨네요? 호호호호.”

 

매병루주가 이 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잠시 후.

 

북궁천은 싸구려 술과 요리를 앞에 두고 매병루주와 마주 앉았다.

 

“천녀가 닷새 동안 상남을 샅샅이 뒤져서 끝내 찾아냈지 뭐예요.”

 

자신의 노력을 알아달라는 듯 자랑스럽게 말한 매병루주는 입술을 최대한 오므린 채 웃으면서 눈웃음을 쳤다.

 

북궁천은 그녀가 못 미더웠지만 어차피 맡긴 이상 확인은 해 볼 생각이었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 말해 보시오.”

 

매병루주는 자신의 살인적인 교소가 통하지 않자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름은 소동동이고, 서쪽 대로 끝에 있는 당화점의 주인이에요. 이제 열아홉 살에 불과한데, 제 아비가 죽는 바람에 점포를 이어받았죠. 그 아이라면 무사님이 원하는 바를 모두 갖췄을 거예요.”

 

매병루주의 하는 행동으로 봐서는 모두가 아니라 한두 가지만 갖춰도 다행일 것 같았다.

 

“내가 직접 확인해 보겠소. 잔금은 확인 후에 줄 것이니 그리 아시오.”

 

“아이, 무사님. 그래도 일단 삼십 냥이라도 주셔야지요. 그 아이만 꿀꺽하면 당화점을 통째로 얻을 수 있을 텐데…….”

 

북궁천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매병루주를 노려보았다.

 

“지금 나를 모욕하겠다는 거요?”

 

“아니, 그게 아니라…….”

 

“확인하고 올 때까지 기다리시오. 마음에 들면 나머지 잔금을 다 줄 테니까. 대신, 전에도 말했다시피 다른 사람에게 오늘의 일을 말하면 모든 걸 잃게 될 거요.”

 

“아, 알았습니다요.”

 

북궁천은 바짝 움츠린 매병루주를 지그시 바라보고 몸을 돌렸다.

 

‘진즉 이렇게 할 걸.’

 

그렇게 그가 시원한 표정으로 나간 후, 매병루주는 찰랑거리는 술잔을 목구멍 안으로 단숨에 털어 넣고 아쉬움을 달랬다.

 

“크으으.”

 

‘쳇, 얼굴이 반반하고 몸이 좋아 보여서 한번 맛 좀 볼까 했더니. 뭐? 모든 걸 잃어? 내가 그깟 말에 눈 하나 꿈쩍할 줄 알고? 남자 새끼가 여자 겁이나 주고…….’

 

화류계 이십 년은 그냥 누워서 대충 지낸 세월이 아니다. 풋내 나는 무사 정도는 손가락 하나로 요리할 수 있었다.

 

‘어디 돈만 안 줘 봐라? 초 오라버니에게 말해서 거기만 놔두고 두 다리를 그냥 확!’

 

 

 

* * *

 

 

 

매병루주가 다리를 잘랐다 붙였다하며 술잔을 기울이는 동안, 북궁천은 어둠이 짙게 깔린 대로를 따라서 당화점을 찾아갔다.

 

당화점은 당과와 아이들이 먹는 과자를 파는 작은 가게였다. 그런데 밤이 깊어서인지 문을 닫은 상태였다.

 

점포 앞을 그냥 지나친 그는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확인된 순간, 그의 신형이 대로에서 사라졌다.

 

지붕을 바람 소리도 내지 않고 단숨에 넘어간 북궁천은 처마에 몸을 숨기고 안쪽을 살펴보았다.

 

작은 마당을 사이에 두고 점포와 방 두 개로 이루어진 건물이 마주보고 있었는데, 두 방 중 하나에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안에서 낮은 숨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아닌 여인의 숨소리. 육십이 다 된 노인과 둘이 산다고 했으니 그 방에 소동동이 있다는 말이었다.

 

북궁천은 그 방의 처마 밑으로 자리를 옮겨서 문틈으로 안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흠칫 놀라서 재빨리 눈을 뗐다.

 

하지만 곧 주위를 둘러보고는 다시 틈에 눈을 갖다 댔다.

 

소동동이 옷을 벗고 있었다.

 

‘벗은 몸을 보면 더 확실히 알 수 있겠지.’

 

매병루주에게는 벗은 몸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살결에 대한 말은 했지만.

 

그래도 어쨌든 벗은 몸을 보면 자신이 원하는 살결인지 보다 확실히 알 수 있을 터. 그의 생각도 잘못된 것만은 아니었다.

 

‘정말 부드럽게 생긴 살결이군. 려려와 비슷하겠어.’

 

일단 살결은 합격이었다. 그래도 어딘가에 흠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며 조금 더 살펴보았다.

 

그때 소동동이 몸을 돌렸다.

 

‘헉!’

 

 

 

* * *

 

 

 

매병루주를 찾아간 북궁천은 순순히 팔십 냥을 줬다.

 

“약속대로 팔십 냥이오.”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얼굴이 벌게진 매병루주는 돈을 깊디깊은 가슴골 사이에 대충 구겨 넣고 북궁천의 다리 사이를 노려보았다.

 

기분이 이상해진 북궁천은 더 이상 그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약속한 대로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하지 마시오.”

 

매병루주는 물기가 촉촉한 눈을 들어 북궁천을 올려다봤다.

 

“걱정 말아요. 무사님과 이 밤을 함께 보냈다는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을 게요. 그러니 어서…… 으응…….”

 

북궁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방을 나왔다.

 

세상에 자신이 이길 수 없는 여인이 꼭 헌원려려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병루를 나온 북궁천은 다시 당화점을 찾아갔다. 그리고 문을 두드렸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그가 두드리는 소리는 밖에서보다 안에서 열 배는 더 크게 울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등불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오는가 싶더니 늙수그레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쇼?”

 

“뭐 좀 사러 왔소.”

 

“지금은 밤이 늦어서 팔지 않수.”

 

“우리 대원들이 먹을 거라 양이 조금 많이 필요하오.”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많이 산다니까 갈등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때 여자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들렸다.

 

“열어 드려요.”

 

“아가씨, 밤에 문을 여는 건…….”

 

“어차피 나쁜 마음을 먹었다면 저런 문이 무슨 소용 있겠어요.”

 

소동동의 당찬 목소리를 들은 북궁천은 그녀의 말에 감탄했다. 자신이 대원이라 한 말을 듣고 무사임을 눈치챈 듯했다.

 

그리고 조금도 겁먹은 목소리가 아니었다.

 

삐이익.

 

문이 열리고, 헌원려려와 얼굴형은 조금 다르지만 분위기가 제법 비슷한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소동동이었다.

 

“들어오세요.”

 

안으로 들어간 북궁천은 그녀를 조금 더 살펴보았다. 문틈으로 살펴보긴 했지만 가까이에서 살펴보는 느낌은 또 달랐다.

 

‘매병루주가 자신할 만하군. 얼굴은 빼어나게 아름답지 않아도 뭔가 묘한 아름다움이 있는 여자야.’

 

소동동은 눈빛 한 점 흔들리지 않고 그를 대했다.

 

“얼마나 사실 생각이신가요?”

 

“이것저것 합쳐서 백 명이 넉넉하게 먹을 양을 살까 하오.”

 

“그 정도 사시려면 은자 열 냥은 주셔야 돼요. 요즘 재료 가격이 올라서 그 이하로는 팔 수가 없어요. 그리고 지금 당장은 안 돼요. 남은 게 얼마 없어서 지금부터 만들더라도 한 시진은 더 걸릴 거예요. 그러니 선불을 주시고 나중에 오세요.”

 

“어차피 당장 필요한 것이 아니오. 오늘밤은 쉬고 내일 아침에 만들어서 미시쯤 철은보로 가져오시오.”

 

“철은보로요?”

 

“그렇소. 맛이 좋으면 또 시킬 거요.”

 

소동동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맛은 자신 있었다. 그런데 재료 가격이 올라서 값을 올리다 보니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사실 그 바람에 외상으로 산 재료값을 주지 못해서 이대로 한두 달만 지나면 점포가 넘어갈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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