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70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8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70화
70화
그러데 걸친 옷은 회룡당 일반 무사의 복장이 아닌가?
‘대주도 아니고 일반 무사잖아?’
나중에 합류해서 북궁천을 알지 못하는 그는 목에 힘을 주고 턱을 쳐들었다.
잠은각의 좌령주가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분인 줄 아나? 감히 회룡당의 말단 무사 따위가 말이야.
그는 그런 마음을 확연히 드러내며 물었다.
“령주님은 왜 만나려는 거요?”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만나려는 거요.”
“할 이야기가 뭐요? 어디 나한테 먼저 말해 보쇼. 합당하면 령주님께 말씀드려 보겠소.”
“령주만이 판단하실 수 있는 말이오. 그러니 귀하에게는 말할 수가 없소.”
기분이 상한 듯 잠은각 무사의 눈매가 틀어졌다.
“그럼 나중에 다시 오쇼. 령주께선 지금 바쁘시니까.”
그래도 한 수가 있는 것처럼 보여서 막말은 피했다.
‘자식, 몸은 제법 괜찮군.’
북궁천은 잠은각 무사의 마음을 짐작했지만 소란을 피하기 위해서 다그치지 않고 조용조용히 말했다.
“일단 안에 기별이라도 해 보시오.”
“아, 글쎄. 지금은 안 된다니까?”
잠은각 무사는 짜증나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휘휘 저었다.
그때 건물에서 누군가가 밖으로 나왔다.
“무슨 일인데 시끄럽게…….”
심드렁한 말투로 투덜거리던 그는 북궁천을 보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때까지도 상황 파악을 못한 잠은각 무사는 북궁천을 째려보며 말했다.
“이자는 령주님을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분으로 아나 봅니다. 다음에 오라고 했더니 자꾸 만나게 해 달라고 떼를 쓰지 뭡니까?”
건물에서 나온 자는 뛰듯이 달려오더니 잠은각 무사의 뒷덜미를 움켜쥐고서 뒤로 확 잡아챘다.
“비켜, 이 사람아!”
“어어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조장님?”
새로 나타난 자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급히 북궁천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죄송합니다, 단 공. 저 미친놈이 한 말은 잊으십시오. 날씨가 춥다 보니 간덩이가 땡땡 얼어 버렸나 봅니다. 그런데 령주님은 무슨 일로……?”
“할 이야기가 있어서 만나려는 거요.”
“아, 예. 그럼 저를 따라오십시오.”
잠은각 우령주 휘하 이조장인 모우태는 두말하지 않고 몸을 돌렸다.
그러고는 눈알만 굴리는 애물단지 수하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나중에 보자, 이가충.’
천종원은 안으로 들어서는 북궁천을 바라보며 이채를 번뜩였다.
이전에 두종진의 일로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단화린은 존재의 의미가 천양지차였다. 잠은각 좌령주인 그조차 말을 조심해야 할 정도로.
“그래, 무슨 일로 찾아오셨소?”
“한 가지 물어볼 게 있어서 왔소.”
“말해 보시오. 듣고 난 다음에 대답을 할 수 있는 것인지 판단하도록 하겠소.”
“두종진이 얽힌 사건에 대해서 지금도 관심이 있는지 알고 싶소만.”
평소 변화가 거의 없는 천종원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어지고, 말투도 나직하고 딱딱하게 흘러나왔다.
“왜 그걸 알고 싶은 것이오?”
“이유가 없다면 여기까지 와서 묻지도 않았을 거요. 대답해 보시오. 관심이 있소, 없소?”
북궁천은 은근한 어조로 천종원을 압박했다.
천종원은 정보를 취급하는 사람답게 북궁천의 말투에서 뭔가 큰 건수가 있음을 눈치채고 침을 삼켰다.
“그 말씀은……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나는 말을 돌리는 걸 좋아하지 않소. 관심이 없다면 그만 가 보겠소.”
북궁천은 조금도 급할 것 없다는 듯 담담히 말하고 몸을 돌렸다.
“아아, 잠깐 기다리시오.”
천종원은 급히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못 이기는 척 돌아선 북궁천의 두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관심이 많소. 그런데 나를 찾아와 그 말을 할 때는 원하는 게 있을 것 같은데, 그대도 솔직하게 말해 보시오.”
천종원이 더 이상 말을 돌리지 않자, 북궁천도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서로 원하는 것을 취합시다.”
“무슨 말이오?”
“당신들은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그럼 공평할 것 같소만.”
전이었다면 콧방귀를 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콧방귀는커녕 숨도 크게 쉴 수가 없었다.
잠시 머리를 굴리며 북궁천의 말을 음미해 본 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것이 뭔지 말해 줄 수 있소?”
“지금은 말할 수 없소. 단, 내가 원하는 것은 삼성궁과 별개라는 것만 알고 있으면 되오.”
천종원은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자신들이 알아내지 못한 깊은 내막을 알아낸 것 같았다. 심지어 자신들의 목적까지도 파악한 듯했다.
그 대가로 삼성궁과 상관없는 것을 원한다면 자신들로선 하등 손해 볼 것이 없다는 말.
그는 내심 안도하며 담담히 말했다.
“일단 각주께 말씀드려 보겠소.”
“각주께서 귀하에게 모든 것을 일임한 것 같은데, 내가 잘못 생각한 거요?”
“그래도 허락은 받아야 하지 않겠소? 사흘이면 되니…….”
“령주는 시간 아까운 줄 모르시는군. 사흘이면 천하의 향방이 갈리고도 남소.”
하루가 십 년 같은 그였다. 하루 일찍 구양우경에게서 헌원려려를 되찾을 수 있다면 천하를 뒤집어 버릴 수도 있었다.
북궁천은 무심한 눈으로 천종원을 보며 결정을 내리듯 말했다.
“보고를 하는 건 상관없지만, 일의 추진을 늦출 순 없소.”
천종원은 북궁천의 눈빛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포기했다.
“좋소.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겠소. 이제 말해 보시오. 뭘 알고 있는지.”
* * *
호연유는 보고를 받고 눈을 치켜떴다.
“그놈이 서문려려를 뺏어 갈 때 검왕, 고검과 함께 왔던 놈이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소존.”
“그런데 회룡당의 일반 무사라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시오?”
“현재까지 알아낸 바로는 분명합니다.”
호연유는 어이가 없어서 혈사령을 다그쳤다.
“그러니까, 회룡당의 일개 무사가 일검으로 흑사령과 귀사령을 죽였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그 점이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그가 회룡당의 무사인 것은 분명…….”
퍽!
“크윽!”
호연유가 신경질적으로 휘두른 일장에 혈사령의 몸이 떼굴떼굴 굴렀다.
“겉으로 드러난 신분이 아닌 실질적인 정체를 알아 오란 말이오! 필요하면 놈들 속에 있는 십이호교령이라도 동원하시오!”
급히 몸을 추스른 혈사령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이미 호교육령에게 사람을 보냈습니다, 소존. 곧 놈의 정체가 밝혀질 것입니다.”
“호교육령만으로는 힘들지 모르오. 호교이령도 그곳에 있소?”
혈사령이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렇습니다, 소존. 하오나 호교이령은 지존의 명이 있어야…….”
순간, 호연유의 눈빛이 새파랗게 번들거렸다.
혈사령은 급히 말을 돌렸다.
“소존께서 원하신다면 언제라도 연락하겠습니다. 그들은 감히 소존의 명을 거역하지 못할 것입니다.”
“혈사령, 나는 그대를 내 사람으로 보고 있소. 무슨 말인지 알겠소?”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럼 확실하게 행동하시오. 지존은 지존이고, 나는 나요. 그대는 내가 내리는 명령만 따르면 되는 거요.”
“각골명심하겠습니다, 소존.”
“좋소. 오늘은 이쯤에서 용서해 주겠소. 그럼 최대한 빨리 그놈의 정체를 확실하게 알아내도록 하시오. 그놈과 가까운 사람들은 알지도 모르는 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시오.”
“명대로 하겠습니다, 소존!”
호연유는 혈사령이 나간 방문을 노려보았다.
악연이라면 악연이다.
그놈이 서문려려를 뺏어 간 놈이라니.
그 계집만 납치했으면 구양우경을 완벽하게 움켜쥘 수 있었거늘!
두 번에 걸쳐서 자신의 계획을 방해한 그놈의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 씹어 먹고 싶었다.
으드득!
부서지도록 이를 간 그는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허공을 노려보는 그의 두 눈에서 새파란 눈빛이 일렁였다.
이름은 단화린. 친한 사람은 같은 회룡당에 있는 무사 몇 명. 그리고 황보세가의 황보청과 종리기진 정도.
그 외에 검왕과 고검이 그와 친숙하게 지내긴 해도 함께 서문려려 구출에 나선 인연 이상으로 특별하게 보이진 않는다고 했다.
‘놈이 정체를 숨기고 삼성궁에 들어가 있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소리야. 분명 뭔가 있어. 그걸 알아내기만 하면 놈을 옭아맬 수 있을 것 같은데…….’
* * *
‘놈을 옭아매려면 완벽해야 돼. 서두르지 말자, 북궁천. 시간은 아직 많으니까.’
북궁천은 급해지려는 마음을 다스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헌원려려를 만나서 구양우경이 얼마나 나쁜 놈인지 알려 주고 싶었다.
일단 헌원려려를 빼돌려 놓고 구양우경의 정체를 밝히는 것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자칫하면 놈에게 빠져나갈 구멍을 줄지 모른다.
‘그건 안 돼! 절대 안 돼!’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방을 나섰다.
때마침 약봉지를 들고 가던 동호량이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 대형. 마침 잘됐습니다.”
“뭐가 말이냐?”
동호량이 일단 대답을 미루고 다가오더니 넌지시 말했다.
“이 약, 구양 공자께 가져가는 겁니다.”
“그래?”
동호량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약을 내밀었다.
북궁천은 순순히 받아 들었다.
그저 대형의 마음을 헤아려 주는 아우가 고맙기만 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마치 무사들의 전시장 같았다.
특히 무림맹에 속한 소림파, 아미파의 승려와 무당파, 청성파, 화산파, 종남파 등 도문의 도인들로 인해 더욱 다양하게 느껴졌다.
그 바람에 북궁천 한 사람이 그들 사이를 걸어도 신경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전부터 있었던 사람들만이 가끔 그를 알아볼 뿐.
그들 중 일부는 그때를 떠올리며 경탄의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했고, 일부는 슬쩍 눈인사라도 했다. 그리고 일부는 궁금함이 가득한 눈으로 그가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하지만 북궁천은 그들의 반응에 일일이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구양우경의 거처가 코앞이었다. 헌원려려가 있는 곳.
그는 담담함을 유지하며 구양우경과 헌원려려가 머물고 있는 별원으로 들어갔다.
세 채의 건물로 이루어진 별원은 방이 모두 일곱 개였다.
구양우경과 헌원려려가 하나씩 사용하고, 나머지 방에는 삼성궁의 고위 간부 십여 명이 머물렀다.
밀려드는 사람이 많다 보니 광원산장보다 훨씬 넓은 철은보도 비좁아서 상남의 객잔 세 곳을 통째로 얻은 상황. 구양우경이 소궁주라 해도 전처럼 여유 있게 쓸 수가 없었다.
북궁천이 구양우경과 헌원려려의 거처가 있는 건물로 다가가자, 수룡위사대원 하나가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로 왔습니까?”
현재 철은보에서 가장 유명한 이름을 꼽으라면 단연 ‘단화린’이었다.
단순히 이름만 유명한 것이 아니었다. 실력을 따져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거라는 게 일반적인 평이었다.
수룡위사대도 그걸 알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북궁천은 손에 든 약을 들어 보였다.
“약을 전해 주러 왔소.”
“제가 전해 드리지요.”
“아니요. 내가 직접 전해 주었으면 하오. 약에 대해서 설명을 해야 하니까.”
수룡위사대원이 망설이고 있는데 방문이 열렸다.
방문을 연 구양우경은 이마를 찌푸린 채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를 듣고 혹시나 해서 나와 봤는데 역시나 단화린이다.
저놈이 왜 직접 온 걸까?
“무슨 약인데 설명까지 해야 한단 말인가?”
“약이 두 가지라서 순서대로 복용해야 한다고 했소.”
“그래? 그럼 순서를 말해 보게나.”
북궁천은 두 가지 약을 하나하나 들어 올리며 말했다.
“먼저 이걸 복용하고, 그 다음 이쪽 것을 복용해야 하오.”
그게 다야? 겨우 그것까지고 직접 알려 주겠다고 한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