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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69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99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69화

 

69화

 

 

 

 

 

 

 

“조관은…… 내가…… 죽였소. 그런데 소궁주가…… 내 의제를 시켜서…… 나를…… 그는 명화회…… 그들…… 악독한…… 짓…….”

 

그의 목소리가 잦아들자, 북궁천은 급히 세 곳의 혈도를 찍었다.

 

혈도를 찍힌 충격에 죽음이 조금 더 앞당겨질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죽음을 앞둔 자다. 잠깐이나마 정신을 차릴 수 있다면 한 마디라도 더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장호문은 기침을 하며 시커멓게 썩은 피를 토해 냈다.

 

북궁천은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서 그의 몸에 공력을 더 강하게 주입하며 다급히 물었다.

 

“명화회라 했나? 어떤 자들의 모임이지? 그들도 구양우경처럼 여자를 처참하게 죽였나?”

 

장호문의 꺼져가던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어, 어떻게 그걸……?”

 

“역시 사실이었군. 명화회에 대해서 말해 봐라. 어떤 자들이 포함되어 있지?”

 

“며, 명화회는…… 당신이 건드릴 수 없는…….”

 

“흥! 천하에 내가 건드리지 못할 자는 없다. 삼성궁주 구양환이라 해도 내가 마음먹으면 죽는다. 그러니 아무 걱정 말고 말해 봐라.”

 

장호문은 죽어 가는 중에도 어이없는 눈빛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 북궁천의 전음이 그의 고막을 울렸다.

 

장호문은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눈으로 몸을 덜덜 떨었다.

 

“서, 설마…… 다, 당신이…… 북천……?”

 

그러다 즐거워 미치겠다는 듯 웃었다.

 

“크, 크크, 크크크크. 구양…… 우경. 너의…… 운도…… 끝이구……나.”

 

북궁천은 장호문의 목숨이 다해 감을 느끼고 그의 몸에 더욱 강한 기운을 불어 넣었다.

 

“장호문, 내 말에 답해라! 어떤 자들이 명화회에 속해 있느냐? 구양우경의 죄를 밝힐 수 있는 증거가 있으면 말해 봐라!”

 

장호문은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몸을 덜덜 떨면서 계속 자신의 감정만 터트렸다.

 

“네놈 때문에…… 의제를 잃었다. 구양우경…… 지옥에서…… 보자…….”

 

“말해! 어서! 누구지?”

 

우엑!

 

더 견디지 못하고 시커먼 피를 한 움큼 토해 낸 장호문은 흐릿해진 눈을 들었다.

 

“그, 그 일은…… 은천…… 령주가…… 주도…… 선우…… 도 그중…….”

 

툭.

 

목소리를 쥐어 짜내던 그의 머리가 힘없이 떨어졌다.

 

북궁천은 그에게서 손을 떼고 얼음 구슬처럼 차가운 눈으로 내려다봤다.

 

좀 더 많은 말을 듣지 못한 것이 아쉬웠지만, 이 정도를 들은 것만 해도 천운이라 할 수 있었다.

 

‘구양우경, 곧 네놈의 추악한 면모를 세상에 모두 드러내 주마!’

 

 

 

 

 

 

 

8장. 계약

 

 

 

 

 

눈이 쏟아질 것처럼 하늘이 짙은 회색빛으로 물든 정오 무렵, 삼성궁과 천무회의 지원 무사들이 속속 철은보에 도착했다.

 

서평에 남았던 무사들도 모두 함께 왔는데, 그중에는 헌원려려도 있었다. 구양우경이 떠나지 않는 대신 아예 그녀를 데려온 것이다.

 

북궁천은 그녀가 왔다는 말을 듣고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려려, 곧 그놈의 진면목을 보게 될 거다.’

 

 

 

하루가 더 지나자 무림맹 무사들마저 합류했다.

 

무사의 수가 다시 일천을 넘어가자, 연합 세력 무사들의 긴장이 완전히 풀어졌다.

 

그러나 무사가 충분히 보충되었음에도 수뇌부는 날이 풀어질 때까지 움직임을 자제하기로 결정했다.

 

겨울이 깊어 가는 시기. 천사교가 제아무리 제정신이 아니라 해도 당장 공격하진 않을 터. 일단 철은보를 확고히 지키면서 천사교에 대응하는 게 현재로선 최선책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북궁천으로서도 수뇌부의 그런 결정은 바라던 바였다.

 

천사교와 전쟁을 벌이면 그들을 따라 움직여야 할지 모르는데 당분간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구양우경과 헌원려려가 함께 지내는 것을 봐야 한다는 것이 화가 날 뿐.

 

 

 

그렇게 천사교와 혈전을 벌인 지 칠 일이 흘렀을 때였다.

 

눈보라가 기승을 부리며 겨울이 절정으로 치닫던 그날, 백검맹의 정예 무사 일백 명이 철은보에 도착했다.

 

그들 중에는 뜻밖의 사람이 섞여 있었다. 

 

황보청이 그들을 데리고 북궁천을 찾아온 것은 점심 무렵이었다.

 

“대형, 접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북궁천은 황보청의 밝은 목소리를 듣고 방문을 열었다.

 

밖에는 생각지도 못한 두 사람이 황보청과 함께 서 있었다.

 

다름 아닌 유원당과 조관수였다.

 

“잘 있었나?”

 

유원당이 빙그레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북궁천도 밝은 표정으로 포권을 취했다.

 

“저야 잘 지냈지요. 그런데 이곳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하하하, 나도 명색이 강호의 사람이네. 천사교의 악독함을 전해 듣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나섰지.”

 

“유 소저가 걱정을 많이 하겠군요.”

 

“걱정은 무슨? 그 애는 내가 간다고 하니까 애비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고 저 덩치만 크고 머리가 빈 놈을 부탁하더군. 자식은 크면 다 소용없다니까.”

 

황보청은 입을 헤벌린 채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 정말입니까요?”

 

“흥, 대신 내 손가락 하나만 다쳐도 네놈을 다신 쳐다보지 않겠다고 하더군.”

 

“걱정 마십시오, 어르신! 제가 옆에 바짝 붙어서 지켜 드리겠습니다.”

 

유원당은 못 미더운 표정으로 황보청을 흘겨보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조 대협이 자네를 알더군. 그래서 함께 왔네만, 설마 문전박대하는 건 아니겠지?”

 

그제야 조관수가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네.”

 

“백검맹에서도 무사들이 왔다는 말을 듣고 혹시나 했는데, 역시 조 장로님도 오셨군요.”

 

“허허허, 우리 역시 하남이 터전인데 천사교를 막아야 하지 않겠나?”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맛없는 차지만 따뜻하게 해서 드시면 마실 만할 겁니다.”

 

 

 

유원당은 천사교와의 싸움에 대해서 자세히 듣더니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허어, 천사교의 악독함에 대해서 소문을 듣긴 했네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군.”

 

“그들은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래서 더 위험한 자들이지요.”

 

“맞아. 자네 말대로라면 정말 위험한 자들이군. 저번 싸움이 양패구상으로 끝난 것만도 다행이야.”

 

유원당이 침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황보청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하며 나섰다.

 

“그게 다 대형 덕분이죠. 대형이 아니었으면, 솔직히 말해서 그날 거의 다 죽었을 겁니다. 절대지경의 고수 몇 명은 살았을지 몰라도.”

 

“으음, 그 정도로 심각했나?”

 

“말도 마십쇼. 그러니까…….”

 

황보청이 기회가 왔다는 듯 그 당시의 일을 실감나게 설명했다.

 

북궁천은 굳이 말리지 않았다.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나중에 대처할 수 있을 테니까.

 

더구나 그가 본 유원당은 위효릉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었다.

 

군사로서의 재능은 어떨지 몰라도 천사교와의 싸움에서 상당한 능력을 발휘할 게 분명했다.

 

황보청의 말을 다 듣고 난 유원당은 한동안 입을 다물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미지근해진 차로 입술을 적신 후 말문을 열었다.

 

“마음이 독하면서도 냉정하게 머리를 쓰는 자가 있다고 봐야겠군.”

 

북궁천은 그에게 처음으로 소존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말했다.

 

“당시의 일을 주도한 사람은 소존이었을 겁니다. 그는 유 원주의 말씀대로 독하고 냉정하지요. 게다가 여우처럼 머리도 잘 씁니다.”

 

“천사지존이 아닌 소존이라…… 그거 참, 점입가경이군.”

 

“천사지존이 그보다 더 뛰어날 거라 생각하십니까?”

 

“당연한 말이 아닌가? 천사지존은 석 냥의 머리 하나로 무림맹을 와해시킨 자네. 만약 단풍의 산채에서 소존이 아닌 천사지존이 일을 주도했다면, 아마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거야. 그라면 만에 하나의 예외까지도 생각하고 계획을 세웠을 테니까.”

 

북궁천도 그제야 가슴이 섬뜩했다.

 

“유 원주께선 그가 어떻게 나올 거라고 보십니까?”

 

“하하하, 이제 막 도착한 사람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구먼.”

 

“뛰어난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능력을 발휘하는 법이지요. 유 원주시라면 나름대로 생각을 하시고 오셨을 것 같습니다만.”

 

유원당은 웃음을 지우고 북궁천을 빤히 바라보았다.

 

“자네…… 이제 보니 진짜 무서운 사람이구먼.”

 

“그렇게 보입니까?”

 

북궁천은 어깨를 으쓱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때 유원당이 머리를 조금 앞으로 내밀며 나직이 말했다.

 

“나이 든 사람을 쉴 틈도 주지 않고 부려 먹으려고 하다니.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나?”

 

“쉬면 녹스는 것은 관절만이 아니지요. 머리도 굴릴수록 잘 돌아간다지 않습니까?”

 

“이거,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 정말 독한 친구에게 걸렸어.”

 

“알고 보면 저도 그렇게 독한 사람은 아닙니다. 정말 독했으면 여기에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헌원려려가 아무리 거부해도 데리고 도망쳤지.

 

유원당은 피식 웃으며 몸을 세웠다.

 

“하긴 죽을 자리인 줄도 모르고 찾아온 내가 잘못이지, 누굴 원망하겠나?”

 

“청 아우가 지켜 준다고 하니 걱정 마십시오.”

 

“킁, 저놈을 어떻게 믿어? 좌우간 말이 나온 김에 한 마디만 하겠네. 내 능력은 그것밖에 안 되니까.”

 

“경청하겠습니다.”

 

“천하제일의 장사도 몸에 병이 들면 힘을 못 쓰는 법이네. 병부터 고쳐야 힘을 제대로 쓸 수 있지.”

 

북궁천의 두 눈 깊은 곳에서 한광이 번뜩였다.

 

과연 자신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이제 막 도착한 사람이 가장 큰 문제점을 거침없이 짚는다.

 

“병을 고칠 방법은 있겠습니까?”

 

“종기를 어떻게 치료하는 줄 아나? 빨리 곪게 만들어서 한 번에 짜낸다네. 그래야 크게 번지지 않고 치료가 되지. 하지만 어설프게 건들거나, 짜내는 게 두려워 그냥 놔두면 속으로 파고들어서 치료하기가 더 힘들어지지. 빨리 곪게 만드는 방법은 자네가 생각해 보게.”

 

 

 

* * *

 

 

 

북궁천은 유원당과 조관수가 방을 나간 후 한 시진 동안 생각을 정리하고 방에서 나왔다.

 

종기를 빨리 곪게 만드는 방법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종기만 치료해서 끝날 상황이 아니라는 게 문제지.

 

자신이 원하는 것은 종기도 치료하고, 사악한 놈을 지옥의 똥통에 처박아 버리고, 행복을 얻어서 북천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방을 나선 그는 잠은각 좌령주 천종원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은각 무사들은 우령주 곽조승이 사망하는 바람에 삼성궁에서 달려온 좌령주 천종원이 지휘하고 있었다.

 

잠은각주 천유문이 천종원을 앞세워서 두종진과 연관된 사건을 은밀히 조사했다는 것은 나름대로 어떤 확신이 있었다는 뜻.

 

또한 구양우경이 그 일에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고도 조사한 것이라면, 감추기보다 밝히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치부가 드러나면 삼성궁이 적잖은 피해를 입을 텐데도 굳이 밝히려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북궁천은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삼성궁은 오랜 세월 검신가가 주도해 왔다. 구양우경은 후계자이고. 그가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면 삼성궁의 주도 세력이 바뀔 수도 있다.

 

‘결국은 나름대로의 욕심이겠지.’

 

그렇다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거처를 벗어난 북궁천이 작은 연못이 있는 정원을 돌아갈 때쯤, 멈췄던 눈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눈이 반가웠다.

 

눈이 오면 천사교가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을 헌원려려와 한 울타리 안에서 지낼 수 있을 테니까.

 

‘봄이 될 때까지 매일 눈이나 잔뜩 왔으면 좋겠군.’

 

그는 엉뚱한 바람을 안고 잠은각 무사들이 있는 건물로 다가갔다.

 

경비를 서던 잠은각 무사가 가늘게 뜬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앞을 막아섰다.

 

“무슨 일로 왔소?”

 

“령주를 뵙고자 하오.”

 

“령주님을?”

 

잠은각 무사는 재빨리 북궁천을 살펴보았다.

 

키가 크고 떡 벌어진 어깨, 당당한 태도로 봐서는 평범한 자가 아닌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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