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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67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977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67화

 

67화

 

 

 

 

 

 

 

다만 힘이 없고 고뇌에 빠진 표정이었는데,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정신적으로 무척 힘든 모습처럼 보였습니다.”

 

혹시 자신 때문에 고민을 하는 건 아닐까? 자신이 그녀를 힘들게 만든 것은 아닐까?

 

아니면 자신이 백리진과 임강령에게 한 말을 구양우경이 듣고 그녀를 힘들게 했을 지도…….

 

북궁천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미안함보다는 원망이 더 컸다.

 

‘그러게 나와 함께 그냥 가자니까, 왜 구양우경 옆에 남아 있으려고 하는 거냐?’

 

한편으로는 그녀가 달라진 자신을 보고 갈등을 겪는 것은 아닐까 하는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

 

‘려려. 네가 원한다면, 완벽한 대협이 될 순 없어도 대협처럼 행동할 수는 있다. 그러니 제발 마음을 돌려라. 구양우경은 너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는 놈이니까.’

 

이조량은 씁쓸함을 안으로 삼키는 북궁천을 바라보더니 넌지시 말했다.

 

“저, 대형. 궁을 떠나오기 전에 이상한 소문을 들은 것이 있는데, 헌원 소저와 관계가 있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상한 소문이라니?”

 

이조량이 갑자기 얼굴에 홍조를 띠고 말했다.

 

“궁에서 시비로 일하는 애들 중에 저를 좋아하는 애가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애 말에 의하면, 한두 달에 한 사람씩 시비가 사라져서 영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조량은 앳돼 보여서 시비들 사이에 인기가 좋았다.

 

북궁천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이기에 그의 말을 듣고 무의식중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곧 그런 말을 할 때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하고 신중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런 소문과 헌원려려를 연관 짓는 이유는?”

 

“시비들은 그렇게 사라진 애들이 어떤 돈 많은 공자와 눈이 맞아서 도망친 걸로 알았다고 합니다. 사라진 시비의 집에 상당히 많은 돈이 생기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 말인가?”

 

“예. 사라진 시비 중 하나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 죽은 모습으로요. 그래서 시비들은 그 다음부터 사라진 시비를 부러워하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혹시라도 죽었을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북궁천은 가슴이 싸해졌다.

 

이조량의 말을 듣다 보니 조관과 함께 조사했던 두종진의 입에서 나온 말이 떠올랐다.

 

상자 안의 일지에 적힌 글도.

 

거기에 한 가지 사실이 겹치자 등골이 서늘해졌다.

 

‘설마?’

 

눈빛이 보다 깊어진 그는 일단 자신의 짐작을 눌러놓고 이조량의 말을 끝까지 들어 보았다.

 

“그게 헌원려려와 무슨 상관이지?”

 

이조량은 북궁천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자신의 말 한 마디가 자칫 큰일을 불러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어차피 입을 열었으니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용기를 내서 말했다.

 

“그 시비 말로는, 죽거나 사라진 시비들 얼굴이 모두 헌원 소저와 많이 닮았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북궁천은 가슴속에 들어찬 분노의 응어리가 터지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확실했다.

 

상자 속 일지에 적혀 있는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

 

그것은 헌원려려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었다.

 

왜 여태 그것을 몰랐을까? 조금만 깊게 생각했어도 알 수 있었을 텐데!

 

‘바보 같은 놈!’

 

그는 생각도 못했다. 여자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남자는 아무리 설명해도 알 수 없는 게 여자라는 걸.

 

 

 

이조량을 내보낸 북궁천은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다.

 

당장 헌원려려에게 달려가서 그녀를 데리고 떠나야 하느냐. 아니면 모든 사실을 낱낱이 밝혀서 구양우경을 매장시킨 후 그녀를 데리고 당당히 떠나느냐.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했다.

 

‘구양우경이 어떤 놈이란 걸 알려서 려려의 마음을 돌리는 게 가장 좋긴 한데…….’

 

사공강후를 앞세운다 해도 시간이 필요했다.

 

당장 구양우경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야 누구보다 그가 더했다.

 

하지만 완벽한 증거도 없이 급박하게 구양우경을 몰아붙이면 부작용이 생길지 몰랐다. 헌원려려가 오해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그녀를 데리고 떠나는 것도 걸리는 게 많았다.

 

강제로 그녀의 마음을 돌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아는 것이다.

 

단 두 가지 생각에서 하나를 결정한다는 게 이만 가지에서 하나를 결정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고민만 하고 있을 수도 없는 일.

 

‘일단 놈이 정말 그런 짓을 했는지부터 알아봐야겠어.’

 

천무회 무사의 죽음과 시비의 죽음에 그가 연관된 게 밝혀지면 그녀도 더 이상 고집을 피우지 못하고 자신을 따라나서지 않겠는가.

 

문제는 방법이었다.

 

나름대로 방법을 생각해 본 그는 밖으로 나가기 위해서 가죽 겉옷을 걸치고 묵혼을 옆구리에 찼다.

 

그때 밖에서 자신을 찾는 목소리가 들렸다. 

 

“자네 대형은 안에 있는가?”

 

“예, 임 대협. 한데 무슨 일로 대형을 찾아오셨습니까?”

 

경비를 서고 있던 이정한이 그의 말에 대답하며 넌지시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잠깐 얼굴 좀 볼까 하고 왔네.”

 

북궁천은 찾아온 사람이 임강령임을 알고 밖을 향해 말했다.

 

“정한, 안으로 모셔라.”

 

“예, 대형.”

 

곧 방문이 열리고 임강령이 안으로 들어왔다.

 

“마침 방에 있었군.”

 

“어쩐 일이십니까?”

 

“자네를 만나 보고 싶어서 왔지.”

 

“몸은 괜찮으십니까?”

 

임강령은 쓴웃음을 지었다. 천사교와의 싸움에서 그 역시 상당한 내상과 자잘한 외상을 입었던 터였다.

 

“거의 다 나았네.”

 

“단순히 보고 싶어서 온 게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렇다네. 자네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고,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어서 왔지.”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차를 데워 드리겠습니다.”

 

북궁천은 식어 버린 주전자를 한쪽에 있는 화로에 올려놓았다.

 

먼저 의자에 앉은 임강령이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디 나가려 했나?”

 

“잠깐 다녀올 곳이 있습니다.”

 

“이거 미안하게 됐군. 급한 일이면 내일 이야기 하세.”

 

“괜찮습니다. 밤새우며 이야기하실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

 

북궁천은 차가 데워지길 기다리며 맞은편에 앉았다.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해 보시지요.”

 

“자네 덕분에 포위망이 뚫려서 무사할 수 있었네. 먼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군.”

 

“별말씀을, 제가 아니었어도 포위망은 뚫렸을 겁니다.”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이 죽었겠지.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말이야.”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북궁천도 그 말에는 토를 달지 않고 어깨만 으쓱했다.

 

“뭐 그거야 제가 삼성궁의 무사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니 고마워하실 것까진 없습니다.”

 

“사실 자네가 말단 무사로 있지 않았다면 저들이 자네를 주시했을 것이야. 그럼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네. 그걸 생각하면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지.”

 

“그렇긴 하죠. 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차가 다 데워졌나 봅니다.”

 

북궁천은 담담히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전자를 가져왔다.

 

먼저 임강령의 잔에 김이 나는 차를 한 잔 따라 주고 자신의 잔에도 따른 다음 앉았다.

 

그때 임강령이 불쑥 물었다.

 

“자네 이름이 정말 단화린인가?”

 

북궁천은 잔을 잡아 가며 담담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나는 강호인들의 이름을 누구보다 많이 알고 있다네. 과거의 직업이 버릇이 되어서 이름을 아주 많이 외웠지. 그런데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 봐도 단화린이라는 이름이 안 떠오르지 뭔가. 자네 같은 고수라면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말이야.”

 

“강호초출까지 다 알지는 못하실 것 아닙니까?”

 

“산채에 들어갔을 때, 회룡당과 함께 바깥쪽에 남았을 때는 뭔가 의심을 했기 때문이겠지?”

 

“어느 정도는 그랬지요.”

 

“그것도 그렇고, 계곡에서 적의 후방을 공격한 것도 그렇고, 강호초출은 아무리 천재라 해도 자네처럼 침착하게 대세까지 보지는 못한다네.”

 

“저를 너무 높게 보시는군요.”

 

북궁천이 담담히 웃으며 대답하자, 임강령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고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심장에 검을 꽂듯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한 세력의 패주라면 높게 봐도 되지 않겠나?”

 

북궁천은 차로 입술을 적신 후 느긋하게 되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

 

“젊은 사람 중 자네 정도의 고수는 열 명이 채 안 된다네. 그것도 내가 자네를 낮게 봤을 때의 이야기지. 더구나 관 형은 자넬 태행산 줄기의 북쪽에서 만났다고 하더군. 장성 가까운 곳에서. 거기다 서문 소저와 같은 고향이라고 했지 않은가? 그 말을 종합해 보니 문득 한 사람이 떠올랐다네. 그리고 며칠 전…… 자네가 펼친 가공할 위력의 무공을 보는 행운까지 얻었지.”

 

끝내 북천명왕공이 문제가 된 것 같다. 그보다는 임강령의 해박한 강호 지식이 더 문제였겠지만.

 

쓴웃음을 지은 북궁천은 임강령을 지그시 응시했다.

 

입가에 매달려 있던 쓴웃음이 서서히 사라지고, 그의 전신에 서릿발처럼 차가운 위엄이 서렸다.

 

“저를 막다른 골목으로 모시는군요.”

 

임강령은 자신의 추측이 사실로 드러나자 가슴이 두근거리고 움켜쥔 손이 잘게 떨렸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군.”

 

“저는 임 대협을 존중합니다. 그 마음이 변치 않게 해 주셨으면 합니다.”

 

“북천의 주인이 왜, 왜 만 리 떨어진 여기까지 왔는가?”

 

“아시지 않습니까?”

 

임강령은 입을 반쯤 벌리고 북궁천을 직시했다.

 

“그럼…… 진짜로 그녀 때문에……?”

 

“천하보다 더 갚진 것이 있다는 것을 얼마 전에 깨달았지요.”

 

북궁천의 말이 진심이란 걸 느낀 임강령은 할 말을 잊었다.

 

세상에! 북천의 주인이 사랑을 쫓아서 만 리를 떠나오다니!

 

그것도 남의 여자가 되려는 여자를 못 잊어서 그 곁에 있다니!

 

감탄과 어이없음이 뒤섞인 탄성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왔다.

 

“허어…….”

 

북궁천은 그의 마음을 짐작하고 나직이 물었다.

 

“누구를 좋아해 보신 적 있습니까?”

 

없었다. 그래서 예전에 혼인을 했지만 부인과 자식을 놔둔 채 혼자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를 목숨과 바꿀 만큼 좋아해 보지 못했다면, 임 대협은 제 마음을 평할 자격이 없습니다.”

 

임강령의 그토록 강인해 보이던 어깨가 축 처졌다.

 

그는 가문에서 정해 준 대로 혼인을 했다.

 

그런 사랑을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 말을 대 놓고 들으니 왠지 처량한 마음마저 들었다.

 

“부정하지는 않겠네.”

 

“좌우간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임 대협께서 약속을 하나 해 주셔야겠습니다.”

 

“무슨 약속 말인가?”

 

“지금 이 방에서 나눈 대화는 누구에게도 하지 마십시오. 목에 칼이 박혀도.”

 

“약속을 하지 않으면 죽일 것 같군.”

 

임강령이 어깨를 으쓱하며 농담하듯이 말하자, 북궁천이 입술을 묘하게 비틀었다.

 

“눈치가 빠르시군요.”

 

“그럼 별수 없지. 아직은 죽고 싶지 않으니 약속하는 수밖에. 신의 하나는 소문난 사람이니 믿어도 될 거네.”

 

“고맙습니다.”

 

“나야말로 목숨을 살려 줬으니 고맙다고 해야겠지.”

 

“저 그렇게 무지막지한 사람 아닙니다.”

 

임강령은 많이 진정된 눈빛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눈앞에 북천마제가 있었다. 북천의 제왕이!

 

‘크다. 너무 커. 내가 잴 수 없을 정도야.’

 

가만? 그런데 북궁천과 내기 비무를 하자고 하지 않았던가?

 

조건은 그때 가서 정하고 말이다.

 

‘빌어먹을!’

 

그의 얼굴이 묘하게 구겨질 때였다.

 

북궁천이 그의 두 눈을 직시하고 말했다.

 

“저도 임 대협께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제풀에 흠칫 놀란 임강령은 겨우 입술을 떼서 대답했다.

 

“음? 말해 보게.”

 

“이곳에 천사교도가 있다고 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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