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6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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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27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66화
66화
철은보를 출발한 사람들은 산채를 향해 빠르게 달렸다.
중간쯤 가자 미처 처리하지 못한 시신이 듬성듬성 보였다. 그들은 시신을 처리할 서너 명만 남겨 두고 계속 달렸다.
세 시진 후.
하얀 김을 뿜어내며 산채에 도착한 연합 세력 무사들은 굳은 표정으로 계곡에 진입했다.
수백 구의 시신이 아무렇게나 뒤엉켜 있었다.
대부분 옷자락이 벌어져 있고, 간혹 벌거벗겨진 시신도 보였다. 멀쩡한 옷은 천사교도가 벗겨 간 듯했다.
잠은각의 보고대로 품속의 물건과 무기는 없고, 찬바람이 불어 대는 계곡에는 시신만 나뒹굴고 있었다.
가끔은 짐승들에게 물어 뜯긴 시신도 있었는데, 그나마 날씨가 춥고 그늘진 곳이어서 시신이 상하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회룡당 대원들은 간부들의 시신을 먼저 찾고, 무림맹과 천무회 사람들은 자파 간부들의 시신과 친한 사람들의 시신을 함께 추려 냈다.
그렇게 각자가 나름대로의 이유를 가지고 시신을 찾고 있을 때, 북궁천은 종리기진과 함께 시신 한 구를 살펴보았다.
“맞아?”
“분명합니다.”
시신은 갈비뼈 사이가 갈라져 있었는데, 정확히 옆구리를 통해서 심장이 뚫린 상태였다.
조금도 비틀어지지 않고 깨끗하게 난 상처. 별다른 저항이 없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이글거리는 분노가 표정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누구를 위한 분노일까?
천사교를 향한 분노? 아니면 구양우경을 향한 분노?
그때 시신의 상처를 만져 보던 북궁천이 묘한 것을 발견했다.
“음?”
“왜 그러십니까?”
북궁천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가슴 옷자락을 완전히 벌렸다. 그리고 반쯤 얼어붙은 상처 속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느닷없는 그의 행동에 종리기진이 눈을 크게 떴다.
“대형?”
동시에 사공강후가 의아해하는 말투로 물으며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무슨 일이오?”
북궁천은 눈을 반쯤 감고 자신이 알아낸 것을 정리했다.
그가 확신을 가질 즈음, 사공강후가 바로 옆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사공강후는 시신이 천무회 영호단의 부단주 상은호임을 알아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 사람은 본 회의 사람이오. 무슨 일인지 말해 줄 수 있겠소?”
북궁천은 한광을 번뜩이며 사공강후를 올려다보았다.
“사공 형이 한번 살펴보시오.”
“뭘 말이오?”
“때론 죽은 자도 말을 할 수 있소.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한번 맞춰 보란 말이오.”
“그걸 왜……?”
“그래야 이 사람의 원혼이 저승에 가서라도 편할 거요.”
사공강후는 도무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뭔가 뜻이 있으니까 그런 말을 했겠지 하면서 상은호의 상흔을 살펴보았다.
“정확히 심장이 뚫린 것 같군요. 조금도 비틀리지 않은 걸 보니 반항할 여지도 없이 당한 것 같소.”
그가 눈으로만 상흔을 살펴보자 북궁천이 말했다.
“속까지 자세히 살펴봐야 할 거요. 가슴을 가르면 더 정확히 알 수 있겠지만, 사공 형 정도라면 굳이 살을 가르지 않아도 알아낼 수 있을 거요.”
그제야 사공강후는 북궁천이 왜 손가락을 상흔 속으로 넣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런데 왜 그렇게 사인에 집착하는 걸까?
그는 의아해하면서도 손가락을 상흔 속으로 깊숙이 집어넣었다.
그리고 곧 북궁천이 뭘 말하는지 이해하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겨졌군.”
“검기에 의해서 파열된 것이 아니오.”
“아무래도 강력한 내가장력에 당한 같소.”
“이상하지 않소?”
“뭐가……?”
무심코 대답하던 사공강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확실히 이상했다.
심장이 뚫려서 죽어 가는 사람에게 왜 또 손을 쓴 걸까?
반항할 여지도 없이 상은호의 심장을 찔러서 죽일 수 있는 고수라면 두 번 손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모를 리 없거늘.
“가슴에 남아 있는 흔적을 잘 보시오. 희미하긴 하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니까.”
그 말에 사공강후와 종리기진이 동시에 시신의 가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북궁천의 말대로 검붉은 손자국이 희미하게 보였다.
심장이 뚫리면서 퍼진 울혈로 분간이 잘 안 되지만, 오히려 그 울혈 때문에 자세히 보면 손가락 마디까지 나타나 있었다.
근접거리. 어쩌면 직접적으로 손을 대고 내가장력을 펼친 것 같다. 심장이 뚫려서 죽어 가는 사람에게 말이다.
사공강후는 치를 떨었다.
“정말 악독한 놈들이군. 죽어 가는 사람에게 손을 또 써서 심장을 부수다니!”
“만약 그 욕이 천사교도를 향한 것이라면 방향을 잘못 잡았소.”
사공강후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곤혹해했다.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오?”
“그에 대해선 나중에 말해 주리다. 일단은 이곳을 정리하는 일부터 도와주는 게 좋겠소. 기진, 저 시신은 자네가 챙기게.”
“예, 대형.”
종리기진은 기다렸다는 듯 찢어진 옷으로 시신의 가슴을 덮고 두 팔이 덜렁거리지 않게 몸과 함께 묶었다.
몸을 일으킨 사공강후는 북궁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단 형, 대체 무슨 일인지 말해 주시오.”
하지만 북궁천은 무심한 표정으로 할 말만 했다.
“방금 본 시신에 대해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시오. 그리고 저 시신은 도착한 후에 넘겨주겠소.”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하겠소. 하지만 이유를 알아야…….”
“여기서 말이오?”
북궁천은 무저갱처럼 깊은 눈으로 그를 지그시 바라보고는 몸을 돌렸다.
사공강후는 그제야 사람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멍청하게 눈과 귀가 사방에 널린 곳에서 비밀스런 이야기를 묻다니.’
자신이 너무 서둘렀다는 것을 안 그는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럼 다른 사람부터 도웁시다.”
구덩이를 파고 시신을 묻은 연합 세력 무사들은 각자 시신 한 구씩을 둘러메고 계곡을 빠져나왔다.
어느새 석양이 시뻘겋게 타들어 가며 하늘을 핏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돌아가는 길은 올 때부터 발걸음이 더 무거웠다. 단순히 시신의 무게 때문만은 아니었다.
수많은 죽음을 본 터라 천사교와 싸워야 한다는 마음의 무게가 어스름과 함께 그들의 어깨를 짓눌렀다.
사공강후가 북궁천에게 다가온 것은 그렇게 오십 리를 달린 후 휴식을 취할 때였다.
북궁천 곁에는 황보청과 종리기진, 태극문의 제자들만 있었다. 언제부턴가 회룡당의 대원들조차 그와 거리를 두었다.
경외감에 다가가는 것이 어렵게 느껴진 면도 있고, 고위급 간부들이 자주 그의 곁으로 다가오다 보니 왠지 모르게 부담감이 느껴진 것이다.
지금 사공강후가 그의 곁으로 오듯이.
사공강후가 다가오자 북궁천 옆에 있던 황보청이 일어나서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 주었다.
슬쩍 포권을 취해서 감사를 표한 사공강후는 북궁천 바로 옆에 있는 바위에 앉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담담히 입을 열었다.
“천사교 놈들이 정말 상주까지 물러난 것 같소.”
“그들이 우리의 공격을 두려워해서 물러났다고 보시오?”
“그런 것은 아닐 거요. 그래도 일단 물러났다는 것은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소.”
과연 다행일까?
“대초원의 청랑이 자신보다 큰 말을 사냥할 때 어떻게 하는지 아시오?”
“글쎄요.”
“먼저 말을 최대한 안심시키고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지형으로 유인을 하오. 그러고 나서 말이 방심할 때, 단숨에 숨통을 물어뜯어서 죽이지요.”
“저번처럼 말이오?”
사공강후는 북궁천이 산채에서의 싸움을 빗대서 말하는 거라 생각했다.
물론 그런 면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북궁천의 말은 꼭 과거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묘한 것은 말도 그걸 알면서 매번 방심한다는 거요. 이번에는 절대 방심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말이오.”
사공강후는 잠시 입을 다물고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열을 셀 즈음 다시 말문을 열었다.
“충고, 고맙게 받아들이겠소.”
“충고는 무슨…… 그냥 그렇다는 말이오.”
북궁천은 피식 웃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어느 때보다 검게 물든 밤하늘에 형형색색의 별들이 떠 있었다.
바위에서 몸을 일으킨 그는 몸을 돌리며 사공강후에게 말했다.
“사공 형, 개울로 가서 시원한 물이나 마시며 답답한 기분을 털어 냅시다.”
그러고는 십여 장 떨어진 곳에 있는 개울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곧 사공강후도 일어나서 그의 뒤를 따라갔다.
황보청과 종리기진, 태극문 제자들은 그곳에 남아서 다른 사람이 그쪽으로 못 가도록 길을 막았다.
북궁천은 살얼음이 언 강물을 손으로 떠서 입을 축였다. 그리고 졸졸 소리를 내는 개울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사람은 천사교도에게 죽지 않았소.”
흠칫한 사공강후는 북궁천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산채에서 말을 듣고 어느 정도 짐작했지만 여전히 정확한 뜻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럼 같은 편이 죽이기라도 했단 말이오?”
“그렇소. 그리고 손을 또 써서 심장을 부순 것은, 그가 입을 여는 걸 막기 위해서요.”
사공강후는 이를 악물고 잇새로 분노를 씹어뱉었다.
“어느 놈이……! 누구요? 누가 그를 죽인 거요?”
나직이 흘러나오는 그의 으르렁거림에 북궁천은 잠시 대답을 미뤘다.
그리고 그의 분노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후에야 무심한 어조로 말했다.
“먼저 나와 약조를 해 줘야겠소.”
“말해 보시오.”
“상대가 누구든, 완벽히 덫에 갇힐 때까지는 일절 모른 척해야 하오.”
대체 범인이 누군데 이리도 신중하단 말인가.
사공강후는 상황이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심각함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 하겠소.”
“또한 범인 외에는 누구도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오.”
조금은 의아한 요구였다. 하지만 사공강후는 순순히 대답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범인이오. 본 회의 부단주를 죽인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은 건드릴 마음이 없소.”
북궁천은 그가 두 가지 조건을 약조한 후에야 범인을 말해 주었다.
“그를 죽인 사람은…… 구양우경이오.”
7장. 이상한 소문
시신을 둘러멘 연합 세력 무사들이 철은보에 도착한 것은 다음 날 아침이었다.
기다리던 사람들은 분노와 울분에 찬 표정으로 동료와 사형제의 시신을 맞이했다.
북궁천과 사공강후는 별다른 말도 없이 각자의 일에 열중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서평에 갔던 이조량이 돌아왔다.
어스름이 짙어질 무렵에 도착한 그는 곧장 북궁천을 찾아왔다.
북궁천은 연합 세력 무사들이 삼분지 일로 줄어드는 바람에 구석진 곳에 있는 작은방 하나를 혼자 쓰고 있었다.
자신의 방에서 이조량과 마주 앉은 그는 자신의 진기로 음파를 차단하고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아낸 것을 말해 보게.”
“광원산장의 외곽에서 사호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누군가가 땅에 묻어 두었는데 짐승들이 땅을 파헤쳐서 옷자락이 보인 덕에 찾았습니다. 운이 좋았지요.”
“사호가 죽었다고?”
“예. 그런데 조금 묘합니다. 화살에 맞고 죽은 게 아니라 검에 찔려서 죽었습니다. 그것도 턱에서 뒤통수까지 뚫렸습니다.”
확실히 묘한 죽음이다. 급습을 당하지 않는 이상 그렇게 죽을 수가 없다.
“일호는 보지 못했나?”
“보지 못했습니다.”
“려려를 호위하는 자들 중에도 없던가?”
“유심히 지켜보았습니다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북궁천은 이조량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을 정리한 질문의 방향을 돌렸다.
“그녀는 괜찮던가?”
“약을 복용한다든가, 의원이 오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아픈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