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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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2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63화
63화
두 사람의 말을 듣고 있던 황보청과 종리기진, 태극문의 제자들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그들은 지금 중원제일의 젊은 패기를 목도하고 있었다.
관호명 역시 남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부럽군. 역시 젊다는 것은 좋은 거야.’
하지만 멀리서 그곳을 바라보던 한 사람은 눈을 가늘게 뜨고 살기를 드러냈다.
‘저놈이 사공강후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지? 설마 내 흉을 보고 있는 건 아니겠지?’
* * *
관호명과 사공강후가 천무회 무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황보청은 마치 자신의 일인 것처럼 들떠서 말했다.
“흐흐흐, 제가 형님 하나는 확실하게 둔 것 같군요. 안 그래, 기진?”
종리기진도 그 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곰도 날아가는 새를 잡을 때가 있다더군요.”
황보청을 삐딱하게 말하는 종리기진을 째려봤다.
하지만 좋은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다그치진 않았다.
“그런데 대형, 대체 관 대협과 태행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자세한 상황을 말하기도 어정쩡한 상황. 북궁천은 대충 얼버무렸다.
“약을 하나 두고 다툰 적이 있었네.”
그때 이정한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혹시 태극당에 오셨을 때, 관 대협과 싸워서 부상을 입은 거였습니까?”
북궁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정한은 그것도 모르고 문전박대했던 걸 생각하니 간이 콩알만 하게 작아졌다.
‘내가 미쳤지…….’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사이, 심장을 태워 버릴 것처럼 뜨거워졌던 가슴이 서서히 식어 갔다.
북궁천은 태극문 제자들과 황보청, 종리기진에게 운기조식으로 몸을 다스리라 하고는 모닥불을 바라보며 생각을 정리했다.
수뇌부들이 휴식을 결정해서 쉬고 있긴 하지만 솔직히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았다.
소존이란 자가 달려들 때, 자신의 계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가 천사교를 지휘하는 것 같았다.
미끼로 수백의 목숨을 던져 줄 정도로 악독하고 냉혹한 자.
그가 지금까지 해 온 걸로 봐서는 자신들이 멀리 떨어졌다 해서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문제는 그놈이 언제쯤 움직이느냐 하는 건데…….’
그가 나름대로 소존의 계획을 가늠하고 있을 때였다. 종리기진이 뜬금없이 전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대형, 말씀드릴 게 하나 있습니다.
―말해 보게.
―계곡에서 탈출하기 전에 이상한 광경을 봤습니다.
―이상한 광경이라니?
―제가 본 것이 정확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천무회 무사 하나가 구양우경과 부딪치고 나서 죽었습니다.
―무슨 말이지? 부딪치고 죽다니?
종리기진은 당시의 상황을 간략하게 말해 주었다.
―……그 바람에 뒤로 물러나다가 구양우경과 살짝 부딪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그 직후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졌습니다.
―그 전에 큰 부상은 없었단 말인가?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약간의 찰과상밖에 입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런 상태니 이 장을 날아서 물러나고도 흔들림이 없었겠지요.
―그런데 부딪친 직후 죽었단 말이지?
―예. 가슴을 부여잡고 있는데, 심장 부위에서 피가 뿜어졌습니다.
심장에 부상을 입었다면 그 충격으로 움직일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절정 고수라 해도 두어 걸음 움직이는 게 고작이다.
그런데 절정 고수도 아닌 자가 이 장을 날아서 물러나고 흔들림이 없었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확실히 심장 쪽인가?
―분명합니다. 심장이 뚫리지 않고서는 그렇게 피가 세차게 뿜어지지 않습니다.
―구양우경은 어떻게 하고 있었지?
―재빨리 그를 붙잡고 눕히더니 슬쩍 주위를 둘러보며 정신 차리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그와 눈이 마주치는 것을 피했습니다.
―자네 생각은?
종리기진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더니 속삭이듯이 말했다.
―구양우경이 그를 죽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단지 부딪쳤다는 것 때문인가?”
―부딪칠 때 구양우경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는데, 고통이 무척 심한 표정이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바로 천무회 무사가 심장이 뚫린 채 쓰러졌습니다.
북궁천은 종리기진의 말을 머릿속에서 정리해 보았다.
구양우경은 옆구리에 제법 깊은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만약 천무회 무사가 부딪치면서 그곳을 건드렸다면, 남들이 잘 모르는 구양우경의 괴팍한 성격으로 봐서 분노를 참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말하지 말게.
―걱정 마십시오. 제가 죽이는 걸 확실하게 본 것도 아닌데 누구에게 말하겠습니까.
* * *
이를 악문 채 어둠을 노려보는 호연유의 안색은 백짓장처럼 창백했다. 하지만 두 눈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살광이 폭사되었다.
‘음혼혈마공(陰魂血魔功)이 밀리다니. 아무리 팔성의 경지라 해도 백리진이나 등조립, 관호명과 붙어도 충분하다 생각했는데…….’
거기에 몇을 더한다면 사공강후와 남궁원, 임강령, 공한 대사 정도.
그런데 생판 모르는 놈과 단 일격을 겨루고 내상을 입다니!
난생 처음 당한 패배는 세상을 짓이겨 버리고 싶을 만큼 충격적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강호에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자였다.
더 화가 나는 것은 그로 인해서 지난 보름간 꾸며온 계획이 절반의 성공으로 끝났다는 것이다.
그놈만 아니었어도 입구는 뚫리지 않았을 것이고, 생존자는 이백 명 이내였을 게 분명하거늘!
으드득.
이를 간 그의 눈빛이 새파랗게 번뜩였다.
그때 여립이 침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소존, 예상했던 것보다 피해가 너무 많소. 일단 상황을 정리하고 상주로 물러서는 게 어떻겠소?”
호연유의 살기 띤 눈이 여립을 향했다.
“비록 적을 몰살시키진 못했지만 우리가 승리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데 왜 물러나자는 것입니까?”
여립은 호연유가 분노의 방향을 자신에게로 틀자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현재의 총책임자는 소존이니 직접적으로 따지지도 못했다.
“교주께서도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했잖소? 일보 후퇴 이보 전진이란 말이 있듯이, 물러서서 놈들에게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계획을 짜는 게 낫다고 보오.”
독안마종이 그의 의견에 반대했다.
“노부는 그냥 이대로 놈들을 추격해서 끝장을 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오.”
호연유는 미간을 좁히고 입술을 물어뜯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여립의 말이 옳았다.
함정을 벗어난 호랑이는 더욱 사나워지는 법. 더구나 넓은 곳에서의 싸움은 고수가 많은 저들에게 유리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기에는 아쉬움이 너무 많았다.
“일단 놈들의 상황을 정확히 알아보고 나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니 그 일에 대해선 더 왈가왈부하지 마십시오.”
그때 구사령 중 귀사령이 그의 방으로 빠르게 들어오며 말했다.
“소존, 놈들이 삼십 리 떨어진 곳에서 모닥불을 피운 채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모두 몇 놈이나 되오?”
“사백여 명가량 됩니다만, 부상자가 그중 절반은 된다고 봐야 할 겁니다.”
적의 숫자는 사백여. 그나마도 절반은 부상자다.
반면 천사교도는 팔구백 정도.
저들에게 고수가 많다 해도 그 정도 차이라면 해 볼 만하다.
천사교도 전부가 죽어도 놈들을 전멸시킨다면 손해가 아닌 것이다.
호연유는 싸늘한 눈빛을 번들거리며 여립을 바라보았다.
“어둠을 이용하면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겁니다. 놈들에게 지옥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알려 줘야겠습니다.”
6장. 죽은 자가 하는 말
연합 세력 무사들이 휴식을 취하는 숲은 적막감에 잠겨 있었다.
밤새 소리와 모닥불에 나무를 던지는 소리, 불티가 튀는 소리만이 간혹 들릴 뿐.
좌정한 채 대주천을 마친 북궁천은 모닥불이 약해져 가는 걸 보고 나무 두어 개를 집어넣었다.
그때 저 멀리 모닥불가에 앉아 있는 구양우경이 보였다.
문득 모닥불에 비친 그를 보자, 자신의 품속에 있는 상자 속 일지에서 봤던 내용이 떠올랐다.
‘여자를 필요로 한 사람이 수룡위사대원일까? 아니면 저놈?’
조건이 매우 까다로운 여자를 원하고 있었다.
가격도 은자 오십 냥으로 기루의 여자와 하룻밤을 보내기에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문제는 여자를 원하는 게 수룡위사대원인지, 구양우경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일지에는 단지 ‘광원(光源) 요(要)’라고만 쓰여 있었으니까.
‘조관을 죽인 놈을 잡아야 정확한 것을 알 수 있을 텐데…….’
만약 그 사건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 맞물려 있다면, 뜻밖의 성과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그가 그 일을 보다 신중하게 처리하려는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이라 할 수 있었다.
‘일단 이조량이 가져올 소식을 기대해 봐야겠군.’
북궁천은 구양우경에게서 시선을 떼고 모닥불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멀리서 음산한 기운이 밀려오는 게 느껴졌다.
단순한 겨울의 찬바람이 아니었다.
‘올 것이 왔군. 생각보다 빨라.’
그는 소존의 영악함에 치를 떨었다.
자신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는 걸 소존이 모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새벽쯤 움직일 거라 생각했다. 저들도 휴식을 취하며 전열을 정비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더구나 지금은 산채의 계곡에 갇혀 있을 때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새벽을 한 시진 정도 남겨 놓고 움직일 생각이 없으면 천광호를 통해서 말을 전하려 했거늘, 예상을 깨고 두 시진 만에 공격해 온다.
그 말인 즉, 무리를 해서라도 끝장을 보자는 뜻!
‘지독한 놈. 교도들이 얼마가 죽든 이기기만 하면 된다는 거겠지.’
그는 주위에서 쉬고 있는 태극문 제자들과 황보청, 종리기진에게 말했다.
“떠날 준비를 해라.”
“예? 예, 대형.”
그들은 의문을 갖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무기와 물품을 챙겼다.
회룡당 대원들도 엉거주춤 일어나서 물품을 챙겼다.
그들도 이제는 북궁천, 아니 단화린의 말을 듣는 것이 제 명을 사는데 도움이 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짐을 다 싼 그들이 북궁천의 말을 기다릴 때였다.
“각주! 놈들이 오고 있습니다!”
잠은각 우령주 곽조승의 급박한 목소리가 숲 속의 평온을 깼다.
화들짝 놀라서 일어난 위효릉이 주위를 둘러보며 소리쳤다.
“출발 준비를 서두르시오!”
두 시진의 휴식.
어느 정도 기력이 회복된 연합 세력의 무사들은 형형한 안광을 번뜩이며 몸을 일으켰다.
“비록 우리의 숫자가 적긴 하지만 계곡에서 앞뒤가 막혔을 때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오. 단순히 방어만 할 게 아니라 반격을 해서 놈들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 주는 게 어떻겠소?”
등조립이 천사교가 추적해 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숫자의 차이가 지나치게 컸다.
설령 저들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다 해도 자신들 역시 상당한 피해를 감수해야만 한다.
이미 한 번의 실패를 맛본 위효릉은 모험을 하기가 두려웠다.
“그건 너무 위험하오. 포위되면 부상자를 보호할 수 없으니 일단은 후퇴하는 일에 치중하도록 합시다.”
다른 사람들도 당장은 천사교와의 정면 대결을 원치 않았다.
“놈들을 치는 것은 전열을 정비한 다음에 해도 될 거요. 그러니 위 각주 말대로 합시다.”
“놈들이 곧 몰려올 테니 서두릅시다!”
결국 후퇴하기로 중론이 모아지자 움직임이 빨라졌다.
그곳에 천사교도들이 도착한 것은 연합 세력 무사들이 떠난 지 일각이 조금 넘게 지났을 때였다.
그들은 모닥불을 뒤적여서 떠나간 시간을 유추해냈다.
“놈들이 이곳을 떠난 지 아직 이각이 지나지 않았습니다, 소존.”
“그래? 흥! 제 놈들이 뛰어봐야 벼룩이지. 놈들의 뒤를 쫓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