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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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166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60화
60화
선발대를 바짝 쫓아와서 통나무 벽을 넘은 연합 세력의 수뇌부들은 그 광경을 보고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라도 피해가 크게 날까 봐 걱정했는데 공연한 우려였다.
“천사교 놈들, 날벼락 맞은 기분이 어떠냐!”
등조립은 득의의 웃음을 지으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백리진과 임강령도 그를 따라서 전장으로 빠르게 다가갔다. 하지만 그들의 표정은 다른 사람들처럼 밝지 않았다.
그들은 헌원려려를 구하기 위해서 천사교도와 싸워 본 적이 있었다.
당시 천사교도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알고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달려들었지 않던가.
그런데 철은보를 칠 때도 그렇고, 오늘 역시 너무 나약한 모습이었다.
“등 형, 공격을 너무 서두르지 마시오. 아무래도 놈들의 행태가 이상하오.”
백리진이 앞서 나가는 등조립의 등에 대고 말했다.
그러나 등조립은 그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허허허. 백리 형, 이상해 봐야 별거 있겠소? 빨리 매듭짓고 잠시라도 편히 쉽시다.”
백리진으로서도 확실히 알고 하는 말이 아니었으니 그를 붙잡기도 애매했다.
위효릉과 구양우경 등 삼성궁의 수뇌부들 역시 그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도주하는 천사교도들의 뒤를 쫓았다.
한편, 천무회와 무림맹의 무사들도 동쪽의 벽을 넘어서 천사교도와 산적들을 몰아붙였다.
그들이 벽을 넘은 이후부터 악다구니와 비명이 쉬지 않고 터져 나왔다.
“놈들이 동쪽으로도 넘어왔다!”
“모두 목숨을 걸고 막아라!”
“천사지존이시여! 우리를 구해 주소서!”
“으악!”
“이 개새끼들! 우리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쳐들어온 거냐!”
“크억!”
순식간에 수십 명이 피를 뿌리며 쓰러지고, 대지가 붉게 물들었다.
오대세가의 무사들은 최대한 빨리 싸움을 마무리하겠다는 듯 손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반면 구대문파의 제자들은 산적과 천사교도를 구별해서 손을 썼다.
천사교도에게는 죽음을 내려도, 산적에 대해서는 혈도를 제압하거나 부상만 입힌 채 어지간하면 목숨을 취하지 않았다.
천무회의 수뇌 중 몇 사람은 그 모습이 영 마음에 안 드는지 이마를 찌푸렸다.
상대는 힘이 약하다 해도 산적이었다. 살계를 지킬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그들에게 살인을 강요하지는 않았다. 무위가 워낙 현격히 차이 나서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사공강후는 적을 공격하면서 백리진과 비슷한 생각을 했다.
천사교의 지독함을 겪어 보진 못했지만, 섬서를 일거에 장악한 천사교의 무력 치고는 너무나 약했다.
“관 숙부,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막 천사교도 속으로 뛰어들려던 관호명이 고개를 돌렸다.
“뭐가 말인가?”
“종남과 화산을 본산으로 몰아넣은 천사교 치고는 너무 약합니다.”
“그야 아직 본진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 아닌가? 아마 상주에 가면 저들의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거네.”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했다.
그때 천무십절 중 하나인 무정도객(無情刀客) 좌궁생이 냉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공자, 고민할 것 없소. 어차피 저들을 모두 쓰러뜨리면 고민거리도 사라질 테니까 말이오.”
그 말에 관호명이 가벼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럼 조카의 고민을 덜어 주기 위해서라도 빨리 끝내야겠군.”
“그것도 좋지요.”
그들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았다. 긴장할 이유가 없었다.
천사교도 중 당주급 간부조차 그들을 막아 낼 수 있는 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자신들이 본격적으로 나선다면 싸움이 끝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렇게 모두들 승리가 이미 결정되기라도 한 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적을 몰아붙였다.
제일 늦게 벽을 넘어간 회룡당은 쓰러져 있는 자들 사이를 지나가며 내심 안도했다.
질펀한 핏물 위에 백여 명이 쓰러져 있는데, 열 중 여덟이 천사교도와 산적들이었다. 삼성궁 무사들은 십여 명 뿐.
그나마도 십여 명 중 죽은 자는 넷밖에 안 되고, 나머지는 부상을 입어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었다.
“뭐 해? 부상자들을 한쪽으로 모아서 치료해.”
천광호가 소리치자 회룡당 무사들이 부상자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들은 삼성궁 무사의 시신과 부상자들을 깨끗한 곳으로 옮기고 상처를 재빨리 손봤다.
부상자가 몇 안 되니 북궁천은 굳이 손댈 것도 없는 상황. 천광호에게 다가간 그는 격전이 벌어지고 있는 산채 안쪽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거요?”
천광호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우리끼리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싸움이 끝난 뒤 들어가서 우리 본연의 임무인 뒤처리나 하자고.”
일리 있는 말. 북궁천도 반대하지 않았다.
품었던 의문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연합 세력의 힘은 자신이 보기에도 막강했다. 설령 철은보에서 도주한 주력이 이곳에 모두 있다 해도 그들을 곤란하게 할 정도는 아닐 것 같았다.
천사교가 헌원려려를 납치해서 죽어 마땅한 죄를 짓긴 했지만, 오지랖 넓게 연합 세력을 위해서 자신이 먼저 나설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북궁천이 산채에 들어선 지 반 각가량 지날 즈음.
산채 안쪽에서 급박한 변화가 일어났다.
“음?”
천사교도와 산적의 시신을 한쪽으로 치우는 일을 도와주던 북궁천은 허리를 세우고 안쪽을 바라보았다.
격전을 벌이는 소리가 빠르게 멀어진다.
천사교의 주력이 버티지 못하고 더 깊은 곳으로 도주하는 것 같다. 연합 세력의 무사들은 그들의 뒤를 쫓아가고.
그런데 기분이 묘했다.
불안감? 불길함?
어쨌든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기분 더럽게 찝찝하군.’
그때였다.
삐이이이이이! 삐이이이이이이!
기다란 소성(簫聲)이 울리며 메아리쳤다.
소성이 울린 곳은 산채 뒤에 있는 절벽 쪽. 천사교도들이 도주한 곳이었다. 연합 세력의 무사들이 쫓아간 곳.
싸한 느낌이 든 북궁천은 저만치 있는 천광호에게 말했다.
“당주, 제가 안에 들어가 보겠습니다. 당주께선 대원들과 함께 이곳에 계십시오.”
천광호도 소성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던 터라 순순히 승낙했다.
“그렇게 하게.”
그 말이 떨어짐과 동시, 절벽 쪽에서 괴이한 기운이 느껴졌다.
등골이 오싹해지는 섬뜩한 느낌!
“빌어먹을!”
외마디 쌍소리를 내뱉은 북궁천은 땅을 박차고 안쪽으로 몸을 날렸다.
한편, 계곡 안으로 들어간 천사교도들은 암벽에 탈출구라도 있는 것처럼 절벽으로 달려갔다.
연합 세력의 무사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여유 있게 계곡으로 진입했다.
계곡은 좁고 삼면을 둘러싼 절벽은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높았다.
이제 천사교도들은 독 안에 든 쥐나 같은 신세였다.
“순순히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오직 그것만이 목숨을 보전할 수 있는 길이니라!”
위효릉은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하지만 절벽 밑에 도착한 천사교도들은 다가가는 연합 세력 무사들만 노려볼 뿐 누구도 투항하겠다고 나서지 않았다.
“정녕 죽고 싶다면 모두 죽여 주마!”
등조립의 냉랭한 목소리가 절벽을 타고 메아리쳤다.
그렇게 연합 무사들이 절벽에 달라붙다시피 모여 있는 천사교도들을 노려보며 계곡의 중간에 진입했을 때였다.
천사교도들 속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천사의 세상을 위하여! 천사지존이시여, 저들을 멸하소서!”
천사교도들이 일제히 그의 말을 복창했다.
“멸하소서!”
“저들을 멸하소서!”
그때였다.
그들의 부름에 답하듯 기다란 소성이 계곡을 울렸다.
삐이이이이! 삐이이이이이이!
그리고 그 직후, 뿌연 운무를 뚫고 수천 발의 화살과 암기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
쏴아아아아! 슈슈슈슈슉!
멈칫한 연합 세력의 무사들은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리자 하늘을 올려다봤다.
순간 새카맣게 쏟아지는 화살과 암기를 보고 눈을 홉떴다.
“마, 맙소사!”
“막으면서 피해!”
“물러서라!”
여기저기서 고함치는 소리가 터져 나오고, 연합 세력의 수뇌부 수십 명이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하늘로 솟구친 그들이 무기를 휘두르고 쌍장을 떨치자,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화살과 암기들이 철벽에 부딪친 것처럼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들의 힘만으로는 시간 차를 두고 쏟아지는 화살과 암기를 모두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더구나 튕겨진 화살과 암기는 생각지도 않았던 각도로 날아가며 다른 사람을 덮쳤다.
팅! 투둥! 땅! 퍽! 퍼벅!
쉴 새 없이 화살과 암기가 방어에 막혀 튕겨 나가고, 바닥의 바위에 튕기고, 사람을 꿰뚫는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과 신음!
아수라장이 된 계곡 안은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해 버렸다.
분노를 터트릴 시간도 없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쓸 여유도 없었다.
눈 깜짝할 순간에 삼사백 명이 쓰러지거나 부상을 당하자, 연합 세력의 수뇌부들은 악을 쓰듯 소리쳤다.
“계곡을 나가시오!”
“절벽 쪽으로 피하면서 놈들을 쳐라!”
그런데 설상가상 여기저기서 두려움에 질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살과 암기에 독이 묻어 있다!”
“빨리 지혈을 해서 독의 확산을 막아!”
가까스로 화살과 암기의 공격을 벗어난 사람들은 계곡의 입구 쪽으로 물러났다.
그때 계곡 입구에 수백 명의 천사교도들이 나타났다.
안으로 들어간 자들이 전부인 줄 알았거늘, 저들은 또 어디서 나타났단 말인가!
어쨌든 화살과 암기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천사교도를 상대하는 게 나을 터. 연합 세력 무사들은 노성을 내지르며 그들을 공격했다.
하지만 입구에 나타난 천사교도들은 지금껏 상대한 자들과 달랐다.
광기가 일렁이는 눈빛. 강력한 무공.
더구나 그들은 고통을 모르는 듯 팔이 잘려도 웃고 배에 구멍이 나도 웃으며 도검을 휘둘렀다.
그렇게 연합 세력의 무사들과 천사교도들이 계곡 입구에서 뒤엉킨 직후,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화살비가 멈췄다.
그리고 절벽에 붙어 있던 천사교도들이 언제 겁에 질려 도주했냐는 듯 일제히 공격에 나섰다.
“우하하하! 이제부터 천사의 위대함을 느끼게 해 주리라!”
“천사의 세상을 위하여!”
“저놈들의 심장을 빼서 천사지존께 바쳐라!”
연합 세력은 인원의 절반 가까이가 화살과 암기에 맞은 상태였다. 정통으로 맞지 않았다 해도 스치며 상처가 난 사람들조차 독기가 침습한 상태였다.
수뇌부들은 부상당한 무사들의 앞에 서서 천사교도의 공격을 막았다.
그중에 절정의 경지를 넘어서서 절대의 경지에 오른 자는 넷이나 되었다.
백리진, 등조립, 관호명. 그리고 사공강후까지.
또한 그들과 큰 차이가 나지 않는 초절정의 고수들도 십여 명이나 되었다.
비록 많은 무사들이 화살과 암기로 인해 부상을 당했지만 천사교도에게 진다는 생각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천사교의 무리 중에도 그들과 비견될 고수들이 즐비했다.
“킬킬킬! 등조립! 너는 나와 싸워 보자!”
애꾸눈 노인이 괴소를 터트리며 날아들자 등조립의 표정이 괴이하게 일그러졌다.
“십여 년 전에 사라진 독안마종(獨眼魔宗)이 천사교에 있었구나!”
백리진도 얼굴이 둥근 노인을 발견하고 눈을 부릅떴다.
“동마신(童魔神) 여립!”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연합 세력의 수뇌부를 긴장시킬 절정 고수들이 천사교도 속에서 속속 모습을 드러냈다.
상주에 있을 거라 예상했던 천사교의 주축 고수들이 일개 산채에 모여 있을 줄 누가 알았으랴.
“이제 보니 작정을 하고 우리를 이곳으로 끌어들였구나!”
위효릉은 아연한 표정으로 탄식하듯 소리쳤다.
자신들을 방심시키기 위해서 수백 명을 죽음을 내몰다니.
그는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천사교의 사악함에 치가 떨렸다.
이제야 천사교가 어떤 곳인지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참으로 악독하기가 한이 없는 놈들이구나.’
하지만 지금은 저들을 욕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었다.
수백 명을 미끼로 자신들을 끌어들였다면 그만한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 화살과 암기로 인해 반에 가까운 인원이 당한 지금 상태에서는 저들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그는 참담함을 가슴속에 구겨 넣고 연합 세력 무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놈들의 공격을 막으면서 이곳을 빠져나가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