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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54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60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54화

 

54화

 

 

 

 

 

 

 

등골이 싸늘해지는 차가운 목소리. 당장이라도 칼이 날아들 것만 같다.

 

하지만 조관은 고개를 돌리고 담담히 말했다.

 

“나야 활을 구하러 왔소만. 그러는 댁은 뉘시오?”

 

“활은 왜 구하려는 거지?”

 

“시간 날 때 사냥을 해 볼까 해서 구하려는 거요. 그런데 내가 활을 구해서 어디에 쓰던 댁이 무슨 상관이오?”

 

안에서 나온 자, 장호문은 온기 하나 없는 눈빛으로 조관을 바라보았다.

 

조관의 말대로 자신이 상관할 일이 아니었다. 문제는 자신이 만가점에 들어온 직후 삼성궁의 무사가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뭘 알고 들어온 걸까?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왠지 께름칙했다. 하지만 트집을 잡고 입을 막기에는 어정쩡한 상황이었다.

 

“알았네. 그럼 좋은 활을 구해서 가게나.”

 

조관은 별사람 다 봤다는 듯 고개를 모로 꼬고는 몸을 돌렸다.

 

겉으로는 태연했지만 어찌나 긴장했는지 손안에 땀이 차서 미끈거렸다.

 

장호문은 물건 사이로 사라지는 조관을 보며 눈을 가늘게 좁혔다.

 

자신이 하는 일은 누구도 알아선 안 된다. 

 

그게 누구든!

 

 

 

잠시 후.

 

서평을 나선 조관은 미간을 찌푸렸다.

 

‘여자를 왜 산다는 거지?’

 

수룡위사대원도 남자다. 때로는 여자가 필요하기도 할 것이다.

 

그 일 자체는 문제라 할 것도 없었다.

 

정작 이상한 것은 장소였다.

 

여자를 사려면 기루로 갈 것이지 왜 그런 곳으로 간단 말인가?

 

혹시 그곳이 비밀스럽게 여자 장사를 하는 곳인가?

 

‘그럴지도 모르겠군.’

 

조관은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히 자신도 가끔은 여자가 필요해서 기루를 찾곤 했다. 혼인을 못했으니 그런 곳에서라도 욕정을 풀어야 할 것 아닌가.

 

‘제길, 괜한 일 때문에 돈만 썼군.’

 

그는 손에 든 활과 열 발의 화살을 내려다보았다. 

 

입맛이 썼다.

 

‘당주님이 보면 뭐라고 할지 모르겠군.’

 

너 미쳤냐고 할 가능성이 가장 컸다.

 

‘그래도 공금을 쓰진 않았으니 때려죽인다고 하지는 않겠지.’

 

이 활로 진짜 사냥을 해 볼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시간만 난다면 그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노루라도 잡으면 한바탕 잔치를 벌일 수도 있고 말이다.

 

하지만 어쨌든 한 달 보수의 반을 엉뚱한 일에 써 버린 것은 멍청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광원산장으로 향하는 길목의 숲에 들어섰다.

 

그는 나무 위에 까치가 보이자 활시위를 잡아당겨 보았다.

 

팽팽하게 당겨지는 느낌이 제법 괜찮았다.

 

하긴 한 달 보수의 반을 지불했는데 고물이면 되겠는가.

 

‘이 기회에 궁술을 제대로 익혀 봐? 원거리 적을 상대할 때는 활을 쓰고, 근거리는 검을 쓰고. 그럼 괜찮을 것 같은데…….’

 

그는 빈 활로 나무 위의 까치를 겨냥했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가 빠르게 다가왔다.

 

흠칫한 그는 활시위를 느슨하게 풀며 슬쩍 뒤를 돌아다보았다.

 

다가오는 자는 만가점에서 봤던 수룡위사대원였다.

 

그가 그자를 인지했을 때는 이미 거리가 십여 장으로 줄어든 상태였다.

 

멈칫한 사이 그 거리가 빠르게 가까워졌다.

 

달리 대처하기도 어정쩡한 상황.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린 그는 장호문을 바라보며 먼저 말을 걸었다.

 

“귀하도 본 궁의 무사였소?”

 

장호문이 담담히 웃으며 대답했다.

 

“몰랐나?”

 

“내가 본 궁의 무사를 전부 아는 것도 아닌데, 처음 본 귀하를 어떻게 알겠소?”

 

어느새 두 사람의 거리는 삼 장으로 가까워진 상태. 장호문은 조금도 걸음을 늦추지 않고 말했다.

 

“하긴 그도 그렇군. 그럼 이제라도 알아 두게나. 나는 수룡위사대의 삼조장인 장호문이라네.”

 

의외로 장호문은 순순히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

 

조관은 그의 이름을 듣고 이상할 정도로 가슴이 싸늘해졌다.

 

그 순간, 장호문이 튕겨지듯이 몸을 날렸다.

 

“염라대왕이 묻거든 그렇게 대답해.”

 

쉬이익!

 

목소리와 칼 바람소리가 뒤섞여서 조관을 덮쳤다.

 

조관은 기다렸다는 듯 뒤로 훌쩍 몸을 날리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오!”

 

“만가점의 점원은 손가락이 모두 잘린 채 죽었다.”

 

쉬쉬쉬쉭!

 

장호문의 검이 더욱 빨라지면서 검풍이 일었다.

 

몇 마디 말만으로도 상황을 깨달은 조관은 검을 뽑아 들고서 상대의 공격을 막았다.

 

손가락이 잘린 채 죽었다는 말은 고문을 당했다는 말이다. 그 와중에 장호문이란 자는 자신이 목적하는 바를 얻었을 것이고.

 

쩌저정!

 

서너 번 검이 격돌하며 귀청을 찢는 소리가 울렸다.

 

급박하게 취한 방어로는 장호문의 검을 완전히 막을 수가 없었다.

 

더구나 공력과 검의 경지를 따져 봐도 조관은 장호문에 비해서 한 수 이상 아래였다.

 

‘제기랄!’

 

조관은 이를 악물고 검을 움켜쥔 손에 공력을 집중했다.

 

십초가 지나기도 전에 검을 쥔 손이 울리고, 그 충격으로 몸의 움직임마저 둔해졌다.

 

그리고 다시 오초가 지났다.

 

상대의 검기가 허벅지와 옆구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는 상황.

 

조관은 전력을 다해서 뒤쪽으로 몸을 날렸다.

 

장호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독수리처럼 몸을 날리며 조관의 등을 덮쳤다.

 

쉬아악!

 

검첨에서 피어난 검기가 조관의 등을 길게 갈랐다.

 

옷이 갈라지고 살까지 갈라졌다.

 

‘흐읍!’

 

조관은 눈을 홉뜨고 이를 으스러져라 악물었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소나무와 잡목이 우거진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흥! 도망치겠다고?”

 

장호문은 코웃음 치며 조관의 뒤를 바짝 쫓았다.

 

검기에 의해 등이 갈라진 자다. 그 몸으로는 자신을 벗어날 수 없으리라.

 

오히려 그에게는 조관이 길을 벗어나 숲 속으로 들어간 것이 잘된 일이었다.

 

‘죽여서 숲 속에 묻어야겠군.’

 

살소를 베어 문 그는 소나무 사이를 빠르게 지나가며 조관과의 거리를 좁혔다.

 

조관은 사오 장 앞에 있는 잡목을 통과하고 있었다.

 

이제 두어 번의 도약이면 그를 잡을 수 있을 듯했다.

 

그런데 그가 신법을 펼쳐서 잡목을 막 넘어갈 때였다.

 

쉬익!

 

갑자기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들었다.

 

‘화살?’

 

그는 생각과 동시에 검을 휘둘렀다. 밖이었다면 화살을 쳐 내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잡목과 덩굴이 검의 진로를 방해했다.

 

물론 잡목과 덩굴은 검기가 서린 그의 검에 마른 보릿대처럼 잘렸지만, 미미하나마 시간 차이가 났다.

 

그리고 그 차이로 인해 그는 화살을 완벽하게 쳐 낼 수 없었다.

 

퍽!

 

검에 꼬리를 맞고 방향이 틀어진 화살이 그의 어깨에 틀어박혔다.

 

와락, 얼굴이 일그러진 그는 땅에 내려서서 전면을 노려보았다.

 

그때 또 한 발의 화살이 날아왔다.

 

쉬이익!

 

거리가 가깝다 보니 섬전이 따로 없었다.

 

대경한 그는 급히 몸을 옆으로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땅!

 

이번에는 정확히 화살을 쳐냈다.

 

하지만 아직 조관의 공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중심을 잡기 무섭게 세 번째 화살이 날아들었다.

 

바람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자, 장호문은 별수 없이 뒤쪽으로 훌쩍 몸을 날려서 거리를 벌렸다.

 

조관은 그 모습을 보고 전력을 다해서 달렸다.

 

등에서 전해지는 고통으로 온몸이 후들후들 떨렸지만, 멈추면 죽음뿐이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저놈에 대한 것은 알리고 죽어야 돼!’

 

 

 

* * *

 

 

 

조관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맨 처음 이상하게 생각한 사람은 이조량이었다.

 

그는 북궁천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저, 단 형님. 대주님이 아까부터 안 보이는데 어딜 가신 거죠?”

 

“물품 구입하러 가시지 않았나?”

 

“그때 함께 나갔던 사람들은 돌아왔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갔지?”

 

“그분들에게 물어보니까, 먼저 가라고 했답니다. 갑자기 뭐 좀 알아볼 게 있다면서요. 그런데 뭘 알아보려고 하는데 한 시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시진은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었다.

 

더구나 계획된 것도 아니고, 물품을 사러 나간 사람이 갑자기 뭔가를 알아보려 했다는 점도 이상했다.

 

“함께 나갔던 사람이 누구지?”

 

“고지경 선배와 정만강 선배입니다.”

 

 

 

북궁천은 고지경과 정만강을 만나 보았다. 고지경은 북궁천이 처음에 들어왔을 때 주먹을 날렸던 자였다.

 

그들은 조광이 서평에 남은 것에 대해서 자신들도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물건을 다 구입한 후 서평을 떠나기 전 갑자기 그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상한 점은 없었소?”

 

북궁천이 그렇게 묻자, 정만강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가게 안에서 건너편 골목 안을 한참 바라보았소. 그러고 나서 우리보고 먼저 가라고 했소.”

 

“골목 안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뭐가 있었소?”

 

“별 것은 없고, 이런저런 가게가 두어 곳 있었소. 뭐, 주루도 있고…….”

 

 

 

북궁천은 천광호를 찾아갔다.

 

천광호는 조관이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 자식, 술 처먹는 거 아냐?”

 

“조 대주가 혼자 술 마시는 걸 좋아합니까?”

 

“그건 아닌데…….”

 

천광호는 말을 길게 끌더니 굳은 표정으로 눈빛을 반짝였다.

 

“그럼 혹시 여자와 놀다 늦는 것 아닐까?”

 

북궁천은 천광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천광호는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것도 아니면 왜 안 돌아오지? 천사교도 놈들을 만났나?”

 

“아직 천사교도가 서평으로 숨어들었다는 소식은 없는 것으로 압니다만.”

 

“양고명도 간자였는데, 없으란 법도 없잖아?”

 

그건 그랬다. 하지만 천사교도들이 머리가 비지 않은 이상 서평까지 들어와서 일개 대주를 죽여 눈길을 끌 리가 없었다.

 

“최근 이상한 일은 없었습니까?”

 

“이상한 일? 없었는데? 아, 처음에 이곳을 공격할 때 약간 이상한 걸 보긴 했지.”

 

“뭡니까?”

 

천광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방문을 열고 밖을 살펴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서 그날의 일을 나직이 말했다.

 

“……그래서 그놈에게 입조심하라고 했네. 잘못하면 둘 다 끝장날지 모르거든. 자네도 어디 가서 그런 말 함부로 하지 말게. 무슨 말인 줄 알지?”

 

북궁천은 무심한 표정으로 그의 말을 끝까지 들었다.

 

머릿속에 몇 가지 의문이 뒤엉켜 휘도는데 아직 정리가 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구양우경이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조관은 자의든 타의든 그 일에 연관이 되어 있었다.

 

“제가 나가서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그럴 필요가 있을까?”

 

“그럼 당주께서 찾아보시든지…….”

 

“가 보게. 대주가 안 보이는데 당연히 찾아야지. 하, 하, 하.”

 

북궁천은 가볍게 포권을 취하고 돌아섰다. 더 이야기해 봐야 시간이 아까웠다.

 

천광호는 북궁천이 나간 후에야 털썩 자리에 앉아서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 자식, 여자를 품고 들어오기만 해 봐라. 내 개코로 철저히 검사해서, 아구통을 그냥!’ 

 

 

 

* * *

 

 

 

북궁천은 혼자서 밖으로 나갔다.

 

서평까지 이십 리. 그는 천천히 걸어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봤다.

 

주로 구양우경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가 헌원려려를 ‘내 것’이라고 할 때부터 뭔가 이상했다. 그런데 천광호의 말을 듣고 보니 더 확실해졌다.

 

그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자일지도 몰랐다.

 

‘혹시 려려도 알고 있는 것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럼 왜 그녀는 그가 정신적으로 이상하다는 걸 알고도 그의 곁에 있으려고 하는 걸까?

 

‘말도 안 돼. 그걸 알면서 어떻게 그자와 함께 있을 수 있어?’

 

북궁천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지처럼 느껴졌다.

 

바로 그때, 저만치 숲 사이로 난 길에서 이상한 것이 보였다.

 

그는 구양우경에 대한 생각을 접고 미끄러지듯이 그곳으로 다가갔다.

 

숲 사이로 난 길 한쪽에 화살이 하나 비스듬히 꽂혀 있었다.

 

화살을 본 그의 눈빛이 깊게 침잠되었다.

 

‘꽂힌 지 얼마 안 된 것이다.’

 

화살이 꽂힌 부위의 흙이 튀어나온 그대로 있었다. 하다못해 이슬만 맞았어도 튄 자국이 가라앉아 있을 텐데 말이다.

 

그는 우측의 숲을 바라보았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방향으로 봐서 화살은 그곳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왜 숲 속에서 화살이 날아온 걸까? 누가 쏜 걸까?

 

단순히 사냥하기 위해서 쏜 화살은 아닌 듯했다. 암습을 하기 위해서 쏘았다면 몰라도.

 

그는 숲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그저 뭐라도 남은 흔적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들어갔는데, 몇 걸음 들어가지 않아 뭔가가 보였다.

 

‘응? 저건?’ 

 

아직 붉은 색이 선연한 피였다.

 

핏자국은 점점이 떨어져서 숲 안쪽으로 길게 이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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