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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50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10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50화

 

50화

 

 

 

 

 

 

 

천광호는 모른 척하며 되물었다. 

 

“뭐가?”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사람을 죽이면서 웃는 것처럼 보입니다.”

 

조관의 말에 천광호가 말도 안 된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야, 인마. 그럼 소궁주가 미쳤단 말이냐? 웃는 게 아니라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얼굴이 일그러진 걸 네가 잘못 본 거겠지.”

 

그래도 조관은 자신의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잠시 머뭇거린 그는 주위를 슬쩍 둘러본 후 말했다.

 

“처음에는 안 그랬는데, 조금 전부터 즐기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자식이…….”

 

천광호는 짐짓 눈을 부라리면서도 넌지시 물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한 거냐? 뭐라도 봤어?”

 

“소궁주는 적을 죽여도 그냥 죽이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고통을 느낄 곳만 골라서 시간을 두고 죽이고 있습니다. 언젠가 저런 식으로 사람을 죽이는 자를 본 적이 있는데…… 계집과 그 짓을 하는 것보다 더 짜릿하다고 하더군요.”

 

“뭐? 그놈이야말로 진짜 미친놈이군.”

 

“맞습니다, 원래 미친놈이죠. 오죽하면 별호가 광귀마도(狂鬼魔刀)겠습니까.”

 

천광호는 그쯤에서 조관의 말을 끊었다.

 

“그 자식 미친 거는 나도 알아, 인마. 쉰 소리 그만하고, 가서 뒷일이나 처리해.”

 

조관은 구양우경 쪽을 힐끔거리고 고개를 숙였다.

 

“예, 당주.”

 

“그리고 너. 죽고 싶냐, 살고 싶냐?”

 

“벽에 똥 처바를 때까지 살고 싶습니다.”

 

“그럼 어디 가서 그딴 소리하지 마. 무슨 말인지 알지? 너 때문에 나까지 일찍 죽고 싶지 않으니까.”

 

조관은 씩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걱정 마십쇼. 당주님 아니었으면 말도 꺼내지 않았을 겁니다.”

 

“가봐.”

 

천광호는 손을 저어서 조관을 쫓아내고 검을 지그시 움켜쥐었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조관만이 아니었다.

 

그는 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구양우경은 알려진 것과 많이 달랐다.

 

‘확실히 이상하긴 이상해.’

 

 

 

등조립이 앞장서고 구양우경까지 나선 천사교 공격은 대승을 거두며 마무리되었다.

 

위효릉은 뒷마무리를 회룡당에게 맡겨 놓고 나머지 무사들을 쉬게 했다.

 

그 바람에 천광호는 입이 한 자는 더 튀어나왔다.

 

“지미, 우리도 함께 싸웠는데 왜 뒷일은 우리에게만 맡겨?”

 

그래도 숫자가 삼분지 일로 줄어든 승룡당 무사들이 그들을 돕겠다고 나서서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역시 은혜란 베풀어서 나쁠 게 없었다.

 

“에이, 형님도 참. 몸도 안 좋은데 쉬지, 뭘 돕겠다고…….”

 

천광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행여나 진짜로 쉴까 봐 재빨리 일을 할당해 줬다.

 

“형님은 애들 데리고 저쪽에 있는 시신만 치우고 쉬쇼. 부상자들은 우리가 책임질 테니까.”

 

천종규의 눈에는 시신이 더 많아 보였지만, 도와주겠다고 나서 놓고 이제와 따지기도 어정쩡했다.

 

“알겠네. 그렇게 하지.”

 

‘미친 호랑이를 도와주겠다고 나선 내가 그렇지.’

 

 

 

태극문 제자들은 바삐 움직이면서도 그리 싫은 기분은 아니었다.

 

두어 번의 대규모 전투를 치르면서 진짜 강호의 무사가 된 기분이었다.

 

싸움에서도 이겼고, 그다지 큰 부상을 입지도 않았다. 찰과상이라 할 만한 작은 상처만 두어 군데 입었을 뿐.

 

“흐흐흐, 사부님께서 아시면 뭐라고 하실까?”

 

이정한이 기괴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자 초강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 화내실 겁니다. 왜 그렇게 위험한 곳에 뛰어들었냐면서.”

 

“하긴 사부님은 그러고도 남으실 분이지. 그럼 우리 사부님께 말하지 말자. 알았지?”

 

이정한의 제안에 동호량과 초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이조량이 그들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뭐 좋은 일이라도 있습니까?”

 

“좋은 일은 무슨. 그건 그렇고, 자네 정말 강하던데? 우리는 둘도 쉽지 않은데, 자넨 셋을 혼자서 처리했잖아.”

 

동호량이 부럽다는 듯 말하자 이조량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옆에서 형님들이 많이 도와줬잖습니까. 좌우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마음 놓고 싸울 수 있었던 거죠.”

 

초강도 담담히 웃으며 이조량을 칭찬했다.

 

“좌우간 대단했네. 자네 덕분에 우리도 편히 싸울 수 있었어. 자, 이제 일이나 합시다, 사형. 당주님 불호령 떨어지기 전에.”

 

천광호가 호랑이는 호랑이였다. 초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나타나서 빽 소리쳤다.

 

“뭐 해, 인마! 일 안해?”

 

겉으로는 인상을 썼지만, 속으로는 태극문 제자들과 이조량이 귀엽기만 했다.

 

‘흐흐흐흐. 착실하고, 무공도 제법이고. 진짜 복덩어리들이라니까.’

 

그러다 추적에 나선 북궁천을 떠올리고 이마를 찌푸렸다.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 * *

 

 

 

삼성궁 무사들이 광원산장을 공격하던 그 시각.

 

북궁천은 백리진, 임강령과 함께 남동쪽으로 달렸다.

 

이제는 입장이 바꾸어 천사교도들이 추적해 오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거리가 벌어지면서 추적해 오는 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세 사람은 쉬지 않고 오십 리를 달렸다.

 

솔직히 북궁천으로선 백리진과 임강령을 떼어 내고 싶었다. 그러나 헌원려려가 든 포대를 짊어진 채 절대지경의 고수를 떼어 낸다는 게 어찌 쉬운 일이랴.

 

더구나 통천일검공을 펼치는 바람에 상당한 공력이 소모된 상태였다.

 

지금으로선 두 사람을 떼어 내겠다고 무리할 때가 아니었다.

 

임강령이 사냥꾼이 살던 곳처럼 보이는 낡은 통나무집을 발견한 것은 그때쯤이었다.

 

“형님, 저기서 잠깐 쉬었다 가시지요.”

 

밤부터 쉬지 않고 눈길을 달리고 싸운 터였다. 백리진도 쉬고 싶은 마음이 있던 터라 그의 의견에 찬성했다.

 

“그렇게 하세. 놈들도 우리를 바로 찾아내지는 못할 거네.”

 

북궁천이야 두말할 것도 없었다.

 

점혈된지 하룻밤이 흐른 헌원려려였다. 너무 늦게 풀어 주면 몸에 이상이 생길지 몰랐다.

 

그는 백리진이 대답을 마무리 짓기도 전에 임강령이 가리킨 곳으로 방향을 틀었다.

 

 

 

통나무집은 사용하지 않은 지 오래된 듯했다.

 

한쪽에는 구멍이 나 있고, 짐승들의 배설물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그래도 찬 바람이 부는 바깥보다는 훨씬 나았다.

 

북궁천은 나뭇가지로 대충 바닥을 쓸어 내고 포대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입구를 묶은 끈을 풀 시간도 아깝다는 듯 포대를 잡아 찢었다.

 

헌원려려의 얼굴이 먼저 드러났다.

 

눈물이 말라붙은 흔적만 남은 두 눈과 새파랗게 질린 입술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몸은 얇은 이불로 둘둘 말려 있었는데, 밖으로 드러난 발은 추위로 인해 새파랗게 얼어 있었다.

 

북궁천은 그녀가 편하도록 이불을 느슨하게 풀어 주기만 했을 뿐, 추운 날씨를 생각해서 완전히 벗기진 않았다.

 

그리고 잘게 떠는 헌원려려를 지그시 바라보며 아혈과 마혈을 풀어 주었다.

 

그녀는 바로 눈을 뜨지 않았다.

 

마혈을 제압해도 팔다리와 몸뚱이만 움직일 수 없을 뿐, 그 영향이 눈과 입에까지 미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양고명도 그녀의 아혈을 따로 제압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눈을 뜨지 않는 것은, 눈을 떴을 때의 상황이 두렵기 때문이었다.

 

‘그럴 리가 없어. 그가 이곳에 있을 리가 없어.’

 

정신이 아득한 상태에서 그 목소리를 들었다.

 

분노에 찬 목소리. 살기가 응축된 그 목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절로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그녀도 그 목소리를 듣고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다른 사람과는 의미가 다른 떨림이었다.

 

이틀 전의 환청이, 몇 시진 전에 들었던 하늘의 울음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닐 거라 생각했다. 목소리가 같은 사람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으니까.

 

하지만 그가 양고명을 단숨에 죽이고 자신을 어깨에 걸쳤을 때, 그녀는 확신했다.

 

그다. 그가 이곳에 있다.

 

북천에서 마제가 왔다!

 

이제 눈을 뜨면, 자신의 확신에 대한 답이 보일 것이다.

 

그녀는 그게 두려웠다. 정말 그일 경우가 말이다.

 

그럴 리가 없다고 되뇌어 보지만 머릿속에서는 그의 목소리가 계속 울렸다.

 

얼굴의 형상도 떠올랐다. 과거의 북궁천이 아닌 현재의 북궁천이.

 

‘그가 궁주였어. 세상에! 그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몰라보다니. 아무리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어떻게 그럴 수가…….’

 

그때 누군가가 자신의 발을 손에 쥐는 게 느껴졌다.

 

반쯤 얼어붙어서 감각이 무뎌진 발이 따뜻한 열기와 잔잔한 진기에 서서히 녹자 짜르르한 충격이 전해진다.

 

부드럽고 섬세한 손길.

 

끝내 그녀의 두 눈에 고였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한편, 임강령과 백리진은 묘한 분위기를 느끼고 의아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북궁천이 포대를 잡아 찢을 때만 해도 그러려니 했다.

 

이불을 느슨하게 해 주고, 혈도를 풀어 주는 걸 보고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북궁천이 발을 주물러 주면서부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자신들을 경악케 했던 패도적인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친동생을 보살피듯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더 이상한 것은 서문려려가 정신이 들었는데도 눈을 뜨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다 울기까지.

 

“이보게, 서문 소저와 아는 사인가?”

 

백리진이 넌지시 물었다.

 

아무리 얼어붙은 몸을 녹이기 위한 것이라지만, 북궁천이 발을 주물러 주는 것은 아는 사이가 아니라면 지나쳐 보이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조심스런 손길과 부드러운 눈빛도 단순히 언 발을 녹여 주려는 사람의 표정과는 사뭇 달랐다.

 

“예, 아는 사입니다.”

 

북궁천의 담담한 대답에 헌원려려의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백리진과 임강령은 그의 대답이 의외였다.

 

“왜 여태 그 말을 하지 않았나?”

 

임강령이 북궁천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북궁천은 헌원려려의 발을 계속 주무르며 말했다.

 

“려려와는 고향이 같습니다. 잘됐으면 같이 살았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이전의 일입니다. 아는 척하면 려려에게 해가 될 것 같아서 말하지 않았지요. 려려가 저를 싫어할지도 모르고 말입니다.”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헌원려려, 그들이 아는 서문려려는 삼성궁의 소궁주 구양우경과 혼인을 앞둔 여인이다.

 

천사교와의 일만 끝나면 바로 혼인식을 치를 사이. 부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 사이에 불쑥 다른 사람이 끼어들면 어느 모로 보나 좋을 게 없었다.

 

“허어, 그런 사연이 있었군. 어쩐지 자네가 유난히 분노한다 했더니…….”

 

백리진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하듯 말했다.

 

임강령도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잘 생각했네. 소궁주가 알았으면 서로 곤란해졌을 거야.”

 

그때 북궁천이 헌원려려의 발을 조심스럽게 놓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무심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그러지 않을 겁니다. 앞으로 려려는 제가 책임지고 지킬 겁니다.”

 

백리진이 흠칫하며 눈을 크게 떴다.

 

“이, 이보게. 그게 무슨 말인가?”

 

임강령도 북궁천의 말뜻을 알아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서문 소저는 소궁주와 혼인할 사이네. 설마 그걸 모르진 않겠지?”

 

“제가 결정을 내린 이상, 누구도 막지 못합니다. 설사 하늘이라 해도!”

 

북천에서 마제가 내린 결정은 곧 법이다.

 

뒤엎을 수 있는 사람은 마제 본인뿐!

 

강호가 거부한다면 맞설 수밖에!

 

화아아아악!

 

북궁천의 전신에서 무형의 기운이 뿜어지며, 통나무집 안이 통째로 얼어붙은 것처럼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백리진과 임강령마저도 북궁천에게서 뿜어지는 무형의 기세에 숨이 막혀서 눈을 홉떴다.

 

그들은 북궁천의 기세에 대항하기 위해 황급히 공력을 끌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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