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4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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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1,051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49화
49화
바로 그때, 상남 쪽에서 시커먼 인영들이 개미떼처럼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포대를 멘 자는 혼신을 다해 달리며 소리쳤다.
“나는 호교팔령이다! 빨리 와서 이놈들을 막아라! 소존께 드릴 선물을 뺏으려는 놈들이다!”
호각 소리를 듣고 상남에서 나온 자들은 달려오는 자가 강호의 각 세력에 숨어든 십이호교령(十二護敎領) 중 호교팔령이라는 말에 더욱 속도를 냈다.
북궁천이 거리를 좁히고 있지만, 앞에서 달려오는 천사교도와 호교팔령의 거리도 그만큼 빨리 좁혀졌다.
북궁천은 찰나의 순간도 멈칫거리지 않고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거리가 삼 장으로 줄어든 순간, 좌수를 들어 앞으로 뻗었다.
그의 좌수 장심에서 강맹한 장력이 쏟아져 나갔다.
쾅!
폭음이 울리며 이 장 앞에 쌓인 눈이 폭발하듯이 터져 나갔다.
그 여파에 호교팔령의 몸이 비틀거렸다.
북궁천은 그사이 거리를 좀 더 좁히며 검을 뻗었다.
순간적으로 묵혼의 검첨에서 시커먼 검강이 죽 뻗어 나갔다.
후우우웅!
호교팔령은 등 뒤에서 밀려드는 가공할 기운을 느끼고는 홱 몸을 틀면서 우장을 쳐 냈다.
추적자들의 가공하리만치 빠른 경공술을 보고 느낌이 좋지 않아 도주했다.
하지만 그 역시 강호에서 절정고수로 명성이 자자한 사람 아닌가 말이다.
더구나 천사교도들이 코앞까지 다가왔거늘, 호교령의 체면을 구길 수는 없는 일이다.
한두 번만 막으면 천사교도들이 놈들을 상대할 터.
“이노오오옴!”
그는 남몰래 이십 년을 익혀온 혈사장(血邪掌)을 발출하며 노성을 내질렀다.
시뻘건 혈사장이 어둠을 더욱 검게 물들이며 장심에서 쏟아져 나가더니, 밀려드는 검강과 정면으로 부딪쳤다.
쩌저적!
바위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혈사장의 장세가 산산이 부서졌다.
“거, 검강?”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불거진 그는 혼신의 힘을 쏟아내 검강의 접근을 막았다.
그러나 북궁천의 검세는 그가 짐작했던 것보다 더 날카롭고, 패도적이었다.
단숨에 혈사장을 그물처럼 갈라 버린 검강은 그의 손가락마저 잘라 버렸다.
퍼벅!
검에 실린 힘이 얼마나 패도적인지 잘린 손가락이 허공에서 터져 나갔다.
그런데 검강과 부딪친 충격으로 호교팔령의 몸도 뒤로 튕겨지면서, 달려오는 천사교도들 앞으로 날아갔다.
“크으으윽.”
겨우 땅에 내려서서 비틀거리는 그의 얼굴이 악귀처럼 일그러졌다.
손가락이 잘린 곳에서 피가 뿜어졌다.
뇌리를 후비는 극렬한 고통!
그는 당하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혈사장이 깨진 것으로도 모자라 손가락이 잘리다니!
“저놈을 죽여라!”
분노에 휩싸인 그는 악에 바친 목소리로 소리쳤다.
북궁천은 단숨에 적의 목숨을 취하지 못한 점이 못내 아쉬웠다.
헌원려려가 다칠까 봐 묵혼에 칠성의 공력만 담았다. 그 바람에 호교팔령은 손가락 세 개만 잃은 채 천사교도 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헌원려려가 위험해지는 한이 있어도 공력을 좀 더 끌어 올렸어야 하거늘. 그랬다면 저자를 죽이고 려려를 낚아챘을 것 아닌가.
하지만 이미 지난 일. 후회해 봐야 무슨 소용이랴.
그는 달려드는 천사교도들을 향해 몸을 날리며 검을 휘둘렀다.
천사교도의 숫자는 이백 명에 달했다. 그럼에도 그는 오만한 일성을 내지르며 그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내 앞을 막는 자는, 누구든 죽인다!”
그와 동시에 백리진과 임강령이 날아들더니 천사교도들을 공격했다.
잘린 손가락 부위를 지혈하고 찢어 죽일 듯이 북궁천을 노려보던 호교팔령은 뒤늦게 두 사람의 정체를 알아보고 기겁했다.
“거, 검왕과 고검이다!”
어쩐지 자신을 호위하던 자들이 힘도 못 써 보고 뚫렸다 했더니, 설마 검왕 백리진과 고검 임강령일 줄이야!
“그들을 막아라! 모두 합공해서 막아!”
그는 손가락 잘린 고통조차 잊고 악을 쓰며 뒤로 물러났다.
천사교도의 숫자는 이백 명에 달했다.
‘검왕과 고검이 아무리 강해도 저들을 다 죽일 수는 없겠지.’
그러나 살계를 펼치기로 작정한 두 사람의 검은 이전과 판이하게 다를 정도로 강력했다.
소궁주와 혼인할 여자가 적의 손에 넘어갈 판이었다. 손에 인정을 둘 여유가 없었다.
고오오오! 쩌저저적!
검기의 폭풍이 앞으로 나선 천사교도들을 휩쓸었다.
천사교도들은 그들의 일검도 제대로 받아 내지 못하고 피를 뿌리며 나뒹굴었다.
순식간에 칠팔 명이 쓰러지자 천사교도들도 멈칫거리며 무작정 달려들지 않았다.
그들을 진정 두렵게 만드는 사람은 검왕과 고검이 아닌 북궁천이었다.
그는 이제 자신의 힘을 억누르던 단화린이 아니었다.
헌원려려를 구하기 위해 모든 힘을 드러낸 북천마제였다.
떠더덩! 콰과광!
묵혼은 상대의 무기와 몸을 동시에 잘라 버렸다.
북두패왕권과 앙천회류장은 부딪쳐 오는 모든 것을 부숴 버렸다.
자신의 앞을 막는 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살고 싶은 자는 비켜라!”
절대패력!
북천을 공포에 떨게 했던 마제의 신위가 근 삼 년 만에 하남 땅 저 구석진 곳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눈 깜짝할 새에 십여 명이 대항도 못 해 보고 죽어 가자, 호교팔령의 표정이 귀신을 본 것처럼 하얗게 탈색되었다.
‘맙소사! 저놈이 누구기에 저리도 강하단 말인가!’
그때 임강령이 분노해 소리쳤다.
“진천일수 양고명! 네놈이 천사교의 주구였단 말이냐!”
양고명은 삼성궁의 빈객으로 이번 후속대에 속해 있던 자였다.
악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걸로 유명한 그가 천사교의 주구라니. 소궁주의 여인을 납치 하다니!
참으로 기가 찰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양고명은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간 후 임강령을 향해 소리쳤다.
“임강령! 천사지존의 눈과 귀는 천하에 없는 곳이 없느니라!”
바로 그 순간, 북궁천이 대붕처럼 날아올라서 단숨에 십여 장을 날아갔다.
그는 곧장 양고명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오십여 명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북궁천은 추호도 망설이지 않았다.
“막는 자는 모두 죽을 것이다!”
그의 일갈에 천지가 들썩였다.
쏴아아아아!
그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가공할 패기에 어둠마저 사방으로 밀려났다.
바람도 없는데 머리카락과 옷자락이 거센 폭풍 앞에 선 것처럼 펄럭였다.
그 기세가 오죽 강하면 두려움을 모르는 천사교도들이 겁에 질린 표정으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쿵!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땅을 울리며 내려선 그는 이 장 앞의 양고명을 향해 묵혼을 뻗었다.
“아느냐! 너는 절대 해선 안 될 짓을 저질렀다!”
찰나였다.
후우우웅!
묵혼의 검첨에서 시커먼 뇌전이 일직선으로 쭉 뻗었다.
십이성 진력이 실린 통천일검공(通天一劍功)이었다.
한 줄기 벼락이 양고명의 이마를 꿰뚫은 순간!
퍽!
양고명은 입을 반쯤 벌린 채 멍하니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그는 죽어 가면서도 자신이 어떻게 죽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눈앞이 시커멓게 변하는가 싶더니 뇌리가 하얗게 비며 모든 사고가 끊어졌을 뿐.
북궁천은 양고명의 뇌를 완전히 뭉개 버리고 이를 지그시 악물었다.
통천일검공은 북천궁의 삼대패천검공 중 가장 강력한 검공이다. 오죽 익히기가 힘들면 그의 조부조차 칠성 경지에 만족해야 했던 절대검공.
그런 절대검공을 헌원려려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양고명만을 죽이기 위해 전력으로 펼쳤더니 공력이 급속도로 빠져 나갔다.
다행이라면 당장 기혈이 뒤엉키거나 무공을 펼치는 것이 어려울 정도는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마도 육대기가 남긴 영단의 약효로 공력이 늘어난 덕분인 듯했다.
그는 양고명이 앞으로 스르르 쓰러지는 걸 보며 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포대를 재빨리 낚아채서 자신의 어깨에 걸쳤다.
순간, 손을 통해 둔한 느낌이 전해졌다. 헌원려려의 몸을 뭔가로 둘둘 감은 듯했다.
추위를 견디게 하려고 그랬는지 몰라도, 그동안 힘들었을 헌원려려를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려려, 조금만 기다려라.’
“빨리 빠져나오게! 놈들이 몰려오고 있네!”
바깥쪽에서 임강령이 소리쳤다.
천사교도들의 협공을 물리치며 중앙을 향해 나아가던 중 키가 유난히 큰 북궁천의 어깨에 포대가 걸쳐진 걸 본 것이다.
그때였다.
“천사의 제자들이여! 놈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목숨을 걸고 막아라!”
상남의 남쪽에서 고함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수백 명이 달려오는 게 보였다.
사실 이곳에 있는 천사교도들 중 고수라 할 만한 자는 몇 없었다. 기껏해야 교도 일백을 이끈다는 법당주(法堂主) 정도만 나왔을 뿐.
그러나 몰려오는 자들 중 선두에 선 자들은 몸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철은보에 있는 고수들이 쏟아져 나온 것이다.
북궁천은 포대를 멘 채 훌쩍 몸을 날렸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천사교도들이 몸을 날리며 그의 앞을 막았다.
“놈을 막아!”
“소존께 바칠 선물을 뺏어라!”
북궁천은 북천의 지존무공인 마제일존보(魔帝一尊步)를 펼치며 허공을 걷듯이 날아갔다.
와직! 텅!
천사교도들의 공격은 그의 옷자락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
오히려 마제일존보의 가공한 기운에 눌려 뼈가 부러지고 피를 토하며 꺼꾸러졌다. 발밑 용천혈에서 뿜어지는 진기가 그들의 공세를 짓눌러 버린 것이다.
팔 장을 날아가며 칠팔 명을 꺼꾸러뜨린 그는 포위망의 외곽에 내려섰다. 그러고는 조금도 멈칫거리지 않고 동쪽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한쪽에서 천사교도들과 싸우던 임강령과 백리진은 그가 탈출한 것을 보고 즉시 몸을 뒤로 뺐다.
숫자를 헤아릴 수 없는 적들이 이십 장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천사교의 주력으로 보이는 자들이.
북궁천에 이어 임강령과 백리진마저 빠져나가자 천사교도들 속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놈들을 지옥 끝까지 쫓아라!”
“외곽의 법당주들에게 신호를 보내!”
* * *
새벽이 되자 구름이 걷히면서 동쪽 하늘이 평소보다 더 맑은 주홍빛으로 물든다.
여명이 밝아 오는 시각.
하얗게 물든 대지를 밟고 일천 군웅이 치달린다.
굳게 닫힌 입술. 불타는 눈빛.
움켜쥔 주먹은 분노를 짓이기고, 힘차게 내딛는 두 발은 의지를 표출한다.
목표물은 서평에서 이십 리 남쪽에 있는 광원산장(光源山莊). 그 안의 아수라를 신봉하는 천사교도들이다.
목적은 소궁주의 약혼자를 구하고, 적을 전멸시켜 마의 씨를 말리는 것!
“놈들은 철저히 마에 물들어 있는 자들이오! 어설픈 감정으로 인정을 남기지 마시오!”
등조립의 차가운 목소리가 설원에 울려 퍼짐과 동시에 일천 군웅은 광원산장의 담장을 향해 달렸다.
정산곡을 출발한 지 두 시진 만의 일이었다.
천사교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맞섰다.
하지만 인원에서 배 이상 차이나고 삼성궁 쪽에는 절대고수마저 둘이나 되었다.
공격을 시작한지 이각도 지나지 않아서 장원 안은 온통 천사교도들의 시신으로 뒤덮였다.
그 와중에 구양우경은 광기에 가까운 살기를 드러내며 천사교도들을 죽였다.
이미 팔다리가 잘려 대항하지 못하는 자도 목을 치고, 바닥을 기고 있는 자의 등에 검을 꽂았다.
정파의 무사라면 함부로 행해선 안 될 행동이었다.
그러나 삼성궁 무사들은 그가 부인이 될 사람을 납치당해서 그런 거라며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더구나 죽어 가면서도 천사지존을 외치며 달려드는 천사교도들에게 질린 무사들은 당연하다는 듯 생각했다.
일부만이 그의 지나친 살상에 눈살을 찌푸릴 뿐.
천광호도 그 일부 중 하나였다.
‘마누라 될 여자를 잃더니 완전히 미쳤군.’
구양우경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알려진 그와는 많이 달랐다.
그런데 언뜻 구양우경이 적의 심장을 꿰뚫고 목을 치며 웃는 것처럼 느껴졌다.
‘에이, 설마.’
그걸 본 사람은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
마침 옆으로 다가온 조관이 얼굴에 난 상흔을 구기며 나직이 말했다.
“당주, 소궁주께서 조금 이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