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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43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02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43화

 

43화

 

 

 

 

 

 

 

초강이 이정한의 뒤를 공격하는 천사교도를 발견하고 대경해 소리쳤다.

 

손발이 어지러워진 이정한은 급히 몸을 옆으로 눕히고 두 바퀴 구른 다음, 손바닥으로 땅을 치고 벌떡 일어났다.

 

그때 칼날이 그의 목을 향해 날아들었다.

 

피할 시간도 없고, 막기에 늦은 상황.

 

그는 이판사판이라는 심정으로 검의 손잡이를 이용해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한 치만 삐끗해도 손가락이 잘릴지 모르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땅!

 

천행이었는지 상대의 칼날은 약지 아래쪽의 손잡이를 때렸다.

 

하지만 위기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달빛을 받아 살기를 파랗게 번뜩이는 검이 가슴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정한은 다급히 몸을 틀며 좌수를 뻗었다. 손가락 두어 개를 내주는 한이 있어도 가슴은 내줄 수 없었다.

 

서걱!

 

절삭음이 들린 것은 그가 막 상대의 검을 잡아 간 순간이었다.

 

검을 잡기 전에 소리가 들렸으니 자신의 손가락이 잘린 것은 아닐 터.

 

그는 손에 잡힌 검을 한쪽으로 세차게 당기며 두 사람의 공격권을 벗어나기 위해 몸을 뒤로 뺐다.

 

찰나, 검을 든 자의 팔이 팔꿈치 부분에서 떨어져 나오고 피가 뿜어졌다.

 

힘주어 잡아당겼는데 잘린 팔만 딸려 오자 이정한은 몸의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순간, 천사교도가 그의 머리를 향해 칼을 내리쳤다.

 

쉬이익!

 

“물러서요!”

 

외마디 외침이 울림과 동시, 이조량이 이정한과 천사교도 사이로 번개처럼 끼어들며 검을 좌우로 흔들었다.

 

검화가 어둠 속에서 흩날렸다.

 

그의 검이 날아드는 칼날을 쳐 내고, 팔이 잘린 천사교도의 목을 반쯤 베어 냈다.

 

단숨에 두 사람의 공격을 막아 낸 그는 이정한의 앞을 가로막은 채 뒤로 물러났다.

 

“괜찮습니까?”

 

위기의 순간에 목숨을 구한 이정한은 이조량이 고맙기만 했다.

 

검을 잡으면서 손바닥이 갈라지긴 했지만, 이 상황에서 그 정도는 상처라 할 수도 없었다.

 

“고맙네. 나는 괜찮으니 걱정 말게. 일단 이 빌어먹을 놈들부터 처리하고 보세.”

 

 

 

천사교도들은 전세가 불리함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분노에 찬 투지가 질린 표정으로 바뀐 회룡당 무사들은 이를 악물고 천사교도들을 지옥으로 인도했다.

 

특히 천광호는 손속에 일말의 인정도 두지 않고 천사교도들을 죽였다.

 

그는 악에 물든 자들을 하나 죽이면, 선량한 사람 열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조리 죽여!”

 

철천지한이라도 있는 듯 냉혹한 살수를 펼치는 그를 보고 회룡당 무사들은 가슴이 떨렸다.

 

미친 호랑이라는 별명은 단순히 성격이 괴팍해서 붙은 것만은 아니었다.

 

결국 천사교도들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목숨을 던졌다. 광기에 찬 헛소리를 지껄이면서.

 

“천사지존께서 나의 죽음을 인도하리라!”

 

“개소리 그만해!”

 

천광호는 말 많은 그의 입을 단칼에 침묵시키고 북궁천에게 물었다.

 

“승룡당 무사들은 어떻게 되었나? 이곳에 죽어 있는 사람들이 전부인가?”

 

북궁천은 천종규가 뛰어든 숲을 가리켰다.

 

“승룡당주와 살아남은 사람들은 저쪽 숲으로 도주했는데, 천사교도들도 상당수가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시커멓게 물든 숲을 바라본 천광호의 입에서 절로 욕이 튀어나왔다.

 

“아, 씨발. 갈수록 태산이군.”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 숲 속은 절정고수들에게도 위험한 곳이었다.

 

도주하는 자들에게는 천혜의 조건일지 몰라도 쫓는 자들에게는 악몽과 같은 곳.

 

그 안에 악귀 같은 천사교도들이 있다면 위험은 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천종규와 승룡당 무사들이 천사교도들에게 쫓기고 있다면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었다.

 

“나와 단화린이 앞장선다! 조심해서 따라와!”

 

 

 

* * *

 

 

 

숲 속으로 뛰어든 회룡당 무사들은 안력을 최대한 돋우고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발아래의 바위도, 옆으로 아무렇게나 뻗은 나뭇가지도 모두가 흉기였다.

 

더 무서운 것은 적아를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천사교도들이었다.

 

앞장서 가던 북궁천과 천광호는 달려드는 자가 누구든 일단 베고 봤다.

 

어차피 승룡당 무사들이라면 무조건 달려들 리가 없었다. 천광호가 북궁천과 나란히 가며 소리치고 있었으니까.

 

“천사교도들은 들어라! 네놈들은 죽어서 지옥 속으로 떨어질 거다! 지옥에 떨어지기 싫으면 속히 튀어나와서 머리를 조아리고 잘못을 빌어라! 종규 형님! 어딨수!”

 

사실 그는 조용히 전진할 생각이었다. 적이 있는 숲 속에서 떠든다는 것은 자살 행위라는 게 일반적인 생각인 것이다.

 

그런데 북궁천이 그에게 말했다.

 

 

 

“소리 내지 않고 조용히 움직이는 것은 도주하는 자와, 암중에 적을 쫓는 자가 취할 행동이오. 우리는 지금 적을 찾아내는 것과 동료를 구하는 것이 목적이니 소리를 지르면 일거양득의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 말이 제법 그럴 듯했다. 

 

그때부터 그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다른 방법도 없었으니까.

 

바짝 긴장해 있던 회룡당 무사들이 그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반감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이득이었다.

 

반면 천사교도들은 그 말에 광기를 일으키며 덤벼들었고, 지옥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바위에 등을 기대고서 숨을 헐떡이던 천종규가 천광호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반색해서 소리쳤다.

 

“저 목소리는 광호? 여, 여기다, 광호!”

 

천종규를 에워싸고 있던 승룡당 무사들은 ‘광호’라는 말을 듣고 함께 외쳤다.

 

“여깁니다! 당주님!”

 

그들이 미친 호랑이를 그토록 애절하게 부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천종규와 승룡당 무사들을 구한 천광호는 숲을 빠져나왔다.

 

그들을 구했다지만 아직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승룡당은 아직 두 조가 남아 있었고, 그들 역시 천사교도들의 공격을 받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그들과의 거리가 적어도 십 리 이상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적의 인원이 많다는 것을 안 이상 한 번에 두 곳을 모두 구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하는 게 좋겠나?”

 

천광호는 북궁천에게 방법을 물었다.

 

북궁천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적을 찾기 위해 뛰어다닐 마음이 없었다.

 

“숲 속에서 한 것처럼 놈들을 자극해 봅시다. 믿음이 강한 자들은 자신들이 신처럼 믿는 존재가 욕먹는 것에 분노를 느끼고 달려올 거요.”

 

천광호가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격장지계(激將之計)의 효과는 이미 숲 속에서 확인된 터였다.

 

게다가 적들 중 일부가 자신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오면 승룡당 무사들이 그만큼 안전해지지 않겠는가.

 

“이봐, 목소리 큰 사람들이 배에 힘주고 한번 소리쳐 봐!”

 

천사교도들에게 치를 떤 방수평은 배에 힘을 잔뜩 주고 외쳤다.

 

“천사교의 잡것들아! 어디 나를 잡아 봐라! 네놈들 따위는 조금도 겁이 안 난다!”

 

뒤이어 조관이 욕을 퍼부었다.

 

“이 개자식들아! 네놈들은 애비 에미도 없냐! 천사지존이란 놈이 어떤 개자식인데 그놈을 믿고 따른단 말이냐!”

 

천광호도 한 몫 거들었다.

 

목소리 큰 거라면 그도 누구에게든 질 마음이 없었다.

 

“천사지존은 개만도 못한 종자다! 언젠가는 내 발바닥을 핥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검을 움켜쥐고 잔뜩 긴장한 채 적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런데 역시나, 반 각도 지나지 않아서 반응이 왔다.

 

우우우우!

 

“천사지존을 거역하는 자들의 심장을 꺼내 씹으리라!”

 

“저놈들을 갈가리 찢어 짐승의 밥을 만들어 버려라!”

 

천사교도들이 광기에 찬 욕설을 퍼부으며 그들을 향해 몰려들었다.

 

언뜻 보이는 것만 해도 칠팔십 명은 될 듯했다. 아직 보이지 않는 자들까지 합하면 족히 백 명은 달려올 것 같았다.

 

“지미, 많이도 몰려오는군.”

 

천광호는 방수평에게 계속 욕설을 퍼붓게 하면서 철저히 방어진을 형성한 채 그들을 맞이했다.

 

“부상자를 가운데 두고 놈들을 막는다! 구멍이 뚫리지 않도록 철저히 막아라!”

 

 

 

천사교도들을 지휘하는 자는 오십 대 중반으로 보이는 초로의 중년인이었다. 

 

민산의 독귀라 불리는 혈비귀독(血肥鬼毒) 갈태중.

 

수하들과 함께 달려온 그는 상대의 숫자가 자신들의 반 정도에 불과한 것을 보고 진한 살소를 흘렸다.

 

“흐흐흐흐, 겁을 상실한 놈들이군. 그렇게 죽는 것이 소원이라면 원대로 해 주마.”

 

두 손을 어깨 위로 들어 올린 그는 천사교도들을 향해 소리쳤다.

 

“천사를 따르는 교도들이여! 놈들의 피로 목을 적시고, 놈들의 살로 배를 채우자!”

 

우우우우우!

 

“천사의 세상을 위해!”

 

천사교도들은 광기에 찬 눈을 번들거리며 회룡당 무사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 * *

 

 

 

싸움이 시작된 지 반 시진.

 

새벽 어스름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몰려든 천사교도들은 모두 백이십여 명. 갈태중은 천사교도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자 이를 갈면서 후퇴 명령을 내렸다.

 

“모두 돌아간다!”

 

마지막 한 사람까지 싸울 것 같던 천사교도들은 후퇴 명령이 떨어지자 썰물처럼 뒤로 물러났다.

 

그때까지 남은 천사교도들은 사십여 명이 채 안 되었다.

 

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회룡당 무사들은 그들을 쫓기는커녕 물러가는 걸 다행으로 생각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혼자서 천사교도 삼십여 명을 쓰러뜨린 북궁천도 후퇴하는 그들을 바라보기만 했다.

 

하룻밤 새 너무 많은 것을 드러냈다. 그나마 밤이었고, 최대한 단순한 초식만 펼쳤기에 자신의 실력을 정확히 알아본 자는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더 힘을 드러내면 사람들의 의문이 깊어질 터. 그럼 일이 복잡해질지 모른다.

 

그것은 자신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려려가 알면, 대협답지 못하게 잔머리나 굴린다고 할지 모르겠군.’

 

사심 때문에 마인들을 그냥 보낸 것도 뭐라고 하겠지?

 

‘후우, 역시 대협이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대협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헌원려려를 얻는 것이었다.

 

그녀를 얻지 못하면, 대협이 된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천광호는 회룡당 무사들을 풀어서 살아남은 승룡당 무사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구십 명에 이르는 승룡당 무사들 중 살아남은 자는 반도 되지 않았다. 그나마도 부상자가 이십 명이 넘었다.

 

천종규는 보고를 받고 참담한 상황에 입이 달라붙었다.

 

회룡당 무사들도 아홉 명이 죽고 삼십여 명이 부상을 입은 상태여서 천광호의 표정 역시 가라앉아 있었다.

 

그래도 전력을 쪼개지 않았기에 그 정도 피해로 끝났다.

 

만약 각 대별로 나누어서 적을 상대했다면 몇 사람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천광호는 그 점을 위안으로 삼았다.

 

“멀쩡한 놈들은 부상자들부터 치료해!”

 

수하들에게 소리친 그는 이를 갈면서 천종규의 옆에 앉았다.

 

“이 정도로 끝난 걸 다행으로 생각하쇼. 하마터면 전부 죽을 뻔했수.”

 

천종규의 눈빛이 잘게 떨렸다.

 

그도 모르지 않았다. 회룡당이 제때에 오지 않았으면 거의 대부분이 죽었을 것이다.

 

자신 역시.

 

그래도 참담한 마음은 쉽게 떨칠 수 없었다.

 

천광호는 힐끔 천종규를 살펴보고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더러운 자식들. 시신을 회수하는 사람들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도 모르나? 정신이 헤까닥 돌아 버린 놈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천사교를 향해 한참 욕을 퍼부은 그는 천종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도화당이 쉽게 당한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놈들이 우리의 움직임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형은 어떻게 생각하쇼?” 

 

천종규는 천광호의 말뜻을 짐작하고 눈빛이 파르르 떨렸다.

 

“본 궁의 간부 중에 첩자가 있단 말이냐? 왜 그런 생각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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