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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33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026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33화

 

33화

 

 

 

 

 

 

 

“어, 어떻게 이런 개 같은 일이…….”

 

그때 거대한 손이 다시 그를 향해 떨어졌다.

 

그는 사력을 다해서 막아 봤지만, 갈가리 찢겨나간 그의 혈맥에선 기운이 제대로 돌지 않았다.

 

퍼버벅!

 

“크어억!”

 

한순간에 오 권을 두들겨 맞은 그는 몸이 벽에 반쯤 틀어 박혔다.

 

북궁천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벽에 박힌 그를 향해 날아가며 발을 쭉 뻗었다.

 

만근 쇠망치 같은 뒤꿈치가 나홍백의 하복부에 꽂혔다.

 

쾅!

 

“끄악!”

 

하복부가 완전히 으깨진 나홍백은 처절한 비명을 내지르며 벽과 함께 안쪽으로 무너졌다.

 

작신 뭉개진 하체에서 흘러나온 핏물이 사방으로 번졌다. 떡 벌린 입에서도 울컥거리며 핏물이 쏟아졌다.

 

“지옥에 가서도 그딴 짓할 생각마라, 늙은이.”

 

나홍백의 하체를 철저히 부숴 놓은 북궁천은 손을 털고 돌아섰다.

 

싸우는 사이, 무기를 든 환락방 무사 수십 명이 백낙원에 들어와 있었다.

 

나홍백이 처참하게 당한 모습을 본 그들은 인세에 현신한 염왕이라도 본 듯 혼이 반쯤 빠져 있었다.

 

“가세, 아우들.”

 

북궁천은 도, 창, 검 등 온갖 무기를 들고 있는 자들이 안 보이는지 그들이 있는 쪽으로 당당히 걸어갔다.

 

“비켜!”

 

나직하면서도 힘 있는 한마디에 환락방 무사들이 쫙 갈라졌다.

 

 

 

나홍백의 죽음은 즉시 왕두평에게도 알려졌다.

 

그는 나홍백이 정체불명의 고수와 싸워서 하체가 으깨진 채 처참한 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소를 터트렸다.

 

“와하하하하! 역시 내 짐작이 맞았군! 아주 대단한 공자야!”

 

그는 암평도국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크고 작은 주루와 객잔들을 남양 곳곳에서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주인과 점소이들이 모두 그의 수하들이었다.

 

암경회(暗鯨會).

 

환락방과 함께 남양의 흑도세력을 양분하고 있으면서도, 남들 앞에 나서지 않는다는 암경회의 실질적인 주인이 바로 왕두평이었던 것이다.

 

이제 나홍백이 죽은 이상 환락방은 기를 펴지 못할 터. 남양의 흑도를 평정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단 한 사람으로 인해 복수와 소원을 한꺼번에 이룬 것이다.

 

북궁천에게 진심으로 굴복한 그는 모든 부하들을 풀고 현상금까지 걸어서 헌원려려에 대한 소식을 수소문했다.

 

“무조건 찾아라! 찾는 사람에게는 은자 백 냥을 줄 것이다!”

 

 

 

* * *

 

 

 

선유원으로 돌아가자 이정한 등이 기다리고 있었다.

 

북궁천은 어딜 다녀왔느냐는 그들의 물음에 간단히 답했다.

 

“그녀에 대해 안다는 사람이 있어서 만나러 갔다 왔네.”

 

“찾았습니까?”

 

북궁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어디로 갔는지 정도만 알아냈네. 머지않아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있을 거야.”

 

“정말 잘됐습니다, 대형!”

 

세 사람은 자신들의 일인 양 좋아했다.

 

북궁천은 그런 세 사람을 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용천보에서 받은 돈 중 일부를 그 일로 썼네. 아우들의 뜻도 물어보지 않고 쓴 점, 이해해 주게.”

 

이정한이 쓸 데 없는 말 한다는 듯 손을 저었다.

 

“무슨 말씀을! 아무 걱정 마십시오. 그 돈을 다 써도 저희는 불만이 없습니다.”

 

“고맙네. 어쨌든 사람들을 시켜 알아보라 했으니 며칠 여유가 있을 거야. 그동안 쉬면서 무공을 가다듬어 보도록 하세.”

 

세 사람이 상기된 표정으로 힘차게 대답했다.

 

“예, 대형!”

 

 

 

쏟아지는 햇살에 찬바람마저 따사롭게 느껴지는 아침.

 

조용하던 장원의 한쪽 구석진 방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울렸다.

 

“왜 그렇게 위험한 행동을 해요?”

 

“내가 뭘? 대형께서 다 처리하시고 우리는 뒤치다꺼리만 했는데.”

 

황보청은 황급히 변명하며 자신의 방정맞은 입을 원망했다.

 

혈귀수 나홍백의 죽음이 너무 놀라워서 자랑 삼아 이야기했는데, 유소예가 성난 고양이처럼 야단을 친 것이다.

 

“정말 앞장서서 안 싸웠어요?”

 

“정말이라니까? 못 믿겠으면 기진 아우에게 물어봐.”

 

황보청은 모든 책임을 북궁천에게 떠넘기고, 뒤처리는 종리기진에게 맡겼다.

 

별수 없었다. 어영부영 속여 넘기기에는 유소예가 너무나 영악했다.

 

나중에 용서를 빌더라도 일단은 대형을 파는 수밖에.

 

종리기진이야 몇 번 당해서 그러려니 할 것이니 걱정할 것 없었다.

 

다행히 유소예도 더 이상 추궁하지 않았다.

 

“좋아요, 이번 한 번만 믿어 드리죠.”

 

“하, 하, 하. 고마워, 예매.”

 

“근데 말이에요, 단 공자께서 정말 그렇게 강하세요?”

 

황보청은 전날 밤의 일을 떠올리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나도 솔직히 그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어. 나홍백을 그렇게 죽이다니.”

 

“진짜 정체가 뭐예요?”

 

“나도 몰라.”

 

“대형이라면서요?”

 

“어.”

 

“아니, 대형이라는 분이 자신의 진실된 정체도 안 가르쳐 줘요?”

 

“나중에 말해 준데. 지금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면서.”

 

“그럼 헌원려려라는 여인은 왜 찾는 거죠?”

 

유소예는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작은 단서가 모이고 모이다 보면 언젠가는 답이 나오는 법. 그녀는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어릴 때 가까이 지낸 사이였나 봐. 그런데 그녀가 남쪽으로 내려간 후 연락이 끊겨서 생사조차 알 수 없게 되자 직접 찾으러 왔다고 해.”

 

“서로 좋아하는 사이래요?”

 

“자세히는 몰라도, 그런 것처럼 보여.”

 

“도대체 어떤 여인이기에 그녀를 찾아서 만 리 길을 떠나왔는지 모르겠군요.”

 

그때만큼은 유소예도 가슴이 찡했다.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만 리 길을 떠나온 남자.

 

이 얼마나 감동적이란 말인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가로 다가갔다. 마침 종달새 두 마리가 낙엽 떨어지는 나무 위에 앉아서 서로의 깃털을 손질해 주고 있었다.

 

‘아, 나도 그런 남자를 만나고 싶었는데…….’

 

지금이라도 멀리 가 봐? 황보청이 찾아오나 보게?

 

하지만 황보청은 그녀의 마음을 알지 못한 채 무뚝뚝하게 말했다.

 

“만 리가 멀긴 해도 열심히 달리면 한 달 내에 갈 수 있는 거린데 뭐.”

 

유소예는 그런 황보청을 흘겨보며 혀를 찼다.

 

‘으이그…… 저 무감각!’

 

황보청은 속도 모르고 유소예의 뒤로 접근해서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보다, 유매. 유매에 대해서 아버님께 말씀드릴 생각인데, 괜찮지?”

 

“아직 안 돼요! 제 아버님이 황보 공자를 인정할 때까지는 말씀드리지 마세요.”

 

톡 쏘아붙인 유소예는 홱 몸을 틀었다.

 

그 바람에 막 그녀의 어깨를 쥐려던 황보청의 손이 허공에 둥둥 떠서 방황했다.

 

‘쩝, 망설이지 말고 그냥 안아 버렸어야 하는데!’

 

물론 그러지 못한다는 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았다. 그저 그러고 싶다는 바람일 뿐.

 

입맛을 다시며 아쉬워하던 그는 몇 번이나 꾸었던 꿈을 또다시 반복했다.

 

‘다음에는 한 대 맞더라도 일단 안고 봐야지.’

 

유소예는 그런 황보청을 힐끗 쳐다보고는 입술을 삐죽였다.

 

‘하여간 덩치만 컸지 눈치가 없어. 그냥 확 끌어안으면 누가 뭐라고 해? 바보 멍청이!’

 

 

 

* * *

 

 

 

왕두평에게 연락이 올 때까지 이정한과 동호량, 초강은 무공 수련에 열을 올렸다.

 

힘들어도 군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북궁천은 초조한 마음을 누르기 위해서 그들을 평소보다 심하게 다그쳤다. 덕분에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다.

 

황보청과 종리기진도 그들에게 뒤질세라 수련에 열을 올렸다.

 

나홍백의 죽음을 보면서 충격을 받은 두 사람은 북궁천에게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북궁천은 자신들과 격이 다른 고수였다. 

 

게다가 의형 아닌가. 의형에게 배우는 것은 창피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귀를 열고 눈빛을 번뜩였다.

 

그렇게 번갯불에 콩 튀겨먹듯 칠일이 훌쩍 흘렀다.

 

 

 

운공조식을 마치고 앞마당으로 나간 북궁천은 구름 한 점 없는 쪽빛 하늘에 떠 있는 아침 해를 바라보았다.

 

헌원려려 찾는 일을 왕두평에게 맡겨놓은 지 어느덧 칠 일째다. 지금쯤 어떤 소식이 있을 법한데도 아직 특별하게 전해진 것은 없었다.

 

왕두평을 찾아가서 자세한 상황을 알고 싶었지만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억지로 눌러야만 했다.

 

넓고도 넓은 중원 땅에서 한 사람을 찾는 일이 어찌 쉬울까.

 

마음은 촌각 만에 천 리를 오갈 수 있어도,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한 사람을 찾기에는 칠 일이 결코 긴 시간은 아니었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무슨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아니, 찾을 수는 있을까?

 

그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후자에 대한 두려움이 그의 마음을 짓누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한 가지 생각을 되뇌었다.

 

‘떠나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랴.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는데.

 

북궁천은 씁쓸한 마음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쪽빛 하늘을 가르며 철새 한 쌍이 날아가고 있었다.

 

‘그날은 정말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지.’

 

술에서 깬 뿌연 새벽, 찢어진 옷을 걸친 채 처연한 눈빛으로 허공을 바라보던 그녀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가 그녀를 범한 후 날이 샐 때까지 그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려려, 그날은 정말로 미안했다.’

 

그 일이 있었을 때 바로 미안하다고 했어야 했는데……. 

 

그 당시에는 그럴 수가 없었다. 아니, 그래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는 북천의 주인. 그의 머릿속에는 미안하다는 말이 들어 있지 않았으니까.

 

그날 미안하다는 말만 했어도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거늘. 그녀의 마음을 얻었을지도 모르거늘…….

 

‘멍청한 놈.’

 

기껏 한다는 말이 네 맘대로 하라는 말이었으니, 생각해 보면 정말 우매한 짓이 아닐 수 없었다.

 

그때만 해도 그녀를 마주 보는 게 부담되어서 그랬는데, 그야말로 최악의 선택이었다.

 

싫다고 해도 붙잡아 놓고 마음을 돌려야 했는데, 미안하다며 달랬으면 마음이 돌아섰을지도 모르는데.

 

‘너는 정말 어리석은 놈이다, 북궁천. 미안하다는 말이 뭐 그리 어렵다고…….’

 

그때 누군가가 뒤로 다가오는 느껴졌다. 그리고 곧 유원당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생각을 그리 깊게 하는가?”

 

천천히 고개를 내린 북궁천은 몸을 돌렸다.

 

유원당이 웃으면서 그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아쉬움을 가슴 한구석에 구겨 넣고 담담히 말했다.

 

“이곳은 제가 살던 곳보다 확실히 따뜻하군요. 제가 사는 곳은 지금쯤 첫눈이 내렸을 텐데 말입니다.”

 

“날씨가 다르면 성격도 다른 법이라네. 혹시라도 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되면 그 점을 염두에 두게나.”

 

“그도 그렇군요. 하긴 북쪽에 사는 사람들은 맺고 끊는 게 확실한데, 이곳 사람들은 조금 느슨하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물론 전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만.”

 

“이곳에 오래 있을 생각인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찾고자 하는 사람을 찾는다면?”

 

찾는 게 문제가 아니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얻는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돌아갈 생각입니다.”

 

단, 함께 갈 경우에만.

 

“어떤 여인인지 몰라도 행복하겠구먼.”

 

정말 그럴까? 그녀는 자신이 찾아온 것을 행복하게 생각할까?

 

만약 자신이 찾아온 것을 싫어한다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녀가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어 있을 경우였다.

 

자신을 싫어하는 것은 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다면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진즉 찾아 나섰으면 그런 걱정 할 것도 없었을 텐데. 바보 같은 놈이다, 너는.’

 

속으로 자신을 다그친 북궁천은 쓴웃음을 지으며 유원당의 말에 답했다.

 

“저도 그녀가 행복해했으면 좋겠습니다.”

 

유원당은 마치 그의 속을 엿보기라도 한 듯 조용히 웃었다.

 

“너무 걱정 말게.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까.”

 

정말 그럴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이 사람에게 다 털어놓고 상의해 볼까?’

 

북궁천이 고심하며 갈등을 겪고 있을 때였다. 이정한이 저만치서 달려왔다.

 

“대형, 왕 대인의 부하라는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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