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정록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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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무료소설 조회 994회 작성일소설 읽기 : 마정록 22화
22화
절단된 그의 팔에서 분수처럼 뿜어지는 핏줄기!
가슴 저 깊은 곳에서 고통에 찬 비명이 터져 나왔다.
“끄어억!”
“양 형!”
엽청문은 악을 쓰듯 외치며 양태규 쪽으로 이동했다.
바로 그때, 지켜보고 있던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이 검을 빼 들고 가마를 향해 몸을 날렸다.
“어딜!”
백화선자는 부상이 심한 와중에도 검기를 일으켜 상대의 앞을 막았다.
복면인은 백화선자가 펼친 방어막을 검으로 내리쳤다.
쾅!
귀청을 찢는 굉음과 함께 백화선자의 몸이 주르륵 밀려나서 가마에 부딪쳤다.
그 모습을 본 공손설이 대경해서 소리쳤다.
“낭랑!”
“나, 나오지 마세…….”
백화선자는 팔을 뻗어서 밖으로 나오려는 공손설을 제지하고, 다가오는 복면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내 시신을 밟지 않고는…… 아가씨의 머리카락 한 올도 건드릴 수 없을 것이다.”
그녀가 이를 갈며 말할 때마다 입술 사이로 붉은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은 여유만만한 걸음걸이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철군십위의 충성심은 하늘도 감복한다더니, 명불허전이야.”
나직이 말을 내뱉은 그는 검을 사선으로 들어올렸다.
푸르스름한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더니 검첨에서 쭉 뻗어 나갔다.
그걸 본 백화선자의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커졌다.
“거, 검강……?”
복면인의 두 눈 가장자리에 서너 줄기 주름이 졌다.
오만한 웃음.
“내 손에 죽는 걸 영광으로 알아라.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온다 해도, 너희는 오늘 염왕의 부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후후후후.”
그는 웃음을 흘리며 검을 들어 백화선자를 가리켰다.
백화선자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하지만 상대가 아무리 강하다 해도 목숨을 고스란히 내줄 수는 없는 일.
입술을 질끈 깨문 그녀는 두 손으로 연검을 잡고 선천지기까지 모조리 끌어 올렸다. 그러고는 눈을 부릅뜨고 복면인을 향해 몸을 날렸다.
‘함께 죽자, 이놈!’
금방 쓰러질 것 같던 그녀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드는데도 장대한 체구의 중년인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침착하게 원을 그리듯 검을 휘둘러서 백화선자의 연검을 휘감았다.
쩌러러렁.
검강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연검은 백화선자의 손을 벗어나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검을 놓친 그녀는 정신없이 뒤로 물러나서 가마에 몸을 기대고 한 움큼의 피를 토해 냈다.
“우웩!”
복면인은 조소를 지은 채 걸음을 옮기면서, 핏물로 붉게 물든 그녀의 가슴을 검으로 가리켰다.
“아주 탐스러운 가슴이군.”
최후의 공격마저 실패로 돌아간 상황. 백화선자의 얼굴에 절망이 떠올랐다.
“아가씨…….”
그녀는 복면인의 검에서 뻗어 나온 기운에 가슴 옷자락이 갈라지는데도 피할 수가 없었다. 피하면 바로 뒤에는 공손설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멈춰요!”
공손설이 소리치며 가마 안에서 뛰어나왔다.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은 백화선자의 속살을 보기 직전에 검을 멈추고 공손설을 바라보았다.
“내가 왜 멈춰야 하지?”
“낭랑과 엽 아저씨를 살려 주면 제가 따라가겠어요. 설마 제 시신을 가져가려고 온 것은 아니겠지요?”
“물론이다.”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이 순순히 답한 순간, 공손설의 손이 소매 속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녀의 손에는 날이 선 비수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비수를 목에 대고 말했다.
“당장 멈추지 않으면, 당신도 내 시신을 가져가야 할 거예요. 그럼 당신을 보낸 사람은 결코 당신을 용서치 않을 거예요. 당신들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분노가 극에 달한 철군성을 상대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닐 테니까요.”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은 그 말을 듣고 눈살을 찌푸리더니, 다른 복면인들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엽청문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넣던 복면인들이 썰물처럼 뒤로 물러났다.
“똑똑하다는 말을 듣긴 했다만, 그런 용기까지 있을 줄은 몰랐군. 좋다. 저들을 살려 줄 테니 너는 비수를 던지고 나에게로 와라.”
공손설은 온몸이 피로 물든 엽청문과 백화선자를 돌아다보았다. 양태규는 죽었는지 꼼짝도 않고 있었다.
그녀의 비수를 쥔 손이 잘게 떨렸다.
‘부처님, 저를 돌봐 주세요.’
마음속으로 부처에게 빈 그녀는 목에서 비수를 천천히 떼었다.
그런데 그녀가 막 걸음을 떼려고 할 때였다.
“잠깐 기다려!”
하늘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울리더니, 한 사람이 공손설의 옆에 유령처럼 내려섰다. 북궁천이었다.
“꼬마야! 조금 전에 누가 염왕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였지?”
공손설은 멍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봐? 누가 그랬냐니까?”
순간, 공손설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목숨이 오락가락하는 상황인데도 이상하게 마음이 안정되었다. 너무 뜬금없는 말에 긴장이 풀린 건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녀의 눈물을 본 북궁천은 홱 고개를 돌려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을 노려보았다.
“당신인가 보군. 당신이 이 애를 울렸나?”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은 어이가 없었다.
잠깐 여유를 부리는 바람에 상대가 나타나는 것을 놓치긴 했지만, 나타난 놈이 젊은 놈인 걸 알고 그다지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말하는 투를 보니 제정신이 아닌 놈 같았다.
“네놈은 누구냐?”
“나? 천신.”
“뭐?”
“그리고 대협이 되고 싶은 사람.”
“미친놈!”
“하늘에서 천신이 내려와도 염왕의 부름을 피할 수 없다고? 어디 피할 수 있는지 없는지 한번 볼까?”
북궁천은 씩 웃으며 옆구리의 검을 잡아 뽑았다.
그리고 복면인만큼이나 어이없는 표정을 짓고 있는 엽청문과 백화선자에게 말했다.
“당신들까지 다 구할 수는 없으니 이해하시고, 알아서 살아나시오.”
어차피 두 사람으로선 다른 길이 없었다. 공손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열 번이라도 목숨을 던질 수 있었다.
“우리 걱정은 마……시고, 아가씨를 구해 줘요.”
백화선자 능소소는 전처럼 반말로 대꾸하다가 말투를 바꿨다.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상태. 조금은 못 미더워 보이지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엽청문도 입술을 질겅질겅 깨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는 어설프게 의협을 행하겠다고 뛰어든 애송이가 아닌가 싶었는데 왠지 느낌이 이상했다.
태연한 행동, 흔들림 없는 눈빛.
자신의 경험으로 봐선 둘 중 하나였다.
예상치 못 했던 고수, 아니면 진짜 미친놈.
그는 북궁천이 제발 고수이기만 바라며 말했다.
“네가 아가씨만 구해 주면 죽어서라도 은혜를 잊지 않으마.”
“좋소! 그럼 시작해 볼까?”
호쾌하게 소리친 북궁천은 느닷없이 왼손을 뻗어서 공손설을 낚아채더니, 전력을 다해 몸을 날렸다.
“어마!”
그 상황에서도 공손설은 외마디 소리를 비명처럼 내질렀다.
“꽉 잡아!”
북궁천은 공손설을 다그치고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날아갔다.
멍하니 있다가 뒤통수를 맞은 격.
“네놈이 어디서 감히!”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은 노성을 내지르며 북궁천을 쫓아서 신형을 날렸다.
뒤에 남았던 복면인들도 일제히 그들의 뒤를 쫓아갔다.
공손설을 놓치면 끝장이었다. 다 죽어 가는 엽청문과 능소소를 죽이겠다고 머물 여유가 없었다.
잔뜩 긴장하고 있다가 그들이 떠나는 바람에 둘만 남게 된 엽청문과 능소소는, 긴장감이 풀리면서 갑자기 몰려드는 극렬한 고통에 몸을 후들후들 떨었다.
그때 절벽 길 위쪽에서 이정한 등이 뛰어내려왔다.
“괜찮으십니까?”
그들이 북궁천의 일행임을 알아본 엽청문은 악착같이 버티고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능소소는 더 버티지 못하고 가마에 기대며 주저앉았다.
그 모습을 본 이정한은 깜짝 놀라서 급히 달려가 그녀를 부축했다.
“잘 잡아. 앞이 안 보이니까 머리는 숙이고!”
북궁천은 공손설을 다그치며 자신의 독문신법인 승천무풍행(昇天無風行)을 펼쳐 오 리를 달렸다.
맞서 싸워도 질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공손설만 아니어도 도망칠 이유가 없었다. 하다못해 적의 숫자만 적었어도.
그러나 지금은 공손설을 구하는 게 먼저였다.
자신이 장대한 체구의 중년인과 맞붙는 사이 다른 자들이 그녀를 공격하면 차단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은 거리를 벌려 놓고 대처하는 수밖에.
그리고 자신이 공손설과 함께 그곳을 떠나면 다른 사람도 안전해지지 않겠는가. 그들의 목적은 공손설이니까.
‘이 꼬마가 려려면 참 좋을 텐데…….’
그때 빨개진 얼굴을 북궁천의 가슴에 묻고 있던 공손설이 무안함을 떨치기 위해 나직이 물었다.
“벗어날 수는 있겠어요?”
“그게 쉽지 않을 거 같다. 저 양반의 걸음이 워낙 빨라서 말이지.”
‘네 엉덩이도 생각보다 무겁고.’
북궁천은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하고 땅을 박찼다.
그가 말한 대로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과 거리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하지만 복면인의 신법이 빨라서 거리가 좁혀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북궁천 자신이 원해서 좁혀지는 것이었다.
아무리 공손설 때문이라 해도 그렇지, 자존심 상하게 꽁지 말고 무작정 도망칠 순 없는 일 아닌가 말이다.
‘어디 한번 식은땀 좀 흘려 봐라, 덩치.’
단숨에 오백여 장을 달린 북궁천은 앞에 사람 키만 한 바위가 보이자 왼발을 바위에 딛고 멈춰 섰다.
그리고 공손설을 내려놓은 후 허공으로 솟구쳤다.
“너는 계속 가라!”
뒤쫓아 오던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은 눈을 번뜩이며 득의의 고함을 내질렀다.
“이놈! 어디 더 도망가 보지 그러느냐!”
북궁천은 허공에서 빙글 돌며 몸을 거꾸로 세우고는 복면인을 향해 떨어져 내리며 검을 뻗었다.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은 단숨에 북궁천의 몸을 가르겠다는 듯 마주 검을 뻗었다.
찰나간에 벌어진 세 번의 격돌!
쩌저저정! 콰광!
두 사람의 검은 직접 부딪치지도 않았는데 허공이 터져 나갔다.
북궁천은 뒤로 날아가 바위 위에 표표히 내려서고,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은 삼 장을 뒤로 날아간 후 비틀거리며 두 걸음을 물러섰다.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은 자신이 밀렸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지 눈을 부릅뜬 채 북궁천을 노려보았다.
그때 북궁천이 다시 신형을 날리며 그를 공격했다.
고오오오오!
가공할 경력이 해일처럼 밀려들자,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은 전 공력을 검에 쏟아 부었다.
일순간, 그의 검첨에서 다시 시퍼런 검강이 솟구쳤다.
“와라, 이놈!”
자신감이 생긴 그는 북궁천을 향해 마주쳐 갔다.
찰나! 시퍼런 검강과 묵빛 해일이 뒤엉켰다.
콰과과광!
연이어 굉음이 울리며 면산을 뒤흔들었다.
그 직후 두 사람이 뒤로 튕겨지듯이 날아갔다.
일장을 날아 바위 앞에 내려선 북궁천은 검을 가슴 높이로 들어 올렸다.
땅에 내려선 후 쿵쿵거리며 세 걸음을 물러선 복면인이 그를 보며 눈빛을 파르르 떨었다.
“어떻게 이런 개 같은 일이…….”
“그 정도에 놀라면 내가 섭섭하지.”
북궁천은 담담히 답해 주며 묵혼을 느릿하게 들어올렸다.
그 사이 세 명의 복면인이 바로 뒤까지 쫓아왔다.
“저희가 맡겠습니다, 령주!”
그들 중 하나가 소리치고, 세 사람이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을 스쳐서 북궁천을 향해 날듯이 달려갔다.
“조심해라! 보통 놈이 아니다!”
장대한 체구의 복면인이 다급히 주의를 주었다.
북궁천은 달려오는 세 사람을 보며 검을 가슴에서 일자로 눕혔다.
그리고 상대와의 거리가 이 장이 되자,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며 검을 가로로 그었다.
천천히.
쩍!
직접적으로 소리가 나지는 않았지만, 보는 사람의 귀에는 그런 환청이 들린 듯했다.
허공이 일자로 갈라지는 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