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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정록 19화

무료소설 마정록: 보고 들으면서 쉽게 읽는 소설감상

작성자 조회 1,214회 작성일

소설 읽기 : 마정록 19화

 

19화

 

 

 

 

 

 

 

* * *

 

 

 

사운도가 써 준 문서와 오십 냥을 받아 들고 용천보를 나선 북궁천 일행은 곧장 남쪽으로 향했다.

 

추적에 능한 추룡당 무사들이 흔적을 추적하고 있다 했으니, 기현의 용천보 지부에서 그들을 만나 보면 좀 더 자세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전에 그들이 도둑을 잡는다면 잘된 일이고.

 

 

 

미시(未時:오후1시~3시) 무렵.

 

진중에 도착한 북궁천 일행은 점심을 먹기 위해서 객잔을 찾아 대로를 가로질렀다.

 

그때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무사 셋이 보였다. 복장으로 봐서 용천보의 무사가 분명했다.

 

북궁천은 거리가 가까워지자 그들을 불러 세웠다.

 

“추룡당의 무사요?”

 

셋 중 삼십 대의 장한이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그렇소만.”

 

북궁천은 사운도에게 받은 문서를 그에게 내밀었다.

 

 

 

용천보의 무사들은 이 문서를 지닌 단화린에게 적극적으로 협조해라. 용호단주 사운도.

 

 

 

무사는 문서의 내용을 읽고 눈이 커졌다.

 

“귀하가 단화린이오?”

 

“그렇소. 쫓고 있는 자의 정체를 알아냈소?”

 

“인상착의만 알아냈소.”

 

“그거라도 말해 보시오.”

 

장한은 힐끔 문서를 보고는 사실대로 말했다.

 

“평범한 몸집, 굽은 어깨, 키는 오 척 다섯 치 정도요. 머리는 풀어 헤쳐져 있고, 봉처럼 생긴 괴상한 쇠막대를 들고 있다 하오.”

 

장한의 이야기를 듣던 북궁천의 눈이 기이하게 반짝였다.

 

범인의 인상착의를 듣는데 곧바로 한 사람이 떠오른 것이다.

 

‘설마…… 육대기?’

 

정말 그라면 묘한 인연이다.

 

하지만 아직 확실치 않은 일이어서 추룡당 무사에게 말하진 않았다.

 

“그자의 인상착의는 어떻게 알아냈소?”

 

“흔적을 쫓으면서 근처 사람들에게 수상하게 보이는 자에 대해 물어보았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조금 전에 말한 인상착의를 지닌 자를 봤다고 했소. 아직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가 범인일 가능성이 팔 할가량 된다고 보고 있소이다.”

 

자신이 생각해도 당연히 의심할 만했다. 우연이란 것은 그렇게 자주 겹칠 수 없는 법이니까.

 

“그가 향한 방향은?”

 

“기현 쪽으로 내려간 것으로 추측되어서 지금 그자의 뒤를 쫓는 중이오.”

 

“알았소. 우리도 식사를 마치면 바로 뒤쫓아 갈 테니 먼저 가 보도록 하시오.”

 

 

 

북궁천은 서두르지 않았다.

 

만수종 육대기는 잔머리가 뛰어난 자다. 그가 정말 범인이라면 지금쯤 추적을 피해 멀리 도망갔을 터. 식사까지 거르며 쫓아갈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태극문 제자들과 함께 객잔에 들어간 그는 느긋이 식사를 하고 차를 마셨다.

 

‘육대기가 흑옥불상을 잘 아나? 왜 그걸 훔쳤지?’

 

북궁천은 그 점이 궁금했다.

 

흑옥이라는 것 외에는 특별할 것도 없는 불상이었다. 그가 위험을 무릅쓰고 용천보주의 집무실까지 침입해서 훔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말이다.

 

‘그때 자세히 볼 걸 그랬군.’

 

그가 찻잔을 들고 생각에 잠겨 있는데 이정한이 넌지시 물었다.

 

“대형, 쫓아가지 않아도 되겠습니까?”

 

“서두를 것 없네. 어차피 쫓아가도 추룡당의 뒤만 따라가야 할 텐데, 괜히 사서 고생할 필요는 없잖아?”

 

그런데 초강이 북궁천의 말에 토를 달았다.

 

“저, 대형. 의협을 행하는 자는 신의가 첫째라 했습니다. 일을 맡았으면 최선을 다해야 하고,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돈을 받고 일을 맡은 이상 고생이 되어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봅니다.”

 

북궁천은 찻잔을 내려놓고 초강을 직시했다.

 

이정한과 동호량은 입바른 소리를 한 초강에게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초강은 물러서지 않고 북궁천의 눈길을 받아냈다.

 

그때였다.

 

탕!

 

탁자를 친 북궁천이 벌떡 일어났다.

 

깜짝 놀란 이정한은 당황해서 급히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저, 대형. 초 사제 성격이 올곧아서 그런 것이니 이해를…….”

 

“뭐하나? 초강 아우가 한 말 못 들었나? 다 먹었으면 일어나게. 빨리 쫓아가야 그들을 따라잡을 수 있을 거야.”

 

“예?”

 

이정한과 동호량이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북궁천을 바라보았다.

 

북궁천은 아랑곳하지 않고 초강에게 말했다.

 

“초 아우, 미안하네. 내가 의협을 행하는 법에 대해서 너무 몰랐던 것 같군. 앞으로도 잘못하는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게.”

 

“대형, 이러실 것까지는…….”

 

머쓱해진 초강은 얼굴마저 붉어졌다.

 

그러든 말든, 북궁천은 세 사람을 재촉했다.

 

“가세. 의협을 떠나서, 남자라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정한과 동호량은 초강을 째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북궁천 일행이 관도를 따라 팔십 리쯤 내려갔을 때 해가 지며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마을을 찾지 못한 그들은 계곡의 바위 사이에 모닥불을 피우고, 태원을 떠나올 때 사 놓은 건포로 간단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잠시 후. 식사를 마친 이정한과 동호량, 초강은 북궁천 앞에서 무공을 펼쳐 보였다.

 

북궁천은 그들이 시전하는 태극문의 무공을 보고 고칠 점을 말해 주었다.

 

이정한을 비롯한 세 사람은 북궁천의 말을 하늘의 계시처럼 떠받들었다.

 

적혈대주 백숭을 꼬리 말고 도망가게 만든 사람이다. 자신들과는 격이 다른 진짜 고수!

 

함께 있을 때 하나라도 더 배워야 했다.

 

어쩌면 그것이 북궁천과 동행하려 한 가장 큰 목적일지 몰랐다.

 

그렇게 한 시진. 그들은 가을밤의 찬 바람 속에서도 땀을 흘리며 초식을 펼쳤다.

 

그리고 해시(亥時:오후9시~11시)가 다 되어 갈 무렵, 그들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숨을 골랐다.

 

그때 북궁천이 몸을 일으켰다.

 

그는 허공을 무심하게 노려보더니,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본인은 누가 숨어서 엿보는 걸 좋아하지 않소. 그냥 갈 것이 아니라면 모습을 드러내시오.”

 

숨을 고르던 세 사람은 흠칫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한 사람이 날아들었다.

 

북궁천 일행의 삼 장 앞에 내려선 그자는 뒷짐을 지고서 모닥불을 향해 다가왔다.

 

“쉬는데 폐가 되지 않을까 모르겠군.”

 

검은 수염이 턱 밑에 가득한 텁석부리 장한이었다.

 

청의를 입고 등에는 검이 한 자루 메어져 있었는데, 매사에 자신감이 넘치는 당당한 표정이었다.

 

“괜찮소. 쉬어갈 거라면 이쪽으로 오시죠.”

 

“그럴까?”

 

장한은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북궁천과 일 장 거리를 두고 마주 섰다.

 

“우연히 그대가 하는 말을 들었네. 무공에 대한 이해의 깊이가 대단하더군.”

 

“과찬이오.”

 

“누군지 물어도 되겠나?”

 

“단화린이라 하오.”

 

“나는 양무겸이라 하네.”

 

순간 이정한과 동호량, 초강이 불에 덴 사람처럼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단영검객(丹榮劍客)……?”

 

“강호의 친구들이 그렇게 불러 주지.”

 

단영검객 양무겸.

 

그는 산서의 강호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절정검객이었다.

 

그는 실력보다 다른 이유로 더 유명했는데, 십 년 전 산서무림을 뒤흔든 그에 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아직도 못 잊을 정도였다.

 

사랑하는 여인을 얻기 위해 산서 제일의 세력과 맞선 청년. 결국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얻는 데 실패했지만 강호인들은 그의 용기에 환호했다.

 

이정한은 포권을 취하며 열기 어린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저는 태극문의 이정한이라 합니다. 그리고 이쪽은 사제인 동호량, 초강이라 합니다. 이런 곳에서 단영검객을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옆에 대단한 고수가 있는데, 내가 그런 인사를 받아도 될지 모르겠군.”

 

아무리 북궁천이 대단하다 해도 단영검객만 하랴.

 

이정한은 그렇게 생각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 하. 저희 대형이 대단하긴 대단하죠. 일단 앉으시죠.”

 

양무겸은 그가 가리킨 곳에 앉았다.

 

초강이 모닥불에 나뭇가지를 몇 개 얹어서 불길을 키웠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춤을 추며 솟구치는 불티를 바라보던 북궁천이 양무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 늦은 시간에 밤길을 재촉하시다니, 급한 일이라도 있는 모양이군요.”

 

“어쩌다 보니 돌아다니는 게 일상사가 되어 버렸군.”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하는 양무겸의 눈빛이 반사된 불빛으로 인해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다.

 

“세상을 많이 돌아다녀 보셨으면 하남에도 가 봤겠군요.”

 

“가 봤지.”

 

“혹시 헌원려려라는 이름을 들어 보셨소?”

 

양무겸은 세상을 많이 돌아다닌 사람답게 그녀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헌원려려? 장성 너머 응원 검원장의 여장주 말인가?”

 

“듣기로는 그녀가 일 년 몇 개월 전에 하남으로 갔다던데, 들어 보신 적 없소?”

 

별 기대를 하지 않고 물었는데 양무겸이 의외의 대답을 했다.

 

“정주에서 봤다는 말을 언뜻 들은 적이 있긴 한데, 그 후로는 잘 모르겠군.”

 

“정주?”

 

깊게 가라앉았던 북궁천의 눈빛이 활기를 띠었다.

 

장만호가 소개시켜 준 정보 상인도 정주에 있다. 그를 만나면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터. 금방이라도 그녀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 지금도 아는 사람들이 있겠군.’

 

북궁천의 가슴에서 희망의 불길이 활활 타올랐다.

 

당장이라도 만사 제쳐 놓고 정주로 달려가고 싶었다. 사마주광과 약속한 것이 후회스럽기만 했다.

 

‘하루 안에 행방을 찾지 못하면 그냥 내려가야겠어.’

 

그가 내심 결정을 내렸을 때였다. 계곡 아래쪽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북궁천은 계곡 아래를 보더니 눈살을 찌푸리며 양무겸에게 물었다.

 

“저쪽에서 오는 사람들과 아는 사이오?”

 

양무겸은 고개를 돌려서 계곡 아래쪽을 바라보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방향을 틀어서 한동안 안심해도 될 줄 알았는데, 정말 끈질긴 친구야. 아무래도 자네들에게 귀찮은 일만 만들어 준 것 같아 미안하군. 나중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날 수 있겠지. 그럼 먼저 가겠네.”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돌아서기 전에 한마디 더했다.

 

“저들은 철군성 사람들이네. 저들이 나에 대해서 묻거든 사실대로 말하게. 괜한 곤욕을 치르기 싫으면 말이야.”

 

철군성(鐵君城)!

 

이정한과 동호량, 초강은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산서오호가 나름대로 위세를 떨치며 산서의 다섯 호랑이로 불린다 하나 철군성에 비하면 고양이에 불과했다.

 

산서제일세(山西第一勢). 전 중원을 통틀어도 다섯 손가락에 들어가는 대세력. 그게 바로 철군성인 것이다.

 

세 사람은 그제야 양무겸 같은 고수가 왜 피하려 하는지 알고 표정이 돌덩이처럼 굳어졌다.

 

북궁천도 조금은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잖아도 그럴 생각이오. 그런다고 해서 순순히 물러갈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저들도 무지한 사람들은 아니니 억지를 쓰지는 않을 거네. 혹시라도 저들 중에 등씨 성을 쓰는 사람이 있거든 그에게 말하게. 그는 말이 통할 거야.”

 

“등씨 성을 쓰는 사람이라…… 알겠소.”

 

“그럼 다음에 보세.”

 

양무겸은 가볍게 두 손을 맞잡고 흔든 다음 계곡 위쪽으로 빠르게 사라졌다.

 

 

 

그들이 나타난 것은 양무겸이 사라지고 열을 셀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모두 일곱 명. 어둠 속에서도 흐트러짐이 없는 움직임을 보이는 그들은 하나하나가 일류라 하기에 손색이 없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빠르게 다가오더니 삼 장의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그리고 그들 중 붉은빛이 너무 진해서 갈색으로 보이는 적의를 입은 중년인 하나가 앞으로 나오더니 오만한 말투로 물었다.

 

“묻겠다. 이곳으로 텁석부리 장한이 오지 않았느냐?”

 

이정한과 동호량, 초강은 앞에 불길이 있는데도 오싹한 한기를 느끼고 바짝 긴장했다.

 

그때 부지깽이 막대로 모닥불을 뒤적이던 북궁천이 고개를 틀었다.

 

“왔소.”

 

“어디로 갔지?”

 

“저쪽으로 갔소.”

 

북궁천은 부지깽이 막대로 양무겸이 사라진 곳을 가리켰다.

 

하지만 적의중년인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사실이냐?”

 

“그렇소.”

 

“네 말에 진실성이 없어 보이는군.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목이 달아날 것이다.”

 

한껏 좋아진 기분을 망친 자들이다. 북궁천의 입에서도 대답이 곱게 나오지 않았다.

 

“믿지 못할 거면 아예 묻지를 마시오.”

 

“뭐라?”

 

적의중년인은 독사처럼 새파란 눈빛을 번뜩이며 북궁천을 노려보았다.

 

그때 북궁천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에는 여전히 부지깽이 막대가 들려 있었다.

 

그는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더니 부지깽이 막대로 땅에 선을 죽 그었다. 그리고 적의중년인을 직시한 채 말했다.

 

“나는 평온이 깨지는 걸 원치 않소. 그러니 이 선을 넘어오지 마시오. 이 선을 넘어오면…… 후회하게 될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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